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3월 16일 로동신문

 

우리 당이 키운 청년들의 숭고한 정신세계, 아름다운 지향

사회주의농촌으로 진출한 남포시안의 140여명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청년들이야말로 온 세상이 부러워하도록 높이 떠받들어주고싶은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청년들이며 이런 미더운 청년대군을 가지고있는것은 조선로동당의 큰 복이고 조선의 자랑이며 바로 여기에 존엄높은 우리 국가의 강대성과 창창한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당은 청년들이 미덕과 미풍의 선구자, 위훈창조, 긍정창조, 문명창조의 기수가 되여 온 나라에 생기와 활력이 차넘치게 하며 어렵고 힘든 전투장들에 용약 달려나가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제낄것을 바라고있다.

이 크나큰 기대와 믿음은 우리 청년들의 가슴가슴이 보답의 일념으로 더욱 세차게 고동치게 하고있다.

그런 속에 얼마전 남포시의 140여명 청년들이 사회주의농촌으로 진출하였다.

탄원증서를 소중히 가슴에 품고 사람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사회주의농촌으로 떠난 청년들, 이들에게서 우리는 위대한 당이 펼친 설계도따라 새 승리를 향하여 기세드높이 나아가는 온 나라 청년들의 장하고 미더운 모습을 보게 된다.

 

청춘들이 설 자리

 

사회주의농촌으로 진출한 남포시안의 140여명 청년들은 경력도 직업도, 희망과 포부도 서로 다르다.그러나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청춘의 리상을 아름답게 꽃피워가려는 지향은 하나와 같았다.

남포시방송위원회에서 현실체험을 하고있던 서원식동무가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할것을 결심하게 된것은 력사적인 당 제8차대회가 진행된 소식에 접하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하신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의 구절구절을 새기면 새길수록 그이의 어깨우에 실린 중하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것이 우리 시대 청년의 응당한 본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날줄 몰랐다.

그는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인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으로 빛나고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자취가 숭엄히 새겨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배우고 생활하며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간직한 룡남산의 아들들중의 한사람이였다.

당에서 걱정하는 문제를 푸는 길에 청춘의 아름다운 삶이 있으며 그것이 진정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의 마땅한 본분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의 결심을 부모에게 터놓으며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가정의 행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당의 뜻을 받들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조금이라도 기쁨을 드린다면 그것이 곧 우리 가정의 제일 큰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어느덧 어엿이 성장한 아들이 너무도 대견해 시농촌경리위원회에서 일하는 그의 아버지는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였고 어머니는 눈굽을 훔치였다.

서원식동무의 할아버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용약 전선으로 탄원하여 락동강도하전투에도 참가하였던 전쟁로병이였다.

서원식동무는 청년동맹조직에 농촌으로 탄원할것을 제기한 날 할아버지의 색날은 사진앞에 섰다.가렬한 전쟁의 포화속을 헤쳐온 할아버지가 사진속에서 조국의 부름에 실천으로 대답할줄 아는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 손자에게 따뜻한 축복을 보내주는듯싶었다.

조국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친 전세대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려는 우리 청년들의 지향은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비단 서원식동무만이 아니였다.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한 청년들은 모두 조국해방전쟁시기와 천리마대고조시기 피흘려 조국을 지켜싸웠으며 전후의 재더미속에서 기적의 천리마가 날아오르게 한 훌륭한 세대의 손자, 손녀들이였다.

풀뿌리를 씹어삼키면서도, 굶어쓰러지면서도 위대한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신념을 안고 시련과 고난을 굴함없이 헤쳐온 세대의 아들딸들이였다.

비록 경력은 서로 달랐어도 그들의 가슴속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세대가 넘겨준 충성과 애국의 바통을 이어갈 신념이 간직되여있었다.

돌이켜보면 남포땅에는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의 첫 처녀선장이며 강선의 《처녀어머니》를 비롯하여 훌륭한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수많이 깃들어있다.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선참으로 달려간 서원식동무와 같은 청년들을 우리 어찌 그들의 모습과 나란히 하지 않을수 있으랴.

대부분 탄원생들의 나이는 20대이다.

사회주의농촌으로 진출한 남포시안의 청년들속에는 항구구역량정사업소 로동자로 일하던 최로영동무의 4형제도 있다.

그들은 사실 친형제가 아니였다.그들의 친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그들은 결코 고아가 아니였다.그들에게는 이 땅의 천만자식모두를 안아 보살펴주는 어머니당의 품이 있었다.하기에 15명의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키운 그들의 부모는 당의 은덕을 한시도 잊지 말고 보답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생일을 모두 10월 10일로 정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도 모두 합치면 《백전백승 조선로동당 만세》, 《일심단결》이 되게 지어주었다.

