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4월 27일 로동신문

 

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새 기록, 새 기준을 창조하여 철강재증산으로
우리 당을 옹위한 김철의 로동계급

 

1950년대 전후복구건설시기와 천리마시대 영웅들처럼 살며 투쟁하려는 혁명적열의가 온 나라에 차넘치고있다.

우리 당과 조국력사에 기적적인 성과로써 뚜렷한 한페지를 남긴 그때의 근로자들속에는 19만t도 하기 어렵다던 《외아들》용광로에서 27만t의 선철을 생산하여 조선로동계급의 영웅적기상을 힘있게 과시한 김철의 로동계급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전설속에서만 이야기되던 천리마가 우리 나라 현실에 옮겨져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놀라운 기적이 이룩되던 시기를 돌이켜볼 때마다 우리 인민은 김철로동계급의 투쟁도 감회깊이 추억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제1차 5개년계획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주시면서 그 첫해 과업인 1957년 인민경제계획수행에로 전체 인민을 불러주신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

그때 우리 나라에 숨쉬는 용광로라고는 김책제철소(당시)의 1호용광로 하나뿐이였다.

강선의 분괴압연기가 강편을 뽑는 우리 나라의 《외아들》이였다면 김철의 용광로는 선철을 생산하는 나라의 《외아들》이였다.

나라가 처한 어려운 사정을 풀자면 김책제철소에서 적어도 선철 23만t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야 하겠는데 당시 용광로의 공칭능력은 하루 500t이였다.공칭능력대로 하면 1년 365일을 다 돌린다 해도 18만~19만t밖에 안되였다.

당시 보수주의자들과 소극분자들은 이것을 고집하면서 김책제철소에서 선철 23만t은 절대로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때 김철의 로동계급은 23만t이 아니라 25만t을 해내겠다고 결의해나섰다.

위대한 수령님의 요구, 혁명의 요구가 바로 우리의 공칭능력이다.

이것이 김철로동계급의 신념이고 배짱이였다.

이들의 신념과 배짱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키워지고 다져진것이였다.

해방전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던 어제날의 로동자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신 후에야 공장의 주인, 나라의 주인이 되여 값높은 삶을 꽃피우게 되였다.

가렬처절한 전화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만 계시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고 잘살수 있다는 신념을 강철기둥처럼 드놀지 않게 가슴속에 새긴 김철의 로동계급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전쟁을 겪고 페허로 된 제철소구내에 1년 남짓한 사이에 용광로와 해탄로를 일떠세워 첫 쇠물을 뽑았다.

첫 쇠물이 쏟아져내리던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축하문을 격정속에 받아안았던 김철의 로동계급,

하기에 이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25만t을 기어이 생산해내고야말 심장의 맹세를 다지며 증산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화선식정치사업이 현장마다에서 힘있게 진행되였고 장성된 선철생산계획을 어떻게 하면 수행하겠는가 하는 토의사업이 로동자들속에서 활기있게 벌어졌다.

용광로부문협의회에서 로체작업반장은 문제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우리에게는 당의 호소대로 선철생산을 늘일수 있는 가능성과 예비가 얼마든지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맨 처음 강연을 들을 때에는 〈이것은 보통과업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였고 계속되는 해설과 개별담화에 림한 후에는 〈이것은 해야 하는 과업이다.〉라는 당원의 자각을 가지였으며 제철소의 구체적실정과 예비를 알아보고 자신의 일본새를 검토해본 다음에는 얼마든지 할수 있는 과제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작업반장은 그 확신을 자신들의 기술기능수준제고로 휴풍시간단축의 중요고리인 우구교체시간을 종전보다 절반가까이 줄일수 있다는것, 그전에는 눈도 돌리지 않던 황선을 재생리용하는것 등에서 가지게 되였다고 하면서 여기에다 원동직장에서 송풍기의 회전속도를 더 높여 송풍량을 증가시켜준다면 지금 론의되고있는 국가계획은 말할것도 없고 2만t정도의 선철을 더 증산할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흥분된 작업반원들이 온 제철소에 선철증산을 호소하였다.

그 호소에 호응하여 아름차지만 무조건 해내야 한다고 결심품고 떨쳐나선 제철소로동계급의 심장은 쇠물처럼 뜨거웠으며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이 작업반에서도, 저 직장에서도 혁신적인 론의들이 벌어졌으며 좋은 의견들이 쏟아져나왔다.

원동직장의 한 운전공은 용광로가 요구하는대로 송풍기의 능력을 높일수 있는 안을 내놓아 증산의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다.

대중의 지혜와 창발성이 얼마나 광범히 발양되였는가 하는것은 로동자들속에서 수백건의 가치있는 안이 나왔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로동자들의 비등된 열의는 온 제철소를 부글부글 끓어번지게 하였고 그것은 그대로 실적으로 이어지였다.

