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3월 11일 로동신문

 

당원의 붉은 심장은 어떻게 고동쳐야 하는가

화대광산 자력갱 갱장 공훈광부 박영복동무에 대한 이야기

 

지하 30m, 지하 60m… 지하 250m, 지하 270m,

이것은 화대광산 자력갱 갱장 공훈광부 박영복동무가 지난 30여년간 지하막장에 새겨온 삶의 자취이다.조국의 번영을 받들어 깊이, 더 깊이 땅속으로 향해간 한 광부의 인생의 자욱이 그처럼 감명깊게 어려오는것은 그가 10여년전에 로동능력을 상실한 몸이기때문이다.

뜻밖의 일로 두다리를 상하고 한눈을 실명당한 상태에서 변함없이 막장을 지켜 해마다 광물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갱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를 2년이나 앞당겨 완수하도록 이끈 박영복동무, 당 제8차대회 결정을 높이 받들어 지난 1월과 2월에도 갱앞에 맡겨진 광물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한 그는 오늘도 위훈창조의 불길드높은 막장에서 불사조와 같은 삶을 이어가고있다.

두팔과 두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서도 끝까지 고지를 사수한 전화의 영웅, 생의 마지막순간 당원증과 당비를 당중앙위원회에 전해달라고 절절히 당부한 참된 당원의 이야기가 어찌 지나간 력사의 추억만이겠는가.

붉은 당원증을 가슴에 품은 당원이라면 어떻게 자기 초소를 지키고 빛내여야 하는가를, 심장의 붉은 피 아낌없이 바쳐 어떻게 당의 위업에 충실해야 하는가를 박영복동무의 모습이 또다시 감명깊게 새겨주고있다.


* *


땅우에서 하는 일에 비해볼 때 막장일은 육체적소모가 훨씬 크다.남들처럼 성한 몸도 아닌 박영복동무가 하루와 같이 막장길을 걷는것을 볼 때마다 많은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광산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무엇이 그를 그처럼 강의한 인간으로 되게 하였는가.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끓고있는 진정은 과연 무엇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사람마다 한생의 진모습이 뚜렷이 비끼는 계기가 있다.당원의 모습이 가장 뚜렷이 비끼는 때는 바로 당의 부름앞에 나섰을 때이다.

당 제7차대회를 보위하기 위한 70일전투, 이는 이 땅의 수백만 당원들의 진모습이 뚜렷이 부각된 의미깊은 계기였다.

화대광산의 일군들과 로동계급도 당의 부름에 화답하여 산악같이 일떠섰다.

전투를 앞둔 깊은 밤, 광산사무실에서는 해당 일군들이 모여 70일전투목표와 그 수행방도에 대한 진지한 론의를 계속하고있었다.소대, 중대마다 구체적인 전투목표가 제시되고 그와 관련한 토론이 한창일 때였다.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있었다.그를 돌아보는 순간 모두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어리였다.며칠전에 병이 악화되여 병원으로 실려갔던 박영복동무였기때문이다.

《우리 중대의 전투목표를 더 높이 정해주십시오.올해생산계획을 태양절전으로 끝내겠습니다.그것으로 70일전투를 총화하겠습니다.》

병원에 있어야 할 그가 광산에 나타난것도 놀라왔지만 대담하게 제기하는 전투목표는 더욱 놀라운것이여서 모두 말없이 바라볼뿐이였다.

그날 밤, 봄기운이 짙어가는 매별산기슭의 광산구내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이 있었다.광산지배인 박영철동무와 당시 중대장으로 사업하고있던 박영복동무였다.

《저도 무슨 특별한 타산이 있어 그런건 아닙니다.하지만 지배인동지, 당에서 70일전투를 호소하였는데 보통때처럼 100%로 만족한다면 그게 무슨 당원이겠습니까.솔직히 병원에서 70일전투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막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저도 당원이 아닙니까.당에서 저를, 우리를 부르고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박영복동무의 눈에서는 불덩이같은것이 이글거리고있었다.

당원, 불러보면 한마디뿐인 그 말을 그처럼 열렬히, 긍지높이 터치는 박영복동무의 마음속에 무엇이 끓고있는지 너무도 잘 아는 지배인이였다.

누구나 당원의 영예를 지니고싶어한다.박영복동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인생의 길에는 갈래도 많아 한때 사람들의 속을 무던히도 태운 박영복동무였다.낳아준 어머니마저 단념하였던 《말썽꾸러기》를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 인생의 새 출발선에 세워준것은 광산당조직이였다.고마운 그 품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의 박영복이를 생각할수 있었으랴.

