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일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의 사업을 현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주체89(2000)년 3월 22일, 24일, 27일

 

량강도는 우리 혁명의 사적들이 많은 유서깊은 곳입니다. 량강도의 그 어디에나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이 있습니다. 량강도에는 백두산밀영을 비롯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밀영들과 숙영지들이 많고 보천보전투, 무산지구전투와 같은 중요한 전적지들이 있습니다.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면 량강도 김정숙군에는 김정숙어머님의 혁명사적이 있고 김형직군에는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적이 있습니다. 량강도에는 혜산사건으로 하여 희생된 국내혁명가, 애국자의 묘도 많습니다. 량강도는 온 도가 혁명전통교양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혁명의 재보들로 가득찬 대로천박물관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량강도 백두산지구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령님의 혁명활동사적이 집중되여있는 혁명의 성지이며 혁명전통교양의 중요한 거점입니다. 백두산지구에는 수령님의 거룩한 혁명활동사적이 많을뿐아니라 이 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꾸리시려는 수령님의 깊은 뜻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지난 시기 우리 당은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꾸리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가 오늘과 같이 대로천혁명박물관으로, 혁명전통교양의 믿음직한 거점으로 훌륭히 꾸려지게 되고 그에 대한 영구보존체계가 철저히 서게 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혁명사적사업은 우리 당이 직접 맡아 지도한 때로부터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우리 나라에서 혁명전적지들과 혁명사적지들을 발굴고증하여 꾸리는 사업을 크게 벌렸는데 그때에 전국적범위에서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건설을 많이 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혁명사적에 대한 관리체계와 학술연구체계, 혁명사적강사교육체계가 정연하게 서게 되였습니다. 세계에 혁명사적관리체계와 혁명사적과 관련한 학술연구체계, 혁명사적강사교육체계가 우리 나라만큼 정연하게 선 나라는 아마 없을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자랑할만 한 일입니다.

나는 이번에 백두산지구에 와서 백두산밀영, 사자봉밀영, 청봉숙영지, 삼지연대기념비, 베개봉숙영지, 건창숙영지, 신사동혁명전적지, 대홍단혁명전적지, 무포숙영지를 돌아보았습니다.

백두산밀영에 오래간만에 와보았는데 눈덮인 혁명전적지의 풍경이 참으로 볼만 합니다. 백두산밀영고향집에 세운 수령님의 친필송시비가 아주 품위있게 잘되였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비들가운데서 제일 잘된것 같습니다. 친필송시비가 마음에 듭니다. 수령님의 필체는 정말 독특합니다. 수령님의 필체는 보면볼수록 명필중의 명필입니다. 수령님의 친필송시비를 세운 위치도 좋고 비문글자에 색칠을 하지 않으니 더 무게가 있어보입니다. 사적비들과 현지교시판들에 새긴 글자에 금색이나 붉은색을 칠하면 자연미가 나지 않고 무게도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돌로 만들어 세우는 혁명사적비와 유래비, 현지교시판의 글이 친필송시처럼 길지 않을 경우에는 색칠을 하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글이 긴 경우에는 색칠을 하지 않으면 글자를 가려보기 힘들수 있을것입니다. 친필송시비에 새긴 글자의 깊이가 2cm이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깎이지 않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 1993년 8월 친필송시비앞에서 강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면서 《내가 동무들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것은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잘 받들라는 의미에서이다, 이것이 나의 부탁이다.》라고 하시였다는데 정말 가슴뜨거운 말씀입니다. 대학생답사자들이 백두산밀영의 대원실벽에 걸려있는 《모두다 공부하자 지식은 황금보다 유력하다》라는 구호를 보고 더 많이 배워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겠다고 결의를 다진다는데 좋은 일입니다.

