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4월 13일 로동신문
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기술신비주의와 보수주의를 짓부셔버린
우리의 로동계급이 만든 첫 《천리마》호뜨락또르가 이 땅에 태여난 때로부터 어느덧 60여년이 흘렀다.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와 보수주의를 짓부셔버린 자력갱생의 산아-《천리마》호뜨락또르, 그 첫 동음은 과연 이 땅에 어떤 력사의 메아리를 남겼던가.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우리 로동계급이 첫 뜨락또르를 만들던 1958년은 어려운 시기였다.
당시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뜨락또르와 같은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우리 나라에서는 강냉이탈곡기와 같은 중소농기계들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바로 그러한 때인 주체47(1958)년 10월 기양기계공장(당시)을 찾으신
우리는 앞으로 농촌에서 락후한 영농방법을 퇴치하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로부터 제초, 추수, 탈곡에 이르는 모든 영농작업과 운반작업을 뜨락또르로 하게 하려고 한다고, 그렇게 되면 우리 농민들이 농사일을 헐하고 흥겹게 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보내주자면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한다고 하시는
제것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수 있다고, 우리가 뜨락또르를 제힘으로 만들어야 기술도 발전하지 남의것을 사다쓰기만 하면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든다는것은 우리 나라 기술혁명에서 큰 발전이라고 하신
그러나 기술신비주의와 보수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사람들은 뜨락또르를 생산하겠다는 열의는 좋으나 좀 기술적으로 타산해보고 토론하는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머리를 기웃거렸다.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에서도 도면만 그리는데 6개월이상 걸렸다는데 도면은 언제 그리고 부속품은 언제 깎아서 뜨락또르를 만들겠는가.뜨락또르를 만드는 품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사다가 쓰는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잠꼬대같은 소리는 우리 로동계급의 신념을 흔들수 없었다. 항일유격대원들이 야장간에서 무기를 만들어내던 그 정신으로 일한다면 못해낼 일이 무엇이겠는가! 경험도 전문기계설비도 도면도 없었지만 그들은 뜨락또르를 한달동안에 만들어내자는 목표를 내세우고 일에 달라붙었다.뜨락또르를 만들수 있는 모든 조건이 조성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들은 보수주의와 신비주의를 짓부시기 위하여 뜨락또르시제품생산반을 조직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현장에서 공개당세포총회를 가지였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뜨락또르를 한해에 3 000대씩 수입하는것으로 보아도 3만대를 수입하자면 10년은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처음에 수입한 뜨락또르가 못쓰게 된다는것을 고려하면 10년이 걸려도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필요한 뜨락또르를 보장하기 곤난하다고 하시던
그들은 먹는것도 잠자는것도 잊어버리고 뜨락또르생산에 온갖 힘과 정열을 쏟아부었다. 뜨락또르생산에서 제일 곤난한것은 한장의 설계도면도 가지고있지 못한것이였다. 그들은 뜨락또르를 분해해놓고 부속품의 도면을 하나하나 그렸고 그것을 보면서 부속품을 깎기 시작하였다.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작업이여서 어떤 때는 한개의 부속을 깎는데 몇번씩 실패하군 하였다. 그때 그들에게 있은 기계란 몇대의 선반과 볼반이 전부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무슨 기계가 더 있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반이나 볼반에 물릴수 없는것이라면 줄칼로 쓸자!》
항일혁명투사들은 돗바늘로 재봉바늘을 만들어
그들이 그처럼 정력을 다하여 하나하나 만들어낸 부속품들을 정밀하게 연마해야 할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당시 공장에는 연마반이 없었다.기술자들이 이것만은 기계가 있어야 하겠는데 하며 걱정을 앞세우고있을 때 로동자들은 손바닥으로 문질러서라도 연마를 해내자고 떨쳐일어났다. 협동농장들에 달려나가 벼짚을 실어온 그들은 현장에 가마니를 펴고 앉아 그 벼짚으로 뜨락또르부속품들을 연마하기 시작하였다. 거치른 부속품의 표면들을 벼짚으로 거울처럼 반짝거리게, 정밀하게 연마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였겠는가. 밤새우며 부속품을 연마하고 또 연마하는 로동자들에게 밥을 싸가지고 왔던 그들의 안해와 부모, 자식들이 그런 일이야 왜 우리가 도와주지 못하겠는가고 하면서 현장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말그대로 작업장은 불도가니마냥 들끓었다. 