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24일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사 상보 위대한 자력갱생력사에 길이 빛날 전승세대의 전설적위훈 조국해방전쟁시기 후방인민들의 간고분투,
조선혁명의 승리적전진과 더불어 영원할 7.27이 다가올수록 값비싼 희생과 헌신으로 조국을 수호하고 자주강국의 초석을 다진 전승세대의 불멸의 위훈을 온 나라가 더욱 뜨겁게 새겨안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승의 력사는 위대한 정신으로 무장한 인민이 위대한 기적을 낳는다는 철리를 우리에게 깨우쳐주고있습니다.》 류례없이 가렬처절하였던 1950년대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안아온 위대한 영웅신화는 결코 세계를 놀래운 군사적기적만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따라 후방인민들도 《모든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후방도 전선이다!》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전선용사들과 한전호에 선 심정으로 포화속의 사선을 헤치며 사상초유의 불굴의 힘,자력갱생,간고분투의 정신력으로 창조와 혁신의 기적을 이룩하여 세인을 경탄시켰다. 전쟁의 준엄한 나날에 백두의 연길폭탄정신을 이어받은 군수로동계급의 군자리정신이 태여나고 각지에서 전시식량증산과 수송투쟁,증산경쟁운동,전선원호운동이 거세차게 벌어져 전승의 날을 앞당겨왔다. 최악의 역경속에서 모진 아픔과 시련을 딛고 일떠서 위대한 조국수호정신,혁명보위정신을 창조한 전승세대의 전설적위훈은 지나간 추억이 아니라 혁명적삶과 인생관의 훌륭한 교과서로 되여 후손들의 넋과 정신을 충성과 애국으로 불태워주고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당 제8차대회가 펼친 혁명의 새 승리를 향한 총진군길에서 맞는 조국해방전쟁승리 68돐에 즈음하여 전쟁의 3년간 후방인민들이 백두의 혁명정신,자력의 억센 신념으로 창조한 력사의 기적에 관한 상보를 발표한다.
결사관철,자력갱생의 메아리-《군자리》의 동음
이 땅의 모든것이 불타던 전쟁의 마지막날까지 용솟음친 영웅조선의 드세찬 반격의 힘,징벌의 불소나기는 자위의 병기창에서 마련되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전기간 전선에서의 승리의 포성과 함께 후방에서는 병기공장들의 힘찬 기계동음이 끊임없이 울리였다. 백두의 혈전길에서 창조된 수령결사옹위정신,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맨손으로도 총폭탄을 만들어내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 병기창마다에 세차게 나래쳤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과단성있는 조치에 따라 전쟁초기에 지하갱도들에 이설된 군수공장들에서 우리의 로동계급은 82㎜박격포를 비롯한 곡사포와 주요화력무기였던 기관단총과 탄알,수류탄 등을 대량생산하여 침략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해방후 자체의 힘과 기술로 첫 기관단총과 박격포를 만들어낸 영예를 안고있는 군자리로동계급은 백양산의 지하갱도에서 자력갱생,간고분투의 정신으로 일관된 군자리정신을 창조하였다. 싸워도 우리의 무기로 싸우고 전쟁에서 승리해도 우리의 무기로 승리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위의 사상은 백절불굴의 군자리정신을 낳게 한 원천이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앞두고 700정의 무기를 1주일안으로 긴급생산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명령을 받들어 결사대를 뭇고 적들이 공장가까이에 기여든 속에서도 악전고투하며 750정의 무기를 제기일에 만든 군자리로동계급의 혁혁한 위훈은 결사관철의 정신,자력갱생의 투쟁기풍이 안아온 자랑찬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빛나게 관철한 결사대원들은 후퇴의 촉박한 속에서도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갱도입구를 폭파하여 완전히 메워버림으로써 인민군대의 재진격과 함께 고스란히 보존된 공장에서 병기생산의 동음을 다시금 힘차게 울리게 하였다. 전시무기생산을 위한 투쟁의 나날 군자리로동계급속에서는 후세에 길이 전할 영웅적소행들이 수없이 발휘되였다. 형언할수없이 간고한 속에서도 이곳 로동계급은 전선의 포탄수요를 생산목표로 제기하고 전선에서 10배를 요구하면 우리도 10배로 올려야 한다고 하면서 과감한 증산투쟁을 벌리였다. 