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6월 5일 로동신문
우리는 영원히 사회주의를 사랑하리라 김일성상,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 인민 누구나 제일 사랑하며 널리 애창하는 대중가요로 공인되여있다.우리 인민의 생활과 우리 식 사회주의에 대한 예술적상징과도 같은 이 국보적명곡의 가치를 두고 일찌기
《우리 인민들과 어린이들이 즐겨부르는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주체50(1961)년,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 드리는 인민의 다함없는 충성의 선물로 가요 《세상에 부럼없어라》가 태여난지 어느덧 60년이 되였다.당 제8차대회를 계기로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
《세상에 부럼없어라》, 이는 노래이기 전에 우리 인민이 자기의 생활체험으로 창조하고 실증한 사회주의철학이다.바로 이 명곡에 우리의 사회주의가 력사의 풍파속에서도 붕괴되지도, 변질되지도 않고 의연히 승승장구하는 비결에 대한 명백한 해답이 있다.
명곡이 태여난 고향집
《세상에 부럼없어라》! 제목부터 희한한 이 명곡이 다름아닌 전재고아들이 사는 학원에서 태여났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누구도 곧이 믿지 않을것이다.흔히 고아들의 운명은 불행과 설음의 상징으로,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론의되군 한다.부모도 집도 혈육도 없어 자기의것이란 목숨밖에 없는 고아들의 섧은 마음에 부러운것은 얼마나 많고많으며 세상 또한 얼마나 어둡고 모질던가. 가요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전재고아들이 살며 공부하던 해주유자녀학원(당시)에서 태여났다.명곡의 가사가 집체작으로 된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전쟁의 첫째가는 수난자들은 고아들이다.력사는 민족의 자주권과 국토를 사수하는 사생결단의 싸움판에서 고아들의 운명문제가 국가의 중대사에 포함되여 론의된 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동서고금의 전쟁사에 없는 충격적인 결정과 조치와 더불어
정녕 원아들에게 있어서
전쟁의 준엄한 나날에 어리신
주체42(1953)년 4월 어느날 학원의 원아들은
그날의 감격에 대하여 한 원아는 후날 이렇게 회상하였다.
《다함없는 흠모와 신뢰, 고마움의 정을 한마디로 담아낼수 있는 그런 부름을
주체48(1959)년 5월 22일은 해주유자녀학원출신 원아모두가 한생토록 가슴에 안고 사는 뜻깊은 날이다.바로 그날 꿈결에도 뵙고싶던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것은 못 잊을 그날에
주체50(1961)년, 당 제4차대회를 계기로 진행되는 전국유자녀학원 및 초등학원예술축전에 참가할 공연준비로 해주유자녀학원도 들끓었다.고마운 우리 당에 드리는 학원의 노래를 창작하는 과정에 《우리의 아버진
이렇게 태여난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합창이 절정에 오르던무렵
관중은 관람석에 계시는
《세상에 부럼없어라》, 그것은 지구상에 처음으로 한개 국가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참다운 사회주의제도가 이 땅에 탄생하였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인민의 긍지높은 선언이였다.진정 그것은 항일의 혈전으로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건국의 초행길과 전쟁의 불구름을 헤쳐오는 가장 어려운 시련속에서 나라의 아버지가 되시여 5천년 력사에 가장 큰 영광과 행복을 인민에게 안겨주신
학원에서 태여난것으로 하여 일부 사람들은 가요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아동가요로 보는 편견도 가지고있었다.그러나 인민은 이 명곡이 세상에 처음 울려퍼지던 그때부터 자기들의 생활의 주제가로, 전인민적인
사회주의교향악
지난 4월 28일 동평양대극장에서는 작곡가 김혁생일 100돐 기념음악회가 진행되였다.《내 나라》, 《청년사회주의건설자행진곡》을 비롯하여 김혁선생이 작곡한 명곡들이 련이어 무대에 오른 음악회에서 절정을 이룬것은 합창 《세상에 부럼없어라》였다.《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작곡가 김혁선생이 인민이 사랑하는 음악가로 주체예술사에 빛나는 공적을 세울수 있게 한 그의 창작활동의 최고대표작이며 또한 인간 김혁의 곡절많은 인생의 총화작이기도 하였다. 전라남도의 농촌마을에서 태여난 김혁선생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러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음악을 배우고싶어 9살에 집을 뛰쳐나왔지만 나라없던 그 시절의 김혁은 고아 아닌 고아, 정처없는 방랑음악가였다.짓밟히고 쫓기며 현해탄과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흩어져가던 망국민들의 운명의 선률은 아무리 오선지에 그리고그려도 눈물에 젖은 《아리랑》곡조뿐이였다.
