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4월 27일 로동신문
우리 당의 품에서 영생하는 공화국영웅 라명희동지가 세운 값높은 위훈과
성스러운 조선혁명의 백승의 력사에는
《전화의 그날로부터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나날에 변함없이 당과
지난해 12월 신미리애국렬사릉에는 한 전쟁로병의 유해가 안치되였다. 《라명희동지 철도병지휘부 진료소 간호원 공화국영웅 1936년 4월 17일생 2020년 10월 29일 서거》
묘비에 새겨진 글발은 길지 않다.하지만 거기에는
그것은 혁명의
반세기후에 받은 영웅메달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는 사람들도 많고 삭막해지는 사실들도 적지 않다.그러나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계기로 전쟁로병들의 위훈을 발굴정리하는 사업이 광범히 벌어진 주체102(2013)년의 12월 어느날이였다. 수도 평양에서는 한 전쟁로병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이 진행되였다.그가 바로 여든살을 가까이한 라명희동지였다.
모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전화의 나날에 세운 전투영웅의 공적이 새로 발굴된것으로만 알고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전후시기 평범한 녀병사가 발휘한
전 철도병지휘부 진료소 간호원이였던 라명희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와 함께 금별메달 및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한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전달되였다. 라명희동지의 눈가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리였다.세월의 흐름속에 졸아든 그의 두어깨는 격정으로 세차게 오르내리였다. 백발의 전쟁로병이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는 모습은 모임참가자모두의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녀성이였지만 그가 세운 공로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누구나 쉽게 발휘할수 있는 위훈이 아니였다. 그것은 온 나라가 당의 부름따라 천리마를 타고 힘차게 내달리고있던 1958년에 있은 일이였다. 당중앙위원회 8월전원회의가 있은지도 두해가 지났지만 그때까지도 우리 혁명대오에 교묘하게 숨어있던 나쁜 놈들은 무력부문의 요직에 틀고앉아 딴꿍꿍이를 하고있었다. 주사를 특별히 잘 놓아 《주사명수》로 소문났던 라명희동지는 그즈음 한 간부의 집에 주사를 놔주러 다니는 과정에 그자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목격하게 되였다. 사람들앞에 나설 때마다 연탁을 두드리며 초당적인 언사로 기염을 토하던 《웅변가》들이 뒤에 돌아앉아서는 당의 사상과 로선을 헐뜯고 부패타락한 생활을 일삼다니?… 나어린 간호원처녀는 자주 보았다. 일신상의 문제해결을 위해 그 집 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사람들, 중요직책에 있는 집주인을 신주모시듯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비굴한 아첨군들, 고급향수내가 풍기는 두터운 실내복을 입고 쏘파에 파묻혀 커피를 마시고 약담배를 빨며 외국명곡이나 감상하는 이색적인 환경, 현란한 무리등아래에서 때없이 벌어지는 술판, 먹자판… 누구나 허리띠를 조이며 복구건설에 땀을 바치는 주위세계와는 달리 키높은 담장안의 덩실한 큰집은 딴세상이였다.보다 섬찍한것은 끼리끼리 모여 패당을 형성한 이 야심가, 음모군들이 당정책을 시비하는 별의별 잡소리를 다 줴치다못해 나중에는 자기들이 비행기, 렬차, 함선까지 다 움직인다고 하면서 추호도 용납 못할 특대형범죄행위까지 꾀하는것이였다. 인민군녀병사는 우리 혁명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시시각각 느끼였다.그것을 어떻게 하나 저지시켜야 한다는 비상한 사명감이 온몸에 불타올랐다.용약 결심을 내린 그는 자기가 보고 들은것을 빠짐없이 쪽지에 적어 해당 부문 일군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상급기관에 있는 어떤자가 라명희동지를 부르더니 《꼭대기에 피도 마르지 않은 네가 뭘 안다고 쪽지편지를 들고 다니는가.당장 총살하겠다.》라고 하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전화의 나날 수많은 사선의 고비를 겪은 녀병사였지만 당혹하지 않을수 없었다.전쟁도 아닌 평화시기에 그것도 한대오에 있는 상급의 총구앞에 서게 된것이였다.그러나 다음순간 이런 놈들이 이제 무슨짓인들 못하랴 하는 생각에 정신을 번쩍 차리였다. 라명희동지의 입에서 서리발같은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예요? 나는 군인의 본분을 다했을뿐입니다.》 애젊은 녀성군인이 총알같이 내쏘는 말에 리성을 잃은 그자는 앞에 놓여있던 묵직한 은재털이를 그에게 집어던지였다. 라명희동지의 이마에서는 피가 랑자하게 흘러나왔다.하지만 그에게는 상처의 아픔보다도 놈들의 죄행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폭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라명희동지의 이마에는 그때의 상처자리가 한생토록 남아있었다. 녀병사는 피흐르는 이마를 싸쥐고 밖으로 뛰쳐나왔다.뒤에서는 악에 받쳐 《서라!》하고 소리치는 그자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였고 우악스러운 손이 당장 몸에 닿을것만 같았다. 거리의 어느 조용한 골목에 이른 그는 진정하려고 애썼다.다리가 떨리고 심장은 여전히 세차게 박동쳤다.