석수에 젖은 옷과 신발을 쥐여짜면서도 생산을 멈추지 않았고 작업장의 시계바늘을 꺼꾸로 돌려놓으며 철야전투를 벌렸다.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 통강냉이알과 소금을 주머니에 넣고 씹으며 포신을 깎고 포탄을 조립하였다. 기대를 뜨지 않으려고 물마저 극력 적게 마시였다. 자재가 떨어지면 하루밤에 100리 눈보라길을 헤치며 등짐으로 날라와 생산을 보장하고 폭약이 없으면 시한탄과 불발탄을 해체하여 보충하였다. 5분이 멀다하게 진행하는 시험사격에 고막이 터졌어도 오작은 적이라는 구호밑에 성능시험사격을 멈추지 않았으며 갱도안에 꽉 찬 화약가스로 하여 사격수가 앞을 가려보지 못하게 되자 신발까지 벗어 불뭉치를 만들고 목표옆에 서서 쏘라고 웨쳤다. 동무들이 만든 기관단총을 보기만 하여도 적들은 손을 든다고,기관단총으로 인민군대를 다 무장시키면 더 많은 적을 잡을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되새기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였지만 자재를 실은 차를 끝끝내 갱도앞에 대고서야 숨을 거둔 운전사도 있었다. 베아링이 떨어지면 재생하여 기대를 돌리고 기성관념에 구애됨이 없이 피나무를 비롯하여 우리 나라에 흔한 나무로 총가목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고지에서 병사들이 한발 쏘면 우리는 백발을 채워주자는 기준을 안고 합리적인 기대순회방법을 탐구하여 혼자서 기대를 6대까지 맡아 돌리며 매일 계획을 500%이상 넘쳐 수행하는 다기대공들이 련속 배출되였고 《탄알 한알은 적 한놈!》이라고 외우며 생산돌격전을 벌리는 속에 당시까지 세계군수공업력사상 있어본적 없던 탄약입곽기록도 창조되였다. 군자리로동계급이 벌린 대중운동가운데는 박격포직장에서 발단된 시간합리화운동도 있다. 작업교대시간보다 먼저 출근하여 그날 작업대상들에 대한 도면연구와 소재,공구준비를 사전에 빈틈없이 갖추어놓는 이 운동으로 포신가공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더 얻어낼수 있게 되였다. 창조와 혁신은 누구에게나 례사로운것으로 되였다. 모두가 새 기술창조에 떨쳐나선 가운데 두개의 바이트로 동시에 한 소재를 가공하는 혁신적인 방법이 창안되여 가공속도가 훨씬 높아졌으며 박격포의 생산능률은 2배이상 증가하였다. 누구나 땀배인 작업복에 우리의 《따바리》,우리의 수류탄,우리의 탄약이 제일이라는 화선병사들의 진심의 목소리가 실린 편지를 품고 하루를 열흘,백날 맞잡이로 분투하였다. 중중첩첩의 시련을 헤치며 전진해나간 준엄한 3년간에 군자리로동계급은 자력갱생,간고분투를 일상생활로 이어가며 병기생산을 전쟁전의 3배이상으로 늘이였다. 오늘도 군자리정신은 후대들에게 선렬들의 피와 넋이 스민 이 땅,이 제도를 어떻게 지키고 빛내여야 하는가를 깊이 새겨주는 힘있는 사상정신적무기로 되고있다. 《모든것을 전쟁승리를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에 결사관철의 투쟁으로 화답한 군자리정신은 병기공장 어디서나 높이 발휘되였다. 눈보라치는 엄혹한 산속에 용선로를 세우고 40여일간 수십만개의 수류탄을 생산함으로써 싸우는 조선의 새로운 기적을 창조한 병기공장 로동자들도 있었다. 북방의 한 군수공장 로동계급은 석수쏟아지는 갱도작업장에까지 찾아오시여 멸적의 총포탄으로 조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신념을 새겨주시며 포탄을 꽝꽝 만드는 영웅적로동계급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어떤 포악한 침략자와도 싸워 이길수 있다고 격려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에 2배이상의 포탄증산으로 보답하였다. 《수령이 제시한 과업관철에로!》,《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글발을 굴벽에 새기고 전기가 오지 않으면 맨손으로 피대를 돌리면서까지 하루계획을 300%,400%로 수행하였다. 견결한 수령결사옹위정신,자력갱생,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충만된 멸적의 병기들은 결전장마다에서 침략자들의 숨통을 무자비하게 끊어버리였고 적진지들을 아비규환의 불바다로 만들었다. 보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 할수 있는 조국해방전쟁은 조선의 청소한 병기공장들과 세계최대규모의 제국주의군수독점체들과의 대결이기도 하였다. 이 대결에서 침략자들은 저들이 력대로 벌린 주요전쟁들에서 입은 손실을 다 합친것보다 2배이상의 인적,물적손실을 보았다. 전승의 축포가 터져오른 열병광장의 뒤에는 허리띠를 조이며 일떠세우고 포화속에서 굳건히 다진 자위의 병기고가 있었고 조국방위에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친 강용한 군수로동계급이 있었다.