삼지연대기념비는 확실히 걸작입니다. 삼지연대기념비에 모신 수령님의 동상을 아주 잘 형상하였습니다. 만수대창작사에서 삼지연대기념비에 모실 수령님의 동상을 형상할 때 내가 직접 나가 지도하였습니다. 웅장한 화강석조각상 《진격의 나팔수》도 잘 형상하였습니다. 《진격의 나팔수》는 돌격나팔을 불면서 막 앞으로 내달리는것 같습니다. 《진격의 나팔수》는 국보적의의를 가지는 세계적인 걸작입니다.

베개봉숙영지는 수령님께서 일행천리전술로 대낮에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행군하여 로은산지구로 진출하며 그 일대의 적들을 소멸하고 군중정치사업을 벌릴데 대한 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신 곳입니다. 전적지주변의 이깔나무들이 다 미끈하게 자랐는데 정말 멋있습니다.

무포숙영지는 경치좋은 곳입니다. 무포라는 지명을 불멸의 혁명업적과 숭고한 뜻을 안고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풀이하는데 그것도 그럴듯합니다. 내가 그전에 무포에 와서 낚시질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낚시줄을 드리우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어떻게 정식화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사색을 거듭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무포숙영지 건너편은 중국의 화룡시이고 그 서북쪽은 안도현입니다. 안도현은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신 력사적인 곳입니다. 강반석녀사의 묘도 처음에는 안도현에 있었습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관리도 잘하였습니다.

청봉숙영지를 벼락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현대적인 피뢰침을 두곳에 설치하였는데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청봉숙영지 구호나무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구호나무차광막이 자동적으로 오르내리게 한것도 잘하였습니다. 구호나무를 영구보존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워놓으니 김정숙어머님께서 쓰신 구호를 비롯하여 모든 구호들의 글씨가 아주 생동하게 보입니다. 남조선의 한 기자가 청봉숙영지에 와보고 우리가 혁명유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관심을 돌리고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하였다는데 그럴만도 합니다.

사자봉밀영에 있는 구호나무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장치도 잘하였습니다. 구호들가운데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반드시 왜놈치고 다시 만나자던 어머님의 그 말씀을 우리모두 잊지 말자》, 《내 고향을 떠나올 때 옷자락에 매달리며 꼭 왜놈치고 돌아오라던 귀여운 누이동생 부탁 잊지 말자》, 《내 고향을 떠나올 때 왜놈치고 다시 만나자던 고향마을처녀와의 굳은 약속 잊지 말자》라는 생활적인 내용을 담은 구호들도 있는데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좋은 구호들입니다. 수령님께서 이 구호들을 보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락천적으로 생활하였기때문에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승리할수 있었다고 하시였다는데 그 말씀이 옳습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락천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자봉밀영의 대원실과 출판소건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유리로 덧집을 해씌웠는데 잘하였습니다. 출판소건물안에 그때 출판소일군들이 쓰던 필기도구와 등사기를 비롯한 사적물들을 전시한것이 실감이 있습니다. 밀영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하여 출판소의 굴뚝높이를 낮게 하였다고 하는데 수림속에서 연기가 나는것을 알리지 않게 하자면 굴뚝이 낮아야 합니다.

밀영과 숙영지안의 길에 나무블로크를 깐것이 좋습니다. 백두산밀영의 고향집마당과 사령부귀틀집으로 가는 길에 나무블로크를 깐것도 보기 좋고 청봉숙영지와 건창숙영지안의 길에 나무블로크를 깐것도 보기 좋습니다. 수령님께서 청봉숙영지에 오시였을 때에 길에 나무블로크를 깔아놓은것을 보시고 주위환경에 잘 어울린다고 하시였다는데 확실히 밀림의 풍경에 잘 어울립니다. 나무블로크를 깐 길이 부석모래나 석비레, 세멘트로 포장한 길보다 낫습니다.