나라는 비록 해방되였어도 서울에서 김혁선생이 문을 연 음악연구소는 그토록 갈망하던 인민음악의 싹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허물어지고말았다.그때 그의 귀전에는
(가자, 북으로!
건국의 터전에 근로의 땀도 후련하게 뿌리고 전화의 나날에는 전선의 용사들과 숨결을 같이하면서 어제날의 방랑음악가는 새 조선의 인민과 함께 세상에 다시 태여났다.전쟁시기에 《복수하리라》, 《승리의 씨앗》, 《우리 위생병》을 비롯한 여러편의 노래들을 작곡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그의 창작활동은 전후복구건설과 더불어 더욱 활기를 띠였다.명곡 《내 나라》를 창작하고나서 김혁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의 평생소원이 내 나라, 내 민족을 마음껏 노래하는것이였는데
인민은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들이였지만
김혁선생이 해주시의 한 세멘트공장에 현실체험을 나갔을 때였다.공장에서 갑자기 발생한 사고로 생산이 멎게 되였는데 내부에 숨어있던 나쁜 놈들의 음모라는것을 알게 된 로동자들은 주먹을 틀어쥐고 들고일어났다. 《쥐새끼들이 아무리 쏠라닥거려도 우리 로동계급의 힘찬 전진을 절대로 막을수 없소.》
로동자들은 로보수시간을 줄이려고 채 식지 않은 로에 서슴없이 뛰여들었다.죽음도 두렴없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혁선생의 마음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이런 힘을 꺾을자 어디에 있으랴!) 작곡가는 로동자들의 뒤를 따라 젖은 가마니를 들쓰고 로안으로 뛰여들었다.그날의 감동깊은 체험을 그는 두고두고 잊지 않았다. 천리마운동이 고조에 올랐다.우리 손으로 만든 첫 뜨락또르, 자동차가 와릉와릉 동음을 터치고 곳곳에서 인간사랑의 서사시들이 련이어 태여나면서 이 땅에 천리마의 발구름소리마냥 장엄한 교향악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그 교향악의 주제가 바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력사에 유일무이한 집단주의구호였다.
주체49(1960)년 8월에 진행된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서
당 제4차대회를 앞두고 해주유자녀학원을 찾았을 때 김혁선생은 학원에서 원아들이 공연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원아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예술소조활동도 도와주면서 한식구처럼 지내던 어느날 운동회가 벌어졌다.가없이 푸른 하늘, 랑랑히 울려퍼지는 손풍금소리, 아이들의 즐거운 환호성… 그 광경을 취한듯 바라보고있던 작곡가의 뇌리에 한줄기의 유정한 선률이 섬광처럼 번뜩이였다.그는 다급히 오선지에 선률을 적었다. 《도 레 미 미 레 미 도…》
흥분한 작곡가는 그달음으로 피아노앞에 마주앉았다.김혁선생은 새로 창작한 곡을 아이들도, 어른들도 불러보게 하면서 정성껏 다듬었다.하늘은 푸르러도 마음은 즐겁지 않고 풍금소리는 울려도 아름다운 선률은 흘러나오지 않던 어제날의 불우한 방랑음악가는 이렇게
당 제4차대회를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보람찬 투쟁속에서 주체문예사에 특기할 명작풍년이 마련되였다.우리 창작가, 예술인들은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와 같은 천리마시대와 사회주의조선을 대표하는 기념비적명작들을 창작하여 천리마운동과 사회주의건설에 거대한 공헌을 하였다.조선의 상징인 천리마동상도 주체50(1961)년에 건립되였다.
