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6월 2일 로동신문

 

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수도로동계급의 불같은 충성과
애국심의 결정체-첫 무궤도전차

 

우리 인민이 천리마를 타고 질풍같이 내달리던 위대한 시대에 세상을 놀래우며 태여난 자력갱생의 창조물들가운데는 수도의 로동계급이 만든 무궤도전차도 있다.

우리 나라의 첫 무궤도전차, 그것은 어떻게 이 땅에 태여났으며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있는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자체의 힘으로 겹쌓인 난관을 용감하게 뚫고나감으로써 빈터우에 주체공업의 터전을 닦고 14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사회주의공업화의 위업을 완성하는 세기적인 기적을 이룩할수 있었습니다.》

조국해방 15돐을 며칠 앞둔 주체49(1960)년 8월 우리 조국의 수도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옥류교개통식이 진행되였다.

대동강기슭에 거연히 솟아있는 평양대극장이며 옥류관, 그와 잇닿아 줄지어선 웅장한 고층건물들과 하나로 어울리며 대동강우에 보란듯이 가로놓인 옥류교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형체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되였던 평양을 그처럼 짧은 기간에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변모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을 모두가 가슴뜨겁게 되새기고있을 때 그이께서는 옥류교를 바라보시며 이 다리우로 무궤도전차를 달리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인민들에게 하나의 행복을 주시면 또 다른 행복을 주고싶으시여 늘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에 접하고 누구보다 격정을 금치 못한 사람들은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당시)의 당원들이였다.

이미전에 수도의 무궤도전차화를 실현할데 대한 구상을 무르익혀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소음도 없고 연유도 쓰지 않으며 도시미화에도 어울리고 시민들의 교통에도 편리한 무궤도전차를 놓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으며 그 영예로운 과업을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에 맡겨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기어이 관철할 일념을 안고 공장일군들과 로동계급은 우리 식의 무궤도전차생산을 위한 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생산과 건설로 불야경을 이룬 평양시가 바라보이는 옥류교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공장의 당원들은 다시금 맹세다졌다.

《무궤도전차를 우리 힘으로 꼭 만듭시다.》

《옳소.우리가 만들어야 하오.그러되 빨리 다그쳐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 드리는 선물로 하자구.》

요란한 궐기모임장소나 당세포총회도 아닌 보통시각에 그들이 주고받은 이 수수한 말속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는 로동당원들의 무한한 충성심이 어려있었다.

물질기술적토대가 빈약한것은 물론이고 몇대의 자동차를 보수한 경험밖에 없는 크지 않은 수리공장에서 한번 본적도 없는 무궤도전차를 만들어낸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였다.그런데다가 사대와 교조가 골수에까지 들어찬자들이 제동을 걸었다.그자들은 설계만도 몇달이 걸린다느니, 누구도 만들어본 사람이 없으니 다른 나라에 가서 배워온 다음 시작해야 한다느니 하는 맥빠진 소리를 늘어놓았다.그러나 보수주의도 기술신비주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기어이 우리 식의 무궤도전차를 만들어내려는 공장로동계급의 불같은 열의를 막을수 없었다.

공장당조직의 적극적인 지도와 방조밑에 18명으로 된 무궤도전차작업반이 무어졌다.설계도 설비도 자재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거의 맨주먹으로 달라붙은 일은 첫걸음부터 애로에 부닥쳤다.힘겨울 때마다 그들은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펼쳐들었다.연길폭탄을 만든 항일혁명투사들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심장마다에 쪼아박으며 두주먹을 부르쥐고 앞에 가로놓인 난관을 하나하나 제껴나갔다.

먼저 설계를 맡은 종업원들이 도면을 그리는데 달라붙었다.전문학교(당시)를 졸업한데 불과한 그들이 무궤도전차의 도면을 그린다는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혁명사상으로 교양되고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여 계속혁신, 계속전진하는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속에서 단련된 그들은 배심좋게 보수주의와 기술신비주의를 짓부셔나갔다.설계도면을 기어이 완성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숱한 곳을 찾아다니고 수십권의 책을 뒤지며 낮에 밤을 이어간 설계자들, 그들이 도면우에 그린 하나하나의 선과 점들은 수령에 대한 불같은 충성의 열정이 낳은 피와 땀이였다.그들은 수십차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여 750매의 무궤도전차설계도면을 보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완성하였다.

무궤도전차작업반원들은 설계가 완성되는족족 제작을 내밀었다.그들은 기본수리부문 종업원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자재를 극력 절약하고 예비를 탐구동원하면서 모든것을 자체로 찾아내여 자체로 만드는 원칙에서 일하였다.

어느 한 작업반원은 이틀동안 작업장의 어느 한쪽에서 무엇인가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더니 3일째 되는 날 아침에는 후판절단기라는 기계를 만들어내여 힘겨운 철판절단작업에서 한몫 단단히 할수 있게 하였고 한 선반공은 골조에 철판을 붙이는데 큰 도움이 되는 기발한 착상을 내놓았다.

몇달후 무궤도전차제작이 다 되여간다는 소문이 한입두입 건너 공장에 퍼져갈무렵 다른 작업반, 다른 직장의 종업원들도 매일 맡은 일을 끝내고 무궤도전차작업반원들이 일하는 현장으로 달려와 그들을 도와나섰다.