이런 뜨거운 사랑과 훌륭한 교양속에 성장하였기에 최백숙, 최백철, 최선철, 최로영동무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건설장과 삼지연시꾸리기전투장에 달려나가 청춘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그 나날 최로영동무를 비롯한 형제들은 완공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찾아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받아안았고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도 지니게 되였다.

그들이 성스러운 백두대지에서 청춘을 빛내이고 정든 집에 돌격대배낭을 풀어놓은지 몇달밖에 안되던 지난 2월 어느날 저녁이였다.

일터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최로영동무는 여느때없이 흥분된 기색으로 웨치다싶이 말하였다.

《우리 남포시의 많은 청년들이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해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니?! 난 형제들과 함께 농촌으로 탄원하였으면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형제들은 하나같이 호응하였다.사실 그들속에는 대학에 가려는 희망을 안고있는 청년도 있었고 자기 일터에 정을 붙이고 소문난 혁신자가 되려고 한 청년도 있었다.

앞날에 대한 포부는 서로 달랐으나 받아안은 은혜에 실천으로 보답하려는 지향만은 하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사회주의농촌진지를 강화하는데 당적, 국가적주목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농촌에 제대군인들을 많이 파견하고 그들을 공부도 시키고 체계적으로 키워 사회주의농촌을 가꾸고 발전시키는데서 든든한 기둥, 믿음직한 핵심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가르치시였다.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한 남포시의 청년들속에는 어제날 손에 총을 잡았던 제대군인들도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최전방인 농업전선에 혁명적기상이 차넘치게 하고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풀기 위한 투쟁에서 제대군인들이 선봉대, 돌격대가 될것을 바라는 우리 당의 뜻을 받들어 농촌으로 탄원하였다.

시의 어느 한 단위 로동자였던 김봉일동무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지난해 제대를 미루어가며 검덕지구피해복구전투장에 달려나가 위훈을 세우고 떳떳이 고향으로 돌아온지 불과 몇달밖에 안된 그였다.그러나 그는 자기의 제대배낭을 정든 고향집이 아니라 사회주의농촌에 풀것을 결심하였다.

김봉일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다녀가신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으로 달려나갈것을 탄원하였다.

농사군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고령의 몸으로 험한 포전길을 걸으시게 하였다는 가슴아픔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는 금당리에서 농사를 잘 지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더는 포전길을 걸으시지 않게 하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며.

우리는 새 세대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에서 당의 부름에 호응하여 산으로, 바다로, 개발지로 달려나간 천리마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된다.

사회주의의 운명을 판가름하던 고난의 행군시기의 청년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조국을 굳건히 지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중요전구마다에서 청춘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떨치지 않았던가.

당의 부름에 심장으로 화답하며 시련과 난관을 앞장에서 헤쳐나가는 우리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대풍모는 이렇듯 세대와 세대를 이어 련면히 이어지고있는것이다.

탄원생들속에는 지난날 잘못 살아온 과거를 안고있는 청년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청춘들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농촌으로 탄원하였다.

청년들의 소행이라면 자그마한 싹도 귀중히 여겨 내세워주는 어머니 우리 당, 골병든 자식일수록 더 마음을 쓰는 그 한없는 사랑과 은정에 불같은 실천으로 보답할 맹세가 그들의 가슴마다에 간직되여있었던것이다.

청년들의 탄원열의가 날로 높아가던 지난 2월 어느날 어느 한 구역청년동맹위원회의 한 사무실로는 여러명의 청년들이 들어섰다.

《저희들도 농촌으로 보내주십시오.다른 동무들보다 두곱, 세곱 일하겠습니다.》

그들은 지난 시기 조직과 집단을 떠나 생활하던 청년들이였다.

곬은 여러 갈래라 해도 흐르는 물은 언제나 바다로만 향하기마련이다.

머리를 푹 수그린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청년동맹일군은 믿음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찾아올줄 알았소.우리야 달리는 살수 없는 청년들이지.》

시안의 수많은 청년들이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해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책으로 잠 못 이룬 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한 건설장에서 돌격대원으로 일하다가 일시적인 난관앞에 마음이 흔들려 동지들의 곁을 떠나온 그는 쓰라린 자책속에 지난날을 더듬어보았다.

남들과 꼭같이 당의 사랑을 받아안으며 성장하였건만 어째서 보답의 걸음에서는 차이가 났던가.

가자, 어렵고 힘든 초소로, 시대의 거세찬 흐름에 합류하여 이제라도 보답의 길을 걷자.

그는 이렇게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하였다.

청년들이여, 우리 잠시 심장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의 고마움을 순간이나마 잊고 산적은 없었는가를.

당과 조국의 부름앞에 자기자신의 안일과 편안부터 먼저 생각한적은 없었는가를.