전쟁승리를 식량증산으로 담보한 애국자들
가렬한 포화속에서도 땅을 갈고 씨를 뿌린 농민영웅들의 선혈이 력력히 슴배인 드넓은 전야는 후손들이 영원히 새겨야 할 애국주의를 전하며 오늘도 조국수호의 제1제대 제1선참호로 되고있다. 전쟁의 3년간 우리 농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다.》,《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며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많이 내자!》라는 전투적구호를 높이 들고 전시식량증산에서 불멸의 위훈을 세웠다. 농민들은 파종전선에서의 승리는 곧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심장에 새기고 한손에는 총을,다른 한손에는 농쟁기를 들고 적들과 싸우면서 벼모를 내고 씨를 뿌렸다. 1951년 모내기철에 전투지역으로 변한 38°선연선과 해안지대에서의 파종은 우리 농민들의 영웅적인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장연군과 송화군의 농민들은 적들의 해안상륙기도를 물리치면서 수천정보의 논과 밭에 씨붙임을 제때에 하였다. 각지 농민들이 전개한 전선공동작업대활동과 전선청년돌격대운동은 전시식량증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조직하신 생산돌격대의 경험을 본받아 공동작업대,청년돌격대들은 파괴된 농경지복구를 비롯하여 모든 영농작업에서 핵심적역할을 하면서 농산물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철원,평강,김화,고성군에서 2,800여명이 망라된 80여개의 전선작업대가 씨붙임과 모내기를 성과적으로 보장하였으며 통천군농민들은 무장이양대를 조직하고 상륙을 기도하는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속에서도 모내기를 전해보다 20일이나 앞당겨 끝냈다. 전쟁의 첫해에 강원도의 농촌들에서 2,238개의 전선청년돌격대가 무어진것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전선청년돌격대가 조직되였다. 농민들은 적들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으로 방금 씨앗을 뿌린 농토가 뒤집히면 밤중으로 메우고 두번이고 세번이고 다시 씨앗을 뿌렸으며 적의 기총탄에 소가 쓰러지면 직접 가대기를 끌고 삽과 괭이로 논밭을 뚜져가면서 영농전투를 벌리였다. 신해방지구인 연백벌의 농민들은 적들의 집요한 폭격과 반동분자들의 파괴책동을 분쇄하면서 1952년에 모내기면적을 그 전해에 비하여 120%로 확장하였다. 전시식량증산을 위한 줄기찬 투쟁속에 농업생산에서는 해마다 놀라운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1950년도 알곡생산은 전쟁전 최고수확년도인 1948년 생산수준을 훨씬 뛰여넘었으며 1951년에 비하여 1952년에 총파종면적은 102%,알곡총수확고는 113%로 늘어났다. 전시환경에서도 평양의 농민들은 선진영농방법을 널리 도입하고 작물비배관리를 알심있게 하여 전쟁전보다 더 많은 알곡소출을 내였다. 동구역 칠불리 농민들은 관개시설이 파괴되고 전력과 화학비료의 공급이 거의나 중단된 악조건에서도 억세게 땅을 걸구어 전례없는 소출을 내고 어버이수령님께 편지를 올려 사랑의 회답서한을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였다. 농산물증산투쟁에서 농촌녀성들이 불굴의 정신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녀성들은 전선으로 떠난 남정들을 대신하여 《농산물증산은 녀성들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알의 쌀,한g의 고기라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순천군 은산면에서 2,380여명의 농촌녀성들이 166개의 전선로력반을 조직한것을 비롯하여 각지 농촌녀성들은 각종 형태의 로력반을 뭇고 적들의 폭격속에서도 굴함없이 영농작업을 벌려나갔다. 철산군녀성들은 6,500여t의 두엄을 등짐으로 날라 봄철씨붙임을 제때에 보장하였으며 신천군 로월면의 녀성들도 춘경대를 조직하여 100정보의 논을 자기들의 힘으로 갈아엎고 모를 냈다. 녀성보잡이운동은 전시식량증산을 위한 투쟁에서 조선녀성의 기개를 잘 보여주었다. 농촌녀성들은 밭갈이를 자기들이 맡아할 각오를 안고 보탑을 억세게 틀어잡았으며 이 운동의 앞장에는 애국렬사유가족들과 인민군대후방가족들이 서있었다. 녀성보잡이대렬은 급속히 늘어나 송화군 홍암리에서 녀성보잡이돌격대를 무은것을 비롯하여 1951년 한해동안 평안남북도,황해도에서만도 무려 1만 수천명의 녀성보잡이군들이 나왔다. 전국의 농촌들에서는 혹심하게 파괴된 관개시설과 농경지를 복구확장하며 관개용수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도 힘있게 전개되였다. 함경남도의 농민들이 산에 굴을 뚫고 물을 함주벌로 넘기는 어려운 공사를 제힘으로 해제낌으로써 700여정보의 논에 물을 원만히 공급할수 있게 한것을 비롯하여 1951년에 각지 농촌들의 관개면적은 전해에 비하여 7,290여정보나 더 늘어났다. 자급비료생산도 활기있게 추진되여 1947년에 비해 시비량이 1951년에는 216%,1952년에 와서는 무려 1,109%로 대폭 증가하였다. 다수확운동이 전군중적으로 전개되는 속에 1952년에 정주군에서만도 정보당 8t이상의 벼를 생산한 농민이 백수십명이나 나왔다. 《한근의 고기라도 더 많이 생산하여 전선에 보내자!》라는 구호밑에 무축농가를 없애기 위한 운동이 활발히 벌어져 축산업발전에서도 놀라운 장성을 기록하였다. 소겨리반과 품앗이반을 조직운영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전국의 농촌들에서 이 사업이 지방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진행되여 논밭갈이로부터 씨뿌리기,모내기,김매기 등 모든 영농작업에서 집단적혁신이 일어났다. 1951년에 함경남도와 자강도에서만도 6만 6,400여개의 소겨리반과 품앗이반들이 생겨나고 1952년에 평안남도에서는 품앗이반에 망라된 농민이 35만 7,710여명에 달하였다. 전국적범위에서 널리 운영된 소겨리반,품앗이반은 집단로동의 우월성을 시위하고 전시식량증산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농민들은 농기구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하여 각지에 농기구공장을 복구,신설,확장하였으며 야장간을 꾸려놓고 자기 손으로 농쟁기를 벼려냈다. 겹쌓인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극복하며 농산물증산에 헌신한 농민들의 애국투쟁으로 전시식량수요는 원만히 보장되였으며 포연서린 전야마다에 스민 농민영웅들의 피와 땀,넋과 정신은 전승의 자양분으로,조국번영의 귀중한 유산으로 되였다.
