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5월 2일 로동신문

 

굴지의 화학공업기지와 숨결을 함께 해온 40여년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설계실 배옥주녀성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녀성이 우리앞에 있다.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설계실 설계원 배옥주녀성, 그의 나이는 80살이다.

안주땅에 굴지의 화학공업기지가 일떠서던 그때부터 오늘까지 그는 40여년간을 설계원으로 일하고있다.

배옥주녀성의 가슴속에는 과연 어떤 소중한 추억이 간직되여있으며 어떻게 되여 80고개에 이른 오늘까지 그는 일손을 놓지 않고있는것인가.


* *


《당의 품속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설계원으로 사업하기 시작한지 근 60년이 되여오지만 제가 설계원의 자각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것은 여기 남흥땅에서였답니다.》

로설계원의 추억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남흥땅에는 우렁찬 건설의 동음이 높이 울려퍼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의하여 대규모의 화학공업기지가 일떠서고있었던것이다.

함경북도의 어느 한 공장에서 일하던 배옥주녀성이 건설자인 남편을 따라 여기에 이사짐을 풀고 기업소의 설계원으로 배치된것이 그즈음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기의 한생이 여기 굴지의 화학공업기지에서 흘러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공사가 끝나면 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게 되는것이 건설자들의 생활인것으로 하여 그도 남편을 따라 또 보금자리를 옮길수도 있었던것이다.

그는 화학공업기지건설을 하루빨리 앞당기는데 이바지할 마음 안고 설계실에서 맡은 일에 정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업소를 찾아오시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그의 가슴은 흥분과 감격으로 세차게 높뛰였다.마음은 우리 수령님께서 계신 곳으로 끝없이 달려갔다.

몸소 현지에까지 나오시여 기업소의 터전을 잡아주신 때로부터 건설 전 과정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

뇨소비료가 생산되기 시작하였을 때에는 기업소를 찾으시여 산처럼 쌓여있는 비료더미를 보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다른 계통들에 대한 공사도 다그쳐 조업을 앞당겨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도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또다시 기업소를 찾아주시였으니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로고를 새길수록 배옥주녀성은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날 저녁 그는 자기가 맡은 대상의 설계도면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시 보았다.도면의 점과 선들이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그것은 단순한 도면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령도자욱을 도면우에 점과 선으로 새겨간다는 자각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그는 설계원의 책임감에 대하여 다시금 자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한치의 드팀도, 오차도 없이 설계도면에 옮겨가리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신 그날부터 그는 설계원으로 다시 태여난듯싶었다.

점 하나, 선 하나에도 심혈을 깡그리 쏟아부었다.

그가 남흥에서 맡은 첫 설계가 다름아닌 기업소에 건설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따라배우는 연구실설계였다.

오늘도 배옥주녀성은 그때의 첫 설계도면을 잊지 못해하고있다.수십년간 그는 기업소의 크고작은 창조물들을 설계하였지만 첫 설계도면의 점 하나, 선 하나도 눈앞에 방불히 그려보군 한다.

그것은 80고령의 그의 심장이 청춘의 심장처럼 열정에 넘쳐 세차게 높뛰게 한 원천이였다.


* *


배옥주녀성은 한가정의 주부이고 세 자식의 어머니이다.하지만 그는 손에 일감을 잡으면 밤이 깊어서야 집에 들어섰고 퇴근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중요대상건설이 진행되면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였다.남편까지 늘 집을 떠나 대상건설장에 나가있어 집살림은 자식들이 도맡아하였다.

드넓은 기업소구내길과 생산공정, 설비들에 대하여 자기 손바닥보듯 환히 꿰들고있는 그였으나 식료품상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라고 왜 단란한 가정적인 분위기속에서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싶은 생각이 없었으랴.

허나 맡은 하나하나의 과제가 기업소의 생산정상화와 관련된 중요한 설계이고 빠른 시일안에 끝내야 하는 긴급한것이여서 그는 언제 한번 손에서 일손을 놓을 때가 별로 없었다.설계원인 자기의 어깨우에 지워진 임무를 항상 무겁게 자각하고 제 날자에 손색없이 내놓기 위해 피타게 사색하고 탐구하였다.

수지마대생산기지를 건설할 때였다.현장에서 설계를 하고 시공지도를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설계에 파묻혀 시간의 흐름도 잊고 일하던 그는 퇴근시간이 지난것을 알고 급히 집으로 향하였다.그날이 어린 막내딸의 생일이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던것이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던 그의 발길이 갑자기 기업소로 다시 향했다.낮부터 풀리지 않아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던 한가지 문제의 실마리가 뇌리에 떠올랐던것이다.고심하던 문제가 풀렸다는 기쁨은 딸의 생일이라는 생각마저 감감 잊게 하였다.

그가 설계를 끝내고 집에 들어선것은 그로부터 여러시간이 지난 뒤였다.자식들은 이미 잠들었고 남편이 그를 맞이하였다.영문을 몰라하는 그에게 남편은 웃으며 출장길에 잠간 들렸다고, 막내에게는 자기가 음식을 차려주었다고 하면서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하였다.