재생의 길을 걷는 그를 두고 누구보다 기뻐하며 보란듯이 내세워주고 혁신자로 떠받들어준 손길, 그 품이 너무도 고맙고 소중해 뜻밖의 일로 심한 부상을 입고 더는 일터에 설수 없다는 의학적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불사신의 의지로 변함없이 막장을 지켜섰던 박영복동무였다.그런 그를 소대장, 중대장으로 키워주고 마침내는 한생의 소원인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안겨준 고마운 우리 당, 입당하던 날 입당청원서를 눈물로 적시던 그 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았다.

한줄 읽고는 눈물을 쏟고 또 한줄 읽고는 오열을 터치며 어머니당에 충성을 맹세하던 박영복동무, 그가 지금 그 맹세를 지켜 당원의 도리를 다하고저 심장을 불태우는것이였다.

그렇게 시작된 박영복중대의 70일전투였다.맹세를 실천하는 길은 헐치 않았다.그즈음 건강이 악화되여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던 박영복동무에게 있어서 그 하루하루는 말그대로 결사의 의지를 요구하는 나날이였다.불편한 다리때문에 다음날 출근이 지장을 받을가봐 아예 사무실에서 침식을 하는 때가 드문했다.온밤 신음소리를 내며 열에 떠있다가도 아침이면 또다시 광부들과 함께 막장으로 향하는 그를 보다 못해 어느날 조원혁소대장이 앞을 막아섰다.

《중대장동지, 오늘만이라도 갱에 들어가지 마십시오.우리가 계획을 하겠습니다.》

그러는 조원혁소대장의 어깨에 몸을 의지하며 박영복동무는 말했다.

《좀 부축해주오.함께 가기요.》

무슨 말을 더 할수 있었으랴.

《그날 가파로운 막장길을 저의 어깨에 의지하여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한치한치 내려가던 박영복동지의 모습을 저는 한생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저는 참된 당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당앞에 충성을 맹세한 당원은 그 맹세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그러던 박영복동무는 어느날 끝내 막장에 주저앉았다.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안타깝게 어루쓸며 그가 하던 말은 얼마나 광부들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던가.

《이 몸을 일으킬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자기의 건강때문이 아니라 보답의 맹세를 두고 고심하고 당을 받들어가는 길에 중도반단이 있을가봐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는 참된 당원, 그날 광부들은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중대장의 몫까지 합쳐 두배의 굴진실적을 기록하였다.

마침내 중대는 당앞에 결의한 70일전투목표를 빛나게 완수하였다.태양절전으로 년간계획을 완수한 이들의 위훈은 광산일군들과 로동계급을 얼마나 크게 고무하였던가.

이 땅의 모든 초소와 일터마다 당원들이 있다.

우리의 모든 당원들이 박영복동무처럼 진심으로 당을 받들고 당원의 도리를 다한다면, 당앞에 다진 맹세를 실천으로 빛내인다면 당의 구상과 의도는 얼마나 빛나게 실현되겠는가.

당 제8차대회를 보위하기 위한 80일전투때에도 박영복동무는 심장으로 화답해나섰다.초소별, 소대별, 중대별사회주의경쟁의 불을 지핀 박영복동무는 자신부터 혁신의 앞장에 섰다.

《철명이 아버지에게 있어서 겨울은 제일 힘든 계절입니다.불편한 다리로 겨울이면 광산의 미끄러운 경사길을 오르내리기 더 힘들기때문입니다.》

박영복동무의 안해 탁영화녀성의 이야기였다.어느날 남편이 난데없이 짚을 한아름 구해가지고 들어왔다.어데 쓰려는것인가고 의아해했는데 다음날 아침 남편이 그 짚을 자기가 신은 신발에 꼼꼼히 동여매더라는것이다.

《그렇게 하면 경사길을 오르기가 한결 나을거라고 하더군요.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안해는 막무가내로 남편의 앞을 막아섰다.꼭 그렇게까지 막장에 들어가야 하는가고, 당신이 없으면 생산을 못하는가고…

그러는 안해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박영복동무가 말했다.

《난 겨울이 오면 우리 장군님 생각이 더 간절해지오.피눈물의 12월이 자꾸 생각나오.》

민족대국상의 비보가 전해진 피눈물의 해 2011년을 박영복동무는 더욱 잊지 못한다.그해에 박영복동무는 지하 180m수준에서 굴진을 하고있었는데 건강이 몹시 악화되여 막장일을 하기가 나날이 힘들어졌다.막장에 내려갔다 제힘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이제는 정말 물러서야 하는가.이렇게 모대기던 그에게 우리 장군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은 너무도 큰 충격을 주었다.민족대국상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을 수록한 영화문헌을 보면서 박영복동무는 옷섶을 눈물로 적시였다.