(저놈들은 나를 죽이려고 할것이다.그렇다고 가만히 있을수는 없다.나는 전쟁을 이긴 군인이고 당원이다.우리가
녀병사는 생사결단의 길을 택하였다.순간도 주저할수 없었다.마음은 오직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해갈 철석의 의지를 담아 라명희동지는 다급히 한자한자 편지를 써나갔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평범한 녀병사가 어마어마한 요직에 틀고앉은 거물급의 배신자들을 대상하여 이렇게 맞서 싸운다는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그것은 사실상
그때로부터 얼마후 죽음을 각오하고 쓴 한 녀성군인의 편지를 받아보신
우리 혁명을 옹위하기 위한 1950년대의 준엄하고도 성스러운 력사속에는 이렇듯 전화의 불길속에서 단련된 한 인민군녀병사의 남모르는 공적도 깃들어있다.하지만 자기가 한 일을 너무도 응당한것으로 여기며 사람들앞에 내색하지 않은 라명희동지의 결곡한 성품으로 하여 그의 위훈은 세월의 흐름속에 조용히 묻히게 되였다.
우리의 전쟁로병들을 혁명선배로, 나라의 귀중한 보배로 여기시며 그들의 위훈을 빠짐없이 찾아 빛내여주시는분은
전승 60돐이 되는 해의 12월초 어느날
빈터우에서 사회주의를 일떠세우던 그때 우리 혁명대오에 숨어있던 나쁜 놈들의 책동은 얼마나 악랄하였고 그 나날
우리 혁명의 준엄했던 시기 나어린 인민군녀병사가 발휘한
정녕 그이께서 반세기이상이나 알려지지 않았던 라명희동지의 위훈을 공화국영웅의 금별메달과 더불어 내세워주시던 그 순간은 이름없던 한 전쟁로병의 70평생에 영광의 빛발이 뿌려지고 그의 위훈이 청사에 길이 아로새겨지는 력사의 시각이였다. 라명희동지의 위훈은 말해주고있다.
라명희동지는 어떤 녀성인가.그가 발휘한 영웅적위훈의 밑바탕에는 과연 무엇이 놓여있는가. 라명희동지가 한생토록 잊지 못해한 영광의 날에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주체47(1958)년 2월 어느날에 있은 사실이였다.
라명희동지의 가슴은 크나큰 감격과 기쁨으로 하여 세차게 높뛰였다.태양과도 같으신
녀병사는 선뜻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자기의 길지 않은 한생을 통하여 매일매일 체험하며 운명처럼 간직해온 그 절절한 마음을 한마디로 말씀올리기에는 너무도 가슴벅차고 하많은 사연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자기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몰라 한동안 바재이다가
그러자
《우리 당은 동무와 같은 훌륭한 인민군전사들이 있기때문에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음모책동도 제때에 적발해낼수 있으며 군인들을 믿고 종파들과의 투쟁도 힘있게 전개해나가고있소.》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 영광이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어데 있으랴.
라명희동지의 가슴속에서는
나라없던 그 세월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속절없이 시들어야 했던 처녀,
민족수난의 시기 회령군(당시)에서도 막바지의 심심산골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남이 먹다 버리는 한덩이 밥에 기대를 걸고 아이보개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라명희동지는 원쑤들이 조국땅에 침략의 불을 지르자 두살이나 나이를 불구어 용약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불타는 락동강도 건느고 폭탄파편이 귀전을 스치는 아슬아슬한 위험도 겪었다.
그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항일혁명투사 최현동지가 이끄는 적후군단에서 겪은 가지가지의 일들은 혁명의
강원도의 한 산악지대에서 있은 전투때였다.라명희동지는 총탄이 비발치는 싸움판에 뛰여들어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쓰러진 한 대대장을 무사히 구출하였다.어린 처녀간호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휘관을 구원한 소식은 삽시에 온 부대에 퍼졌다.
최현동지는 군의와 함께 지휘부에 찾아온 애티나는 간호원처녀가 온 부대가 자랑하는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고 못내 기특해하며 《괜찮아.쪼꼬마해도
그때 전투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은 최현동지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옷매무시를 바로하더니 품안에서 붉은 천에 정히 싼 수첩같은것을 꺼내였다.그가 붉은 천을 조심스레 벗기니 뜻밖에도
순간 라명희동지는 저도 모르게 격정이 북받치고 새힘이 솟아올랐다.그의 작은 가슴속에는 크나큰것이 자리잡았다.