혁명전적지들의 주변관리를 깨끗하게 잘하였습니다. 특히 백두산밀영 사령부귀틀집과 고향집, 대원실을 잘 보존하고 주위환경을 아주 인상깊게 거두었습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 관리원들이 엄혹한 자연환경속에서도 자기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합니다. 처녀강사들이 그 나이에 도시에서 살면 멋진 옷을 입고다닐수 있겠지만 인적없는 천고의 밀림속에서 소박한 군복을 입고 아무런 타발없이 자체로 생활을 꾸리면서 강사사업을 책임적으로 하고있는데 모두 용습니다. 혁명전적지 강사들가운데는 강사년한이 오래된 공로자강사들도 있고 자매강사도 있습니다. 이번에 만나본 강사들이 인상에 남는데 그가운데서도 제일 인상깊은 강사는 신사동혁명전적지 강사입니다. 내가 이번에 신사동혁명전적지를 돌아보면서 김정숙어머님께서 1939년 5월에 신사동에 오시여 물을 길으신 곳도 보았는데 신사동혁명전적지 강사가 세련된 목소리로 사적물에 대한 해설을 침착하게 아주 잘하였습니다. 그가 김정숙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22년동안 강사로 일하며 그의 남편도 혁명사적부문에서 일하고있다고 합니다. 부부가 혁명사적부문에서 함께 오래동안 일하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신사동혁명전적지에 18년동안 강사생활을 하는 강사도 있다는데 22년, 18년동안 강사로 일하는 동무들은 강사로서는 년장자입니다.

나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들이 외진 밀림속에서 적적하게 생활하지 않는가 하여 걱정하였는데 문화정서생활도 하면서 생활을 락천적으로 하고있는것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내가 이번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면서 새로 느낀것도 많고 감흥을 받은것도 많습니다. 거저 걸어다니기도 힘든데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풍찬로숙하시면서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를 벌리시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시며 간고한 행군길을 걸어가시느라 얼마나 힘드시였겠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으며 그 과정에 이룩하신 혁명업적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가 하는데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전설적영웅, 희세의 위인이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쌓아올리신 불멸의 혁명업적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깊이 간직되여있을것이며 력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항일의 혁명선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혁명의 가시덤불길을 헤치며 피와 땀으로 만고의 항쟁사를 창조하였으며 그들이 지녔던 수령결사옹위정신,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은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심장속에 그대로 맥박치고있습니다.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은 우리 당과 혁명의 억센 뿌리이며 만년초석입니다. 수령님께서 장구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혁명전통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며 그 위대한 전통에 기초하여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이고 결심입니다. 우리는 혁명전통교양사업을 끊임없이 강화하여야 하며 혁명의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심화될수록 이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본것은 전당, 전군, 전민이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떨쳐나선 혁명적앙양의 시기에 맞게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강화하는 사회적분위기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당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 전사회적으로 항일혁명선렬들의 혁명정신과 투쟁기풍, 생활기풍을 따라배워 사회주의건설에서 천리마의 대고조를 일으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과정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그때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혁명과 건설의 기본력량으로 되고 새 세대가 자라나고있으며 우리 혁명은 멀리 전진하여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는 높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력사적사실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강화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습니다.