《당신은 한가정의 주부이기 전에 설계원이요.우리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깊이 관심하고계시는 큰 기업소의 설계원이란 말이요.당신이 자기 일을 책임적으로 하는것이 자식들앞에 떳떳이 사는것이고 어머니구실을 다하는것이라는것을 잊지 마오.》

건설사업소의 일군으로 온 나라 곳곳에 기념비적건축물들을 일떠세우느라 외지에서 살다싶이 하는 남편에게 안해의 살뜰한 정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한 송구함으로 늘 마음을 쓴 배옥주녀성이였다.그런데 나무람은커녕 주저앉을세라 힘과 용기를 주는 남편의 진정을 뜨겁게 받아안으며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배옥주녀성은 분발하였다.하여 기업소가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수지마대를 생산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런 어머니를 자식들도 적극 도왔다.

어느해 봄 하루일을 끝내고 밤이 깊어 집에 들어선 배옥주녀성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때까지 기다리던 자식들이 제손으로 성의껏 차린 음식상앞으로 어머니를 이끌며 오늘이 어머니생일날이라고, 생일을 축하한다고 저마끔 인사를 할 때 배옥주녀성은 눈물이 왈칵 솟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철없다고 여겨지던 자식들의 모습을 젖은 눈길로 바라보는 배옥주녀성의 가슴속에 맡은 일을 더 잘해서 자식들앞에 떳떳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서리라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이렇듯 그는 생산으로 들끓는 기업소의 숨결에서 설계원의 긍지, 어머니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손에서 설계도면을 놓지 못했다.

사람은 자기가 노력을 바친것만큼, 사랑과 정을 기울인것만큼 자기 직업에 더 애착을 느끼는 법이다.

수십년세월을 설계원으로 일하는 나날 대화학공업기지는 배옥주녀성에게 있어서 정든 집과 같았다.


* *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배옥주녀성의 귀밑머리도 희여졌다.하지만 맡은 일에 대한 책임성과 열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남흥가스화대상공사가 시작되던 해 어느날이였다.그때 배옥주녀성이 일군들을 찾아와 자기도 공사에 참가시켜줄것을 제기하였다.

일군들의 생각은 깊었다.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소유한 그가 공사에 절실히 필요한것은 사실이였다.그러나 나이많은 그의 건강이 걱정되였던것이다.

당시 그는 예순살을 넘긴 몸이였다.

쉽게 결심을 내리지 못하는 일군들의 마음을 읽은듯 배옥주녀성이 절절히 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깊이 관심하시는 이 대상건설이 얼마나 중요한 공사입니까.기업소가 건설될 때 저는 설계원으로 한생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꽃피우자고 결심다졌습니다.우리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게 이 대상공사에 저도 참가시켜주십시오.제가 생의 마지막까지 후회없이 보람있게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일군들의 가슴은 후더워올랐다.

기업소의 곳곳에 그의 땀과 열정이 얼마나 뜨겁게 슴배여있었던가.

혁명사적교양실이며 문화회관, 경기장, 합숙 등 기업소의 많은 대상들의 설계 및 시공지도, 예산을 맡아하면서 거기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였고 그 나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배옥주녀성이였다.

인생의 시작도 끝도 한본새로 변함없이 충성의 한길을 걸으려는 그의 불같은 마음에 머리가 숙어져 일군들도 더 다른 말을 할수가 없었다.누구나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염쉬염 일하라고 권고하였지만 그것은 괜한것이였다.공사 전기간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안고 젊은이들 못지 않게 일을 제끼는 그의 열정과 패기를 누구도 막을수 없었다.

배옥주녀성은 설계실의 래일을 떠메고나갈 신입설계원들이 하루빨리 자기 몫을 당당히 할수 있도록 하는데도 품을 아끼지 않았다.

설계실에 배치받은 신입설계원들이 처음 대상과제를 맡았을 때에는 자기 일처럼 여기며 설계에서 나서는 필요한 문제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고 제구실을 할 때까지 사심없는 방조를 주었다.

어느 한 대상보수와 관련한 예산작성이 제기되였을 때였다.현장에 나간 그는 로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설계와 설비보수실태 등을 꼼꼼히 대조해보며 확인하였다.그것을 보고 실의 한 설계원이 우리야 도면을 보고 예산하면 되지 꼭 그렇게 해야 되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배옥주녀성이 조용히 말하였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계일군들이 도면에 선을 한번 잘못 그으면 막대한 국가자금이 랑비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우리의 손에 의해 국가재산이 절약되는가 랑비되는가가 좌우된다.그러니 기업소재산도 제 집 살림살이하듯 량심적으로 정확히 하여야 한다.

그때 배옥주녀성이 한 말을 그 설계원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있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신입설계원들에게 도면을 그리기에 앞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설계원의 무거운 책임감을 먼저 심어주었다.…

그렇게 어느덧 40여년이 흘렀고 배옥주녀성은 80고개에 이르렀다.

우리는 남흥의 한 로설계원의 이야기를 여기서 맺으려고 한다.

이것은 결코 한 녀성이 걸어온 인생길에 대한 추억만이 아니다.이 땅의 하나하나의 기념비적창조물들에 우리 수령님들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심혈이 얼마나 뜨겁게 깃들어있고 그 품속에서 우리 인민이 변할줄 모르는 충성과 의리의 인간들로 얼마나 미덥게 성장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이야기이다.

세월이 흘러 육체는 로쇠할수 있어도 당과 수령을 받드는 인민의 충성의 일편단심에 어찌 진함이 있을수 있으랴.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