공화국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원칙에 기초한다.》는 조항이 명기되여있다.《각자는 자기를 위하여, 신만이 전체를 위하여》, 이것이 자본주의적인간관계의 기초라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는 우리 인민이 스스로 창조한 사회주의인간관계의 기초이다.주체의 사회주의조국에만 있는 이 인간관계가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철학적기초로 되였다.《세상에 부럼없어라》야말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음악화된 천리마시대의 걸출한 기념비적예술작품이다.
김혁선생은 생의 마지막시각에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깊은 뜻을 너희들은 다 모를것이다.그러나 앞으로 꼭 알게 될 날이 있다.조국이 통일되여 일가친척들을 만나거든 이 노래를 꼭 들려주거라.그러면 내가 왜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났고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를 리해하게 될것이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교향악과도 같은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천리마동상과 더불어 조선의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반세기이후에 받은 표창
주체105(2016)년 5월 6일, 신문과 TV를 통하여 온 나라 인민을 격동시키는 소식이 전해졌다.가요 《세상에 부럼없어라》에
력사적인 당대회의 개막과 더불어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에
《젊음으로 약동하고 비약하는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맞으며 로동당시대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걸작, 사회주의의 영원한 주제가인 〈세상에 부럼없어라〉에
주체문예사에는 한 예술작품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특별하시고 인민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도 주단으로 펼쳐주시는
항일전의 나날에 조국을 해방한 다음 공장도 땅도 인민의 소유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주고 병치료해주는것을 국가가 책임지고 하는 민중제일의 나라를 세우자고 하시며 그때에는 세상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보고 부러워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던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진가가 가장 두드러지게 빛난 때는 1990년대의 준엄한 고난의 행군시기였다.세상사람들은 사회주의의 운명뿐아니라 이 땅에 사는 매 가정, 매 인간의 운명까지도 엄혹하게 위협당하던 간고한 시련의 나날에 조선인민이 굶어쓰러지면서도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를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 힘 꺾을자 그 어데 있으랴 풍랑도 무섭지 않네》 하고 합창하는 인민을 쓰러뜨릴 힘은 이 세상에 없었다.그것은 바로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신념의 상징으로 귀중히 간직한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속에
1990년대의 시련속에서도 이 땅에 높이 울려퍼진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는 사회주의를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며 굳건히 받들고있는 우리 인민의 특이한 가치관과 행복관, 인생관을 온 세상에 똑똑히 실증해주었다.비록 아직은 부족한것도 많고 헤쳐가야 할 시련의 길도 멀지만 우리 인민은 어이하여 세상에 부럼없다고 즐겁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는것인가.풍랑도 두렵지 않은 백절불굴, 백전백승의 힘은 어디서 용솟음치는것이며 백화가 만발하는 래일에 대한 꿈은 왜 그리도 아름답고 확신에 넘친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리상하는 공산주의사회, 그것은 경제발전이나 사회발전의 단계로가 아니라 모든 인민들이 무탈하여 편안하고 화목하게 살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줄 알며 기쁜 일이 생기면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같이 슬퍼하는 집단주의인생관으로 론하는 사회이다.우리는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더 높이 부르며 인민의 리상사회, 공산주의사회를 반드시 건설할것이다.
가요 《세상에 부럼없어라》에
《나는
인민의 행복의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정녕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가 받은
당 제8차대회 결정을 높이 받들고 떨쳐나선 첫해 전투의 진군길에서 명곡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60년 력사가 담겨진 인민의 행복넘친 노래소리를 듣는 우리의 심장마다에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 땅우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게 하여야 합니다.》 동무들 다같이 노래를 부르자, 손풍금소리 맞추어! 우리 인민이 어제도 오늘도 희망에 넘쳐 부르는 이 노래를 위하여 만난을 박차고 힘차게 돌진해나가자. 《세상에 부럼없어라》!
사회주의종국적승리를 이룩한 그날에 우리 인민은 자기들앞에 활짝 열린 공산주의대문에 학설이 아니라 바로 이 명곡을 불멸의 사회주의진리로 아로새길것이다.가장 성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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