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3일 로동신문

 

사회주의대지여, 위대한 그 업적 길이 전하라

 

인민을 잘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는것은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의 소원이였다.

한뉘 농사를 짓고 살아오는 농민들에게도 바쁜 계절과 덜 바쁜 계절이 있건만 오고가는 사계절을 모두 바쁜 농사철에 사시며 나라의 농사일을 직접 맡아 지도하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 인민의 어버이가 그 언제 있었던가.

지금도 그려보느라면 우리 수령님 미림벌에서 농민들과 해방된 조국땅에 모를 내시던 잊지 못할 그날이 어려오고 폭양이 대지를 달구는 삼복의 무더위속에서 익어가는 논벼를 바라보시며 환히 웃으시던 한여름의 사연도 되새겨진다.

조용히 귀기울이면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날 농민들과 풍년기쁨을 함께 나누시던 우리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그 음성이 울려오고 눈덮인 농촌길에 새겨가시던 그이의 발자국소리도 들려올듯…

진정 우리 수령님께서 이 나라의 포전길들에 거룩한 발자취를 새겨가시며 맞고보내신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인민에 대한 열과 정, 무한한 헌신으로 이어진 인민사랑의 사계절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만물을 소생시키고 꽃피우는 봄은 누구에게나 기쁨과 격정, 희망과 랑만을 안겨준다.그래서 시인들도 앞을 다투어 봄을 노래하였으리라.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봄계절은 한해 농사를 위해 그 어느때보다 드바쁘게 농장벌들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 계절이였다.

해방된 이 땅에 토지개혁의 포성을 울리여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짓고싶어하던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신 그 첫봄과 더불어 우리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봄씨앗 움터나는 농장벌에 마음을 두고 사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전화의 나날 농민들과 함께 씨앗을 묻으시며 전시식량증산에로 불러일으키신 사연도, 저수지의 물맛까지 보아주시며 농사를 안전하게 짓도록 하신 사연도 고스란히 안고있는 내 나라의 봄.

온 나라 인민의 축원의 인사를 받으셔야 할 탄생일에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고 농사일때문에 로고를 바치시였다.

주체43(1954)년 4월 15일, 그날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전후 처음으로 맞으시는 생신날이였다.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며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치신 우리 수령님께 소박하게나마 성의를 다할 생각으로 일군들은 미리부터 그 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탄생일 전날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이 시련을 겪고있는데 수상이라고 해서 생일상을 차릴수 있겠는가, 동무들이 정 그러면 래일 자신께서는 사무실에도 나가지 않고 어디 멀리 가버리고말겠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이 설마 하고 생각하였는데 우리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아침일찍 승용차를 준비시키시더니 정말 교외로 차를 몰게 하시였다.이렇게 그이께서 찾아가신 곳이 바로 중화농업협동조합이였다.

(이런 날에 우리를 찾아오시다니?!)

그이께서 포전에 나오셨다는것을 알고 뒤미처 달려온 조합의 일군들은 그만 목이 꽉 메여와 그 자리에 멈춰서고말았다.우리 수령님의 옷자락은 새벽이슬에 젖어있었고 신발에는 진흙이 가득 묻어있었던것이다.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는 그들과 다정히 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이슬기가 채 가시지 않은 밭머리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농사일을 의논하시였다.

이 땅의 봄, 진정 그것은 자연이 불러온 봄만이 아니였다.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사랑과 고결한 헌신이 안아온 계절이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여름의 뙤약볕속에서도 그리고 비내리는 속에서도 농장길을 이어가시였다.

주체63(1974)년 8월말, 말복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이러한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중간지대 농사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강동군 문흥협동농장으로부터 시작된 현지지도의 그 길이 두번째 날에는 신양군으로 이어졌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뜨겁게 달아오른 산골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신양군 덕흥협동농장의 뒤그루강냉이밭도 돌아보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또 다른 농장의 강냉이밭을 보시기 위해 높은 산중턱의 경사심한 비탈길을 오르실 때에는 그이의 옷이 땀으로 화락하니 젖어들고있었다.하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시종 만족한 미소를 짓고계시였다.얼마후 강냉이밭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소출을 3배이상으로 끌어올린데 대하여 크게 기뻐하시면서 뜨락또르를 더 보내주겠다고 농장의 일군과 약속도 하시였다.