조국의 큰 짐을 스스로 떠멜 장한 결심을 안고 새 출발을 한 청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이 앞으로 농촌의 핵심, 농장벌의 진정한 주인이 될것이며 자신의 청춘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게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당의 뜻을 받들어 사회주의농촌으로 진출한 140여명 청년들,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경력이 있었다.

그들모두는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태여나고 자란 당의 아들딸들이였다.

당의 품에 안겨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며 자랐고 붉은넥타이를 펄럭이며 학교에 다니고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고 보답의 맹세를 다지며 성장한 청년들이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배워주고 내세워준 따사로운 그 품속에서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지닌 우리 청년들이 어찌 달리 살수 있겠는가.

한뿌리에서 자란 줄기는 여러 갈래여도 무성한 한나무를 이루고 줄기는 뿌리와 언제나 운명을 같이한다.

그렇다.

우리 청년들의 운명은 위대한 어머니당을 떠나 순간도 생각할수 없다.

청춘들이 설 자리는 언제나 당에서 제일 중시하고 관심하는 곳이다.

 

마음도 하나, 발걸음도 하나

 

남포시의 140여명 청년들이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해나섰을 때 그들과 꼭같이 잠 못 이룬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탄원생들의 부모들과 안해, 형제들과 일군들이였다.

탄원생들속에는 안해와 함께 농촌으로 탄원한 청년도 있다.

룡강군청년동맹위원회 지도원이였던 김충성동무이다.

청년동맹일군으로 사업하던 그가 안해와 함께 농촌으로 탄원하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어느날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김충성동무의 안해는 며칠째 남편의 얼굴색이 어두운것을 보게 되였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는 남편이 농촌으로 탄원할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너무도 뜻밖의 사실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안해에게 김충성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달전 농촌청년작업반, 청년분조들과의 사업을 맡아보던 김충성동무는 일부 청년들속에서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이 농촌을 떠나려고 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때 그는 그들을 만나 준절히 타일렀다.

우리 청년들이 사회주의농촌진지를 강화하는데서 선구자가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고.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한 청년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게 되였다.

만일 자기자신이라면 선뜻 농촌으로 나갈수 있는가고.

그때부터 농촌으로 갈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차마 그것을 터놓지 못하고있었던것이였다.…

김충성동무의 안해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생소한 고장에 가서 손에 선 농사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의 가슴속에는 청년동맹일군의 안해라는 자각이 그득히 차올랐다.

청년동맹일군인 남편을 적극 돕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된다.아니 나도 남편과 함께 농촌으로 탄원하자.

그는 남편이 력사적인 당 제8차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소식에 접하고 이미 확고해진 결심을 터놓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결심을 지지해요.나도 당신과 함께 가겠어요.》

이렇게 되여 김충성동무는 안해와 함께 룡강군 옥도협동농장으로 탄원하게 되였던것이다.

지난 2월 어느날 농촌으로 탄원하는 청년들의 명단을 작성하고있는 시청년동맹위원회의 한 사무실로 나이지숙한 녀인이 찾아왔다.

《우리 자식들의 이름도 탄원자명단에 적어주십시오.》

그러는 녀인에게 청년동맹일군은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것이 어머니의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우리 자식들이 당에서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성실히 일한다면 난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만자루의 품을 들여 자식들을 키운 이 나라 어머니들의 진정이였다.

온천군에서 살던 한 제대군인청년이 농촌으로 탄원하려는 자기의 결심을 부모와도 같은 형님에게 내비쳤을 때였다.

한동안 그의 형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자기의 결심을 반대하는것 같아 그는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집마당가에 그가 농촌으로 갈 때 가지고갈 소농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것이였다.

영문을 몰라하는 그에게 형님은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결심한것 같아 선뜻 지지해주지 못했구나.하지만 청년동맹조직과 당조직에 찾아가 너의 결심이 확고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아무쪼록 제대군인답게 언제나 농촌의 핵심이 되길 바란다.》

청년들의 탄원열의가 높아감에 따라 청년동맹일군들과 남포시의 일군들은 그들을 적극 지지해주고 떠밀어주었다.

탄원생들의 가정을 찾아가 생활상고충을 풀어준 청년동맹일군들도 있었고 지난날 잘못 살아온 과거때문에 선뜻 나서기 저어하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정을 부어주어 시대의 전렬에 내세워준 당일군들도 있었다.

이런 진정속에 탄원생대렬은 어느덧 100명을 넘어섰다.

어느날 시농촌경리위원회 책임일군이 농촌으로 탄원한 청년들을 찾아왔다.

《수십년전에 저도 수도 평양에서 여기 남포의 농장벌로 달려나온 탄원자의 한사람입니다.》

탄원자, 이 공통점이야말로 가장 설득력있는 교양이 아니겠는가.

