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5월 25일 로동신문

 

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조선로동계급의 기상과 본때를 과시한
자력갱생의 창조물-첫 전기기관차

 

우리 조국의 방방곡곡으로 힘있게 뻗어간 두줄기 궤도우로 첫 전기기관차가 달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어느덧 60년세월이 흘렀다.

우리 당이 가리킨 화살표따라 승리의 궤도를 힘차게 달리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 창조와 혁신의 숨결을 이어주는 《붉은기》호전기기관차들의 우렁찬 기적소리는 1960년대의 간고한 시련속에서 첫 전기기관차를 만들어낸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을 감회깊이 되새겨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미더운 철도로동계급은 1960년대에 벌써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전기기관차를 만들어 세상을 경탄시켰으며 철도의 전기화를 훌륭히 실현하고 증송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려 당의 철도운수정책을 실천으로 받들어왔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평양철도공장(당시)에 전기기관차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신것은 주체48(1959)년 8월이였다.

온 나라에 천리마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번져가는 속에 기양에서는 첫 《천리마》호뜨락또르가, 덕천에서는 첫 자동차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나오던 그무렵 기적과 혁신으로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는 우리 조국은 철도의 전기화와 전기기관차를 절실히 요구하게 되였다.

그러나 전쟁의 흔적을 금방 가신 우리 나라에서 전기기관차를 만든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전기기관차제작공정은 1만 4천여종에 22만 5천개가 넘는 크고작은 부분품을 설계하고 가공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이였다.당시 세계에는 순수 제힘으로 전기기관차를 만드는 나라가 불과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는데 우리 나라에는 전기기관차의 설계도면은 물론 생산에 필요한 공구, 지구도 변변한것이 없었다.

공장로동계급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있을 때 전기기관차설계집단이 공장에 도착하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승리할 래일을 내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미리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전기기관차를 만들수 있는 선진과학과 기술을 배운 젊은 설계가들이였다.

그들의 나이는 모두 20대였다.하지만 설계가들은 현대기계공업과 전기공업발전의 정수로 불리우며 고도의 정밀성과 견고성을 요구하는 전기기관차설계에 신심있게 달라붙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담력과 배짱이 그들의 가슴마다에 간직되여있었다.

설계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로 나선것은 전기기관차의 심장이라고 하는 고속도차단기설계였다.기술신비주의자들이 그것만은 다른 나라에서 사와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일 때 젊은 설계가들은 우리의 전기기관차가 나오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어떻게 남의 심장을 단 전기기관차를 올릴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더욱 분발하여나섰다.

설계가들은 정비중에 있는 전기기관차의 고속도차단기의 부분품들을 하나하나 눈에 익히며 도면을 그려나갔다.

설계에서 또한 중요한 문제로 나선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짐을 많이 끌면서도 경사면을 따라 올라갈 때 바퀴가 헛돌이하는 현상을 없애는것이였다.

설계가들은 현지에 나가 경사도가 가장 심한 곳을 찾아 수백리길을 걷기도 하고 모형을 만들어 실험도 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모래뿌림장치를 설계하였다.

이런 주인다운 자세와 립장에서 그들은 설계기일을 앞당겨 단 6개월동안에 5 000여매의 설계도면을 완성하여 내놓았다.

전기기관차생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많은 난관과의 투쟁을 동반하였다.

생산전투의 나날 작업현장에서는 160여차의 당분조회의와 300여회의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독보모임이 진행되였다고 하니 생산자들이 걸음마다 부닥친 시련과 난관이 그 얼마였는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기기관차생산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공장지배인의 사무실에서는 오래도록 일군들의 회의가 계속되였다.오작이라느니, 협동생산에 참가한 기업소들에서 제품이 지연되고있다느니, 기능공을 더 보내달라느니 하고 그칠새없이 터져나오는 많은 문제들을 풀기 위해 일군들은 지혜를 짜내고 의견을 합쳤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우리 로동자, 기술자들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청산리정신대로 사람들속에 더 깊이 들어가 혁신의 불길을 지펴올려야 합니다.》

공장당일군의 말에 지배인도 부기사장도 선동원이 되여 로동자들속에 더 깊이 들어갈것을 결의다졌다.

로동자, 기술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를 더 깊이 심어주고 강선과 김철, 덕천의 로동계급이 발휘한 로력적위훈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일군들의 목소리가 감명깊게 울리는 가운데 작업현장들에서는 리수복영웅을 비롯한 우리 혁명력사에 빛나는 충신들의 이름을 단 돌격대들이 조직되였다.그런가 하면 직장들에서 《나의 공구갖추기운동》기술경기대회가 거퍼 진행되고 창의고안사업도 맹렬히 전개되였다.

이 과정에 320여건의 창의고안과 혁신적인 발기가 생산에 도입되고 3 000여종의 공구, 지구가 생산되였다.기사는 기수를, 기수는 기능공을, 기능공은 무기능공을 도왔고 공장 이르는 곳마다에 질의응답판이 나붙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시간씩 기술학습과 토론들이 열을 띠고 진행되였다.

그리하여 단 석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신입로동자들이 어렵고 복잡한 도면을 척척 보고 일을 해나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학교를 나온지 불과 6개월밖에 안되는 녀성기수가 수십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18배의 능률을 내는 새 지구를 만들어내여 기사들도 입을 딱 벌리게 하였으며 한 신입용접공이 밤낮으로 용접기술을 익혀 단 두달동안에 기능급수를 두급이나 올린 사실들도 있다.

