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6월 4일 로동신문
그는 오늘도 사랑하는 일터에 동지들과 함께 있다 대흥무역지도국 일군이였던 김영춘동무에 대한 이야기
《일군들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누구보다 애국의 열정으로 불타야 하며 언제나 애국투쟁의 선봉에 서서 인민들과 함께 애국의 구슬땀을 바쳐야 합니다.》 생이란 무엇인가.인간의 참된 삶이란 어떤것인가. 우리 인민이 즐겨부르는 노래 《생이란 무엇인가》는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있다.생이란 마지막순간에 뒤돌아볼 때 웃으며 추억할 지난날이라고. 그렇다.긍지높은 추억속에, 떳떳함과 자부속에 한점 부끄러움도 없이 돌이켜볼수 있는 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인생, 참된 삶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산 한생이였다.그렇게 빛내인 값높은 삶이였다. 당과 조국을 위해,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생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고 우리곁을 떠난 대흥무역지도국 일군이였던 김영춘동무, 그는 과연 어떤 인간, 어떤 일군이였는가.
생을 마친다 해도 당결정은 관철해야 한다
지난 3월초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길에 나서는 김영춘동무에게 안해는 걱정어린 어조로 물었다. 《다문 며칠이라도 집에 있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가요?》 대답대신 헌헌한 웃음을 뒤에 남기고 멀어져가는 남편을 최춘영동무는 젖어드는 눈길로 바래웠다.얼마전부터 모진 아픔이 엄습해오는 속에서도 당 제8차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해 밤잠마저 잊고 사는 남편이였던것이다. 그는 꿈에도 알수 없었다.그때로부터 불과 10여일후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될줄을. 하지만 그 시각 김영춘동무는 자기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있었다.불치의 병에 걸린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그는 도리여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였다.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결정을 높이 받들고 단위에서 계획한 중요한 사업이 그로 하여금 하루하루를 분과 초로 쪼개며 달음쳐 살게 하였다. (설사 생을 마친다 해도 당결정은 기어이 관철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투철한 신념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나라의 화학공업발전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사업을 책임적으로 마무리한 김영춘동무는 그만 침상에 쓰러진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당정책관철을 자기 한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였습니다.》 김영춘동무를 추억하며 당초급일군이 한 이 말속에는 그의 남다른 인생길과 삶의 자욱자욱이 그대로 비껴있다. 그와 함께 일한 나날을 돌이켜볼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군 한다.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헌신성을 지닌 불같은 인간, 어떤 시련과 난관앞에서도 비관을 모르는 락천적인 사람, 참된 사랑과 정으로 심장을 불태운 열혈의 동지…
그러나 그 모든 추억에 앞서 사람들의 심장속에 깊이 남아있는 김영춘동무의 모습, 그것은 생의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오직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어느날 이른아침 김영춘동무는 만수대언덕으로 올랐다.
당의 높은 신임과 기대속에 책임적이고도 중요한 단위의 사업을 맡게 된 시각
《지금도 당에서 맡겨준 영예로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가사보다 국사를 먼저 놓고 늘 일밖에 모른 남편을 추억하며 최춘영동무가 한 말이다.김영춘동무는 그날 평범한 군인가정에서 나서자란 자기를 어엿한 일군으로 키워준 당의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할 맹세를 굳게 다지며 만수대언덕을 내리였다. 열정과 헌신으로 충만된 그의 한생은 그 맹세를 지켜 불같이 살아온 과정이였다.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보람찬 나날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있은것은 언제나
오늘도 사람들은 당의 뜻을 받들어 단위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꾸리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있다. 책임일군으로 갓 임명된 어느날 김영춘동무는 일군들과 종업원들앞에 나섰다.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우리 단위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한계단 끌어올리는것은 우리가 당앞에 다진 맹세이며 죽으나사나 기어이 해내야 할 사업입니다.》 당시 운영중에 있는 설비의 3배에 달하는 설비들을 새로 갖추기 위한 투쟁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아름찬 과업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그것이 이제 곧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게 되리라는것을 의심하지 않았다.한것은 여러해동안 고락을 함께 하는 과정에 당정책관철의 길에서 불가능이란 모르는 김영춘동무의 사업능력과 기질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사실 그에게 설비를 마련할수 있는 그 어떤 경제적타산이나 담보가 있는것은 아니였다.