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3월 28일 로동신문

 

인민이 터치는 격정의 목소리-《당중앙뜨락에 우리 집이 있다》

홍원군 운포로동자구와 리원군 학사대리를 찾아서

 

이 땅에 짙어가는 봄빛과 더불어 누구나의 가슴마다에 새로운 희망과 미래에 대한 강렬한 지향이 더욱 불타오르는 이 계절, 우리는 동해기슭에 위치한 홍원군 운포로동자구와 리원군 학사대리를 찾아 취재길에 올랐다.

수도 평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바다가마을이건만 왜서인지 지척으로 느껴지는 못 잊을 고장들이였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자연의 재앙으로 페허처럼 되여버렸던 이곳에 어머니 우리 당의 은정을 길이 전하는 선경마을들이 솟아나고 황홀한 새 살림집에 보금자리를 편 인민들의 행복넘친 모습이 방불하게 떠올라 저도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우리들이였다.그래서인지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모든것이 더욱 소중하게 안겨들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 땅에 펼쳐지고있는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화폭들은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구현된 우리 식 사회주의의 참모습입니다.》

운포로동자구는 홍원읍에서 수십리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이 고장에 펼쳐진 전변의 모습을 그려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에게 군의 한 일군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저기가 바로 지난해 9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뜻깊은 자욱을 새기신 바다가입니다.》

순간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불쑥 치밀어올랐다.

피해지역 인민들이 평양의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을 기다린다고,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은 인민들이 이 비바람속에서 자신을 기다린다고 하시며 언제 산사태가 무너져내릴지 모르고 물먹은 철길로반들이 어느 시각에 주저앉을지 모르는 그 험한 길을 헤치시며 헌신의 자욱을 새기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사랑하는 인민이 당한 불행, 인민의 가슴속상처를 하루빨리 가셔주시려 태풍피해현장에서 수도당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한자 또 한자 쓰신 그이이시였다.

잊지 못할 그날의 돌서덜길, 불덩이같은 공개서한의 글발이 삼삼히 어려와 우리는 선뜻 걸음을 옮길수가 없었다.

진정 그것은 인민에 대한 열화의 정으로 피를 끓이는 참다운 령도자께서만이 새기실수 있는 멸사복무의 자욱이였고 인민의 운명을 보살피는 어버이께서만이 쓰실수 있는 불멸의 글발이 아니였던가.

쉬임없이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도 감격의 메아리인양 귀전을 울리였다.

숭엄해지는 마음을 안고 동구길에 들어선 우리의 눈앞에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아담한 살림집들의 전경이 우렷이 비껴들었다.

규모있게 들어앉은 살림집들은 마치도 아늑한 보금자리에 내려앉은 학의 무리를 방불케 하였다.

자연의 대재앙이 다시 덮쳐든대도 억년 끄떡없을 명당자리로 옮겨앉은 마을의 이채로운 모습은 우리의 눈길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우리가 먼저 들린 곳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다녀가신 홍원군 운포로동자구 93인민반 김유수동무의 집이였다.

해토가 시작된 터밭에서 일손을 놀리던 그의 안해 김영옥녀성의 손에 이끌려 우리는 집문턱을 넘어섰다.

겉볼안이라고 집안 역시 품들여 꾸렸다는것이 대뜸 알렸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피해지역 인민들의 살림집건설에 자신들의 지극한 정성과 열정을 다 바친 수도당원사단 전투원들의 일솜씨가 과연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갈마들었다.

김영옥녀성은 새 집에 입사한지 여러달이 되였지만 지금도 받아안은 행복이 꿈만 같다고 하면서 말끝을 흐리였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한 일군이 들려준 이야기가 되새겨졌다.

지난해 9월 갑자기 들이닥친 큰물과 태풍의 후과는 실로 예상밖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단란한 분위기가 흘러넘치던 삶의 보금자리가 졸지에 무너져내리고 집세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마을의 정경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자장가마냥 정답게 들리군 하던 파도소리마저 아픈 가슴을 허비는듯.

예로부터 설음, 설음 해도 집없는 설음보다 큰 설음이 없다고 하였지만 실지 당하고보니 수재민들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나 따사로운 품에 자기들이 안겨사는지 다는 알수가 없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태풍9호에 의한 폭우와 강풍으로 피해가 발생한것과 관련하여 즉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현지로 파견하시여 피해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도록 하시고 피해지역 현지에서 당중앙위원회 정무국 확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회의를 마치시고 태풍피해지역들을 직접 현지에서 료해하시였다.

이 소식에 접한 수재민들의 얼굴로는 뜨거운것이 줄지어 흘러내렸다.

(그이께서 태풍피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바다가기슭의 자그마한 우리 어촌마을을 다녀가시다니?!…)

솟구치는 격정속에 그들은 평양하늘을 오래도록 우러르며 감격의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그로부터 얼마후 홍원땅의 피해지역에 당중앙이 파견한 최정예수도당원사단 전투원들이 도착하였고 이들은 결사전을 벌려 살림집건설착공의 첫삽을 뜬지 18일만에 만사람의 경탄을 자아내는 훌륭한 보금자리를 일떠세웠다.

불같이 흐른 그 날과 날들은 홍원군안의 인민들에게 있어서 어머니 우리 당의 품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 없음을 심장깊이 체득한 감격적인 순간의 련속이였다.

