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4월 30일 로동신문
천리마시대의 인생관
장장 수백만년을 헤아리는 인류사의 갈피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싶어하는 진실, 어떤 생이 가장 아름다운것으로 되는가에 대한 각이한 립장과 주장이 엇갈려있다. 하다면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것인가.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 떳떳한 삶, 아름답고 행복한 생을 살았다고 자부할수 있는가. 사람은 사회적존재인것만큼 인생에 대한 견해도 응당 사회적관계속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다시말하여 사회란 너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유기적결합체이다. 사회의 한 부분인 너와 나, 비록 한 글자로 이루어진 대명사이고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평범하고 흔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거기에 담겨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너》를 어떻게 대하고 《나》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미학관과 가치관, 행복관이 달라지며 나아가서 어떤 삶이 아름다운것으로 되는가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 갈라지기때문이다. 우리는 천리마시대로 불리우는 지난 세기 50년대와 60년대를 류다른 추억과 긍지속에 되새겨보군 한다. 비단 모든것이 재더미로 변한 빈터우에서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며 비약적으로 늘어난 공업총생산액때문만이 아니다. 준엄하다는 말로밖에는 달리 표현할수 없는 시대, 시련과 고난속에서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어떻게 살았고 그들의 성실한 땀으로 일떠선 내 조국이 무엇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왔는가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 년대, 이 땅우에 가장 고결한 인생관과 륜리의 경지를 개척한 잊을수 없는 나날이기때문이다.
《서로 돕고 이끄는 집단주의는 우리 식 사회주의에만 고유한 자랑스러운 전통이고 국풍입니다.》 천리마시대 인간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 시대 인간들의 주되는 삶의 지향, 인생의 보람과 긍지는 어디에 있었는가. 길확실영웅은 오늘도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살아숨쉬는 천리마시대 인간개조의 선구자이다. 그는 해방전 녕변의 깊은 산골에서 가난한 화전민의 딸로 태여나 비단옷은커녕 고무신 한컬레 신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해방후 오빠를 따라 평양으로 이사온 그는 제손으로 비단실을 뽑아내여 우리 인민이 입을 비단천을 짜는데 이바지하려는 소박한 마음을 품고 평양제사공장(당시)에 들어와 조사공이 되였다.그 나날
평양제사공장에서는 길확실영웅이 있는 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운동에 궐기하였다.격식없이 열린 현장궐기모임에서 작업반장인 길확실영웅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그날 작업반원모두는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쟁취할것을 결의하고 그 표식으로 자그마한 붉은 댕기를 머리에 꽂았다. 길확실작업반장이 갓 20대에 들어선 나이에 인원이 수십명이나 되는 작업반을 맡아 천리마작업반으로 만들기까지에는 감동깊은 사실도, 눈물겨운 사연도 많았다. 작업반장으로서 자신만이 아니라 작업반원모두의 사업과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숭고한 자각을 안고 그는 집이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합숙으로 잠자리를 옮기고 작업반원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보살피고 이끌어주었다.밤새워 그들의 옷과 이부자리를 빨아주고 자기 생활비로 새옷을 지어주었으며 앓는 동무가 있으면 극진히 병간호도 해주었다.공장일이 마음에 붙지 않아 일터를 떠나간 동무들을 찾아 수십리 밤길도 주저없이 걸었다.이렇게 자기 작업반을 공장적인 첫 천리마작업반으로 만든 그는 정든 작업반, 정든 동무들을 뒤에 두고 스스로 뒤떨어진 작업반으로 갔다.
그의 소행에서 천리마작업반운동이 생산에서의 집단적혁신과 함께 인간을 사회주의적으로 교양개조하는 운동으로 심화되고있음을 깊이 헤아리신분은
주체49(1960)년 3월 3.8국제부녀절 50돐기념 평양시보고대회가 끝난 후 길확실작업반장을 몸소 부르신
그날
자나깨나 그리던
늘 보아온 작업장이였지만 더 정들어보였고 작업반원모두가 친혈육처럼 여겨졌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한 동무를 도와주기 위하여 10리나 되는 그의 집을 열다섯번이나 찾아간 일도 있고 때로는 앓는 동무의 침상곁에서 며칠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작업반원모두에게 사랑과 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이러한 나날속에서 작업반은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으로 자라났으며 지난날 뒤떨어졌던 작업반원들도 공장에서 맨 선참으로 년간계획을 완수하는 혁신자로 자랑떨치게 되였다. 그해 4월말 작업반은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지니였다. 그후 영웅은 또다시 뒤떨어진 작업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이 온 나라에 세차게 타번지던 1960년 8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천리마작업반운동에서 공훈을 세운 로력혁신자들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할데 대한 정령을 발표하였다.바로 그 영웅들의 제일 첫자리에 선 주인공이 23살의 애젊은 처녀 길확실작업반장이였다.