그처럼 수척해지신 몸으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눈보라강행군길에 계신 위대한 장군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잠시나마 나약해졌던 마음을 채찍질하며 그는 피눈물의 12월에 다시 일떠섰다.그에게 있어서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은 그 맹세를 지키는가 마는가 하는 량심과 의리의 시금석이기도 하였다.

《그때 당신도 맹세했지.우리 장군님께 못다 바친 충성을 우리 당을 받드는 길에 다 바치겠다고 말이요.난 12월의 맹세를 지키고싶소.설사 그 길에서 숨이 진다고 해도 한이 없소.》

그 말을 남기고 또다시 막장으로 향하는 남편을 눈물속에 바래우던 그 아침을 탁영화녀성은 오늘도 소중히 추억한다.

인간이 강해지는데는 리유가 있다.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하고 수수한 박영복동무이다.하지만 마음속에는 백옥같은 진정을 안고 사는 참된 당원이다.

안아키워준 당에 대한 고마움, 혁명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령도자에 대한 불같은 의리, 그것을 간직한 인간의 삶은 아름답다.

박영복중대는 80일전투에서도 당앞에 결의한 생산목표를 빛나게 돌파하고 광산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를 앞당겨 완수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원의 삶이 고결한것은 열, 백을 교양하고 이끌어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는 교양자, 선전자이기때문이다.

박영복동무는 자신이 걷는 보답의 길, 위훈의 길에 수많은 광부들을 어엿하게 키워 내세운 훌륭한 당원이기도 하다.

박영복동무가 로동능력상실이라는 선고를 받고도 막장을 떠나지 않은 지난 10여년간은 그가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 갱장으로 사업한 나날이기도 하다.

자기 한몸도 지탱하기 힘든 그가 어깨우에 나날이 무거운 짐을 기꺼이 떠멨다는것도 놀랍지만 더욱 감탄하게 되는것은 대중을 이끌어 언제나 광산의 맨 앞장에서 내달려왔다는 사실이다.

소대장시절에는 소대원들을 이끌어 해마다 광물생산계획을 150%이상 넘쳐 수행하였고 중대장으로 사업한 나날에도 대원들과 지혜를 합쳐 기술혁신의 앞장에 섰다.마광기를 개조하여 광석처리량을 5배로 늘이고 생산을 2배로 장성시킨것을 비롯하여 박영복동무의 중대는 늘 광산적으로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기수중대였다.갱장이 된 후에는 더욱 분발하여 갱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를 기한전에 완수하도록 하고 전투력있는 대오로 위력떨치게 하였으며 3대혁명붉은기쟁취단위의 영예를 지니게 하였다.대중의 교양자인 우리 당원들의 불굴의 정신력이 발휘하는 힘은 어디까지인가를 참으로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모습이다.

당원이 대중을 교양하는 가장 위력한 방법은 이신작칙이다.

어느해 1월이였다.해마다 그러하듯이 새해 첫달부터 위훈창조의 불길을 지필 열의드높이 갱으로 향하던 광부들의 걸음은 갱입구에서 멎어섰다.병이 도져 며칠전에 병원으로 실려갔던 갱장, 수술까지 받은 그가 언제 돌아왔는지 어뜩새벽 갱앞에 억척같이 버티고서있었기때문이다.

《갱장동지!-》 하고 소리쳐부르며 달려가 얼싸안던 광부들의 눈이 다음순간 굳어졌다.갱장이 짚고 선 쌍지팽이를 본것이였다.이전에도 자주 지팽이를 짚군 하던 갱장이였지만 이렇게 쌍지팽이를 짚고있는 모습은 처음이였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모두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돌이켜보면 거의 불구나 다름없는 몸이였지만 병원에서 장기치료를 받아본적이 없는 갱장이였다.지팽이에 의지해서라도 걸을수만 있다면 막장에 섰다.

그런 불사조와 같은 모습은 그대로 대오의 정신력을 비상히 각성시키는 기폭제와 같았다는것은 자명한 리치이다.

하지만 대오의 앞장에 선다는것은 단순히 시공간적인 위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그것은 과학적인 작전과 능숙한 지휘로 대오가 나아갈 길을 열고 비약과 혁신에로 추동하는 힘이 된다는것을 말한다.