불굴의 육탄정신으로 보장한 철도수송
위대한 전승사에는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포화를 뚫고 전시수송을 보장한 철도부문 로동계급의 영웅적투쟁도 뚜렷이 기록되여있다. 전시수송은 적들의 야수적인 폭격이 끊임없이 감행되는 속에서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피어린 결사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명령을 심장에 새기고 수송전사들은 적들의 광란적인 폭격과 간첩암해분자들의 준동속에서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무비의 애국적헌신성과 용감성을 발휘하며 증송의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였다. 전쟁의 전기간 화물수송량과 주행거리에서 새 기준을 창조하기 위한 운동이 힘있게 전개되였다. 평양기관구의 로동자,기술자들은 《한대의 기관차도 멈추지 말고 전선에 동원하자!》라는 구호밑에 기관차의 수리기간을 줄이며 더 많은 짐을 끌기 위한 운동을 벌려 전쟁 첫해에만도 주행거리를 전쟁전에 비하여 230%로 늘임으로써 전선수송을 제때에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청진기관구의 수송전사들이 전쟁전보다 기관차의 운용효률은 120%,견인실적은 217%로 끌어올리였으며 함흥기관구에서는 전선수송돌격운동을 과감히 벌려 수송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 고조되는 견인초과운동과 함께 하루밤에 180㎞이상 달리기 위한 먼거리주행운동이 전개되는 속에 년간주행거리보다 3,400여㎞나 더 달리고 책임량보다 180차량의 화물을 더 견인한 영웅기관사와 기관차의 견인정량을 200%까지 끌어올린 기관사들을 비롯한 혁신자들이 수많이 배출되였다. 무사고주행운동도 널리 벌어져 서평양기관구 기관차승무원들과 수리공들이 300일무사고주행을 보장하는 전례없는 위훈을 떨쳤으며 이들의 뒤를 이어 1952년 한해동안에만도 26개의 기관구에서 무사고주행목표를 돌파하였다. 운전경험이 풍부한 기관사들로 조직된 정주기관구의 비상특수수송대는 불비속에서 결사의 수송전으로 주행거리를 늘이는 한편 더 많은 차량을 끌면서 무사고운전을 하였다. 견인불발의 완강한 투쟁속에 1952년도 철도화물수송계획은 초과수행되였으며 수송전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감사편지를 받는 무상의 영예를 지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감사편지에 무한히 고무된 철도부문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더욱 분발하여 1953년 상반년 화물수송실적을 그 전해 같은 기간에 비하여 196%로 장성시켰다. 그 수송량은 1951년도 한해동안의 수송량을 초과하였다. 철도부문의 사령원들과 역일군들도 적들의 폭격에 대처하여 수송지휘에서 고도의 기동성을 보장하기 위해 달없는 야밤에 집중적으로 렬차를 취급하는 방법과 여러가지 합리적인 집결수송을 들이대여 1953년 2월에는 전쟁기간의 최고수송기록을 세웠다. 항상 적기들의 맹폭격이 뒤따르는 전선길에서 수송전사들은 사선의 고비를 헤치며 전시수송에 분투하였다. 전선으로 달리던 렬차가 폭격으로 불이 달려 화차에 실은 포탄과 총탄이 작렬하게 될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추호의 주저없이 화염을 뚫고들어가 군수물자를 구출한 개천역 역장과 사리원,원산,고원기관구의 영웅기관사들을 비롯하여 전쟁전기간 수많은 수송전사들이 포화속의 철길우에 고귀한 피를 뿌리였다. 철도로동계급은 이동수리대들을 조직하고 선로와 다리를 제때에 복구하였으며 우회선의 부설,가설다리설치,폭탄구뎅이를 메우는 사업 등 철도의 정상운영을 위한 대책을 즉시적으로 세워나갔다. 《분초의 어김도 없이 렬차가 전선으로 달리게 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결사전을 벌린 철도복구대원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의하여 전쟁 제1계단시기에만도 580여개의 철다리와 158㎞의 철길,1만 9,340여㎞의 철도통신,수많은 기차굴들이 복구신설되였다. 수송전사들이 창조한 자력갱생의 신화속에는 파괴된 기관구와 기관차,화차,객차들을 빠른 시일안에 신속히 수리정비하여 철도의 정상운영을 보장한 영웅적투쟁일화들이 수없이 많다. 1951년 1.4분기에 40여대의 기관차와 수백대의 화차가 수리되고 그해말에는 기관차의 보유량이 년초의 근 4배에 달하게 되였으며 객화차부문에서는 년간에 3,400여대의 화차가 수리재생되였다. 