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2월 1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철산봉의 참된 당원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운광사업소 7운광직장
지심깊이 뿌리박은 억대의 재부를 자랑하며 우리 조국의 북변에 거연히 높이 솟은 철산봉, 우리 나라 금속공업의 생명선이며 보배광산인 이 대규모철정광생산기지에서 얼마나 많은 애국자, 혁명가들의 삶이 별처럼 빛을 뿌리고있는가.
《75성상 승리의 고지마다에 날려온 우리의 당기는 결코 세월의 바람에 나붓겨온것이 아니라 당중앙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림없이 산악처럼 떨쳐일어나 특출한 공헌으로 화답해온 우리 당원들의 거세찬 충성과 애국의 숨결로 휘날려온것입니다.》 사회주의조국은 동지들과 같은 끌끌한 조국의 아들들의 의지와 신념에 받들려 부강발전할것이라는 우리 당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을 삶의 좌우명으로 새겨안고 년대와 년대를 이어가며 경제강국건설의 전초선을 지켜가는 전초병, 개척자들의 대오속에서 또 한명의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가 배출되였다. 지난 26년간 수백만km의 운광길을 쉬임없이 달려 철광석생산에 적극 이바지하였으며 지난해 충성의 80일전투기간에도 맡겨진 수송과제를 180%로 넘쳐 수행함으로써 력사적인 당 제8차대회를 결사보위한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운광사업소 7운광직장 대형자동차운전사 박영백동무, 부강조국건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는 보람찬 투쟁에서 언제나 돌격전의 기수가 되여 나아가고있는 그의 헌신적인 삶은 당대회결정관철전에 떨쳐나선 수백만 조선로동당원들에게 당원의 영예는 무엇으로 빛나고 지켜지는가를 새겨주는 또 하나의 대답으로 된다.
나라의 맏아들로 살자
지금으로부터 11년전 7월의 어느날이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쇠돌산에서 내뿜는 세찬 열기도 느끼지 못한채 702호대형자동차주위를 돌고 또 도는 30대의 젊은 로동자가 있었다. 702호대형자동차의 초소장으로 임명받은 박영백동무였다. (내가 꽤 초소장사업을 해낼수 있을가?) 벌써 몇번째로 자신에게 되묻는 그의 마음은 집채같은 대형자동차를 떠인듯 무겁기만 하였다. 무산광산련합기업소의 설비들치고 대형이라는 말이 붙지 않은것이 없다.차바퀴 하나가 사람의 키를 넘는 자동차로부터 굴착기와 회전식착정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기중기의 도움이 없이는 부분품조차 다루기 힘든 우람하고 육중한 설비들이다.그래서인지 무산의 광부들은 이 대형설비 한대한대를 초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10여년간의 운전사경력밖에 없는 그가 쇠돌생산에서 중요한 몫을 맡고있는 초소의 초소장이 될줄이야. 눈을 감고 대형자동차를 운전하라고 해도 선뜻 하겠지만 대형설비를 통채로 책임지고 6명의 운전사들도 이끌어야 하는 초소장의 직무만은 도무지 감당해내지 못할것 같아 박영백동무는 그날 저녁 당초급일군인 림학춘동무와 나란히 퇴근길을 걸으며 마음속진정을 터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힘에 부칠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의 첫 발자욱을 내짚은 박영백동무에게 운전기술을 배워준 어제날의 702호대형자동차운전사인 림학춘동무는 그의 심정이 헤아려져서인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이윽하여 그들은 채굴장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나란히 앉았다. 머리를 숙인채 무쇠같은 주먹으로 애꿎은 광석덩이만 말없이 짓쫏는 박영백동무의 어깨를 다정히 그러안으며 림학춘동무는 말했다. 《동무가 702호에 처음 배치되여오던 날이 생각나누만.》 순간 박영백동무의 머리속에 702호의 운전사로 배치받은 잊지 못할 그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 702호대형자동차의 초소장은 로력영웅 리종훈동무였다.영웅과 함께 일하게 된 그는 하늘을 날것만 같았다.영웅은 신입운전사에게 운전조작법도 배워주고 차수리도 함께 하면서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이 대형자동차가 얼마나 큰일을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쳤다.그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박영백동무는 집채같은 대형자동차는 물론 하나하나의 부속품과 부분품들이 둘도 없는 보물처럼 생각되였다. 어느날 702호에 새 차바퀴가 제일먼저 공급된적이 있었다. 새 차바퀴를 받게 된 박영백동무의 마음은 날아갈듯이 기뻤다.그러나 얼마후 영웅초소장이 새 차바퀴를 다른 차에 양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서운함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초소장은 말했다. 《영백인 가정의 맏아들이라고 했지.물론 새 차바퀴를 먼저 받으면야 좋지.하지만 나라사정이 어렵고 광산형편도 힘든 때 우리 생각만 해서야 되겠나.나라의 맏아들이라면 응당 다른 초소생각도 하고 나라걱정도 해야지.》 평범한 날엔 보통운전사와 다름이 없는 영웅, 하지만 그의 가슴속엔 언제나 철산봉과 조국이 있었다. 자기를 생각하기 전에 조국을 생각할줄 아는 사람, 조국이 겪는 어려움을 자기 집보다 먼저 생각하고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자기의 리익을 희생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의 맏아들로 떠받들리우는 참된 로동계급이였던것이다.그후부터 그는 운전대를 한번 잡아도, 차정비를 한번 해도 영웅이기 전에 참된 로동계급인 리종훈초소장의 모습에 자기를 비추어보며 그의 정신세계를 따라배우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어느날 박영백동무는 702호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되였다.