라명희동지는 자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였다.주사바늘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열알도 더되는 호박이 문드러질 정도로 주사침을 놓는 련습을 했고 짬만 있으면 산판을 오르내리면서 약초를 채집하였다.부상병들의 입맛을 돋구어주기 위해 온밤 내가에서 반두질을 했고 구급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피와 살도 기꺼이 바치였다. 그러한 라명희동지가 최현동지로부터 엄한 질책을 받은적이 있었다. 어느날 그가 군의와 함께 심하게 앓고있는 최현동지의 방에 들어서는데 투사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리였다.
《나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병석에서 일어난 최현동지가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깔아뭉개려던 미제의 고용간첩 리승엽의 교활한 책동을 가차없이 쳐갈겨버리며 하는 말이였다.그는 즉시 부대를 이동시키였다. 그때 나어린 간호원처녀는 투사의 건강이 악화되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눈물을 지으면서 다문 얼마간만이라도 안정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사정하였다.
순간 벼락같이 울린 투사의 목소리, 난 죽지 않아,
죽어도 변치 않는 혁명신념, 굴하지 않는 의지와 견인불발의 투쟁정신은 곧 자기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나어린 처녀인데 아주 담차고 대바른 동무였습니다.》
영원한 삶의 메아리
라명희동지에 대하여 알고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일상생활에서는 특별히 나타나는것이 없고 눈에도 크게 띄우지 않는 평범한 녀성이였다고 말한다.그만큼 로병이 걸어온 행로는 범상하리만큼 소박하였다.하지만 그의 가슴속에서는 항상
라명희동지는 당을 믿고 영웅적위훈을 세운 이런 동무들을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하신
도당에서는 전선에서 싸운 간호원제대군인이라고 하며 그를 도의 큰 병원에서 일하도록 하였다.병원에 온지는 얼마 안되였지만 약재를 구하기 위해 벼랑길도 톺고 주사를 맞는 사람들이 아픔을 느낄세라 정성을 기울이는 이 마음씨고운 준의처녀가 몇달전에 세운 커다란 위훈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라명희동지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항상 그날에 살며
김책제철소(당시) 제1, 2호용광로와 제2호해탄로조업식을 앞둔 때였다.
대보수를 끝낸 제1호용광로의 로체공들이 의아해하며 그에게 어떻게 왔는가고 물었다.라명희동지는 자기도 무엇인가 돕고싶어 찾아왔다고 하면서 그들의 일손도 돕고 건강도 돌봐주었다.하지만 실은
드디여 그날이 왔다.
그 순간을 위해 그토록 심신을 깡그리 기울인 라명희동지가
하지만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옛 화선병사의 충신의 자세는 소환된 남편을 따라 평양에 올라왔을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영예군인이였다.그가 전쟁시기 당한 심한 부상때문에 한생 고통을 겪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자신의 육체적고통보다도 환자들이 편치않아하는것을 더 가슴아파하며 때로는 살과 피도 서슴없이 바치면서 수십년세월 의료일군으로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였다.그 나날에는 불편한 몸이였지만
그는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삼지연시건설장을 비롯한 수많은 단위들에 아낌없는 지성을 바치였고 후대들에게 전승세대의 투쟁정신과 넋을 심어주면서 전쟁로병의 본분을 다하였다.당의 사랑과 믿음이 날을 따라 커갈수록 자신을 더욱 가다듬으며 전선에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몫까지 합쳐 충성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몇해전 라명희동지는 전쟁로병들의 삶을 끝없이 빛내여주시고 영광의 절정에 세워주시는
전쟁시기와 같은 군복차림에 공화국영웅메달을 가슴에 달고 뜻깊은 대회에 참가한 라명희동지는 대회장에서
촬영장으로 나오신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는 순간부터
그날 라명희동지는
그런데 며칠후
그는 책갈피에 이런 글을 남기였다. 《초불처럼 살자! 마지막심지까지 다 태워 주위를 밝혀주는 초불처럼 내 생이 진할 때까지 오직 우리 당만을 일편단심 받들며 전승세대의 본분을 다하자.》 그리고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라명희동지는 여생도 그렇게 살았다.그토록 사랑하던 노래 《당이여 나의 어머니시여》의 구절구절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지난해 10월 라명희동지가 우리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우리 당, 우리 혁명력사에서 라명희동지와 같은 수많은
인적없는 산중초소에 있어도 그곳이 당중앙뜨락과 하나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그리고 설계도면에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면서도 당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지심깊은 막장에서 캐내는 한줌의 석탄에도 당에 드리는 깨끗한 마음을 담을줄 아는 그런 수천수만의 열혈의 인간들과 더불어
이 땅의 천만인민모두를 사랑과 믿음의 손길로 안아 키워주고 삶을 빛내여주는
본사기자 김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