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5월 18일 로동신문
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당이 안겨준 담력과 의지로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이후 어디서나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 남포시안의 140여명 청년들 사회주의농촌으로 진출, 각지 대학 졸업반학생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와 최전연지대, 섬마을, 산골학교들에 탄원, 평안북도의 수백명 청년들이 사회주의건설의 주요전구로 탄원…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일시에 궐기해나섰다.단 몇개월사이에 수천명의 남녀청년들이 어렵고 힘든 부문들에 용약 탄원진출하였다. 당의 부름에 호응하여 산으로, 바다로, 개발지로 달려나가던 전세대 청년들의 모습이 어려온다.사회주의, 공산주의리상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간고분투의 노력으로 천리마의 기적을 창조하며 이 땅우에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를 일떠세운 천리마시대 청년들, 그들의 값높은 청춘시절은 우리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오늘 우리의 청년들을 사회주의를 신념화한 애국청년들로 준비시키는데서 중요한것은 천리마시대 청년들의 사상정신과 투쟁기풍을 본받도록 하는것입니다.》 주체48(1959)년 6월 21일부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강원도 수산부문 당열성자회의에서 하신
당이 청년들을 바다에로 부른다는것을 알게 되자 학생들은 저마다 졸업후의 생산현장진출희망을 수산부문에 집중시키고있다.》 당시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는 바다로 진출할것을 탄원하는 청년학생들의 모임이 류례없는 열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주체48(1959)년 6월 강원도 수산부문 당열성자회의에서 바다야말로 진취성이 강하고 정열에 불타는 청년들의 일터이라고, 파도를 헤치고 넓은 바다에 나가 사회주의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무진장한 부원을 개발하는것이 혈기왕성한 청년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고 하신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난 주체51(1962)년 2월 평양에서는 전국수산부문 열성자대회가 진행되였다.
그날
그가 《녀성》호를 무어가지고 첫 출항에 나선것은 1960년 여름이였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사내대장부도 3년은 바다에서 살아야 배를 겨우 타나마나하는데 녀자들이 배를 어떻게 몰겠는가고 우려하였다. 실지 바다에서 열흘을 보냈지만 그들은 겨우 수십kg의 물고기밖에 잡지 못하였다. 과연 우리 녀성들의 힘으로 안된단 말인가, 고기잡이에 《경험》있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어한기에는 손을 털고 나앉아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는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더욱 억세게 키를 잡았다.
그는 괜히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며 주저앉으려는 녀성선원들을 이끌고 남들이 어한기라고 부르는 한여름에 거의나 매일과 같이 출어했다.한마리의 물고기라도 더 잡고 한개의 조개라도 더 캐내기 위하여 그들은 2중, 3중의 다양한 어로작업과 새로운 어로방법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투하였다. 마침내 《녀성》호는 어부의 식찬감도 못 잡는다는 7~8월의 어한기를 풍어기로 만들었다. 그해 10월 초순 아직 갈매기도 채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새벽이였다.
배를 청소하느라 갑판을 뛰여다니던 《녀성》호 선원들은
새벽바람에 날리는 그들의 작업복자락을 꼭꼭 여며주시며 파도가 무섭지 않은가, 생활하는데 곤난한 점은 없는가 하나하나 따뜻이 물어주시던
19살 처녀 김병숙동무가 바로 키도 잡고 노도 젓는다는것을 아시게 된
그 기쁨, 그 자랑속에서 《녀성》호 선원들은
사업소적으로 매달, 매 분기계획을 선참으로 끝내며 앞장에서 달려나가던 어느날 그는 황해남도앞바다에서 물고기잡이를 하다가 기관고장으로 표류하고있는 사업소배를 발견하게 되였다.
시간은 일각을 다투는데 그 배를 구원하자면 치던 그물도 끊어버려야 하고 드리워놓은 닻도 떼버려야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그물을 추어올리고 닻줄에 떼통을 달아 물에 띄워놓은 다음 위험을 무릅쓰고 4척의 적함선들이 포위망을 좁히는 틈새를 뚫고들어가 조난당한 배에 세번만에 바줄을 거는데 성공하여 그 배를 기어이 구원하였다.
전국수산부문 열성자대회에서 진행한 김병숙동무의 토론을 통하여 용감하고 희생적인 그 소행에 대하여 알게 되신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는 바로 이렇게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그날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수여받은 장금실동무와 녀성선원들의 보답의 마음은 더욱 세차게 불타올랐다. 서해에 떠도는 성에장과 격랑을 헤가르고 멀리 공해에까지 나가 어로작업을 하던 어느날 그들은 태풍예보를 받았다.태풍은 예상보다 빨리 들이닥쳐 산더미같은 파도가 연방 갑판을 핥으며 지나갔다.진눈까비까지 내려 갑판우에는 얼음이 얼어붙었다.