우리 혁명의 안팎의 정세는 의연히 복잡하고 첨예합니다. 앞으로 우리 혁명앞에 지금보다 더 엄혹한 시련이 닥쳐올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걸으시였던 그런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혁명의 난국을 헤쳐나가자면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것은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력사적교훈에 비추어보아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섭니다. 이전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여러 당들이 혁명전통교양사업을 줴버리다보니 혁명의 전세대들이 피흘려 이룩한 혁명의 전취물을 말아먹고 나중에는 사회주의제도까지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혁명전통교양을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하여 혁명의 붉은기를 변함없이 확고히 들고나간다는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전통교양사업에 계속 큰 힘을 넣어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항일유격대원들처럼 사업하고 생활하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전통교양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하여야 합니다.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교양은 혁명전통교양의 위력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는데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교양을 짜고들어 적극적으로 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혁명은 백두산에 그 뿌리를 두고있으며 조선의 정신은 바로 백두산의 정신입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교양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리자면 그에 대한 답사를 널리 조직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백두산에도 올라가보고 백두산밀영에도 와보아야 우리 혁명의 력사와 그 뿌리,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에 대하여 더 잘 알수 있고 백두의 혁명정신도 더 깊이 체득할수 있습니다. 지금 인민군대에서는 백두산밀영을 비롯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를 많이 조직하는데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에서는 청년동맹조직들이 청소년학생들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에 국가적명절과 기념일때나 조직하지 정상적으로 조직하지 않습니다. 국가적명절과 기념일때에 답사를 조직하는 경우에도 전적지에 와서 결의모임이나 하는 식으로 하는데 그런 식으로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해서는 혁명전통교양이 잘될수 없습니다.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하는데서 형식이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혁명전적지답사는 어디까지나 수령님의 혁명사상, 백두의 혁명정신, 항일유격대의 투쟁기풍, 생활기풍을 따라배우는데 기본을 두고 실속있게 조직하여야 하며 목적지향성있게 정상적으로 조직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 군인들과 청소년학생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켜야 합니다.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에 대한 답사를 정상적으로 널리 조직하자면 교통조건을 원만히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지금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 특히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는데서 제일 걸린것이 교통문제입니다. 답사자들이 혜산까지 와서도 교통문제로 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답사하기 힘들어합니다. 답사자들의 교통문제를 푸는데서 좋기는 렬차가 혜산까지만 오게 할것이 아니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쭉 돌게 하는것입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이 혜산에서 그리 멀지 않기때문에 좀 힘을 넣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수 있을것입니다. 혜산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사이의 도로들이 괜찮은것만큼 좋은 뻐스를 해결하여주어도 답사자들의 교통문제를 적지 않게 풀수 있을것입니다. 교통사정이 긴장할 때에는 청장년들과 소년단원들이 도보행군을 하여 전적지들을 답사하도록 하여도 좋습니다.

혁명전적지답사자들에 대한 보장사업을 잘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포태종합농장에서 생산하는 감자도 혁명전적지답사자들에게 먹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답사로정에 감자를 저장해놓고 행군길에 감자구이도 하게 하며 감자떡, 감자농마국수 같은 여러가지 감자음식을 해먹이면 답사자들이 다른데서는 먹어볼수 없는 감자별식을 먹었다고 모두 좋아할것입니다. 앞으로 포태종합농장을 답사자들을 위하여 전문 복무하는 농장으로 전환시킬수도 있습니다.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인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잘 꾸리고 잘 보존관리하는데 힘을 넣어야 하며 여기에서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더 잘 꾸리고 더 잘 보존관리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돌아보면서 이곳 전적지, 사적지들을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이 더 잘 꾸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그와 관련한 여러가지 과업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새 천년대에 들어선것만큼 이미 꾸려놓은것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안목에서 보고 바로잡을것은 바로잡아야 하며 다시 꾸릴것은 다시 꾸려야 합니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본래의 모습을 생동하게 볼수 있게 보존하고 알뜰하게 관리하여야 합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어디에 가나 숙영지를 알뜰하게 꾸리였으며 하루밤을 쉬고 가도 변소까지 짓고 주변을 깨끗이 거두었습니다. 백두산밀영의 사령부귀틀집, 고향집, 대원실을 항일유격대원들이 생활하던 그대로 거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답사자들에게 사적물에 대한 해설을 항일유격대의 생활기풍에 맞게 바로할수 있습니다.

혁명전적지에 있는 구호나무들을 잘 보존관리하며 구호문헌을 통한 교양방법도 연구해보아야 합니다. 지난해 가을 자강도 랑림혁명사적관에 가보니 구호나무들을 사적관에 주런이 세워놓았는데 사람들이 찾아가 보기 힘든 먼곳에 있는 구호나무들을 필요한 곳에 가져다 그렇게 보존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경우에도 내용이 없이 세워놓지만 말고 학술적의의가 있게 전시하고 교양사업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보존관리하는데서 가장 중요한것은 산불막이대책을 철저히 세우는것입니다.