시인민위원회일군들은 전체 탄원자들에게 한날한시에 새 솜옷과 신발을 안겨주었으며 생활필수품들과 비옷, 장화, 책과 필기도구를 비롯하여 필요한것들을 모두 보장해주었다.

환송준비를 하는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한생토록 잊지 않고 추억할수 있게 환송모임을 의의있게 조직할것인가.

사색의 밤은 깊어갔다.이렇게 되여 마련된것이 탄원증서였다.

품위가 있고 정성이 깃든 탄원증서를 수여받는 날 청년들은 그 증서를 청춘대학의 입학통지서처럼 품속에 소중히 간수하였다.

모임에 참가하여 직접 탄원증서를 수여해준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 자기들에게 깊이 머리를 수그리며 정말 고맙다고, 이제 동무들이 일하는 농촌으로 꼭 찾아가겠다고 언약할 때 그들의 감동은 고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청년들은 다는 알수 없었다.

수도 평양에서 진행되는 중요회의에 참가하는 속에서도 그 모든 과정을 속속들이 알아보면서 어떻게 해서나 청년들에게 고무가 되고 힘이 되며 도움을 줄수 있도록 하나하나 대책해준 일군이 있는줄.

청년들이 자기가 탄원한 청년분조, 청년작업반으로 떠나갈 때 이미 현지에는 아담한 숙소가 마련되여있었으며 자기들의 앞날까지 내다보고 원격교육을 받는 문제가 론의되고있는줄.

당의 청년중시사상을 받들어 청년들의 앞길에 리정표를 세워주고 한사람이라도 뒤질세라 속을 썩이고 애를 태우는 이런 진실한 일군들이 있어 태양의 빛발을 받는 해바라기처럼 우리 청년들은 마음껏 희망의 나래를 펴고 청춘의 활무대를 펼치고있으며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기수, 돌격대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게 되는것이다.

어느 한 탄원생의 수첩의 첫 페지에는 이런 글이 씌여져있다.

《농촌으로 달리는 뻐스안에서 이 글을 쓴다.

사회주의농촌으로 떠나는 우리 청년들을 바래주던 고향의 정다운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자식의 가방속에 무엇인가 자꾸 넣어주며 당부를 거듭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배낭을 들고 따라서던 형제들…

미처 가려들을수 없는 그 숱한 당부들을 우리 동무들은 모두 하나의 간절한 부탁으로 받아들이였다.

쌀로써 당과 혁명을 보위하고 사회주의를 지키는 길에서도 청년전위들이 앞장에 서라고, 그래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더는 농사문제를 두고 걱정하시지 않게 하라는 뜨거운 믿음과 고무격려로.

지금 동무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노래를 부른다.

아직은 이름도 서로 다 모르지만 벌써 한형제, 한집안식구처럼 어울려 돌아간다.

누구나 가슴속엔 농촌으로 탄원하게 된 각이한 사연들이 간직되여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지금 한가지 생각을 하고있는줄 안다.

어깨에 배낭을 메워주며 〈꼭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아시는 다수확농민이 되길 바란다.〉라고 하던 부모들과 시안의 일군들의 당부를 새기고있을것이다.》

우리 청년들의 곁에는 이런 인민들과 일군들이 있다.

충성과 애국의 바통이 대대손손 꿋꿋이 이어지기에 우리 혁명이 줄기차게 전진하고있는것이다.


* *


남포시의 청년들은 사회주의농촌으로 탄원하면서 전국의 청년들에게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초소로 탄원할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 호소에 화답하여 평양시와 평안남도, 황해북도, 함경북도를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인민경제 기간공업부문과 농업부문을 비롯한 어렵고 힘든 부문들에 열렬히 탄원하고있으며 그 열기는 날을 따라 더욱 고조되고있다.

참으로 청년들을 광명한 래일에로 이끄는 우리 당이 위대하고 값높은 삶과 영예를 안겨주는 그 손길 따사로와 우리 나라에서는 청년들이 명실공히 시대의 영웅, 창조의 거인들로 자라나고있다.

당의 은덕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당중앙뜨락에 심장의 피줄을 이은 우리 청년들이 달려나간 사회주의건설의 전구마다에서는 새로운 기적과 혁신이 일어나고 온 나라가 청년판으로 흥성거리게 될것이다.

장하다, 당을 따라 언제나 곧바로 한길을 가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이여.

청년들의 힘찬 발걸음에 의해 강성할 래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하늘같은 믿음을 뼈속깊이 새기고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조국은 이런 청년들을 소리높이 자랑한다.

글  특파기자 주창선
본사기자 유광진
사진 본사기자 정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