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24일 《통일신보》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력사적로정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짓부시며
범죄적인 동족대결책동으로 날이 갈수록 수세에 몰리게 되자 남조선당국자는 1978년 6월 23일 이른바 《남북경제협력협의기구 구성》에 대한 제의를 내놓았다. 그 골자는 《남북간의 교역, 기술협력, 자본협력의 길을 열고 이를 효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쌍방의 민간경제대표들이 참여하는 〈남북경제협력추진을 위한 협의기구의 구성〉을 제의》한것인데 이것은 철두철미 분렬을 노린 《두개 조선》조작책동의 산물이였다. 공화국정부는 이와 관련하여 7월 1일《로동신문》론평을 통해 《남북경제협력협의기구구성》제의를 《북남의 통일을 위한것이 아니라 두개의 조선을 목표로 한 분렬주의정책에서 나온 〈6.23선언〉의 재판》이라고 그 정체를 까밝히고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조선당국이 《6.23선언》을 취소하고 남조선강점 미군을 철수시키며 《반공》정책과 애국인사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는 동시에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67(197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0돐기념 중앙경축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에서 공화국정부는 조국통일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대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대화의 문도 열어놓고 있고 남조선의 당국자들, 각 정당들과의 대화의 문도 열어놓고 있다고 하시면서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립장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대화의 막뒤에서 딴 목적을 추구하거나 대화를 《두개 조선》조작을 위한 수단으로 리용하려 한다면 대화가 이루어질수 없으며 그러한 대화는 아무런 의의도 없다고, 분렬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대화를 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당국자들이 《승공》을 부르짖으면서 공산주의자들과 《경제협력》을 하겠다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것이며 그것은 분렬주의자의 정체를 가리워보려는 서툰 위장술에 지나지 않는다는것, 만일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와 진심으로 대화를 하고 합작을 하려고 한다면 민족분렬정책을 통일정책으로 바꾸고 반공정책을 련공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이것은 분렬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대화를 통해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자는것이며 북남대화를 당국자들뿐만이 아니라 각 정당들과의 폭넓은 대화로 전환시키자는것이였다. 이로부터 1979년 1월 23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북과 남이 7.4공동성명의 본래의 리념과 원칙으로 되돌아갈데 대한 문제,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즉시 중지할데 대한 문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위협하는 모든 군사행동을 무조건 즉시 중지할데 대한 문제, 북과 남의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문제를 내용으로 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제안에 대하여 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나자 남조선당국자들은 1월 26일 이에 형식적으로나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 없었다. 공화국정부는 1월 31일 조선중앙통신사 성명을 통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1월 23일 성명에 지적된대로 지난날 그러하였던것처럼 앞으로도 7.4공동성명의 리념과 원칙을 성실히 리행할것을 재확인하고 2월 1일 오전 10시를 기하여 상대방을 비방중상하는 모든 선전과 행사를 일방적으로 중지할데 대한 주동적조치를 취한다는것을 내외에 천명하였으며 남조선측에서도 해당한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은 남조선측이 1월 31일 조절위원회를 재개할것을 제의하여온것과 관련하여 2월 5일 성명을 발표하여 온 민족의 총의에 의하여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력사적과제가 일정에 나서고있는 조건에서 조절위원회와 같은 제한된 기구대신 전민족적인 대화와 협상을 마련하기 위한 예비적협의기구로서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킬것을 제의하였다. 이 건설적인 제안에 의하여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마련하기 위한 쌍방련락대표들의 접촉이 세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접촉들에서 공화국은 일관하게 당국자들만이 아니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참가하는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남측은 당국자들만이 참가하는 북남조절위원회를 재개할것을 집요하게 고집하였다.그리고는 그 무슨 《실무대표접촉》이라는 엉뚱한 문제를 들고나와 접촉앞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였다. 그런가 하면 공화국이 남조선에 대한 비난을 전면적으로 중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지방의 모든 선전수단을 총동원하여 공화국의 제도와 리념을 헐뜯는 비방선전을 전례없이 강화하였으며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을 일삼았다. 특히 남조선당국자들은 나라의 동서를 가로지른 군사분계선 전구간에 《철의 장벽》으로 불리우는 철근콩크리트장벽 구축을 더욱 다그쳤다. 콩크리트장벽은 남조선당국에 의해 1977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1292개의 말뚝을 박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동서의 산허리와 강하천을 가로지르며 240여km에 달하는 전구간에 구축되였다. 이로 하여 북과 남사이에는 8개의 군과 122개의 마을을 갈라놓고 3개 로선의 철길을 동강내였으며 220여개의 크고작은 도로들을 끊어놓은 분렬과 대결의 장벽이 생겨나게 되였다. 본사기자 최 광 혁 출처 : 통일신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