처녀들은 허리에 바줄을 매고 용감히 초소를 지키였으나 워낙 세찬 파도가 오랜 시간 배를 후려치다나니 힘이 진한 몇몇 선원들은 쓰러지기 시작했다.바로 그러한 때 선장 장금실동무는 조타실정면에 모셔져있는
전국수산부문 열성자대회 휴식시간에 몸소 자기를 불러주시고 사업하는데 애로되는것은 없는가, 당에는 들었는가 일일이 물어주시며 녀성들이 배에 오른것만으로도 벌써 후보당원의 자격이 있다고, 배를 1년만 타면 당원의 자격이 있는것이라고 평가해주시면서 로력영웅칭호까지 수여하도록 해주신
장금실동무는 저도모르게 솟구치는 새 힘을 느끼며 풍랑과의 투쟁에서 지칠대로 지친 선원들에게 힘껏 웨치였다. 《동무들, 저 글발을 보는가!》 처녀어로공들의 눈에는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라는 글발이 안겨왔다.무서운 정신력이 폭발되였다.격랑은 드디여 머리를 숙였고 그들은 간고한 원해어로전에서도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조선로동당의 딸, 이것은 당이 그들에게 안겨준 영예이고 의지이며 힘이였다.바로 그 영예와 의지와 힘으로 그들은 막아서는 모든 난관을 용감히 뚫고 조선로동당의 딸다운 훌륭한 성과를 이룩했던것이다. 바다의 녀장수들은 계속혁신, 계속전진하여 전국수산부문 열성자대회에서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남자들에게도 힘에 부친 배를 타고 날바다를 헤쳐가며 물고기를 잡은 처녀어로공들의 그 정신과 담력도 감탄할만 한것이지만 참으로 훌륭한것은 온갖 보수주의와 경험주의를 짓부시며 청년들을 바다로 부른 당정책의 정당성을 실천으로 증명한 불타는 충성심과 무한한 헌신성이다.그렇듯 뜨거운 심장을 지니였기에 천리마시대 청년들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오직 창조와 전진, 개척만이 있었다. 원해개척, 돌이켜보면 그 한걸음한걸음은 실로 헐치 않았다. 대형어선이라면 몰라도 75hp짜리나 100hp짜리로는 원해개척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배길이가 짧고 폭이 좁아서 웬만한 풍랑도 이겨내지 못한다.… 이것은 당시 바다에서 오래동안 물고기를 잡아온 사람들의 일반적견해였다. 그러나 룡암포수산사업소의 류명호동무를 비롯한 청년들은 원해개척의 결심을 포기하지 않았다.자신들의 산경험으로 일부 사람들의 머리를 거머쥔 신비주의를 부셔버리리라 마음다진 그들은 당조직의 지지밑에 청년들과 제대군인들로 《민청》호를 조직하고 수개월동안 맹렬한 항해훈련을 진행하였다. 밤에도, 안개낀 날에도 그들은 수십차례나 훈련을 거듭하면서 정확한 해도작업에 의한 항해법을 련마하였다. 첫 원해어로에서 빈배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실패의 원인을 기어이 찾아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원해어로의 길에 나섰다. 《민청》호가 개척한 길을 따라 원해어로에 대해 신심이 없어하던 배들도 천리 바다길을 이웃집 드나들듯 하며 풍어의 개가를 올리던무렵 류명호동무의 모든 생각은 동기어로를 개척할 한곬으로 쏠리고있었다.처음에는 매번 얼음길을 헤치고 드나들 일이 걱정이였으나 원해에 기지를 정하고 바다가 얼기 전에 나가 풀린 다음에 들어오면 능히 해낼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들의 대담한 발기는 또다시 머리를 쳐든 신비주의에 부딪쳤다. 그러나 당이 바란다면 천만산악도 뚫고헤칠 그들의 굳센 투지를 그 누구도 휘여잡을수 없었다. 맵짠 바람이 살을 에이는듯 한 12월 어느날 첫새벽, 원해선단은 포구를 떠났다. 한참 밀고나가다가는 후퇴하고 후퇴하였다가는 다시 전진하기를 수십번, 한 배의 힘이 모자라면 두 배가, 두 배의 힘이 모자라면 다시 세 배가 힘을 합쳐 마침내 수십리 얼음장을 헤친 원해선단은 첫 동기어로전을 시작하였다.집채같은 파도가 사정없이 밀려와 금시 배를 삼킬듯 하였지만 《민청》호 선원들은 불굴의 정신으로 날바다와 싸워가며 기어이 만선기를 올리였다. 조기철과 백하철이 아니고서는 고기잡이를 할수 없다던 서해는 당정책이라면 열가지이든 백가지이든 무조건 관철하고야마는 우리 청년들앞에 마침내 정복되고야말았다. 어찌 서해뿐이랴.
우리 청년들의 자랑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언제나 더 어렵고 더 힘들고 더 중요한 모퉁이를 맡아나서며 언제나 용감하고 대담하게 앞을 뚫고나가는데 있다.
조선혁명의 개척기는 청년운동의 발단과 하나로 잇닿아있으며 우리 혁명의 고조기는 청년운동의 전성기와 언제나 일치하였다고 하신
《청년들은 다 어려운 일을 맡아나서자!》, 《청년들은 바다로, 탄광으로, 산림으로!》라는 구호를 들고 생산과 건설의 가장 어렵고 힘든 일터마다에서 무비의 로력적위훈을 세우던 천리마시대 청년들이 우리 새 세대를 지켜본다. 우리 당이 구상하고있는 사회주의건설의 전망목표이자 청년들의 리상이다.우리 식 사회주의의 밝은 미래는 청년들의것이고 청년들자신의 손으로 당겨와야 하는 성스러운 애국위업이다. 사회주의미래의 주인공, 건설자인 청년들이여, 혁명선렬들이 물려준 충성과 애국의 바통을 억세게 이어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찬란한 미래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서 조선청년의 슬기와 기개를 온 세상에 떨치자! 본사기자 조향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