김철의 로동계급은 송풍기회전을 본래보다 더 높이면 마사진다고 하면서 모험을 하다가 설비를 못쓰게 만들면 누가 책임지겠는가고 하는 기술신비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방해책동에도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고 끝내 송풍기의 능력을 높여 철생산을 급격히 올리였다.

김철로동계급이 년초부터 이룩한 그때의 혁신적성과를 당시 《로동신문》은 이렇게 전하였다.

《김책제철소 로동자들은 지난 2월중 증산경쟁운동을 통하여 28일현재 국가계획을 109.3%, 증산목표를 101.1%로 초과완수함으로써 계획보다 1천 4백 85t의 선철을 더 생산하였다.

작년생산실적에 비하여 122.9%로 장성된 금년계획외에 2만t의 선철증산을 결의하고 이미 새해 첫달 증산목표를 102.4%로 넘쳐 실행한 이 제철소 로동자들은 2월에 들어와 1월중 생산계획수행과정에서 나타난 부족점들을 세밀히 연구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전달에 비하여 매일 평균 55.5t의 선철을 더 생산하였다.》

김철의 로동계급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내부예비를 적극 탐구동원하고 기술혁신운동을 벌리면서 계속 전진하였다.

아직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로동자들의 생활상어려움도 한두가지가 아니였다.하지만 김철의 로동계급은 오직 선철증산 그 하나의 지향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일터에서도, 가정에 들어가서도, 앉으나서나 선철증산 하나만을 생각하였다.

제 집 밥가마가 끓는것보다 용광로에서 쇠물이 끓는것을 더 흐뭇하게 여기던 고지식하고 강직한 김철로동계급이였다.

어느 교대, 어느 작업반, 어느 직장 할것없이 서로 경쟁하며 집단적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렸다.

더 높은 증산목표를 내세우고 힘찬 투쟁을 벌리는 용해공들의 일욕심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용광로직장에서는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협의회가 열리였다.출선구, 광재구, 송풍관들에서의 작업질서와 제도를 엄격히 준수하고 점검을 철저히 하면서 그달 증산과제외에 400t을 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협의회참가자들의 가슴은 흥분으로 높뛰였다.

그렇다면 년말까지 선철을 더 증산할수 있지 않는가고 하는 한 용해공의 말에 용광로작업반장이 《그건 문제 없겠소.이를테면 하루에 840t만 내면 될테니까.》라고 확신을 표명하자 여기저기서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울렸다.하루평균 840t수준을 견지하면서 이를 계속 높여 다음해 900t수준에 끌어올린다면 수십만t까지 선철을 생산할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의 얼굴에는 신심이 가득 넘쳤다.

용해공들은 자기들의 결심을 실천으로 증명하기라도 하듯 현장에 《무사고 증산기간》이라는 구호판을 걸고 회당 120t을 내면서 하루출선을 7회 진행하였다.

상반년기간에 하루평균 753t, 최고 961t의 성과를 낸 용해공들은 하반년에 들어서서 하루평균 851t, 최고 1 000여t이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올리였다.

하다면 이러한 기적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주체46(1957)년 5월 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제철소의 로동계급을 몸소 찾아주시였다.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형편을 터놓으시면서 당시까지만 해도 《외아들》이였던 1호용광로를 잘 관리하여 철생산을 더욱 늘일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걸상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용광로앞에서 30분이나 기다리시며 자기들의 출선작업을 보아주시고 저 《외아들》용광로의 수명을 연장하여 한해 더 돌릴수 없겠는가, 외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알지 않는가, 외아들이 앓기만 하면 부모들은 대가 끊어질가봐 어쩔바를 모른다, 그런 심정으로 한번 해보라고 간곡히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

그때에 남이 한걸음 걸으면 열걸음, 백걸음씩 뛰여야 한다시며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대담성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은 김철로동계급의 심장속에 소중히 간직되였다.

김철의 로동계급은 그 믿음을 높뛰는 가슴마다에 안고 1957년에 19만t도 하기 어렵다던 《외아들》용광로에서 27만t의 선철을 생산하였다.

이것은 강선의 강철전사들이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뽑아낸것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천리마운동이 일어나던 격동적인 첫시기에 세상사람들을 놀래운 자랑찬 기적의 하나였다.

그후 김철의 로동계급은 앞을 다투어 젖은 가마니를 쓰고 뜨거운 로속에 뛰여들어 무너진 로벽을 수리하면서 황철의 용광로가 복구될 때까지 나라의 《외아들》용광로를 영웅적으로 지켜냈으며 1958년말까지 건설하기로 되여있던 2호용광로의 복구건설도 한달반이나 앞당겨 끝내고 1호용광로의 대보수공사도 훨씬 앞당기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새 기록, 새 기준을 창조하여 철강재증산으로 우리 당을 보위한 천리마시대의 김철로동계급의 영웅적투쟁정신, 투쟁기풍은 경제건설의 1211고지를 지켜선 금속공업부문 로동계급을 새로운 승리를 향한 위훈창조에로 뜨겁게 고무추동하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