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4월 22일 로동신문

 

이역의 아들딸들이 대를 이어 받아안는 크나큰 사랑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전하는 이야기

 

백화만발하는 4월의 이 봄날 이역의 동포들이 어머니조국으로부터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또다시 받아안았다.어느덧 167번째, 동서고금에 그 류례가 없는 사랑의 력사가 64돌기의 년륜을 아로새기였다.

대를 이어 끊임없이 베풀어지는 그 사랑, 그 은정에 동포들 누구나 감격에 울고웃는다.절세위인들에 대한 북받치는 감사의 정을 안고.

이 지구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해외교포들을 가지고있다.하지만 재일동포들처럼 유치원으로부터 대학까지 정연한 교육체계를 보란듯이 갖추어놓고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고있는 해외교포들이 그 어디에 있는가.이역만리에로 끝없이 굽이치는 절세위인들의 한없이 숭고한 후대사랑이 이런 경이적인 현실을 펼쳐놓았다.

생각할수록 가슴뜨거워진다.추억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시작되던 60여년전의 그날에로 거슬러오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총련이 결성될 당시 민족교육의 실태는 매우 엄혹하였다.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이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 각지에 학교들을 세웠지만 그 토대는 너무나도 빈약하였다.당시 우리 동포들 대다수가 최하층의 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재정난이 가장 큰 문제였다.가까스로 건설을 시작한 학교들이 자금때문에 해를 넘기면서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설립후에도 여러해나 가교사신세를 면하지 못하고있었다.총련 조선대학교도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쓰고있는 형편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직원들의 생활비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많은 교원들이 아침은 건빵에 물 한고뿌, 점심은 학생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져오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웠다.저녁을 번지는것은 보통이였고 잠자리는 학교경비실이였다.비바람이 새여드는 판자집교사, 백묵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단에서 배움의 기쁨과 희망에 한껏 부푼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던 이역의 교육자들이였다.

많은 동포들이 술과 담배를 끊고 반찬값까지 절약하여 한푼두푼 모은 돈을 민족교육에 바치였지만 도저히 자금난을 해소할수 없었다.

예로부터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더 생각하고 제 집에 끼고 사는 자식보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자식에 대해 더 마음쓰는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거치른 이역땅에서 동포들이 겪는 수난, 그중에서도 민족교육이 처한 어려운 실태를 깊이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주체44(1955)년 9월 29일 조국해방 10돐경축 재일조선인축하단 성원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공화국정부는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힘껏 도와줄것이다.교육원조비와 장학금도 보내주고 교과서도 보내주려고 한다.

순간 축하단성원들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깊은 조국의 엄혹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였기때문이였다.전후복구건설로 한푼의 자금도 귀하던 때였다.파괴된 공장과 농촌들을 복구해야 했고 학생들에게 해빛밝은 교실을 안겨주어야 했으며 아이들의 발에서 아버지들의 지하족도 벗겨주어야 하였다.인민들의 생활은 의연히 어려웠고 아이들의 교육환경과 조건도 불비하였다.하지만 아무리 나라살림이 어렵다 해도 이역에서 고생하는 동포자녀들을 위해 꼭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뜻이였다.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장학금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두어서는 안된다.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

주체46(1957)년 1월 국가예산초안을 토의하는 내각전원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간곡한 말씀은 오늘도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이렇게 되여 세상에 없는 예산항목인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태여나게 되였다.

주체46(1957)년, 그해는 제1차 5개년계획수행이 시작되는 첫해였다.달성해야 할 방대한 목표에 비해볼 때 자금, 자재, 로력이 엄청나게 모자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강선을 찾으시여 강재 1만t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하신 그 사실이 바로 이 내각전원회의가 있기 불과 한달전에 있은 일이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거액의 돈을 뚝 떼서 보내주실 결심을 하시였다.

후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력사의 나날에 대해 이런 감회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재일동포자녀들에게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낼 때 우리 나라의 경제형편은 매우 어려웠다.그렇지만 수령님께서는 조국인민들이 허리띠를 좀더 졸라매고 공장을 한두개 더 짓지 못하더라도 재일동포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자금을 보내주자고 하시면서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수령님의 이 극진한 배려는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의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위대한 동포애의 정화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사랑담아, 정을 담아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것을 어찌 금전의 가치로 계산할수 있으랴.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였다.생명수였다.거치른 이역땅에서 민족의 혈통, 애국의 넋이 꿋꿋이 이어지게 하는 사랑의 젖줄기, 귀중한 자양분이였다.

은혜로운 소생의 빛발은 재일동포들의 애국열의를 폭발시키고 민족교육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기세충천한 동포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로 곳곳에 새 교사를 꾸리고 문화회관, 체육관들도 번듯하게 일떠세웠다.

밤낮이 따로 없이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총련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가 자리잡고있었다.그이께서는 공장과 농촌들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늘 재일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며 그들에게 해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자고 하여도 생산을 더 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그토록 하늘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시고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로부터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받으실 때면 우리가 응당 하여야 할 일을 하는것인데 무슨 감사인가고 밀막군 하시였다.

