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30일 로동신문
신념을 지켜싸운 전사의 삶은 태양의 품속에서 이렇게 빛난다 생일 100돐을 맞은 통일애국투사 장호동지에 대한 이야기
《신념과 의리로 하는것이 혁명이며 신념과 의리로 하여 빛나는것이 혁명가의 인생행로입니다.》 0.75평, 이것이 그의 삶의 공간이였다. 례사로운 삶이 아니라 한평도 채 안되는 독감방에서 시시각각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어야 했던 치렬한 삶이였다.모진 박해와 고문속에서도 목숨보다 귀중한 신념을 지켜싸운 피어린 32년세월이였다.
그러한 삶이 은혜로운 태양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20년이 흘렀다.지난 29일 통일애국투사인 비전향장기수 장호동지는
대대로 베풀어지는
20세기 마지막해의 사변
그것은 사변이였다.엄청난 충격이고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가슴뜨거운 화폭이였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9월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
당과
20년, 30년 지어 40여년세월을 철창속에서 보낸 비전향장기수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였는가. 꺾이면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백절불굴의 정신력의 강자들이였다.죽음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옥중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갖은 악형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신념과 지조를 지켜 굴함없이 싸운 조국의 참된 아들들이였다. 아마도 인생의 극적전환이라면 지옥행이 락원행으로 바뀌는것이 아닐가. 바로 인간생지옥에서 락원으로 돌아오는 그들을 온 나라 인민이 열렬히 환영했다.거리거리에 넘치던 환영의 꽃물결과 뜨거움에 젖은 목소리, 《열렬히 환영합니다!》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혁명의 수도 평양에 들어서던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속에는 장호동지도 있었다. 류달리 긴 장발과 시허연 구레나룻… 비록 어제날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지만 그것은 원쑤들과 싸워이기고 돌아오는 영웅의 장한 모습이였다.그날 장호동지의 두볼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30여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하면서 페인이 다된 그였다.보통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고통과 시련속에서 눈물조차 말라버린 그였다. 그러나 그는 흐느껴 울고울었다. 얼마나 밟고싶었던 땅이였던가.얼마나 안기고싶었던 조국의 품이였던가. 가없이 넓고 푸른 평양하늘을 우러르는 그의 가슴속에서 저도모르게 불같은 웨침이 터져올랐다. 어머니!- 아들은 이렇게 어머니품에 안기였다. 30대 홍안의 시절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나섰다가 인생의 황혼기인 80고령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장호동지였다.
《백발소년》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비전향장기수 리재룡동지의 딸 축복이가 태여났을 때 장호동지는
축복아, 너는 정녕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의 영원한 생명 너로 하여 우리 비전향장기수모두가 백발의 축복이로 다시 태여났다
정녕 그랬다.장호동지를 비롯한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조국의 품에 안겨 누리는 행복은 그대로 시이고 노래였다.은혜로운 어버이품속에서 맞고보내는 하루하루는 격정없이 대할수 없는 기쁨과 환희의 련속이였다.
사회주의조국에 돌아온 순간부터 그들의 건강과 생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주실수 있는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신
사실 장호동지는 비전향장기수들가운데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중의 한명이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 안긴 때부터 그는 인생의 청춘을 되찾았다.
조선로동당창건 55돐을 맞으며
하기에 조국으로 돌아온 해
《조국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꼭 10년이 되였습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사랑속에 저는 백발할아버지가 아닌 10살의 백발소년이 되였습니다!》
10여년과 100년
한장의 사진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준다.장호동지가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속에 묻혀있는 100살의 로인, 그처럼 행복감에 젖어있는 그가 페인이나 다름없던 어제날의 수인이 옳은가. 언제인가 한 해외동포녀성이 젊음과 활력에 넘친 그의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된적이 있었다.그때 장호동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행운을 타고난 덕이지.대대로
대대로
길지 않은 이 말에 장호동지의 남다른 한생이 비껴있다고 할수 있다.
주체9(1920)년 11월 29일 서울시 마포구에서 태여난 장호동지는 어려서부터 토목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해오다가 해방후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손에 무장을 들고 용감히 싸웠을뿐아니라 전후 평양의 어느 한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대중을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취재보도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렸다.
그가 공화국북반부에서 생활한 기간은 1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그러나 그 10여년은 장호동지에게 있어서
하기에 원쑤들의 그 어떤 고문과 회유도
10여년과 100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장호동지의 한생에 비낀 두 수자는 우리에게 가르치고있다.
인생의 참다운 행복과 영광은 오직
오늘 우리 혁명은 중대하고도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섰다.
예측할수 없는 무수한 도전과 전대미문의 격난들이 앞길을 막아서고있지만
모두다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처럼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온대도
바로 이것이 오늘의 세대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삶과 투쟁의 좌우명이다. 글 본사기자 리남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