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월 27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혁명투사 김증동동지의 한생에서
언제인가
억대우같은 장정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항일의 불바다만리, 피바다만리를 꿋꿋이 헤쳐온 나어린 유격대원들속에는 김증동동지도 있었다.
《죽어도 살아도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하여 만난을 헤치며 싸워 승리한 항일혁명선렬들의 필승의 신념과 불굴의 기개가 오늘 우리 천만군민의 심장마다에 그대로 맥박쳐야 합니다.》
가난한 빈농의 가정에서 태여나 망국노의 피눈물나는 고역을 치르는 속에서
잔뼈가 채 굳지 않은 김증동동지에게 있어서 무장투쟁은 헐치 않았다. 한겨울에도 산속에서 눈을 깔고 잠을 자야 했고 며칠씩 비를 맞으며 행군할 때도 있었다.식량이 떨어지면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우려먹든가 맹물로 끼니를 에우는것이 보통이였다.적탄이 귀뿌리를 스치는 아슬아슬한 전장은 또 어떠했던가.
하지만 그때마다 김증동동지는
비록 나이는 어려도 준엄한 혁명의 길을 헤쳐오는 실천투쟁을 통하여
그는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여 수많은 전투들에서 용감히 싸웠고 부대의 통신원으로서의 임무도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때 항일유격대원들의 락하훈련도 진행되였는데 체중이 80kg이상 되거나 40kg이하인 대원들은 안전상리유로 락하훈련에 참가시키지 않았다.체중이 너무 무거우면 강하속도가 빨라서 부상당할수 있고 너무 가벼우면 오히려 공중으로 자꾸 올라가 왕청같은 방향으로 날아갈수 있기때문이였다. 김증동동지는 몹시 체소하였다.하지만 김증동동지는 락하훈련에 빠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가슴속에서 어느 한순간도 떠난적 없는 신념이였다.
주체34(1945)년 10월초 어느날 김증동동지를 비롯한 항일투사들을 몸가까이 부르신
김증동동지는
김증동동지는
하기에 그는 가렬처절했던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련대장, 려단장, 사단장의 중책을 지니고 부대를 능숙히 지휘하면서
전후
투사의 생은 너무도 짧았다.그러나 김증동동지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고귀한 투쟁업적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당과
주작봉마루에서 투사는 우리에게 절절히 당부하고있다.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