당에서 바라는것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여도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는 각오와 신념뿐이였다. 그는 불같이 살며 일했다.일터에서는 물론 길을 걸으면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사색과 탐구를 멈추지 않았고 주체조선의 공민된 긍지와 높은 민족적자존심을 지니고 다른 나라 기업체들과의 사업을 능숙하게 벌려나갔다.그의 이러한 투철한 각오와 치밀하고도 정확한 조직사업, 결패있는 사업전개력은 응당한 결실을 가져왔다.불과 몇해밖에 안되는 사이에 능력이 큰 설비들을 일식으로 갖추고 나라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대외무역활동을 통이 크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당의 의도와 구상을 실천으로 받들어가는 높은 충성심과 완강한 일본새는 그가 자체의 힘으로 부두를 건설할것을 결심하고 공사를 짧은 기간에 해제끼도록 한데서도 잘 알수 있다. 몇해전 김영춘동무는 검푸른 물결이 철썩이는 대동강하류기슭을 오래도록 거닐었다.자기의 부두가 없어 다른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좀처럼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던것이다. 물론 전문항만건설단위가 아니므로 자체로 수천㎡의 부두를 건설한다는것은 너무도 아름찬 일이 아닐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당정책을 관철하는 길에서 경중을 따질줄 모르며 일단 결심이 서면 끝장을 볼 때까지, 실리가 날 때까지 밀고나가는 그의 완강한 실천력은 부두건설을 결심한 후 공사의 첫삽을 박은 날부터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어느날 세찬 바다바람에 기중기와 련결된 강철구조물이 무섭게 흔들리는 위급한 순간이였다. 《쇠바줄을 당기라!》 하는 웨침과 함께 김영춘동무는 누가 말릴새도 없이 사람의 팔뚝만 한 쇠바줄을 어깨에 멨다.그 모습은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나선 불사신의 모습이였다.그러자 김영춘동무의 뒤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쇠바줄에 어깨를 들이댔다. 마치도 불비쏟아지는 돌격로를 앞장에서 열어나간 전화의 용사마냥 공사장의 제일 어려운 모퉁이를 한몸으로 맡아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일군으로서 당앞에, 조국앞에 지닌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것이 어떤것인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하였다. 우리는 여기에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는 만년대계의 부두를 훌륭히 건설한 과정과 단위를 로력절약형, 에네르기절약형, 부지절약형으로 꾸리고 과학적이며 창발적인 경영전략으로 해마다 당앞에 다진 맹세를 어김없이 실천한 이야기에 대해 다는 적지 못한다.
그러나 품들여 마련한 새 설비마다에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는 신념의 글발을 제일먼저 써붙이도록 하고 종업원들을 그 어떤 절해고도에서도 변치 않는 충신들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 사실과 그리하여 바로 그가 일하는 단위에서 38시간이나 홀로 풍랑세찬 날바다와 싸우면서도 결사의 의지로
보답의 첫걸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몇해전 그에게
그는 진정 당에서 준 과업앞에서는 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집행하고야마는것을 체질화한 당정책결사관철의 제일기수, 우리 당의 참된 전사였다.
참인간이 남긴 삶의 메아리
김영춘동무가 우리곁을 떠난지도 두달이 퍽 넘었지만 그와 오래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추억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군 한다. 동지들의 심장에 지울수 없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김영춘동무, 그는 참된 일군인 동시에 참된 인간이였다. 지금으로부터 여러해전 사무청사와 나란히 번듯한 문화후생시설이 일떠섰다. 일군들과 종업원들모두가 훌륭히 꾸려진 목욕탕이며 식당을 돌아보고있던 때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이라실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김영춘동무였다. 그날 보이라실에 선풍기를 설치할데 대한 과업을 받은 후방경리일군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때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겨울인지라 늘 훈훈한 기운이 떠도는 보이라실에 웬 선풍기인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는 일군에게 김영춘동무는 말했다. 《보이라실에 들어가보면 다 알게 될거요.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철에도 땀을 철철 흘리고있는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더구만.우리 일군들은 사업과 생활의 첫자리에 언제나 종업원들을 놓을줄 알아야 하오.》 그는 이런 사람이였다.출근길에 제일먼저 들어서는 곳이 사무실이 아니라 종업원들의 일터이고 퇴근길에도 집이 아니라 생활상애로를 겪고있는 종업원의 가정부터 먼저 찾는 일군, 하루의 많은 시간을 로동자들속에서 지내면서 그들이 아파하고 걱정하는 문제, 생활에서 걸린것이 무엇인가를 자기가 직접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는 일군이 바로 김영춘동무였다. 