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10일 로동신문

 

《곤난앞에 주저말고 시련앞에 락심말며 무쇠같이

굳세게 전진할 때 승리는 우리의 수중에 올것이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투철한 신념이 맥박치는 뜻깊은 글발을 되새겨보며

 

오늘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탄생 127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으로 심장의 피를 끓이시며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형직선생님.

력사의 새벽길에 새겨진 그이의 자욱을 더듬을 때마다 우리 인민은 누구나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먼저 떠올리군 한다.

불후의 명작이 태여난지 한세기도 지났지만 오늘도 이 뜻깊은 노래는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혁명열, 투쟁열을 더욱 세차게 부어주며 조국땅 어디서나 끝없이 울리고있다.노래가 안고있는 사상과 정신은 우리의 투쟁과 생활속에 공기처럼, 생명수처럼 깊이 스며들고있다.

조선의 독립은 그 어떤 외세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힘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민족자주정신과 몸이 찢겨 가루가 된다 하여도 굴함없이 싸우겠다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 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기어이 승리를 이룩하겠다는 계속혁명의 정신으로 력사의 새벽길을 꿋꿋이 헤쳐가신 김형직선생님의 빛나는 한생은 남산의 푸른 소나무와 더불어 혁명의 새로운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천만인민을 끝없이 고무해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의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하다고 하여도 노래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담겨져있는 사상과 정신을 심장에 새기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김형직선생님의 한생은 비바람, 눈서리에도 굽힘없는 푸른 소나무의 넋과 기상그대로였다.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내 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력사의 새벽길을 헤치시던 나날에 김형직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절절히 터놓으신 심중이다.

김형직선생님의 그 말씀은 그대로 그이께서 품고계신 지원의 숭고한 사상, 열렬한 애국심의 세찬 분출이였다.

어느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강반석녀사께 자신의 원대한 뜻과 굳은 결심을 이렇게 피력하시였다.

《우리가 2천만 겨레를 하나로 묶어세워 일제를 물리치고 나라를 광복하려면 멀고 험한 길을 지나 바다로 가는 샘물처럼 뜻을 멀리 두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바위도 벼랑도 극복하며 꾸준히, 완강히 싸워야 하오.》

그렇듯 굳은 맹세를 다지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넓은 지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비시며 동지들을 묶어세워 대중적지반을 축성하시였으며 주체6(1917)년 3월 23일 자력독립의 기치를 높이 든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중추적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조국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 헌신분투하시던 그 나날 김형직선생님께서 겪으신 고생과 시련은 그 얼마였던가.

하지만 그이께서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굴하지 않으시였다.

일제에게 체포되여 옥중생활을 하신 후 감옥에서 나오실 때였다.원쑤들의 야만적인 고문으로 하여 김형직선생님의 몸상태는 겨우 걸음을 옮길 정도였다.그때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분노로 치를 떨며 김형직선생님을 들것에 눕히려고 하시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제발로 걸어가겠습니다,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야 제가 어떻게 원쑤놈들앞에서 들것에 들려가겠습니까, 놈들이 보란듯이 제발로 걸어가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결연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집에 돌아오신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감옥에서 물이라도 더 먹고 어떻게 하든지 살아나가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심을 했다.세상에 제일 못된 놈들이 일본놈들인데 그놈들을 그냥 놔둘수가 있느냐.형록이나 형권이도 왜놈들과 싸워야 한다.죽어도 피값은 해야 한다.》

꺾이면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굳센 지조를 지니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조선국민회조직을 복구확대하고 무산혁명의 기치높이 반일민족해방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만경대를 떠날것을 결심하시였다.

정든 고향을 떠나시기 전에 선생님께서 지으신 불후의 명작이 바로 《남산의 푸른 소나무》였다.

만년장설에도 억세게 서있는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마음속깊이 간직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불사신마냥 혁명의 길을 꿋꿋이 이어나가시였다.

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력사적필연성을 론증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관전회의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할데 대하여 정식 선포하시였다.그리고 그후 과학적인 투쟁방략이 명시된 력사적서한을 조선국민회 각 조직들에 보내시였다.

《…

곤난앞에 주저말고 시련앞에 락심말며 무쇠같이 굳세게 전진할 때 승리는 우리의 수중에 올것이다.…》

읽을수록 혁명열로 피가 뛰게 하는 서한의 여백에는 한그루의 푸르청청한 소나무가 그려져있었다.

눈서리에 묻힌대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절개, 양춘을 불러 비바람, 눈보라도 꿋꿋이 이겨내며 순간도 변색을 모르는 모습,

진정 남산의 푸른 소나무는 김형직선생님의 마음속에 간직된 백절불굴의 신념과 혁명적기상의 상징이 아니였던가.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안아오실 의지로 가슴 불태우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림종의 시각 자제분들에게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엄숙한 당부를 유언으로 남기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물려주신 지원의 사상과 3대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과 두자루의 권총이야말로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우리 혁명의 가장 고귀한 유산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길에서 굴함없이 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으시고 력사의 새벽길을 꿋꿋이 헤쳐가신 김형직선생님,

그이의 숭고한 뜻과 기개는 오늘도 우리 인민모두의 심장에 살아 맥동치며 혁명열, 투쟁열을 백배하여주고있다.

《곤난앞에 주저말고 시련앞에 락심말며 무쇠같이 굳세게 전진할 때 승리는 우리의 수중에 올것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니시였던 투철한 신념을 심장깊이 새겨안고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억센 기상으로 성스러운 혁명의 길을 꿋꿋이 이어가려는것이 우리 인민의 억척의 의지이다.

혁명앞에 모진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일수록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계속혁명의 정신으로 완강히 돌파해나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우리 혁명의 전진을 저애하는 원쑤들의 횡포한 도전이 가증될수록 투철한 공격정신으로 찬란한 래일을 설계하시고 그 장엄한 투쟁을 앞장에서 진두지휘하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거룩한 모습에서 우리 인민은 승리를 확신하며 사회주의강국의 그날을 향하여 발걸음 힘차게 내짚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만난을 짓부시며 용기백배, 기세충천하여 나아가는 우리 총진군대오의 앞길에는 오직 승리와 영광만이 있다.

최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