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4월 14일 로동신문

 

우리 수령님과 천리마동상

천리마동상건립 60돐에 즈음하여

 

우리 나라에는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천리마동상이 있다.

언제 어느때에 바라보아도 천만의 심장마다에 영웅적조선인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폭풍우와 불구름도 단숨에 뚫고나갈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찬란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심으로 누구나 가슴부풀게 하는 천리마동상,

이는 정녕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주체조선의 영웅적기상이고 위대한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의 영원한 승리와 영광의 상징이다.

올해는 천리마동상이 건립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혁명의 새 승리를 향한 과감한 진군길에서 천리마동상건립 60돐을 맞이하는 우리 인민의 가슴가슴은 혁명의 전세대들처럼 오늘의 보람찬 투쟁에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해나갈 드높은 혁명열, 애국열로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시기 우리 인민이 벌려온 영웅적투쟁은 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령도와 결부되여있습니다.》

20세기초 망국의 비운이 드리웠던 조선을 돌아보고 간 유럽의 한 작가는 지게를 진 조선소년의 구슬픈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만들어 내놓았다.세월이 흘러 영웅조선의 기상이 만방에 과시되던 때에 다시 우리 나라에 온 그는 천리마동상을 보고는 이것이 진짜 조선사람의 표상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그 천리마동상을 우리 조국의 모습으로 훌륭히 완성시켜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천리마동상은 주체50(1961)년에 건립되였다.

예로부터 만년장수 또는 만세의 뜻으로 불리워온 만수대는 우리 민족의 오랜 력사가 깃들어있고 자연지세와 주변경치가 뛰여난것으로 하여 천하명당으로 일러왔다.

바로 그래서 설계가들과 건축가들은 전후복구건설계획을 작성하면서 유서깊고 수려한 이 언덕에 위대한 수령님의 업적을 전하는 기념비나 박물관을 세우려고 하였다.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주신 해방의 은인, 미제의 무력침공으로부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굳건히 수호하신 강철의 령장의 영원불멸할 업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려는것은 그들만이 아닌 온 나라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소망이기도 하였다.

우리 인민의 절절한 이 열망은 주체47(1958)년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이 지배하던 이 땅우에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후에 더욱 간절해졌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장 급한것은 쇠물을 뽑아야 할 제철소와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 인민들의 살림집이라고 하시면서 어느 하나도 승인하지 않으시였다.일군들이 정부청사를 빨리 지어야 한다고 간청을 드려 겨우 내각청사(지금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청사)를 건설하였지만 그것도 설계가들이 만수대중심부로 정했던 위치를 지금처럼 뒤쪽 아래켠으로 쭉 밀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 언덕을 몹시도 아끼신다는것을 느끼면서도 미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던 일군들과 설계가들의 의혹은 주체48(1959)년 4월 1일에 드디여 풀리게 되였다.그날 모란봉기슭의 청년공원건설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수대언덕에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탑같은것을 하나 세우는것이 좋겠다고, 동상은 말같은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지난 시기 기마상이라고 하면 뛰여난 개인의 영웅성이나 위훈을 찬양하여 세우는 조각으로 인정되여왔다.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을 천리마시대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을 반영한 작품으로 만들것을 결심하신것이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인민의 모습은 과연 어떤것이였기에 인민들이 수령님의 기념비를 건설하자고 간절히 청드리던 그 자리에 인민의 위훈을 길이 전할 시대의 기념탑을 세우자고 하시는것인가.

전화의 그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 커다란 힘을 드린 락원의 10명 당원들과 장산리의 녀성들, 1만t의 강재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절절히 호소하실 때 두주먹을 부르쥐고 열렬히 호응해나선 강선의 로동계급…

바로 이렇듯 충성스럽고 영웅적인 우리 인민을 하늘높이 떠올리고싶으신것이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지금도 네 발굽을 안고 구름우로 날아오르는것만 같은 천리마의 형상과 그우에 당중앙위원회 붉은 편지를 높이 추켜든 남성로동자와 벼단을 안은 녀성농민의 힘찬 모습을 바라볼 때면 주체48(1959)년 11월 17일에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가 귀전에 울려오는듯싶다.

잊지 못할 그날 조각가들이 집체적협의끝에 완성한 형성안들을 다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필의 말을 형상한 어느 한 안을 보시고 주되는 말이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한필로 해서 각계층 인민들을 대표하여 남자와 녀자가 탄것으로 하면 어떻겠는가고, 천리마는 상징적인 동물로서 비상히 빠른것을 상징하는것이니 날개를 다는것이 좋겠다고, 천리마에 날개를 달고 한필로 하여 남녀가 타되 남자는 붉은 편지를 들고 녀자는 무슨 기구를 들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계속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1949년에 레닌그라드에 가서 뾰뜨르대제의 기마상을 보았소.그는 1703년에 그곳 진펄에다 도시를 세우라고 명령하고 건설을 직접 지휘한 황제요.사람들은 청동말을 탄 거인의 조각상을 보면서 아하 이 사람이 옛날의 그 유명한 짜리로구나 하고 생각하지.