이때 동행하던 양덕군당의 한 책임일군이 가까운 곳에 있는 포전을 보아주시였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리였다.그러나 그는 곧 후회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겹쌓이는 로고를 미처 생각 못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한 자신이 민망스러워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 몰라하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너그러운 음성으로 산간군농사형편을 보면서 마저 보아야지 그저 갈수 없다고, 약을 100첩 먹으면서 99첩 먹고 한첩을 못 먹겠는가고, 마저 먹자고 하시며 산중턱의 고개길을 앞서 내려가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농업부문 령도사에 새겨진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 천이런가 만이런가.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려쪼이고 폭우 쏟아져내리는 길에 우리 수령님 주저없이 나서신것은 오직 하나 인민을 위해서였다.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우리 인민이 누구나 즐겨부르는 노래에는 들판에 넘쳐나는 구수한 낟알향기에 평생시름이 풀린다 하신 그 말씀 못 잊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이것은 결코 창작의 산물이 아니다.구수한 낟알향기, 싱그러운 과일향기에서 인민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시고 그래서 더더욱 현지지도의 길을 재촉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에 대한 산화폭이다.

어느해 9월의 일요일이였다.동이 트기 바쁘게 한 일군은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뜻밖에도 오늘 청산리와 옥도리, 온천군의 농장들을 돌아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전 한겻만이라도 쉬시고 오후에 떠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씀올리였다.

그때 우리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언제 일요일이라고 하여 집에 있어본 일이 있는가고, 여느때는 일이 바빠 현지에 자주 나가지 못해도 일요일에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 현실도 료해하고 인민들도 만나보고싶다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자신에게 이이상 더 만족한 일요일은 없다고, 이게 자신의 휴식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한집안식솔인양 분배몫을 몸소 계산까지 하여주시며 농민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시던 모습이며 몸소 명예농장원이 되시여 온 한해 대풍을 안아오도록 이끌어주시고도 자신께서 받으신 분배몫으로 륜전기재를 사서 보내주도록 하신 위대한 어버이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리 어찌 세월이 흐른들 잊을수 있겠는가.

인민의 행복이 주렁지기를 바라는 불타는 소원을 안으시고 헌신의 로고를 많이도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현지지도길은 흰눈덮인 겨울에도 끝없이 이어지였다.

주체52(1963)년 1월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간이라도 휴식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황해북도에 내려와계시였다.휴식하기 위하여 오셨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으시고 로고에 로고를 거듭하시던 그이께서는 밤새껏 내린 눈으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길을 헤쳐 서흥군 당현리(당시)를 찾으시였다.

그날 우리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한 작업반장을 만나 농장의 실태와 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시다가 이 고장에 논이 한뙈기도 없기때문에 농장원들이 백미구경을 못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아직도 펴이지 못한 이 고장 사람들의 생활이 마음에 걸리여 찬바람부는 길가에 오래도록 서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의 거듭되는 재촉을 받으시고서야 차에 오르시였다.

하지만 어떻게 알수 있었으랴.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의 고장을 다녀가시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은 농장원들이 밤새 잠들지 못하며 기쁨에 넘쳐있던 그 시각 우리 수령님께서도 그들의 생활을 놓고 잠 못 이루고계신줄을.

밤이 퍽 깊었다고 말씀올리는 일군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래일 다른 일을 뒤로 미루더라도 당현협동농장에 다시 가서 농장원들과 만나 그들의 생활개선대책을 의논해보자고 하시면서 정치위원회결정도 있고 해서 며칠간 쉬려고 왔지만 산간지대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지 못한것을 보고 자신께서 어떻게 편히 쉴수 있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다음날 당현리를 또다시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오랜 시간 농장이 잘살 방도를 의논해주시였다.

어찌 이곳 농장에만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이 새겨졌겠는가.

불철주야 1년 사계절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신 어버이수령님!

진정 한평생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해 마음쓰시며 헌신의 자욱자욱을 새겨가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내 조국의 날과 달들에 수없이 새겨져있어 우리 조국의 사계절은 인민의 심장마다에 자연의 계절만이 아닌 그리움의 계절, 뜨거움의 계절로 소중히 간직되여있는것 아닌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도 농장벌에 계신다.

우리의 사계절이 영원하듯이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의 농업발전에 쌓으신 업적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영원토록 빛을 뿌릴것이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