지난날 농촌의 평범한 처녀선동원이였던 리신자영웅도
1961년 1월 리현리당총회를 지도하시던
그가 바로 리현농업협동조합(당시) 제8작업반 선동원으로 일하고있던 리신자영웅이였다. 당시 이곳 조합원들의 생활은 다른 곳에 비하여 넉넉하지 못하였다.그는 이 원인이 자기네 고장의 땅이 척박한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딴데서는 1년내내 흰쌀밥을 먹으면서도 매 농호에서 수십가마니의 여유량곡을 국가에 수매한다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살수 있을가?)
그러한 때 청산리당총회에서 하신
어느날 조합원들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작업반원들이 한결같이 떨쳐나선것은 아니였다.작업반에는 자기 집 터밭을 가꾸면서 농사일에 나오지 않거나 김을 둬고랑 매고는 몇시간씩 낮잠을 자는 등 뒤떨어진 조합원들이 있었다.그들을 교양하고 도와주자고 하여도 곁을 잘 주지 않았다.
하지만 타고난 락후분자는 없으며 개조 못할 사람은 없다고 하신
농사일에 성실치 못한 한 작업반원을 위해 그는 여러날씩 그와 같이 김을 매면서 깨우쳐주었고 그보다 김을 더 매고도 작업평가때에는 그것을 그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었다.거름 일곱달구지를 싣고도 열달구지를 실었다고 거짓보고를 하는 한 조합원을 교양하기 위하여 《일한것을 속이는것도 당을 속이는거예요.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했다고 말할수 있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남들이 다 자는 밤에 그 조합원이 못다 실은 거름을 자기가 마저 실어날랐다. 그리고 하루일을 마친 저녁이면 땔나무가 떨어진 집은 나무를 해다주고 위생문화사업이 안되는 집은 마을청년들과 함께 장판과 도배도 해주었다. 그는 회의하러 리소재지에 갔다가도 그냥 돌아오지 않았다.상점에 들려 작업반세대들의 간장이며 된장을 사가지고왔다. 이와 같은 진정은 끝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뒤떨어진 사람들을 로동을 사랑하고 집단을 귀중히 여기는 모범조합원으로 만들고야말았다.…
리신자영웅의 토론을 주의깊게 들으신
이렇듯 자애로운 손길로 키워주고 내세워주는 어버이품속에서 평범한 처녀선동원은 온 나라가 다 아는 붉은 선동원으로,
천리마기수, 시대의 선구자들이 발휘한 공산주의적미풍과 소행은 온 나라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졌다.그들의 모범을 따라배워 누구나 개인의 리익보다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고 작업반과 직장, 일터와 동지를 위해 자기를 바쳤으며 거기에서 진정한 삶의 보람과 희열을 찾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있어도 《나》는 없는 인생관, 바로 이것이 천리마시대의 인생관이였다. 고상한 미덕과 아름다운 소행으로 강산을 울리고 시대를 진감시키던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렀다. 그러나 고생도 많고 피와 땀, 눈물도 있었지만 남을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아름다왔고 그것으로 세인을 경탄시키는 기적을 안아오고 사회주의강국의 터전을 다졌던 천리마시대의 숨결과 넋은 오늘도 우리의 심장마다에 그대로 살아높뛰고있다.
우리 인민은
그렇다. 너와 나도 모두 우리라는 부름으로 불리우며 우리의 행복, 우리의 미래, 우리의 운명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는것, 바로 여기에 개인주의적인생관이 리해할수도 설명할수도 없는 참된 삶의 가치와 행복이 있으며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구호아래 화목한 대가정이 되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더 좋은 래일을 향해 어깨겯고 나아가는데 우리 식 사회주의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다.
모두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위해! 본사기자 리남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