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2월 8일 로동신문

 

이역의 아들딸들을 품에 안아
키워주고 지켜주신 위대한 은인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온 나라 강산에 더욱 뜨겁게 차넘치는 2월 우리 인민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위인의 거룩한 한평생이 어려와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천만고생을 락으로 여기신 어버이장군님, 그이의 불같은 한생을 떠나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오늘에 대하여 어찌 생각이나 할수 있으랴.

얼마나 위대한분을 어버이로 모시고 살아왔는가를, 그이의 혁명생애가 얼마나 크나큰 업적으로 빛나고있는가를 페부로 절감하고있는 수천만 아들딸들가운데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식솔, 한피줄로 여기시고 극진히 보살펴주신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도 있다.

총련일군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주고싶다고, 자신께서는 총련일군들이 건강한 몸으로 일을 잘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제일 기쁘고 앓는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괴롭다고 늘 외우시던 우리 장군님이시였다.그이께서 주신 고귀한 가르치심은 총련일군들에게 있어서 생활과 투쟁의 귀중한 교과서였고 한생토록 지니고 살아야 할 참다운 진리의 보검이였다.

우리 장군님을 만나뵈올 때마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는 가는 길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장군님 한분만을 믿고 따를 일편단심, 그이를 따르는 길에서는 기쁨도 영광, 시련도 영광이라는 혁명적인생의 철리가 더욱 억척같이 자리잡군 하였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품에 안아 보살펴주고 지켜주신 이역의 아들딸들은 못 잊을 2월과 더불어 되새겨지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눈물속에 전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총련을 애국애족의 선각자, 애국충정의 모범, 해외교포조직의 본보기로 키우신 탁월한 령도자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운명의 수호자이십니다.》

재일동포들은 망국노의 원한과 설음이 삼천리강토를 무겁게 짓누르던 피눈물의 그 세월 얼음판에 떨어진 씨앗과도 같이 차디찬 이국의 대지에 뿌려져 인간이하의 천대와 민족적멸시를 강요당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이 력사의 수난자들에게 참다운 삶의 길을 열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을 따뜻이 품에 안아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그 어떤 보수도 명예도 바람이 없이 오직 한마음 조국의 부강번영과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있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을 아끼고 믿어주시며 온갖 특혜를 다 베풀어주시였다.

주체61(1972)년 7월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한 일군으로부터 총련에서 조국방문을 신청한 정형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청한 단체들이 대단히 많다고, 이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만족해하시며 그 영접사업에 대하여 물어주시였다.아직 충분한 조건이 마련되지 않아 신청단체들을 다 받아들이기 곤난하여 몇개 단체만 먼저 방문하게 된다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심각한 안색을 지으시고 그렇게 해서야 조국에 와보고싶어하는 재일동포들의 소원을 언제 다 풀어주겠는가고 하시며 우리가 아직은 좀 힘이 들더라도 제기된 방문단을 다 받아서 그 소원을 빨리 풀어주어야 한다고, 재일동포들이 이국땅에서 지금까지 고생을 해온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래왕사업을 대담하게 하자면 그 준비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실무적인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조국방문단성원들을 위하여 성대한 환영모임도 조직하도록 하시고 번영하는 조국의 모습을 보며 마음껏 즐기도록 해주시였으며 동포들의 절절한 소원을 헤아려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도록 하는 최상의 특전도 안겨주시였다.

이역땅에 사는 동포들모두를 한식솔로 따뜻이 품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이토록 세심한 은정에 의하여 재일동포들의 조국방문사업은 대규모적으로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을 맞으며 온 나라, 전세계가 뜨거운 흠모의 열기로 끓어번지던 주체71(1982)년 4월 재일동포사회는 크나큰 격정에 휩싸이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유치반어린이로부터 초급학교학생에 이르는 재일동포자녀들모두에게 귀한 보약재인 인삼을 한사람당 세뿌리씩이나 보내주신것이다.

수만뿌리에 달하는 인삼을 받아안고 온 동포사회가 감격의 도가니로 끓어번지였다.

절세위인의 탄생일을 맞으며 자기들이 기울인 지성이 모자란것만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는데 오히려 이토록 귀한 보약재를 아이들에게 안겨주시였으니 그 사랑에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올릴수 있으랴.

당시 조국의 어린이들도 이 인삼을 선물로 받아안았다.한사람당 한뿌리씩이였다.이 사실을 알게 되였을 때 동포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멀리 있는 자식일수록 더 마음쓰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자기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기울이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혈연의 정을 절감하며 누구나 옷깃을 적시였다.

주체70(1981)년 10월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당시)제7차대회때 있은 일은 되새길수록 가슴뜨겁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편지를 드릴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의 충성의 편지전달계주단이 우리 인민의 열렬한 환영속에 조국에 도착하였다.그들은 모두 22명이였다.