량강도는 국보적인 도입니다.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이 대부분 울창한 수림속에 있는데 가을에 수림속에 나무잎이 떨어져 쌓이면 그것은 화약더미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산불이 나면 끄기 힘듭니다. 전적지, 사적지들에 산불이 나면 나라의 귀중한 재보와 재산을 잃을수 있습니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는 백두산지구 전적지들에 산불이 나면 그 후과는 억만금을 주고도 보상할수 없습니다. 량강도에서는 산불막이대책을 빈틈없이 세우는데 특별한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청봉숙영지에 산불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자동화되여있다고 하지만 일단 불이 나면 걷잡지 못합니다. 산불에 대해 각성을 높여야 합니다. 모든 혁명전적지들에 산불막이차단선을 안전하게 해놓고 산불이 날수 있는 근원을 모조리 찾아내여 제거하며 사람들이 발화물질을 가지고 수림속에 쓸데없이 드나드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통제하여야 합니다.

지금 삼지연군인민들의 대다수가 혁명사적부문에서 일하고있는것만큼 삼지연군에서는 혁명전적지보존과 그 관리운영사업을 기본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합니다.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을 강화하자면 강사대렬을 튼튼히 꾸리고 그들의 역할을 높여야 합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대렬을 잘 꾸려주어야 합니다. 전국의 사범대학졸업생들가운데서 좋은 사람들을 선발하여 한 1년정도 실습을 시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로 사업하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혁명전적지 강사들은 사적해설강의를 잘하여야 합니다. 지난해에 자강도 연풍혁명사적관에 갔을 때에 그곳 강사는 노래도 부르면서 사적해설강의를 생동하고 절도있게 잘하였습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들도 해설강의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혁명전적지 강사, 관리원들의 문화정서생활수준을 더욱 높여야 합니다. 이번에 백두산밀영혁명전적지 강사, 관리원들의 예술소품공연을 보았는데 그들에게 인민군대의 어느 한 군부대 예술선전대의 공연을 보여주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예술소품공연을 잘할수 있을것입니다. 앞으로 사적단위들에서 예술소품공연을 수준있게 잘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전적지 강사, 관리원들의 생활조건을 잘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 관리원들은 깊은 수림속에서 수고를 많이 하는 동무들인데 그들을 위해서라면 아낄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것은 다 보장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강사들이 겨울에 솜신발을 공급받는다고 하는데 백두산지구는 겨울날씨가 다른데보다 차기때문에 솜신발을 신고 밖에 오래동안 나가있으면 발이 시릴것입니다. 녀성들이 손발이 차면 랭병에 걸릴수 있으므로 손발을 뜨뜻하게 하고 몸도 덥게 하여야 합니다. 녀성강사들에게 털장화를 공급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강사들이 나무를 때서 밥을 지어먹는다고 하는데 하루종일 해설강의를 하고 땔나무까지 하자면 힘들것입니다. 중소형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가 들어간데서는 전기로 밥을 지어먹을수 있게 전열기도 놓아주고 합숙에 전기난방도 해주어야 합니다.

백두산지구는 물이 바르기때문에 이곳 혁명전적지 강사, 관리원들의 생활에서 물문제가 걸렸는데 이 문제도 풀어주어야 합니다. 혁명전적지를 관리운영하는 강사, 관리원들이 물고생을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나는 물정제기도 보내주고 물가열기도 보내주도록 하였습니다. 물정제기를 리용하면 물을 정제하여 깨끗한 물을 먹을수 있고 물가열기를 리용하면 더운물로 목욕도 할수 있습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일군들과 강사들, 관리원들은 수령님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는 뜻깊은 혁명전적지에서 일한다는 긍지와 영예를 안고 혁명전적지보존관리사업과 그것을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을 더 잘해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