전문급수복구대가 조직되여 파괴된 급수시설들이 즉시 복구되고 필요한 곳마다에 림시급수소가 신설확장됨으로써 어떤 정황속에서도 지장없이 기관차의 급수를 보장할수 있게 되였다. 적들이 백번 파괴하면 백번 다시 복구하여 전시수송을 기어이 보장하려는 백절불굴의 투쟁에 의해 철도에 대한 적기의 폭격회수가 전해에 비하여 무려 70여배나 늘어난 1952년에 420개의 다리와 94개의 차굴이 복구되고 240㎞에 달하는 철길이 새로 부설되였다. 전쟁전기간 철도부문의 로동계급이 적들의 폭탄을 해체하고 폭약을 꺼내여 철다리와 철길복구에 리용한것만도 근 100t에 달한다. 철도통신부문의 로동자들도 험한 산발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1951년말까지 4,240여대의 전주를 세우고 연 2만 4,690여㎞의 통신우회선을 구성하여 수송지휘의 신속성과 기동성을 원만히 보장한것을 비롯하여 전쟁기간 126만㎞ 구간의 통신선을 복구함으로써 전쟁승리에 이바지하였다. 결사적인 전시수송으로 이어진 위훈의 3년간 철도부문에서는 수십명의 영웅들을 비롯한 1만 6,780여명의 국가수훈자들이 배출되였다. 불비속의 철도는 전선과 후방을 하나로 련결시킨 조국의 동맥이였고 승리를 위함이라면 생명도 기꺼이 바치는 영웅적인민의 육탄정신이 과시된 또 하나의 결전장이였다.
영웅적로동계급의 창조본때-전시증산경쟁운동
조국해방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안아오기 위한 후방인민들의 대중적영웅주의의 전렬에는 로동계급이 서있었다. 전쟁초기부터 우리 로동계급은 나라의 맏아들답게 불굴의 창조와 혁신으로 충만된 전시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려 전선에 필요한 물자들을 원만히 생산보장하였다. 전시환경속에서도 증산투쟁을 강화하여 전선과 후방의 군수품과 생활필수품수요를 보장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투적호소를 높이 받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증산돌격전이 전쟁전기간 대중적인 경쟁운동으로 전개되였다. 전시증산경쟁운동은 적들의 야수적폭격과 포격으로 생산시설들이 파괴되고 많은 청장년들이 전선에 나간것으로 하여 생산조건과 자재,로력 등 모든것이 어려운 조건에서 벌어진 준엄한 투쟁이였다. 각지에서 전선에 나간 로동자들의 생산과제까지 자신들의 몫으로 간주하며 벌린 2인분,3인분 초과생산운동은 우리 로동계급의 애국심과 견인불발성을 그대로 과시하였다. 신의주방직공장 로동자들이 이 자원적애국운동의 봉화를 들었다. 전쟁이 일어난 첫날부터 그들은 인민군대에 입대한 로동자들의 몫을 개인별,작업반별 전투목표에 첨부하고 로동시간을 연장하며 쉬는날을 가림없이 낮에 밤을 이어 전시생산을 보장하였다. 이들의 집단주의적소행은 훌륭한 본보기가 되여 전국의 일터들에서 시간외로동 및 휴식일로동열풍을 일으켰다. 전쟁발발 10일동안에만도 전국각지의 공장,광산,기업소들에서 8,600여개 작업반 로동자들이 이 운동에 참가하여 무려 90만여시간을 생산에 더 바쳤다. 인민경제 각 부문에서 전선돌격대운동,전선작업반운동,청년작업반운동 등 각이한 형태의 대중운동들이 련이어 벌어져 전시의 엄혹한 조건에서도 인민경제전반에 전진과 비약의 활력을 더해주었다. 황해제철소 조강직장 로동자들은 《승리의 대》로 불리운 돌격대를 조직하고 매일 특수강생산계획을 140%이상으로,성진제강소 단조직장 로동자들은 생산배가운동을 힘있게 벌려 매일 책임량을 150%로 수행하였다. 대중적경쟁운동으로 전개된 전시증산투쟁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의 수많은 공장,기업소들이 전쟁 첫시기에 전쟁전에 비하여 생산수준을 1.5배이상으로 높이였으며 2개년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끝냈다. 우리 로동계급은 인민군대의 재진격과 함께 원쑤들의 야수적만행으로 혹심하게 파괴된 경제를 신속히 복구정비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백절불굴의 기상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1951년 상반년에 벌써 20개소의 광산,14개소의 제철소 및 제강소,12개소의 세멘트 및 벽돌공장,15개소의 국영직물 및 양말공장들을 비롯한 수많은 공업토대들이 복구되거나 조업하였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을 포괄하는 대중적증산경쟁운동의 거세찬 불길속에 1951년도 상반년 계획이 기한전에 성과적으로 수행되였다. 전시증산투쟁의 나날 우리 로동계급이 지켜선 공장과 초소마다에서는 온 나라를 격동시키는 영웅신화들이 끊임없이 태여났다. 