대회준비위원회에서는 대회 첫날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의 편지를 올리게 될 인원으로 전국의 수백만 청소년학생들을 대표하는 8명과 함께 재일조선청년학생대표 2명을 선정하였다.그리고 재일조선청년학생축하단의 축기는 대회 둘째날에 증정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사실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재일조선청년학생계주단에서 두사람만 수령님께 인사를 드리게 한다면 나머지동무들은 얼마나 서운해하겠는가, 머나먼 일본땅에서 총련의 모든 조직들에서 보내는 편지를 안고 동해바다를 건너 달려온 그 성의를 보아서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계주단성원 22명모두에게 다 수령님께 인사를 드릴 영광을 안겨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재일조선청년학생축하단이 올리는 축기도 수령님께서 대회에 참석하시는 첫날에 올려 기쁨을 드려야지 둘째날에 올려서는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대회일정계획을 다시 세워주시였다.

이역의 새 세대들을 영광의 자리에 내세워주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려깊은 은정이 사무쳐와 일군들은 목이 꽉 메였다.그리하여 22명이나 되는 이역의 청년학생들이 한사람씩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축원의 인사를 올리는 감동깊은 화폭이 대회장에 펼쳐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시였다.

주체79(1990)년 조국의 한 예술단이 일본방문공연을 준비할 때 있은 일이다.

공연준비정형을 알아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의 민족가극뿐아니라 음악무용종합공연도 함께 보았으면 하는 총련일군들의 소청을 헤아리시고 즉석에서 문제를 풀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예술단의 일본방문을 얼마 앞두고 공연준비사업은 새롭게 시작되였다.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을 언제나 못 잊어하시며 그들이 원하는것이라면 무엇이든 풀어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얼마후 공연준비정형을 다시금 료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극장공연만 할것이 아니라 소편대를 무어 총련의 지부와 분회동포들을 찾아가 공연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그리하여 동포들속에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여주고 그들의 애국운동을 고무추동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편대의 규모와 공연내용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따사로운 해빛을 안고 일본에 간 우리 예술인들은 동포들이 사는 곳들을 낮에 밤을 이어 찾고 또 찾아 애국의 활력을 한껏 부어주었다.이역의 자식들을 위해 늘 마음쓰시는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을 눈물속에 새기며 동포들은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가다듬었다.

어찌 이뿐이랴.

수백명이나 되는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을 연회장에 불러주시고 일일이 사랑의 축배잔을 찧어주신 자애로운 어버이, 총련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새 세대 핵심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대를 두고 길이 전할 귀중한 선물을 가슴가득 안겨주시던 우리 장군님의 사랑을 되새길 때마다 이역의 아들딸들은 자기들이 받은 최상의 특전은 어버이장군님의 각별한 신임, 값높은 평가였다고 격정에 넘쳐 말한다.

이토록 인자하고 자애로운분이시기에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올 때마다 이역의 아들딸들은 친아버지에게 응석부리듯 스스럼없이 안겨들며 저마다 자랑거리도, 가슴깊이 품고있던 걱정거리도 숨김없이 아뢰이군 하였다.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던 시기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에게도 시련과 고난의 시기였다.총련의 존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온 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이 어려움을 겪고있는것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총련을 허물고 재일동포들이 영영 주저앉게 만들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였다.

시련이 천겹만겹으로 겹쳐들던 그 준엄한 나날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운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진두지휘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총련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끊임없이 주시였다.

일본반동들이 당치않은 구실로 강제수색놀음을 련이어 벌려놓으면서 반총련, 반조선인광풍을 몰아올 때에는 강력한 국가적조치들을 취하도록 하시였다.

일본에서 한신대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재일동포들이 당한 불상사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면서 설사 우리가 죽을 먹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위문금을 많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불행을 겪는 재일동포사회에 사랑의 생명수를 부어주시였다.

그때 이역의 아들딸들은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재일동포들에게 자녀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열화같은 동포애에 목메여 부르짖었다.

어머니조국의 따사로운 품이 있어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재난은 있을지언정 불행은 있을수 없다고, 위대한 장군님을 친어버이로 모시고 은혜로운 조국의 품속에서 한식솔로 사는 우리 재일동포들처럼 행복한 해외교포들은 이 세상에 없다고.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고있던 그 엄혹한 시기에도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 문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와 전통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기간을 변동시키거나 그 량을 줄이지 말고 수령님께서 계실 때와 꼭같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간곡한 말씀은 오늘도 재일동포들의 심장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우리 장군님의 이렇듯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있어 총련은 이역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초급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정연한 교육체계를 버젓하게 꾸려놓고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는 우월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실시하여올수 있었다.

재일동포들은 두터운 정을 안고사는 하나의 혈육이라고 하시며 주체의 애국유산인 총련을 귀중히 여기고 백방으로 보호할것이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존엄높은 삶과 밝은 미래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할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의 말씀을 전달받던 날 이역의 아들딸들은 총련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조국은 총련을 생각하고 총련은 조국을 생각하면서 함께 주체혁명위업을 실현해나가자고 하시던 우리 장군님의 절절한 음성이 되새겨져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총련은 사회주의조국의 한부분이며 재일동포들은 어머니조국과 한피줄을 잇고 사는 친형제, 한집안식솔이라고 하시면서 조국에서 진행되는 뜻깊은 국가적행사들에 자기들을 불러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실 때마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우리 장군님의 사랑의 력사는 영원하다는것을 더욱 확신하군 하였다.

정녕 대대로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남다른 특전과 특혜를 받아안고있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다.숭고한 믿음과 사랑속에 굳건해진 그들의 애국신념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써도 깨뜨릴수 없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