그 나날에 펼쳐진 화폭은 얼마나 감동깊은것이였던가.

새집들이경사로 온 군이 들썩이던 광경, 살림집리용허가증을 받아안고 흐느껴울던 일, 주인내외가 밤이 지새도록 잠들지 못하던 사연…

《지금 군안의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가리켜 리상촌이라고 부른답니다.》

리상촌, 정녕 옳은 말이였다.

이곳이야말로 로동당시대의 또 하나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꽃펴난 사회주의리상촌이였다.가까이에 있건, 멀리에 있건 정깊고 사려깊은 눈빛으로 이 땅의 천만식솔을 따뜻이 보살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손길이 뜨겁게 어려있는 사랑의 요람이였다.

깊어지는 생각을 안고 취재수첩의 갈피를 번지는데 문기척소리에 뒤이어 나이지숙한 한 녀인이 집안에 들어서는것이였다.알고보니 그는 옆집에 사는 녀성이였다.

우리가 찾아온 목적을 알게 된 그는 반색을 하며 어제 친척이 집구경을 하려고 먼길을 왔다고 하는것이였다.그러면서 이제는 우리 마을이 온 나라가 다 아는 동네가 되였다고,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렇듯 훌륭한 행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당의 은덕을 눈에 흙이 들어간들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고 말하는것이였다.

무심히 들을수 없는 그의 이야기에는 어머니당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이 흘러넘치고있었다.

우리에게는 그 녀인의 목소리가 온 마을사람들 아니 피해지역 인민들모두가 터치는 심장의 고백으로 들려왔다.

마을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읽으며 우리는 동구밖을 벗어나 리원군 학사대리로 향하였다.

리원군에 도착한 우리가 굽이굽이 뻗어간 바다기슭의 도로를 따라 학사대리에 이른것은 정오를 가까이할무렵이였다.

예로부터 경치가 좋아 선비들이 찾아와 글짓기를 하였다고 해서 학사대로 불리워진 이 고장의 바다가바위에는 그들이 새긴 글도 남아있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가 보여주는것처럼 학사대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왔다.

동해의 유정한 파도소리, 바다가에 들쑹날쑹 솟은 기묘한 바위들, 깃을 치며 날아예는 갈매기들의 청고운 울음소리…

하지만 그보다 우리의 시선을 끈것은 바다가마을의 운치를 한껏 돋구어주는 산뜻한 살림집들이였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즐비하게 늘어선 살림집들의 모양은 학사대의 풍치를 더해주고있었다.

불쑥 달려가 문고리를 쥐고싶은 충동이 치밀어올랐다.

우리는 이곳 일군과 함께 리원군 학사대리 14인민반 강정민동무의 집을 찾았다.

따스한 해빛이 흘러드는 집안으로 들어서니 우리를 반겨맞는 집주인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어려있었다.그는 지금도 집으로 들어설 때면 과연 내 집이 옳긴 옳은가 하는 생각에 쉬이 문고리를 잡지 못한다고 하면서 정말 꿈만 같은 일이라고 거듭 뇌이는것이였다.

그의 안해도 흥분을 금치 못해하며 군사복무를 하는 세 자식들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알고보니 이 집은 두 아들과 딸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인민군대후방가족이였다.

벽에 걸려있는 세개의 조선인민군입대증을 바라보느라니 천지개벽된 고향마을을 그려보며 군사복무의 날과 달을 충성과 위훈으로 수놓아가고있을 미더운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이런 행복한 가정이 어찌 이들뿐이랴 하는 생각을 안고 우리는 이 마을에서 수십년을 살고있다는 한 할머니의 집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머리에 백발을 얹은 할머니는 당에서 지어준 희한한 집에서 복을 누리게 되였으니 여생에 한이 없다고 하며 눈굽을 훔치는것이였다.

문득 우리의 뇌리에는 리원군 학사대리의 새 살림집에 입사한 주민들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삼가 올린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크게 한 일도 없는 농사군, 배군들과 집에서 쉬면서 부양이나 받는 저희들인데 나라의 귀중한 재부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이런 훌륭한 새 집을 지어주시였으니 너무나도 아름찬 행복을 받아안기에는 가슴이 터질것 같아 저도모르게 눈물이 쏟아져내려 어른들도 울고 아이들도 울어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되고말았습니다.》

그 글줄마다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이야말로 영원한 운명의 요람이며 언제나 당중앙뜨락에 혈연의 피줄기를 잇고 사는 우리 인민에게는 오직 행복만이 약속되여있다는 고귀한 철리가 뜨겁게 응축되여있었다.

하기에 어느 가정에 들려보아도,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을 떠나서는 한시도 못산다고, 당중앙뜨락에 우리 집이 있다고 격정의 목소리를 터치는것이다.

정녕 취재길을 이어갈수록 이 세상 만물에 따스한 빛과 열을 주는 저 하늘의 태양처럼 열화같은 정과 사랑으로 이 땅의 천만아들딸들을 보살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에 대한 인민의 매혹과 흠모가 대하처럼 굽이치는 내 조국강산이였다.

우리에게는 동해바다기슭에 선경을 펼친 행복의 보금자리들이 위대한 어버이의 천만로고를 전해주는 인민사랑의 기념비로 안겨와 오래도록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본사기자 김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