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6월 3일 로동신문
천만의 심장에 끓어넘치는
《자기
이 땅에서 가장 공고하고 열렬한것은 무엇인가.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날이 갈수록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것은 무엇인가. 누구나 뜨겁게 사랑하며 부르는 노래 《고백》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 누가 그 누가 불러서 그 품에 안기랴 심장이 심장이 불타서 꿈에도 안기네 … 이것은 결코 그 어느 창작가의 두뇌에서 나온 구절이 아니다.우리 인민모두의 꾸밈없는 심장의 고백이며 절절한 생활체험이다. 피눈물의 12월을 보내고 맞이했던 주체101(2012)년의 설명절이 돌이켜진다.
명절을 맞으며 가볼데가 많지만
아버지의 품에 안긴 크나큰 행복에 손이 시린줄도 모르고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는 원아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던 따뜻한 그 손길,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도 손수 닦아주시며 울지 말고 사진을 찍자고, 울면 사진이 잘되지 않는다고 하시며 혈육의 정을 다해 원아들을 위해주시던
어느 한 정치평론가는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조선인민들이 어버이로 믿고 살던
하늘땅을 놀래우는 비애의 곡성과 강처럼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 있을가.이것이 진보적인류의 우려였다. …뻐스와 치료소들에서 더운 차를 마시며 조의를 표하는 나라, 호상을 서는 젊은이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장갑을 끼워주며 건강을 살펴주는 특이한 인정을 목격하지 못했을것이다.과연 택시들이 병약자들을 찾아 무료봉사했다는 사실을 믿을수 있겠는가.하지만 이 모든것은 엄연한 현실이였다.
세계 언론기관은 도의를 지키는 인민들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해주신분이 가장 큰 슬픔을 안고계신
…어버이사랑에 습관된 조선인민은 금방 어버이께서 다시 오시였음을 알았고 자기들의 마음의 문을 여신 그분이시야말로 어버이이심을 확인하였다.…
공식추대가 있기 전에 이미 그분을 자기들의
마음이 끌려!
이 짧은 한마디에
27hp밖에 안되는 작은 목선을 타시고 풍랑을 헤치시며 서남전선의 최남단 최대열점지역에 위치한 섬방어대들을 찾아가시던
무도는 적들이 도사리고있는 연평도가 지척이고 바다날씨도 나쁘기때문에 거기로는 절대로 들어갈수 없다고 하는데 그 누구도 자신의 결심을 돌려세울수 없다고, 무도에는 자신께서 제일 사랑하는 병사들이 있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무도에는 가면서 장재도에는 가지 않았다고 하면 그곳 군인들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고, 군인들이 있는 곳은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여도 다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적들이 도사리고있는 서해의 최대열점지역을 찾아주신
생활용물자를 실어다주는 배가들어 올 때면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 떨쳐나 반가이 맞이하고 떠나갈 땐 배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우군 하던 군인가족들이였다.그런데 그 외진 섬초소에까지 찾아오신
영광의 자리에 없는 남편때문에 서운해할 한 군관안해의 마음까지 헤아려 그의 어린 아들을 품에 꼭 안아주시며 자신께서 이애를 안고 사진을 찍어야 출장중에 있는 애아버지가 기뻐할것이라고 하시면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신
천만부모의 사랑을 합쳐도 대신 못할 그 사랑을 안으시고 우리의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맞으며 인민군렬사묘들을 잘 꾸릴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옛날부터 묘에는 묘주가 있다고, 그런것만큼 지난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여 희생된 인민군렬사들의 묘들에도 응당 묘주가 있어야 한다고, 바로 우리 당이
몇해전 평양가방공장을 찾으시였던
우리 힘으로 교복과 학습장, 교과서는 물론 가방까지 다 생산하여 아이들에게 안겨주는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힘겨워도 보람있는 일을 해놓고보니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자신께서는 이것을 락으로, 복으로 생각한다고 하시며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예로부터 자식을 하나 키우는데 오만자루의 품이 든다고 하였다고,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백만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이것은 우리 당의 자식복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자신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데 억만자루의 품이 든다고 하여도 그것을 고생으로가 아니라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이처럼 위대하고 자애로우신 인민의 어버이께 그 누구인들 매혹되지 않겠는가.
이 땅의 방방곡곡에 우후죽순처럼 일떠선 인민의 보금자리들을 안아볼 때면
큰물피해를 받은 천여세대나 다시 건설해놓는것으로써는 정말 량심이 허락치 않을것 같다고, 자신께서 직접 책임지고 떠맡아 인민군대와 함께 검덕지구의 광산마을들을 세상에 없는 광산도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사상초유의 산악협곡도시로 꾸리겠다고 하신 못 잊을 그 말씀을 생각할 때면 어느 시각에 물먹은 철길로반들이 주저앉을지 모르는 위험한 길을 헤쳐 인민을 찾아가시던
자신께서는 설사 몸이 찢기고 쓰러진다 해도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순간에나 변함없이, 사심없이 우리 인민을 높이 받들어 혁명앞에 충실할것이라고 하시며 인민을 위한 고생을 자신의 직업으로 여기시는
6년전 10월, 라선전역에 펼쳐졌던 잊지 못할 광경이 삼삼히 떠오른다.
어제는 직접 피해복구현장을 돌아보아야 마음이 편할것 같아 찾아왔다고, 또 오늘은 새로 건설한 살림집들을 먼저 돌아보아야 마음이 놓일것 같아 찾아왔다고 하시며 한달사이에 두번이나 라선땅을 찾아주신
라선전역에서 발휘한 인민군군인들의 위훈을 생각하면 가슴이 후더워지고 세상에 대고 자랑하고싶은 심정을 금할수 없다고, 기념사진을 찍고 가야지 그대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수만명 군인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주시는 그이를 우러러 군인들은 말그대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우리
바로 그날 세계는 조선의 혼연일체를 보았다.
진정 자연의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지만
언제인가
물론 그는 재능있는 시인이였다.그러나 비결은 창작적재능에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이 높이 들었던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구호는 누가 가르쳐준것이 아니였다.그것은 피바다와 불바다를 헤쳐오는 간고한 혁명투쟁과정에 조선의 혁명가들이 스스로 자각하고 내세운것이였다. 매혹과 흠모!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이루어지는것도 아니며 강요한다고 하여 생기는것도 아니다.자기
우리 조국과 인민의 운명이고 미래이신
자기
라선시의 큰물피해를 직접 목격한 한 외국인은 《가산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어른이고 아이고 가슴에 꼭 안고있는것이 있어서 무엇인가고 물었더니 조선의
무더기비에 의한 사태로 집이 무너질 위험한 순간에
우리에겐
력사는
인민에 대한
오늘도 래일도 우리 인민은
본사기자 조향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