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6월 16일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민족끼리》기사편집국은 어제도 오늘도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겨레의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기치로, 등대로, 교과서로 되고있는
(4) 전체 인민을 미《군정》반대투쟁에로
해방후 그러나 당시 남조선에서의 가혹한 미《군정》통치는 우리 인민의 통일독립과 민주주의적발전을 차단하는 근본장애물로 되였다. 미《군정》은 인민들의 초보적인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마저 가차없이 유린하고 애국적민주력량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응당 우리 인민의 소유로 되여야 할 남조선경제를 《적산》의 명목으로 예속시켜 식민지지배자로, 략탈자로 군림하였다. 또한 남조선을 저들의 군사기지로 만들고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건설을 파괴하려고 획책하면서 리승만역도를 내세워 《단독정부》까지 수립하려고 책동해나섰다. 남조선에서 미국식생활양식과 양키식문화를 퍼뜨려 사람들의 머리속에 미국에 대한 환상과 숭미사대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나선 미국의 책동에 리승만을 비롯한 친미반동분자들도 적극 보조를 맞추고있었다. 미제의 이러한 반동적책동은 조선에서의 통일적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에 관한 《모스크바3국외상회의》결정을 파탄시키고 통일적인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을 가로막아나서는데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속에서는 미제가 제2차 세계대전때 련합국측에 가담하였고 전후에는 《해방자》, 《원조자》로 나서고있다는데로부터 미국의 이러한 침략적, 략탈적본성을 예리하게 가려보지 못하고 그에 환상을 가지고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미《군정》을 반대하는 투쟁은 미제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을 폭로하고 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애국적민주력량을 강화하여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과 통일적인 완전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해 절실한 요구였다. 미《군정》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리지 않고서는 조국의 통일과 민주주의발전을 위한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수 없었다. 이러한 정세적요구에 대처하여 주체35(1946)년 9월 22일 평양시에서는 서평양운동장, 동평양광장, 사동탄광광장 등 여러 장소에서 진행된 미《군정》을 반대하는 반미군중대회에서는 《미〈군정〉의 반동정책을 절대 반대하자!》, 《우리는 남조선인민들의 모든 민주주의적권리, 언론,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를 요구한다!》, 《조선인민의 자유행복을 위하여 싸우는 또한 미《군정》의 폭정을 반대배격하는 군중대회와 함께 미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항의문들도 수많이 채택하여 미《군정》당국에 보냈다.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에서 채택된 항의문은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이름으로 미《군정》당국에 모든 비민주주의적정책의 즉시 철페, 살인, 방화, 략탈 등 야만적행동의 즉시 중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빼앗는 반민주주의적폭압의 즉각중지, 체포된 이러한 항의문은 9월 28일 제2차 북조선 각 도인민위원회 선전원문화인련석회의와 11월 20일 북조선직업총동맹 제5차 확대집행위원회 등 수많은 회의들에서도 채택되였고 평양에 있는 미군련락기관을 통하여 남조선 미《군정》당국에 전달되였다. 미《군정》의 반동정책을 반대하는 항의문채택에는 공화국북반부 각지에서 250여만명의 각계각층이 참가하였다. 공화국북반부에서 벌어진 이와 같은 적극적인 미《군정》반대투쟁은 조국의 완전자주독립과 민주주의적발전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크게 고무격려하였다. 해방직후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민주건설성과에 고무되여 거듭 대규모의 투쟁을 벌려온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주체35(1946)년 여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반대하고 공화국북반부에서와 같은 민주개혁실시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발전되였다. 6월초 삼척탄광 4 000여명의 로동자들의 파업을 비롯하여 8월 15일 광주 화순탄광 로동자들의 투쟁, 8월 700여명의 하의도농민폭동 그리고 8.15직후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첫 대중적반미투쟁으로서 미제에 의해 조작된 《국립서울대학교안》을 반대하는 투쟁 등 남조선에서의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항거하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이렇듯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마침내 9월에 이르러 식량보장과 임금인상, 미《군정》의 온갖 폭압의 즉시중지, 민주주의적로동법령의 실시를 요구하여 벌린 로동자들의 9월총파업과 10월인민항쟁, 주체36(1947)년 3.22총파업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받았다. 북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는 주체35(1946)년 9월 28일 남조선로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지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조선로동자들의 요구조건은 전조선인민의 절실한 요구이라는것, 북조선직업총동맹산하 전동맹원이 이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할것을 결의다졌다. 그러면서 《조국의 완전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남조선형제들에게 우리의 심혈을 짠 정신적, 물질적원조를 주자.》고 하면서 《북조선직업총동맹산하에 단결된 전동맹원들은 로동시간을 한시간 연장시켜 조선민주건설의 토대를 더욱 공고히 닦는 동시에 한시간 연장임금으로 파업기금을 조성할것》 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북조선 각 도인민위원회 선전원문화인련석회의에서는 남조선로동자들의 총파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파업로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원조를 보낼것을 결정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원산철도공장과 평양담배공장, 로동신문사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 각지 공장, 기업소 로동자들과 사무원, 문화인 등 전체 인민은 남조선로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성원하는 직장대회와 군중대회, 시위들을 진행하고 증산돌격운동을 벌려 일요일은 물론 매일 로동시간을 연장하고 그로부터 받은 로임의 전부를 남조선로동자들에게 지원금으로 보내였다. 이렇듯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인 반미자주화투쟁과 그를 적극 지지성원한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투쟁은 통일적완전자주독립을 위한 온 민족의 열의를 드높여주고 통일위업을 힘있게 추동하는 커다란 힘으로 되였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 전진의 력사에 한페지를 기록하게 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