유휴자재를 동원하여 특수용접지구를 만든 조립직장 종업원들은 그것으로 철판을 용접하여 차체와 대틀을 만들어나갔다.그런데 다 만들어진 전기기관차대틀을 살펴보니 용접한 부위의 한 부분이 꼬여있는것이 아닌가.

어떻게 할것인가.

종업원들은 다시 모여앉았다.무릎을 마주하고 지혜를 합치니 좋은 방도가 나졌다.

꼬인 부분에 열을 주면서 펴자는것이였다.

이튿날 아침 조립직장 작업장에는 큼직한 나무무지가 생겨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울바자, 책상, 의자였던것이 땔감으로 되여버린 그속에는 지어 찬장까지 있었다.

《이건 도로 가져가오.》

직장일군이 찬장을 가리키며 하는 단호한 말에 그 임자는 금방 울상이 되였다.

《나라의 첫 전기기관차를 만드는데 필요하다면 부엌에 놓았던 찬장이 아니라 집기둥이라도 뽑아오고싶습니다.그릇은 당분간 시렁에 얹어놓고 쓰면 되니 받아주십시오.》

종업원들은 불을 피워 대틀을 달구면서 꼬인 부분을 함마로 때려 보기에도 좋고 견고하게 완성하였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그들은 전기기관차의 차체와 대틀을 주강품 못지 않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전기기관차가 총조립단계에 들어서자 공장종업원들의 머리속에서는 교대작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집을 코앞에 두고도 오래도록 들어가보지 않은 종업원들이 수두룩하였다.어떻게 하나 로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는 일군들의 온갖 궁리도 그들을 작업에서 떼여낼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자, 로동자들은 지혜와 힘을 합치고 서로서로 도와나섰다.공장일군들은 물론 현장치료를 나왔던 의료일군들과 직장계산원들도 스스로 작업에 참가하여 스파나와 줄칼을 잡았다.

작업과정에 산소용접이 긴장해지자 기중기운전공도 기중기가 멎는 시간을 타서 용접봉을 들었고 이동판매를 나온 판매원과 합숙녀인들까지 작업에 합세하였다.

누구나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첫 전기기관차생산에 자기의 지성을 바치겠는가 하는 생각에 골몰하는 속에 선반공들의 안해들은 스스로 시원한 차와 음식을 가지고 로동자들을 찾아왔으며 작업장의 곳곳에는 누가 가져다놓았는지 알수 없는 사탕과 담배들이 생겨났다.

18m나 되는 대틀제작을 단 1mm의 오차도 없이 능숙하게 해낸것도, 연 2만m의 길이를 용접하는 힘겨운 일을 400%의 높은 생산능률로 보장한 성과들에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한마음한뜻이 되여 투쟁한 이곳 로동계급의 높은 정신세계가 비껴있다.

전기기관차의 심장부인 고속도차단기제작은 그야말로 간고하였다.

간난신고하며 부속품을 조립하여 시험대우에 올려놓으면 《꽝!》 하고 폭발하기를 서른차례나 거듭하였다.

이러한 난관앞에서 기술신비주의와 보수주의는 다시금 머리를 쳐들고 기술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었다.

결국 우리의 고속도차단기는 현물로 태여나지 못하고 도면으로 남고만단 말인가.

이러한 때 로동자들의 불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우린 절대로 남의 심장을 단 전기기관차를 만들수 없습니다.덕천로동계급은 자동차를 천대나 만들어냈습니다.그들은 하자고 결심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증명했습니다.우리도 전기기관차를 만들어 조선로동계급의 본때를 보입시다.》

용기를 가다듬고 다시 고속도차단기제작에 달라붙은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은 서른여섯번째만에 끝끝내 훌륭한 창조물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우리 로동계급은 자기들이 결의한대로 우리 힘, 우리 기술로 만든 첫 전기기관차를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 충성의 선물로 올리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고 없는것은 만들어내면서 시련과 난관앞에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하나의 뜻으로 굳게 뭉쳐 전진한 우리 로동계급의 무궁무진한 힘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에 뿌리를 둔것이였다.

주체50(1961)년 8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전기기관차가 드디여 태여났다는 기쁜 소식을 들으시고 공장에 몸소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전기기관차를 좀더 자세히 보자고 하시며 몸소 운전실에 오르시여 기관사좌석에도 앉아보시고 계기판이며 조종장치, 운전실안의 장치들과 설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면서 잘 만들었다고, 우리는 증기기관차를 만들지 않고 전기기관차를 만들었으니 기관차생산에서 한계단 뛰여넘은셈이라고, 동무들은 우리 나라 기술혁명에서 높은 고지를 점령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기기관차의 이름을 《붉은기》라고 지어주시고 전기기관차앞머리에 휘날리는 붉은 기발을 만들어붙이는것이 좋겠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간고한 시련의 시기에 태여난 첫 전기기관차 《붉은기》1호는 백두에서 시작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이 낳은 위대한 창조물이였으며 위대한 수령의 부름따라 휘황한 미래에로 나아가는 사회주의조선의 기상이였다.

주체90(2001)년 9월 《붉은기》1호전기기관차에 로력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거기에는 수십년간 자랑찬 로정을 달려온 영광의 기관차에 대한 당과 국가의 높은 평가와 함께 우리 로동계급이 사회주의수호전에서 백두의 혁명정신, 붉은기정신을 계속 들고 나갈데 대한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담겨져있었다.

《붉은기》1호전기기관차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새로운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수행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수령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수령의 부름에 물불을 가림없이 떨쳐나서는 인민이 있는 한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다는 철리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허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