우리가 오늘 이 천리마에 한사람을 앉혀놓으면 먼 후대들은 말우에 앉은 사람이 당대를 대표하는 어떤 개별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할거요.그들은 아마 그때 김일성이란 사람이 수상을 했으니 이건 그 사람의 동상이 아닌가고 생각할수도 있단 말이요.그러니 동무들, 생각해보시오.지금이야 인민의 시대가 아닌가.이건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세우는 기마상이요.인민의 모습을 형상하시오.이 도시를 일떠세운 사람들, 천리마의 주인들이 어떤 개별영웅이 아니라 인민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리게 하시오.

전설속의 천리마를 내 조국의 현실로 불러오시고도 오히려 자신보다 인민을 내세워주고싶으시여 그토록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

진정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이런 위대한 인민의 수령이 있어본적 있었던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아안은 조각가들의 가슴은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인민의 모습, 수령님께서 그려보시는 인민의 형상을 기어이 창조하자!

이런 불같은 일념을 안고 조각가들은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나갔다.그들은 말우에 앉힐 로동자의 원형을 찾아 전국각지를 돌며 수많은 혁신자들을 만나보았고 동물원의 말호동에 붙어살다싶이 하면서 말의 생태적특성과 달리는 모양새를 관찰하였다.모든 날새들을 연구하여 가장 빠른 날개, 세기를 주름잡으며 비약하는 환상적인 속도감을 내는 천리마의 날개를 형상해냈으며 억센 발굽밑에는 박차고 날아오를 구름을 뭉게뭉게 형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천리마동상형성안에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그후 천리마동상형성안이 완성된데 대하여 매우 만족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라는것은 속도를 상징하는것만큼 천리마동상을 세우는데서도 그 본때를 보여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을 받아안고 당시 천리마동상건립에 참가하였던 한 조각가는 후날 이렇게 회상하였다.

《…보통경험으로는 4~5년이상 걸려야 할 과제였다.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단 40일동안에 해내자고 결의하였다.천리마동상을 하루빨리 보고싶어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그 심중을 생각할 때 그리고 수많은 인민들의 간절한 기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잠시도 일손을 쉴수 없었다.

우선 우리 집단이 천리마시대의 조각가답게 천리마를 타자!

높이가 무려 14m에 달하는 천리마동상을 창작하는 과정에 우리 100여명의 조각가들은 때로는 목공도 되고 연공도 되고 또 용접공도 되여 현장에서 침식을 해가며 긴장한 전투를 벌리였다.일이 힘들 때면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독보하면서 투사들이 지녔던 불굴의 혁명정신에서 새 힘을 얻어 다시 일떠섰고 이 투쟁과정에 우리 조각창작단은 영예롭게도 문학예술부문에서 제일 처음으로 천리마창작단칭호를 수여받게 되였다.

…천리마동상의 시공을 맡은 건설자들도 대중적영웅주의와 창조적지혜를 발휘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현대적인 기계가 없이는 세울수 없다고 하던 22t짜리 천리마동상의 철심을 자기 위치에 정확히 세우고 천리마의 속도로 시공작업을 다그쳐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9돐을 맞는 주체50(1961)년 4월 15일에는 력사적인 제막식을 가지게 되였다.…》

4월 15일, 그날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이였다.

온 나라 인민이 드리는 축원의 인사를 받으셔야 할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제막식에 나오시여 붉은 테프를 끊으시였다.이어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천리마동상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을 조각한 동무들은 다 영웅들이라고 하시면서 조각가들과 함께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화폭을 남기시였다.

온 세계앞에 우리 인민의 영웅적기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줄수 있는 기념비가 태여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탄생일의 휴식마저 다 바치시며 평범한 조각가들을 영광의 절정에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

정녕 천리마동상은 당의 령도따라 질풍같이 내달리는 내 조국의 자랑찬 모습을 보여주는 시대의 기념비인 동시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인민관의 높이를 보여주는 불멸의 탑이다.

그때로부터 어언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우리 조국의 유구한 반만년력사에 비해볼 때 60년이라는 기간은 번개의 불빛과도 같이 너무도 짧은 순간이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천리마의 기수들로 억세게 자라난 우리 인민은 력사의 온갖 도전속에서도 번개같이 내달려 남들이 600년, 6 000년을 두고도 이루지 못할 기적과 위훈을 년대와 년대마다에 수놓아왔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천만리,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천만리 승리의 한길만을 곧바로 달려온것처럼 오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겹쳐드는 시련과 난관을 천리마의 발굽으로 짓뭉개버리며 혁명의 새로운 승리봉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나가려는것이 우리 인민의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이다.

글 본사기자 정영철
사진 주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