감격도 새로운 주체90(2001)년 11월 4일 북방의 맵짠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또다시 철산봉에 오르신
그날 박영백동무는
무산광산련합기업소에서는 다른 설비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대형자동차라고 하시면서 수백대의 자동차들을 보내주시고 철산봉에 오르실 때마다 자동차들의 가동모습도 보아주시면서 자동차운전사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정녕 그 사랑과 믿음은 철산봉의 자동차운전사들이 부강조국건설의 진군길에서 조국의 큰 짐을 떠메고 앞장서 달려나가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기대이고 당부였다. 세차게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안고 평양하늘을 우러르는 박영백동무는 운전대를 억세게 틀어잡고 충성의 주행길을 변함없이 달려갈 굳은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림학춘동무는 박영백동무의 두손을 꼭 잡고 말했다. 《초소장이라는 직무가 크지는 않아도 당의 뜻을 받들어 더 많은 일을 하기를 바라는 집단의 믿음이 실려있다는것을 꼭 명심하오.》 (그렇다.집단이, 조국이 나를 지켜보고있다.이 심장 다 바쳐서라도 부강조국의 숨결을 더해주리라!) 그날 박영백동무는 밤깊도록 톱질을 하고 대패질을 하여 작은 오림대를 만들었다.안해와 함께 정성껏 연마하고 빨간 색칠까지 한 그 오림대우에 박영백동무는 마음속소원인 입당청원을 하는 심정으로 한자두자 정성껏 써나갔다. 어머니조국을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자!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는 늘 운전칸에 빛나는 이 글발을 바라보며 언제나 만짐을 지고 돌격전의 앞장에서 내달렸다.자동차 한대를 조립하고도 남을 수많은 예비부속품을 자체의 힘으로 마련한것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동차의 만가동을 보장할수 있는 여러건의 기술혁신안을 내놓을수 있은것도 박영백동무의 이런 남다른 열의와 헌신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박영백동무가 흘린 땀방울의 무게만큼 운광량은 늘어났다.그가 초소장사업을 시작한 첫해에 초소원들은 년간 인민경제계획을 215%로 넘쳐 수행하였고 702호가 가동을 시작한지 22년만인 그 다음해에는 286%라는 놀라운 운광실적을 기록하였다. 어머니당은 조국을 위한 길에 바친 박영백동무의 노력을 귀중히 여겨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붉은 당원증을 받아안던 그날 박영백동무는 성스러운 당기발앞에서 삶의 순간순간 입당청원서와도 같이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운전칸의 그 글발을 다시금 심장에 쪼아박았다. 어머니조국을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자!
당원은 그 어떤 직무도 명예도 아니다.하지만 그것은 가사보다 국사를 먼저 생각하고 조국이 어려울 때
그가 받은 표창
박영백동무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보들이 있다.
이 모든 크나큰 영광을 박영백동무가 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지난 5년동안에 받아안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고있는것인가. 언제인가 작업반의 한 운전사가 꿈에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을 때 박영백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당원의 영예를 지니는것도 중요하지만 빛내이는것이 더 중요하오.우리 손잡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합시다.》 그날 그 운전사는 박영백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해전 큰물피해복구전투의 나날에 있었던 일을 뜨거운 추억속에 돌이켜보았다고 한다. 당앞에 결의다진 충정의 200일전투목표를 기어이 앞당겨 점령할 불타는 일념을 안고 운광사업소의 일군들과 운전사들이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려 복구한 도로로 광석을 실은 대형자동차들을 떠나보낼 때였다. 그때 박영백동무는 자기가 대오의 선두에 설것을 제의하였다.얼마간의 싱갱이끝에 끝내 선두에는 박영백동무가 탄 702호가 서게 되였다.금시 무너져내릴듯 한 도로로 한치한치 육중한 대형자동차를 몰아가는 그의 모습은 총포탄이 우박치는 불비속을 뚫고 탄약과 포탄을 나르던 영웅운전사의 불굴의 모습 그대로였다. 드디여 쇠돌을 가득 실은 수십대의 대형자동차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 박영백동무가 평양하늘을 우러르며 한 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주었던가. 《이제는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킬수 있게 됐소.》 당결정관철에서 언제나 선봉투사가 되려는 불같은 마음, 바로 그렇듯 소중한 마음이 그처럼 간고한 속에서도 2016년 인민경제계획을 214%로 넘쳐 수행할수 있게 한 비결이였다고 702호의 초소원들은 오늘도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있다.