적기의 폭격으로 위험에 처한 대형해탄로 가스탕크의 폭발을 한몸으로 막은 청진제철소 해탄직장 배송기운전공과 여러곳에 심한 파편상을 입은 몸이였으나 압축기를 끝까지 구원하고 최후를 마친 흥남비료공장 합성직장 탑운전공을 비롯하여 수많은 로동자들이 나라의 귀중한 재산을 희생적으로 보위하였다. 평양곡산공장 로동계급은 수송수단이 다 파괴되였지만 추호의 주저도 없이 거대한 설비를 분해하지 않고 이설하여 하나의 분공장을 일떠세우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결사대를 무은 로동자들은 적기들의 맹폭격속에서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고 대동강흐름을 리용하여 육중한 설비를 옮김으로써 20여일이 걸려야 한다던 운반을 불과 2일만에 끝냈으며 이런 방법으로 제약,암풀,간장,농마직장들을 건설하여 전선에 필요한 식료품과 주사약을 원만히 생산보장하였다. 성강의 로동계급이 쏟아지는 불비속에서도 굴함없이 《지하제강소》를 차려놓고 쇠물을 뽑아 전시강철생산을 보장한 투쟁은 세계전쟁사에 류례없는것이였다. 제강소 로동자들은 야장간에서 자전거바퀴로 만든 손풍구를 돌리며 소공구를 벼려내고 시한탄과 불발탄을 해체하여 마련한 폭약으로 갱도를 뚫어 전기로를 들여앉혔다. 무시로 작렬하는 포화속에서 용선로,압연기,가열기 등 방대한 설비들을 굴대우에 올려놓고 한치한치 밀어가면서 갱도로 운반하였다. 공무직장의 로동자들은 맨 땅우로 증기기관차를 1,000m나 끌어 갱도안에 들여놓고 전력을 자체로 생산하는 불굴의 신화를 창조하였다. 천정기중기가 없는 속에서도 용해공들은 갱도안의 전기로에 손로동으로 원료장입을 하고 쇠물을 부어냈으며 압연공들은 소형압연기로 중형압연소재를 밀어내면서 강재를 뽑았다. 이렇게 생산된 강철이 박격포탄,공병삽이 되여 전선에 실려갔고 보습,제초기가 되여 전시식량증산에 이바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다진 맹세를 지켜 락원의 로동계급도 전시증산투쟁을 영웅적으로 벌렸다. 용선로의 능력이 딸리면 배수관을 잘라 소형용선로들을 만들었고 폭탄깍지와 파편들을 주어다 수류탄체를 부어냈다. 주형공정이 드티면 곤두박힌 적비행기잔해를 뜯어다가 금형을 만들어 생산을 보장하였고 변전소가 파괴되면 자동차의 뒤바퀴에 피대를 련결하여 송풍기를 돌렸으며 그것마저도 할수 없으면 맨손으로 피대를 돌려 용선로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결사의 생산전투는 기록적인 수류탄증산으로 이어졌고 그 무수한 수류탄들은 징벌의 불소나기가 되여 원쑤들의 머리우에 들씌워졌다. 전시증산경쟁운동은 전쟁이 장기성을 띨수록 힘있게 벌어져 전례없는 새 기준량창조운동으로 승화되였다. 1951년 5.1절을 계기로 년간계획을 앞당겨 완수하기 위한 증산경쟁운동을 발기한 검덕광산의 로동계급은 종전의 작업조직을 개편하고 기술기능을 높여 로력을 절반이나 절약하면서도 채광에서 200%,굴진에서 130%이상의 새 기록을 창조하였다. 이 과정에 1951년 상반년 계획을 848%로 넘쳐 수행하는 자랑찬 혁신이 이룩되였다. 검덕로동계급의 투쟁에 호응하여 광업부문의 전체 로동자들은 대중적증산경쟁운동에 궐기하였으며 이 운동은 점차 산업별 경쟁운동으로 확대되였다. 전기,체신부문 로동계급은 무사고송전과 통신무사고를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전시에 날로 증대되는 전력 및 체신수요를 보장하였다. 《어로도 전선이다》라는 구호밑에 수산부문의 어로공들은 전시어로돌격대를 조직하고 적기의 폭격과 함포사격 그리고 적함선들의 준동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적극적인 어로전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아 전선과 후방에 보내주었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을 포괄하는 대중적증산경쟁운동의 불길속에 1951년 상반년에만도 2,650여명의 국가수훈자들이 배출되고 평화시기에는 상상도 할수 없던 새 기준량들이 련이어 태여났다. 한 영웅착암공은 선진적인 채굴법으로 1951년 6월에 자기 기준량의 14배이상에 달하는 쇠돌을 캐냈으며 1952년 4월에는 하루에 217t을 캐내는 새 기록을 창조함으로써 년간계획을 8개월이나 앞당겨 완수하였다. 다기대,다발파운동의 봉화를 들고 2대의 착암기로 1교대에 최고 4발파까지 보장하여 하루락광기준량을 1,400%로 넘쳐 수행하는 기적을 낳은 착암공도 있었다. 새 작업방법을 창안도입하여 8대의 직기를 돌린 평양방직공장의 한 직포공의 모범을 따라 온 공장 직포공들이 총궐기한 결과 1952년에는 전해에 비하여 323만m나 더 많은 천을 생산하는 일대 비약이 일어났다. 