주체70(1981)년 5월 조국에서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300억¥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재일조선인교육대표단이 조국에 왔을 때였다.

청사밖에까지 나오시여 그들을 기다리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단장에게 동무들이 나에게 감사를 드릴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국의 어려운 조건에서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있는 동무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정녕 자연에 생기와 활력을 주는 봄의 따사로움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그 끝과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위대한 사랑, 영원한 사랑이였다.

재일동포들 누구나 눈물없이는 부를수도 들을수도 없다고 격정속에 뇌이는 노래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 가사에도 있듯이 재일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은정은 산이나 바다에 비길수 없이 높고 큰 사랑이였다.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이역의 학생소년들을 끝없이 사랑하신 자애로운 어버이, 다심한 학부형이시였다.

재일동포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마음이자 우리 장군님의 마음이였다.

총련의 후대를 키우는 일이라면 나라의 재부를 다 보내주고싶다고, 총련에 보내는 교육원조비라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

그이께서는 늘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인민경제부문에 투자하는것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하군 하시였다.

조국의 이름있는 대학들에 특별히 마련된 총련교육자들을 위한 연구원과 박사원, 겸임연구사제도에도 그리고 세상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총련 조선대학교의 조선력사박물관과 자연박물관, 도서관에도 재일동포자녀들을 민족의 넋을 지닌 참다운 조선사람으로, 조국을 알고 민족을 아는 진정한 애국자로, 총련애국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키우시려고 언제나 마음쓰신 우리 장군님의 크나큰 로고가 깃들어있다.

동포자녀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그 열화같은 후대사랑은 민족최대의 국상을 당하고 온 나라가 전대미문의 고난을 헤쳐나가던 엄혹한 시기에도 변함없이 이역만리에로 굽이쳐갔다.주체83(1994)년 12월 어느날 그 누구보다도 상실의 아픔이 크신 우리 장군님께서 그 가슴터지는 비애를 누르시며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두고 하신 교시는 오늘도 재일동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여주고있다.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 문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와 전통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기간을 변경시키거나 그 량을 줄이지 말고 수령님께서 계실 때와 꼭같이 보내주어야 한다.

이 교시를 전달받고 재일동포들 누구나 눈물을 흘리였다.

어버이수령님이 그리워 흐느꼈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너무 고마와서 목메여 울었다.

이태후 일본을 방문한 평양음악무용단 예술인들이 가요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를 부를 때였다.장내의 동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심장의 목소리를 터치였다.

《어버이수령님 고맙습니다!》,김정일장군님 고맙습니다!》

참으로 격동적인 화폭이였다.

오늘도 이역의 아들딸들은 눈물속에 이렇게 웨친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야말로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총련의 민족교육에 남기신 고귀한 유산이라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그 숭고한 후대관을 받드시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역만리에 있는 아들딸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부어주고계신다.이 땅에 전쟁전야의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였을 때에도, 적대세력의 집요한 반공화국압살책동이 절정에 이르러 모든것이 어려웠던 속에서도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총련결성 60돐을 맞으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인 서한을 비롯한 여러 고전적로작들과 담화들에서 새로운 주체100년대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을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확고한 지침을 마련해주시였다.

민족교육사업은 총련의 존망과 애국위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생명선이고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시며 민족교육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동포자녀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그이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정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재일조선인운동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나갈 새 세대들을 튼튼히 준비시키는 사업에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고계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열화같은 사랑이 있어 오늘 총련의 새 세대들은 위대한 수령님들만을 믿고 따르며 만난을 헤쳐온 전세대들처럼 애국의 계주봉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총련의 기둥감들로 억세게 성장하고 동포자녀들은 민족동화의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이역땅에서도 세세년년 변함없이 조선학교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있다.

언제인가 어느 한 국제기구회의에서 재일동포청소년들이 출연한 음악무용서사시와 집단체조를 찍은 영화가 상영된적이 있다.그때 대파문이 일어났다.영화를 본 수많은 나라의 대표들은 회의에 참가한 총련의 교육자들을 찾아와 《이 학생들이 일본에서 태여난 학생들인가.상상하기가 어렵다.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큰 집단체조를 한다는것만을 보아도 민족교육이 대단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당신들의 조직이 한 나라도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있다.정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정녕 그렇다.

재일조선인운동의 긍지높은 어제와 오늘, 창창한 래일은 다 은혜로운 사랑의 생명수가 무르익힌 귀중한 열매이다.

재일동포들의 가슴마다에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크나큰 긍지와 높은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힘의 원천,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생명수로 되여온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그 성스러운 60여년력사는 주체적인 민족관, 숭고한 후대관을 천품으로 지니신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헌신의 력사이다.

총련민족교육의 화원이야말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체취가 어려있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굳건히 지켜주고계시는 영원한 애국의 화원이다.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손길이 어린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있어 이역의 우리 학교 창가마다에서는 동포자녀들의 랑랑한 글소리가 영원토록 높이 울려퍼질것이다.열렬한 조국찬가, 수령찬가의 메아리가 세상 끝까지 울려퍼질것이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