잊지 못할 그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음해 702호의 초소원들은 태양절까지 년간 인민경제계획을, 상반년까지 2년분 인민경제계획을 완수할 대담한 목표를 세웠다. 그들은 운전칸안에 자기들이 수행해야 할 계획량을 년, 월, 일, 교대별로 게시하고 매일 힘찬 투쟁을 벌리는 한편 서로 돕고 이끌면서 자동차의 수리정비에 필요한 부속품들과 공구들을 자체로 해결하기 위한 투쟁도 이악하게 벌려나갔다.
더 많은 쇠돌을 운반하여 당과
하나의 뜻으로 뭉치고 애국의 한마음으로 전진하는 이 집단의 앞장에는 언제나 초소장 박영백동무가 서있었다.그는 자신부터가 자동차의 심장이라고도 할수 있는 원동기부분을 맡아안고 차관리에 심혈을 기울이였으며 하나의 부속품이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늘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였다.
그해 1월
이무렵 그는 702호의 도중설비점검을 강화하고 교대마다 하는 설비점검시간을 짜내여 쇠돌운반을 세탕이상 더 해낼 방도를 탐구하고있었다.그런데 이것은 대형자동차에 쇠돌을 실어주는 굴착기와 그 운전공들이 보조를 맞추어주지 않으면 할수 없는 일이였던것이다. 박영백동무의 이야기를 듣고난 굴착기운전공들은 지금 온 나라가 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는데 교대설비점검때마다 한탕씩 쇠돌을 더 실어줄 시간이야 내지 못하겠는가고 하면서 적극 호응해나섰다.그러면서 그가 교대설비점검시간마저 쪼개쓸 생각까지 한데 대하여 감탄하는것이였다. 《우리가 교대설비점검시간이라고 쇠돌운반을 중단하면 큰걸음으로 전진하는 조국의 숨결이 잠시라도 끊어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멎는듯 가슴이 막 답답하더란 말이요.》 박영백동무의 이 꾸밈없는 말은 항상 조국의 숨결로 심장이 고동치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진심의 토로였다.이런 불같은 심장을 지닌 그였기에 다른 대형자동차들의 운행도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운광길을 달리던 박영백동무는 길가에 서있는 다른 작업반의 자동차를 보게 되였다.고장으로 멎어서있는 사연을 알게 된 그는 자기 차의 예비부속품을 선뜻 내주었다. 그리고는 그 운전사를 도와 차수리까지 제꺽 끝내였다. 몸둘바를 몰라하는 운전사에게 박영백동무는 말하였다. 《쇠돌을 더 많이 나르는 일인데 네일내일이 따로 있겠소.》 쇠돌증산투쟁으로 긴장한 날과 달을 보내던 어느날 운광사업소의 초급당일군이 박영백동무를 찾아왔다. 《동무의 안해가 며칠후에 대수술을 받는다는 련락이 왔더구만.그러니 여기 일은 걱정말고 어서 평양으로 떠날 차비를 하오.》 그의 안해 장연심동무는 몇해동안 신고하던 병으로 평양의 어느 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었다. 박영백동무는 자기의 마음속고충을 알아주는 초급당일군의 진정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하지만 쇠돌증산으로 들끓는 이 철산봉을 두고 어찌 한시인들 자기 초소를 비울수 있으랴. 《안해한테서 소식이 왔는데 그곳 의료일군들이 나라의 한끝 철산봉에서 일하는 광부의 가족이라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주고있답니다.그들의 마음까지 합쳐 제가 당앞에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킬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얼른 운전칸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불시에 솟구치는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은듯. 하지만 초급당일군은 광부의 가슴속에 출렁이는 눈물을 보는것만 같았다. 조국을 위해 성실한 땀방울을 아낌없이 쏟는 참된 인간의 눈물이야말로 얼마나 값지고 뜨거운것인가.
서로의 마음을 합쳐가며 박영백동무와 초소원들은 끝끝내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냈다.그해 태양절까지 년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어머니당에서는 당결정관철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박영백동무의 남모르는 위훈도 다 헤아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0돐 경축행사와 조선로동당창건 75돐 경축행사에 대표로 불러주었으며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다. 우리 당을 받드는 충성의 한길에 새겨가는 그의 빛나는 생의 흔적을 안아보며 우리는 생각해본다. 가슴에 당원증을 품었다고 하여, 당생활년한이 오래다고 하여 당원의 영예가 빛나는것이겠는가. 순간을 살아도 한생을 살아도 오직 당결정관철을 위하여, 바로 여기에 당원의 값높은 영예가 있고 혁명전사의 빛나는 영광이 있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의 크나큰 관심과 기대속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당 제8차대회가 진행되던 그 나날 박영백동무는 하루한시도 철산봉의 자기 초소를 비우지 않았다. 원동기정비로 며칠밤을 꼬박 새우는 그의 건강이 념려되여 초소원들이 등을 떠밀 때면 박영백동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당에서 새 명령을 내리면 우리 702호가 또 맨 앞장에서 힘차게 달려야 할게 아니요.》 이렇듯 불타는 마음을 안고 박영백동무는 지금 이 시각도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진군길에서 삶의 순간순간을 위훈으로 수놓아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