림산부문 로동자들은 류벌작업에서 자연적,계절적제한성을 극복하고 떼목이 내리는 시간을 단축하며 한번에 더 많은 떼목을 띄우기 위한 투쟁을 대담하게 벌리였다. 이들은 류벌작업의 기존관념을 깨뜨리고 례년보다 한달이나 앞서 첫떼를 내리였고 가을에는 한달이상이나 류벌작업을 연장하였다. 420리 구간의 류벌작업에서 보통 한 떼목에 20폭씩 련결하던것을 단번에 65폭씩 련결하고 회로기일을 3분의 1로 단축하는 혁신을 일으킨 림산사업소도 있었다. 우리 로동계급이 전개한 과감한 증산경쟁운동으로 하여 전시조건에서도 나라의 공업총생산액과 상품류통액은 해마다 장성하였으며 1953년 인민경제계획도 전쟁의 포성이 멎은 7월까지 매달,매 분기별로 넘쳐 수행되였다. 중첩되는 시련을 거대한 승리로 반전시킨 로동계급의 완강한 곤난극복정신,줄기찬 창조와 혁신의 기상으로 충만된 전시증산경쟁운동은 위대한 전승의 날을 앞당긴 강력한 추동력이였다.
전인민적인 투쟁으로 벌어진 전선원호운동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에서 전선원호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여 영웅조선의 필승불패성을 온 세상에 힘있게 과시하였다. 전쟁 3년간 우리 인민이 발휘한 원군기풍은 항일의 나날에 창조된 군민일치의 미풍을 전인민적사상감정으로 승화시킨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열렬한 애국주의의 고귀한 발현이였다. 전선에서 나의 고지운동,복수기록운동,《민청》호무기쟁취운동,모범중대운동의 불길이 거세차게 타번질 때 후방에서는 전선과 운명을 함께 하려는 인민의 의지가 맥박치는 전선원호운동이 전인민적인 투쟁으로 벌어졌다.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원군은 의무이기 전에 량심이고 영예였다. 농민들속에서 광범히 벌어진 전선원호미헌납운동은 참가범위와 헌납된 수량에 있어서 전선원호를 위한 농민들의 높은 형태의 대중적애국운동이였다. 군기기금헌납운동과 애국미헌납운동을 통하여 애국적지성을 발휘해온 농민들은 한알의 쌀이라도 전선에 더 많이 보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해 전선원호미헌납운동을 발기하고 앞을 다투어 여유곡물과 절약한 량곡을 전선원호미로 바치였다. 1952년 11월초 평원군의 8명 농민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벼 정당 8t이상을 생산하고 량곡 50가마니를 위대한 수령님께 전선원호미로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2년도 농업생산에서 온갖 난관과 애로를 극복하고 많은 수확을 거두었으며 지성어린 전선원호미를 보내준 농민들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평원군농민들이 추켜든 전선원호미헌납의 봉화는 삽시에 전국각지에 퍼져 전군중적인 애국운동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신천군의 한 녀성농민은 원쑤들을 천백배로 복수할 일념으로 80가마니를 원호미로 바치였다. 평안남도에서만도 1953년 2월말까지 6,390가마니의 전선원호미가 헌납되였다. 1952년 11월초부터 1953년 4월말까지 반년동안에 걸쳐 광범히 벌어진 전선원호미헌납운동에는 공화국북반부의 농민들이 모두 참가하였다. 전선원호미헌납운동은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강화하며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는데 물질적으로 기여하였을뿐아니라 전선에서 싸우는 인민군용사들을 원쑤격멸에로 힘있게 고무하였다. 후방인민들은 또한 전선에 지성어린 수많은 위문품과 위문편지를 보내였다. 평안남도의 인민들은 한달동안에만도 무려 8만 5,400여점의 위문품과 6,400여통의 위문편지를 보내였으며 함경북도의 농민들은 1951년 상반년동안에 수많은 자금과 막대한 량의 일용품,섬유제품과 식량,위문편지와 축기들을 전선에 전하였다. 강원도와 자강도의 녀성들도 마을에 있는 재봉기들을 모아놓고 낮에 밤을 이어 수많은 피복류를 마련하여 보내줌으로써 전사들을 격려하였다. 불비쏟아지는 전선에서 인민은 화선용사들의 믿음직한 부사수였다. 각지 인민들은 파괴된 철도,다리,도로를 희생적으로 복구하여 인민군부대의 진격을 보장하였으며 포탄과 탄약,식량 등 군수물자들을 앞을 다투어 전선에 날랐다. 후방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전쟁 제3계단시기에 복구신설된 도로의 총연장길이는 4,000여㎞에 달하였으며 다리는 1,220여개소에 35㎞나 되였다. 