그때 한 로당원은 나어린 견습공과 마주앉아 연마작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힘들지?…지금은 이렇게 우리가 힘들게 뜨락또르를 만들지만 앞으로 멀지 않아 이 모든 일을 기계가 하게 될걸세.》 《이런것을 연마하는 기계도 나올가요?》 《나오구말구.나도 아직 그런 기계를 보지는 못했네만 이제 두고보라구. 지금은 어렵지만 남들을 따라잡고 앞서게 될 그날이 꼭 오네.》 이렇듯 그들은 부강한 우리 조국의 래일을 확고히 내다보면서 그 어떤 난관과 애로도 맞받아나아가며 승리의 신심에 넘쳐 억세게 전진하였다. 사실 그때 보수주의와 소극성, 기술신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야 어떻게 뜨락또르를 만들겠는가, 그렇게 해서야 수지가 맞겠는가고 하였다. 그러나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우리의 로동계급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지금은 비록 이렇게 힘들게 만들지만 이제 곧 뜨락또르가 폭포처럼 쏟아져나오게 될것이다!》라고 하면서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크고작은 수많은 부속품이 있어야 하는 뜨락또르를 자기 규격에도 맞지 않는 소재를 써가면서 생산한다는것은 실로 헐치 않은 일이였지만 그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뜨락또르에서 전조등체라고 하면 극히 간단한것이다.하지만 그때는 이 전조등체 하나를 완성하는데도 숱한 품을 들여야 하였다. 그들은 전조등체를 만들기 위해 굳게 다진 땅에 오목한 홈을 판 다음 거기에 달군 철판을 놓고 망치로 때리였다.그런데 바가지형으로 오목하게 뽑아져야 할 철판은 구멍이 뚫리거나 터지군 하였다. 실패에 실패가 뒤따랐으나 그들은 이악하게 달라붙어 37번만에야 마침내 전조등체를 만들어낼수 있었다. 뒤바퀴의 차륜도 프레스가 아니라 강판을 주어모아 용접하고 찌그러진 부분을 달구면서 두드려 그 형태를 만들었으니 복잡한 기관본체와 변속함본체 같은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들은 열번, 스무번 실패하면 다시 스무번, 서른번 줄칼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고 망치를 더 높이 추켜들었다. 마침내 간난신고를 다하여 뜨락또르의 조립을 마친 날 그들은 가슴을 조이며 첫 발동을 걸어보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좀처럼 발동이 걸리지 않았다. 고심어린 사색의 낮과 밤을 이어가며 유압계통의 결함을 퇴치하고 그들은 다시 뜨락또르의 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발동이 걸렸다. 그런데 뜨락또르는 앞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뒤걸음을 치는것이 아닌가.발동도 더는 걸리지 않았다. 뜨락또르를 몽땅 뜯어놓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정확한 설계도면이 없는탓으로 어느 부속이 제대로 안되였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첫 뜨락또르를 내놓겠다고 당앞에 맹세한 시간은 다가오고있었다.기양로동계급의 가슴은 타는듯 하였다.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당이 제시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반드시 성과적으로 수행하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하시던
열백번을 다시 깎고 백천번을 뜯었다 맞추는 한이 있어도 우리 힘으로 끝까지 뜨락또르를 완성해내리라는 맹세로 가슴 불태우며 그들은 이를 악물고 또다시 일떠섰다.
우리의 첫 《무쇠황소》-《천리마》호뜨락또르가
주체47(1958)년 11월 14일 기양의 로동계급이 만든 첫 뜨락또르를 친히 보아주신
30여일만에 태여난 우리의 첫 《천리마》호뜨락또르, 실로 그 생산과정은 우리의 기술자들과 로동계급이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어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와 보수주의를 짓부셔버린 투쟁의 나날이였고 자기 힘을 믿고 달라붙으면 이 세상에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는 철의 진리를 체득한 신념의 나날이였다. 진정 백두밀림의 병기창에서 높이 울린 자력갱생의 마치소리가 있었기에 천리마대진군의 벅찬 시대의 창조물인 첫 뜨락또르가 태여날수 있었고 바로 그것을 영광스러운 시대가 비낀 《천리마》라는 이름으로 부를수 있은것 아니랴. 당시 그날의 공장정문이 뜨락또르가 나올만큼 높지 못하여 배기통과 운전대를 떼가지고 나와 조립했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되새겨진다. 오늘은 그 이야기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못하지만 금성뜨락또르공장에 빛나게 새겨진 고귀한 자력갱생의 력사는 결코 추억으로만 남아있지 않다.
60여년전 그때 줄칼로 쓸고 손바닥으로 연마를 해서라도 우리 힘으로 기어이 뜨락또르를 만들어
하지만 첫 뜨락또르생산현장에 울려퍼지던 그날의 망치소리, 줄칼소리는 세월을 이어 새 세대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울려퍼지고있다. 오직 한마음 당의 뜻 받들어 첫 뜨락또르를 생산하던 그날의 정신은 오늘도 천리마라는 부름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살아높뛰고있다. 《천리마》호뜨락또르가 새겨주는 귀중한 진리, 그것은 과연 무엇이던가.
본사기자 조향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