주체109(2020)년 12월 9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충성의 한길에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친 참된 전사 혁명투사 김봉석동지의 한생에서
준엄한 항일전의 나날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민족의 태양이신
그들이 지녔던
항일혁명투사 김봉석동지도 혁명의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닌
김봉석동지는 주체25(1936)년 3월 어린 나이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손에 총을 잡고 원쑤격멸의 길에 나섰다.
사령부의 전령병으로 있으면서 김봉석동지는
이 나날에 그는
김봉석동지에게는 한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어려운 행군이나 가렬한 전투가 끝난 후에도
그러던 어느날에는 어쩌다 잠에 드신
김봉석동지의 배낭에는 언제나 사령부의 식사를 보장하기 위한 비상미가 마련되여있었다. 그는 자기의 한몸을 지탱하기도 어려운 행군길에서도 등에 진 배낭의 무게가 무거우면 오히려 마음가벼워하였고 반대로 배낭이 홀가분해지면 무거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다.그러기에 식량사정이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그의 배낭만은 빈적이 없었다.
이 사실들은 김봉석동지가 조선혁명의 운명이신
김봉석동지는 무산지구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주체28(1939)년 6월초
김봉석동지는 사령부지휘처를 철저히 위장하고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였다.
총탄이 비발치고 수류탄이 작렬하는 전투장에서
이 위기일발의 순간 그는 한몸을 내대며 《네놈들은 포위되였다.투항하면 살려준다.》라고 추상같이 웨치고나서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다.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와들와들 떨며 두손을 번쩍 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해야 한다는 굳센 신념이 그로 하여금 서슴없이 그렇게 행동하게 한것이였다.
오늘도 주작봉마루의 혁명렬사릉을 찾는 사람들은 김봉석동지의 반신상앞에서 너무도 가슴이 아파 오래도록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한것은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해방의 날을 하루 앞두고 전사하였기때문이다.
뼈를 에이는듯 한 혹한과 모진 굶주림속에서도, 첩첩히 가로막힌 놈들의 포위속에서도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며
주체34(1945)년 8월 14일,
그날 김봉석동지는
김봉석동지는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적들의 추격을 받게 되였다. 놈들과 용감하게 싸우던 그는 그만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투사는 이렇게 갔다.
그토록 해방된 조국땅을 밟고싶어했던 김봉석동지가 그날을 하루 앞두고 희생되였을 때
《우리 대원들중에는 조국해방을 하루 앞두고 희생된 사람도 있습니다.그 사람이 김봉석이였습니다.김봉석은 내가 제일 사랑하던 전령병이였습니다.그가 내 련락임무를 많이 수행하였습니다.》
김봉석동지는 비록 우리곁을 떠났지만 당과
김봉석동지의 빛나는 생은 우리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리홍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