전선원호사업은 적아간의 공방전이 가장 치렬하였던 전선중부와 동부를 비롯한 전선지구의 인민들속에서 더욱 광범히 진행되였다. 1951년 10월 전선중부 상감령지구의 인민들은 담가대,전선위문대,부상병위문대 등을 뭇고 고지에서 싸우는 전투원들을 도와줌으로써 오성산,상감령전투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1952년 11월 한달동안에만도 연 8,300여명이 동원되여 왕복 40리의 험한 길을 하루에 두차례씩 오가면서 달구지와 등짐으로 포탄과 식량을 전호에까지 날라다주고 부상병들을 후송하였으며 이러한 원호사업은 전선동부에서도 줄기차게 벌어졌다. 남강마을녀성들은 고지에서 인민군대의 포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한밤중에 무거운 포탄상자와 탄약상자,밥함지를 이고지고 불타는 고지에 올랐다. 1951년 여름에 있은 큰 장마로 남강물이 넘쳐나 수송로가 완전히 끊어지게 되자 남강마을녀성들은 집에서 쓰던 널마루,이불장,집기둥까지 다 동원하여 배와 떼를 무어가지고 사품치는 강물을 헤치면서 월비산과 351고지에 탄약과 포탄,식량을 운반하였다. 험한 온정령을 넘어 화선까지 70여리길을 하루와 같이 왕래한 남강마을사람들을 비롯한 고성군인민들의 수는 1951년 가을에만도 연 2만 8,860여명에 달하였다. 전선원호에는 나어린 학생들도 참가하였다. 1951년 가을 전선동부지구의 140여명 소년들은 전선에서 탄약과 포탄이 떨어져간다는 소식을 듣자 소년전선원호대를 뭇고 총포탄과 식량운반에 나섰다. 1953년 6월 351고지에서 전투가 한창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을 때 송탄중학교의 소년전선원호대 300여명은 76㎜포탄을 연 사흘동안 10리가 넘는 고지에로 날랐으며 금강군의 여러 리에 조직된 소년전선원호대 대원들도 1211고지와 매봉산을 지켜 싸우는 인민군용사들을 도와나섰다. 인민들이 전호로 뛰여오는 숨결소리만 들어도 화선용사들의 전투력은 백배해졌고 원군의 뜨거운 정은 그대로 빛나는 군공으로 이어졌다. 강원도인민들은 전시수송로를 지키는 투쟁에서도 영웅적기개를 보여주었다. 전시수송에서 중요한 다리들을 결사적으로 지키기 위해 사수대들을 조직하였으며 폭격에 하루에도 몇차례씩 끊어져 복구할 시간적여유가 없을 때에는 폭탄과 기총탄이 우박치는 강물속에 서슴없이 뛰여들어 어깨로 다리를 떠받들어 탄약을 실은 자동차들을 통과시켰다. 1953년초 전략전술적의의가 매우 컸던 온정령으로부터 월비산에 이르는 우회도로건설에는 연 17만 3,400여명의 고성군인민들이 떨쳐나섰다. 그들은 인민군용사들과 함께 낮에 밤을 이은 결사전으로 50㎞에 이르는 우회도로를 불과 한달동안에 완공하였다. 후방인민들의 영웅적인 전선원호사업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하신 군민일치의 빛나는 전통의 계승으로서 싸우는 전선과 후방을 하나의 혈맥으로 이어놓으면서 전쟁승리를 믿음직하게 담보하였다. 포화속의 원군길에서 더욱 공고화된 군민대단결은 주체조선의 백전백승의 강력한 보검으로,우리 사회의 밑뿌리로 되였다.
1950년대의 조국수호자들은 위대한 수령의 령도따라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억척의 신념을 지니고 일떠선 인민에게는 무서울것도 불가능한것도 없으며 오직 승리만이 있다는 철리를 실천으로 증명하였다. 전승의 기적을 안아온 위대한 승리자들은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거창한 력사적과제를 억척같이 떠메고 원쑤들이 백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설수 없다던 땅에 천리마의 나래를 펼쳐 자주,자립,자위의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는 불멸의 공적을 이룩하였다. 오늘 우리 인민은 위대한 당중앙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고 전승세대가 발휘한 조국수호정신과 혁명보위정신,자력갱생,간고분투의 투쟁기풍을 이어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를 앞당겨올 필승의 신심과 혁명적열의에 넘쳐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뀐다 해도 전승세대의 위대한 정신과 업적은 우리 인민의 심장에 뛰는 붉은 피를 더욱 진하게 해줄것이며 주체혁명위업의 승리적전진과 더불어 영원불멸할것이다.
주체110(2021)년 7월 23일 평 양 출처 : 《조선의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