맨손으로 무궤도전차를 제작하던 나날 공장로동계급속에서는 기술혁신안들이 수많이 나와 도입되였다.소재직장 주물작업반원들은 집체적지혜를 발휘하여 소둔로를 자체로 만들고 대용열전대를 리용하여 가단주철을 생산함으로써 부속품제작기일을 단축시켰다.길이가 9m인 두터운 강판을 가공하여 차틀을 제작하는 어려운 일이 제기되자 한 종업원은 로라식지구를 창안하였으며 조립공들은 프레스와 공구, 지구를 창안도입하여 40일은 실히 걸릴 차체골조조립작업을 단 1주일동안에 끝내였다.

당 제4차대회가 가까와오자 강선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당대회에 드릴 선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사실은 무궤도전차작업반원들의 심장을 더욱 끓게 했다.

우리가 할 일이 더 없겠는가?

이런 생각에 골몰하던 작업반원들은 어느날 진행된 회상기학습시간에 앞을 다투어 토론했다.

《그래 우리 18명 로동계급이 고작 한대의 무궤도전차밖에 만들어낼수 없단 말입니까? 영광스러운 당대회에 우리 어찌 무궤도전차 한대만을 몰고갈수 있으며 무슨 면목에 수상님을 뵙겠습니까.항일유격대원들이 연길폭탄을 만들던 그 정신으로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입니다.내 생각에는 몇대 더 만들자는 의견입니다.》

《옳소! 두대 더 만듭시다.》

《아니요.다섯대는 만들어내야 하오!》

이렇게 되여 한창 만들고있는것외에 4대의 무궤도전차를 더 생산할것을 결정하였다.즉석에서 작업반에 로력이 더 보충되였으며 무궤도전차생산을 위한 5개의 조가 구성되여 서로 경쟁을 벌렸다.

전차가 거의 완성되여갈 때 당원들은 전차안을 말끔히 거두고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시였다.다음 붉은색으로 이렇게 또박또박 써붙였다.

《수상님의 교시대로 우리는 우리 모양의 무궤도전차 다섯대를 꼭 만들어 당대회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날부터 그들은 작업장을 집으로 삼고 결사전을 벌려 불과 몇달사이에 끝내 5대의 무궤도전차를 만들고야말았다.

력사적인 당대회에 드리는 선물로 모든 지혜와 정열을 쏟아부어 생산한 무궤도전차들이 공장정문을 나설 때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누구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주체50(1961)년 10월 10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첫 무궤도전차를 보아주시려고 승호리(당시)에 있는 시운전장에 나오시였다.거의 메로 두드리다싶이 하여 만든, 미흡한 점이 적지 않은 무궤도전차를 보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분하게도 확실히 보기 좋다고, 우리의것이 좋다고 매우 만족해하시였다.그러시고는 이 무궤도전차는 우리의 로동계급들이 당 제4차대회를 기념하여 만든것이니 《천리마 9.11》 형이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그 이름까지 친히 달아주시였으며 앞으로 무궤도전차화를 실현하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그날 저녁 무궤도전차작업반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르시였던 전차안에 또다시 모여앉았다.그 전차의 운전대를 잡고 첫 발동을 걸었던 작업반원이며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다는 감격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껏 전차를 닦고 또 닦은 작업반원, 시운전을 며칠 앞두고 신병으로 병원에 떠밀리워갔다가 수령님께서 자기들이 만든 전차를 보아주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아바이…

그 밤이 지새도록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그들의 가슴속에는 계속혁신, 계속전진하여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더 좋고 더 편리한 무궤도전차를 더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보내줄 신념이 바위처럼 자리잡았다.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자!》

이런 글발을 자기들의 일터에 큼직하게 써붙인 그들은 1 500t유압프레스를 만든것을 비롯하여 천수백건의 기술혁신안과 창의고안을 도입하였을뿐아니라 수십대의 새로운 기계와 2 000종의 공구, 지구들을 만들어내여 제일 어렵던 골조작업을 프레스화하였다.이렇게 되여 거의 손로동에 의거하던 무궤도전차제작공정이 기계화되였고 천리마시대의 자랑스러운 창조물인 《천리마 9.11》형무궤도전차가 줄줄이 생산되여 평양의 거리를 달리게 되였다.

이듬해 5.1절날, 명절분위기로 흥성이는 거리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높이 흔들어주시며 첫 무궤도전차를 타고 기뻐하는 수도시민들을 축복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첫 무궤도전차를 만들던 때를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지금도 승호리에 나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무궤도전차를 보아주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그때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를 보아달라고 하기에 승호리에 나가 시운전하는것을 보았습니다.그때 무궤도전차를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괜찮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우리의 로동계급이 자체의 힘으로 전기기관차와 무궤도전차를 만들어낸것을 보고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일군들속에서 사대주의와 기술신비주의를 없애기 위한 투쟁부터 벌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리마 9.11》형무궤도전차, 정녕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것이라면 그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기어이 실현해내고야마는 수도로동계급의 무한한 충성심과 불타는 애국적열정의 산물이였다.

보수주의와 기술신비주의를 후려갈기고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천리마 9.11》형무궤도전차는 어제날 화물자동차수리공장으로부터 우리 나라 륜전기계공장들을 대표할수 있는 공장으로 전변된 평양무궤도전차공장 혁명사적물보존실에 전시되여 잊을수 없는 사연을 전하고있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수령의 구상과 의도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앞장에서 관철해온 영웅적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의 투쟁정신과 본때는 년대와 세대를 이어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몇해전에는 새형의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를 우리 힘, 우리 기술로 만들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기쁨을 드리고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후 짧은 기간안에 교통뻐스와 2층뻐스시제품을 개발한 수도의 려객운수부문 로동계급,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교통운수수단을 마련해주려는 당의 뜻을 받들고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이런 미더운 로동계급의 투쟁과 더불어 이 땅우에는 자랑스러운 창조물들이 끊임없이 태여날것이다.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