새해를 맞으며 달력을 집과 사무실에 걸 때마다 그가 맨 처음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수십명에 달하는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생일이 이제는 머리속에 환하여도 드바쁜 사업일정으로 혹 잊어버리기라도 할가봐 달력의 날자밑에 그날이 생일인 종업원들의 이름을 꼭꼭 적어넣군 하는것이였다. 언제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김영춘동무가 종업원들과 함께 깊은 산골짜기에서 부두건설에 필요한 막돌채취작업을 하고있던 때였다.어느날 작업의 쉴참에 그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한쪽에 떨어져앉아 귀속말을 나누고있는 두사람을 띄여보게 되였다. 슬그머니 그쪽으로 다가앉은 그는 두 종업원의 말에 귀를 강구었다.알고보니 그들은 작업장에 함께 나온 어느 한 처녀종업원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문제를 토의하고있었다.김영춘동무는 어려운 속에서도 동지를 위해 마음쓰는 그들이 더없이 미더웠고 고맙기까지 했다. 다음날이였다.그 처녀종업원은 뜻밖에도 푸짐한 생일상을 받아안게 되였다.그러나 사람들은 그 생일상을 위해 김영춘동무가 밤새 수십리 먼길을 다녀왔다는것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 몇해전 김영춘동무가 동해기슭의 어느 한 단위를 찾았을 때였다. 훌륭히 꾸려진 관리소건물을 기쁜 마음으로 돌아보던 그는 한곳에 이르러 오래도록 걸음을 뗄줄 몰랐다.뒤미처 다가온 그 단위 일군에게 김영춘동무는 구내의 휴식터에 놓여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혼자말처럼 뇌이였다. 《의자는 참 멋있는데 이제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한여름이면 그늘 한점 없는 이 의자에 사람들이 앉기나 하겠는지…》 무슨 일을 하나 하여도 대중의 리익과 편의를 우선시하는것을 어길수 없는 사업준칙으로 하고있는 김영춘동무의 진정에 일군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그러나 구내에 수종이 좋은 나무와 잔디를 심자고 하는 그의 말에는 머리를 저었다.관리소건물자체가 부두가에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일군이 《콩크리트우에 어떻게 나무를 심겠습니까.》라고 말하자 김영춘동무의 눈가에 미소가 비꼈다. 《종업원들을 위한 일에서는 돌우에도 꽃을 피울 각오쯤은 되여있어야지.콩크리트바닥을 까내고 흙을 펴면 얼마든지 나무와 잔디를 심을수 있소.》 그날 손에 함마를 직접 틀어쥐고 땀흘려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일군들은 자기들이 지녀야 할 멸사복무의 자세와 립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심장으로 깨달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접한 날 주변마을사람들이 달려와 그런 참사람도 가는가고 눈굽을 적신 가슴뜨거운 사실은 김영춘동무의 인간됨을 그대로 말해주고있다. 문화후생시설을 일떠세운 후 보이라의 증기로 목욕탕은 물론 사무실들의 난방까지 보장하도록 한 뒤였다.김영춘동무는 일군들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인민반〉이 마음에 걸리누만.나이많은분들이 한겨울에도 뜨뜻한 구들에서 앉아지낼수 있게 난방관을 그쪽으로 뽑을순 없을가?》 《우리 인민반》, 일군들은 이 말속에 담겨진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우리 단위주변의 마을사람들은 다 한집안식구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아빠트마당에 흠이 갈세라, 마을휴식터의 울타리도색이 벗겨질세라 늘 왼심을 쓰고 국제로인의 날이면 마을의 늙은이들을 모두 초청하여 푸짐한 식탁을 마련해주군 하던 그였던것이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날씨에 언땅을 까고 난방관을 설치하기 위한 공사를 벌리는 일군들과 종업원들에게 마을주민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인민을 제일로 사랑하고 아끼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실
우리는 생각해본다. 어느 한 일군이 뜻밖의 일로 침상에 눕게 된 소식을 듣고 출장길의 피로도 아랑곳없이 또다시 그달음으로 수천리 먼길을 달려간 뜨거운 마음에서, 일년사시절 바다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종업원들을 위해 해마다 솜옷과 작업복은 물론 작업장갑까지 꼭꼭 마련해주도록 한 아낌없는 헌신에서, 생의 마지막나날에조차 나이찬 아들의 장래문제가 아니라 종업원들의 후방공급사업에 대해 마음을 쓴 사심없는 진정에서 우리 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자기의 뼈와 살로 체질화한 참된 일군의 고결한 인간미를. 하기에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오늘도 가슴젖어오는 심정을 이렇게 터놓고있다. 《그는 가지 않았습니다.그토록 사랑하던 일터에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시대가 찬양하고 인민이 기억하는 참된 인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는것이다. 지난 3월 19일 김영춘동무는 정든 일터가 바라보이는 창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당의 뜻을 받들어가는 길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지혜를 합치고 정을 나누던 혁명동지들의 손을 꼭 그러쥔채. 금시라도 열정넘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것만 같은 그를 보며 사람들은 오열을 터치였다.불치의 병으로 진단받은 때부터 참기 어려운 아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까지 출근길에 올랐던 김영춘동무였다.
삶의 순간순간 오로지 당의 뜻대로만 살며 일해온 김영춘동무, 비록 육체적생명은 끝났어도 그의 값높은 삶은 오늘도 수백수천의 심장속에, 전진하는 대오의 앞장에 기발처럼 휘날리고있다. 본사기자 리남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