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5월 7일 로동신문
강원땅의 자랑-녀성무궤도전차운전사들
사람들은 흔히 강원도라고 하면 근면하고 강의한 녀성들의 모습부터 눈앞에 떠올리군 한다. 문맹퇴치운동의 선구자 리계산, 전선원호로 온 나라에 소문났던 남강마을녀성들과 원산군민발전소건설에 크게 기여한 녀맹돌격대원들…
조국이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마다 한몸 서슴없이 내대여 당과
《우리 나라 녀성들과 녀맹원들이 참으로 훌륭하고 장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가정이나 돌보던 원산시안의 평범한 녀인들이 한날한시에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데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다.
감격도 새로운 주체107(2018)년 7월 어느날
시대정신의 창조자들인 강원도인민들이 자체의 힘으로 당정책을 또 하나 현실로 꽃피운것이 그토록 기쁘고 대견하시여 종업원가족들까지 한품에 안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신 소식은 온 강원땅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잊지 못할 그날 꿈에도 바라지 못했던 영광을 가슴 한가득 받아안은 행복의 주인공들로부터 강원도인민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시는
이 사실에 접하고 원산시민들모두가 격정의 눈물을 쏟았지만 누구보다 어깨를 들먹인것은 자식을 가진 어머니들이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꿈만 같은 소식에 접하였을 때 원산시안의 녀성들은 평양하늘을 우러러 고마움의 큰절을 드리고 또 드리였다.그리고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얼마후에는 원산시안의 수십명의 가정부인들이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될것을 탄원하여나섰다.하지만 30대, 40대의 녀성들이 육중한 무궤도전차의 운전기술을 익힌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조향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무척 애를 먹었다.그런가하면 거리의 오고가는 차들이 곧바로 자기에게로 달려오는것 같아 때없이 눈을 꼭 감기가 일쑤였다.그러다나니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빨리 운전기술을 익혀
그들은 가정을 잊다싶이 하였다.무궤도전차가 그대로 그들의 집이였다. 힘겨울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름아닌 강원도녀성들이라는 자각을 다시금 되새기군 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강원도녀성들은 불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전선원호미를 찧고 포탄상자를 날라 전쟁승리에 이바지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무궤도전차의 속내를 환히 꿰들기 위해 도서들을 밤새워 탐독하기도 하고 오랜 수리공들에게서 하나하나 알심있게 배우기도 하면서 운전은 물론 그 어떤 수리에도 막힘이 없도록 준비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이런 피타는 노력끝에 그들은 남자들도 적어서 6개월의 양성기간을 거쳐야 한다던 기존관념을 깨고 불과 40일만에 단독운행을 할수 있게 되였다. 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맡은 운행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운행길을 이어가느라 끼니를 번질 때도 있었다.운행을 끝낸 후 무궤도전차의 모든 부분품들과 부속들이 정상인가를 확인하고 수리정비를 하는 일도 많은 품을 요구했다. 명절날, 휴식일 가림없이 무궤도전차에서 살다싶이 하는 녀성운전사들을 아끼고싶어 사업소일군들과 수리공들은 그들이 운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차의 수리와 정비는 우리가 다 맡아할테니 어서들 퇴근하라고 떠밀군 하였다. 그럴 때면 중대장 권선희동무와 당세포비서 김금숙동무는 말하였다. 운전사라면 응당 수리와 정비도 제손으로 해야 한다고, 우리들이 무궤도전차운전사가 된것은 당의 인민사랑의 뜻을 받들어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이런 그들을 누구나 존경하였다. 지금도 김금녀동무를 비롯한 녀성무궤도전차운전사들은 첫 운행길에 나서던 때를 잊지 못하고있다. 차에 오른 손님마다 무궤도전차를 배심있게 몰아가는 녀성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주었고 로인들은 딸자식같은 운전사들의 모습이 대견하여 그들의 등을 두드려주기도 하였다.삼복의 무더위속에서 운행길을 이어가는 그들을 위하여 가던 길을 되돌아와 시원한 얼음과자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가 들고가던 남새구럭을 운전석옆에 슬그머니 놓고 내리는 낯모를 녀인들도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인민의 참된 복무자로 삶을 빛내일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어느날 아침 정류소에서 남편이 내다준 밥보자기를 받아안고 또다시 운행길을 떠나던 리선향동무는 후사경에 비낀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애써 웃음을 짓고 안해를 떠나보낸 남편이 허리를 조심히 두드리며 정류소의 의자에 앉는것이 아닌가. 그의 남편은 영예군인이였다.리선향동무는 집안의 크고작은 일을 도맡아안고 마음을 많이 쓰는 남편의 모습이 어려와 저도모르게 눈굽이 젖어들었다.그날 저녁 밤늦게 집에 돌아온 리선향동무는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을 내비치였다. 그런데 그 말때문에 남편이 그토록 서운해할줄이야… 《그래, 당신이 지금 누구를 태우고 다니오? 우리 당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인민이 아니요.난 지금도 몸이 허락된다면 당신과 함께 한 무궤도전차를 몰고싶은 심정이요.》 그 말을 들으며 리선향동무는 복무자의 본분을 다시금 새겨안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제인가 120호 운전사 김경희동무가 운행을 마치고 금방 사업소에 들어설 때였다. 전차가 멎기를 기다리던 초급당일군이 그에게로 다가와 자기와 함께 가볼데가 있다고 하는것이였다.영문도 모르고 그를 따라나선 김경희동무가 승용차를 타고 다달은 곳은 뜻밖에도 어느 한 병원이였다. 의아해하는 김경희동무에게 초급당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앓는 몸으로 운전을 하자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소.운행보장은 걱정말고 어서 병치료부터 하오.》 언제 봐야 앓는데는 없는가, 집살림은 어떤가, 군대나간 아들에게서 편지는 자주 오는가 등 녀성운전사들의 사업과 생활의 구석구석을 따뜻이 보살펴주는 고마운 당일군이였다. 한번 먹은 마음 변치 않고 당을 따라 곧바로 한길을 가도록 남모르게 이끌어주고 떠밀어주는 이런 당조직의 손길이 있어 녀성무궤도전차운전사들은 운행길을 꿋꿋이 이어갈수 있었다. 그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아직은 꿈나라에 있는 자식들을 두고 새벽차를 타야 했고 저녁밥을 준비해놓고 밤늦도록 기다리던 가족들이 잠에 들었을 때에야 집에 들어서군 하는 녀성운전사들… 그러나 그 길에 후회는 없었다.가족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수고를 알고있었다. 아침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며 무궤도전차에 오르는 손님들, 《새해를 축하합니다.》, 《3.8국제부녀절을 축하합니다.》라고 하며 꽃묶음을 안겨주던 사람들… 그럴 때마다 녀성운전사들은 말하군 했다.
몇달전 원산시무궤도전차사업소의 117호와 127호가 차체에 5만km무사고주행별을 새기는 영예를 지니였다. 그것은 조국이 강원땅의 녀성무궤도전차운전사들에게 안겨준 첫 훈장과도 같았다. 지금 원산시를 찾는 사람들은 녀성들이 멋쟁이무궤도전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이채로운 풍경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하군 한다. 원산시안의 주민들도 전화의 나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남강마을녀성들과 더불어 온 나라에 소문난 강원땅에 훌륭한 녀성무궤도전차운전사집단이 태여났다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우리 당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 한길에서 보람찬 삶의 자욱을 새겨가는 녀성무궤도전차운전사들이 꽃피울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또 그 얼마일것인가. 글 본사기자 정영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