갱장이 현장에 있기만 해도 힘이 난다고 이곳 광부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것은 그가 막장실태를 손금보듯 환히 꿰들고 언제나 과학적인 작전과 지휘로 대오를 생산적앙양에로 고무하기때문이다.수직갱의 광석운반을 기계화할수 있는 소형권양기제작설치를 발기하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끝내 성공시켜 생산을 2배로 높일수 있게 한 사람도 박영복갱장이고 장마철에 갱이 물에 잠겨 생산을 멈추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 침수되지 않은 막장에서 광맥잔류들을 찾아 생산을 계속할수 있는 묘안을 찾은것도 박영복동무였다.쓸모없이 버리던 페설물에서 광물을 추출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필요한 설비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 종전에는 생각할수 없었던 생산실적을 돌파하게 한 선구자도 다름아닌 박영복갱장이다.

그러느라니 그가 얼마나 남다른 고심을 하고 완강한 노력을 기울이였겠는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불편한 다리로 누구보다 막장길을 많이 걸으며 현장을 파악했고 아픈 몸으로 밤을 새우며 구체적인 작전을 세웠으며 참고서들을 탐독하면서 기술혁신의 방안을 모색했다.

참으로 불가능을 모르는 돌격전의 기수이다.한몸을 바쳐 그대로 전진하는 대오의 앞길을 여는 이런 기수를 어찌 대중이 따르지 않으랴.

자력갱의 광부들이 갱장을 진심으로 따르며 존경하는것은 그가 뜨거운 정과 사랑으로 대오를 이끌고 대중의 심장에 기적창조의 불을 지피는 훌륭한 지휘관이라는데도 리유가 있다.

매별산기슭의 끝자락에 아담한 한채의 집이 있다.신혼부부가 새살림을 편 이 집은 박영복갱장이 전투의 여가에 광부들과 함께 새로 지은것이다.부모를 잃고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사는 갱의 한 광부가 박영복동무의 마음에 늘 걸렸다.갱에서 친부모의 심정으로 돌봐주기는 해도 혈육의 정만이야 하랴.이런 마음으로 박영복갱장은 그 광부의 결혼상을 친형의 심정에서 성의껏 차려주고 광부들과 함께 새 집에 집세간까지 일식으로 마련하여 안겨주었다.

갱의 광부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이런 뜨거운 사연이 있다.

언제인가 갱이 긴장한 생산돌격전을 벌리고있던 그때 자기의 등을 떠밀어 병원으로 보내던 박영복동무의 모습을 한 광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병이라는건 시기를 놓치면 다야.어서 가보라구.》라고 하면서 도중식사까지 마련해주던 갱장의 그 뜨거운 인정미, 전투가 한창이고 한명의 전투원이 그처럼 귀중하던 때에 자기의 등을 서슴없이 떠밀던 그 손길을 잊지 않고 그는 오늘 건강한 몸으로 갱의 생산적앙양에서 한몫 단단히 한다.

광산사람들이 자력갱을 두고 《쇠물집》이라고 부르는데도 사연이 있다.아무리 말썽많던 사람이라도 일단 자력갱의 광부가 되면 몰라보게 달라지기때문이다.혁신자가 되고 유능한 기능공이 된다.그 《쇠물집》의 인정많은 가장은 박영복갱장이다.광석에는 설사 버럭이 있어도 당을 받드는 우리 갱의 광부들속에는 《버럭》이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 그가 안고 사는 진심인것이다.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아도 거목을 키우는 뿌리와 같이 자신을 깡그리 바쳐 대오를 떠밀고 조국의 번영을 받드는 이런 삶이야말로 참된 애국의 삶, 훌륭한 당원의 삶이 아니겠는가.


* *


당의 위력은 당을 받드는 전위투사인 당원들의 위력이다.

우리 당력사에는 육체적능력을 상실하였어도 심장의 모든것을 다 바쳐 당의 위업에 충실했던 불사조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여있다.침상에 매인 몸으로 시대를 고무하는 전투적인 시들을 창작한 영예군인시인도 있었고 하반신이 마비되였어도 수많은 자동차들을 수리하여 들끓는 사회주의건설장들에 보내준 로동자영웅도 있었다.그런 불사조들과 나란히 우리는 박영복동무의 모습을 세운다.

심장의 박동 다할 때까지 온넋으로 당을 받들고 당의 위업에 끝까지 충실하려는 이런 미더운 당원들이 있어 우리 당이 강하고 그 위력이 천하를 진감하는것 아니겠는가.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의 선봉에 선 이 땅의 수백만 당원들이 지하막장의 불사조, 박영복동무와 같이 진심으로 당을 받들고 당의 뜻과 구상실현에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칠 때 뚫지 못할 고난과 시련이 어디에 있으랴.그처럼 훌륭한 당원들을 키워낸 우리 당은 위대하고 그 위업은 필승불패이다.

한 당원의 불사조와 같은 삶에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금 확신한다.

본사기자 방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