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15일 《우리 민족끼리》
[련재]
《우리 민족끼리》기사편집국은 어제도 오늘도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겨레의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기치로, 등대로, 교과서로 되고있는
(8) 망국적인 《단선단정》을 짓부시며
외세의 민족영구분렬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조국의 자주적통일독립을 성취하기 위한 거족적인 구국투쟁은 망국적인 《단선단정》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에로 이어졌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를 계기로 북과 남의 통일애국력량은 민족의 대의를 앞에 놓고 굳게 결속되였으며 망국적인 《단선》을 저지시키고 조국통일을 위한 구국투쟁에 적극 떨쳐나서게 되였다. 남북련석회의결정과 격문을 받들고 《단선》반대투쟁에 궐기한 북조선인민들은 주체37(1948)년 4월 25일 평양에서 34만여명의 참가밑에 남북련석회의를 지지하는 시민대회와 군중시위를 진행한데 이어 신의주, 청진, 원산 등 각지의 직장, 농촌, 가두들에서도 군중대회와 시위들을 련이어 벌리고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하는 결의문들을 채택하였다. 북조선인민들의 이러한 투쟁은 해방후 세번째로 맞이한 주체37(1948)년 5. 1절을 계기로 더욱 확대되였다. 북조선인민들은 5. 1절기념 군중대회를 통하여 단결된 민주력량을 더욱 집결시켜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을 이룩하려는 의지를 굳히며 대회장에 달려나왔다. 북조선 각지 5. 1절기념 군중대회참가자들은 《우리 민족의 남조선인민들도 북조선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성원밑에 《5. 10단선》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외세와 반동세력들의 민족분렬책동이 얼마나 악랄했는가 하는것은 당시 UP통신사 특파원 제임스 로이피의 기사를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그는 당시 남조선에서 《단독선거》의 공포분위기를 두고 《미군정찰기는 상공을 비행하였으며 〈선거장〉이 있는 곳에는 야구용타봉을 가진 〈향보단〉에 의하여 엄중히 경호되여있었다. 서울에는 수천명의 경관과 특별히 임명된 민간인이 미국군대의 지원밑에 각 요소와 교차점에 바리케드를 설치하였으며 각 골목입구에는 경비대가 배치되여있었다. 민간경비대원들은 도끼자루, 야구용타봉, 곤봉 등을 휴대하였고 〈조선경비대〉는 미국카빈총으로 무장하였다.》고 전하였다.(UP통신 서울발 1948. 5. 10) 그러나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그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매국적《단독선거》를 반대하여 결사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단독선거》를 위한 《선거자등록》이 시작된 첫날부터 《등록소》를 습격파괴하고 《선거》관계서류를 불태워버리는 등 적극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5월 8일 서울을 비롯하여 남조선전역에서는 일제히 《단선》반대총파업에 들어갔고 5월 10일에는 남조선 전지역에서 수백만군중이 《단선》반대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선거》를 거부하고 산과 숲속으로 들어갔는가 하면 수십수백개의 부락들에서는 《선거》에 전혀 참가하지 않았다. 수많은 《선거장》들과 《선거구》들이 분노에 찬 대중의 손에 의하여 파괴되였다. 특히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는 《선거》를 반대하는 인민봉기가 일어났다. 당시 《미군정》이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5. 10단선》을 전후한 1주일동안에 봉기한 인민들은 228개의 《선거사무소》를 습격하였으며 도처에서 악질관리들과 반동《립후보자》들을 처단하였다. 서울에서는 5월 8일부터 11일까지 4일동안에 3차의 대규모시위와 23차의 홰불투쟁이 벌어졌고 6개소의 반동통치기관과 28개소의 《선거사무소》가 군중의 수류탄벼락을 받고 파괴소각되였다. 이러한 투쟁은 남조선의 10개 도(서울시와 제주도포함), 156개의 시, 군가운데서 142개의 시, 군에서 치렬하게 벌어졌으며 이 투쟁에는 극소수의 친일친미파,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도시소시민, 중소상공인, 종교인 등 각계층 인민들이 거족적으로 참가하여 그 수는 무려 100만명에 달하였다. 대중적항쟁은 《국방경비대》에도 충격적영향을 미치였다. 인민들의 투쟁에 합류하는 군인들의 의거투쟁과 동정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제주도에서 제9련대관하 한개 중대의 의거에 뒤이어 남조선강원도 홍천주둔 제8련대산하 독립중대는 《군사연습》을 구실로 인민탄압에 나선 경찰의 기동을 저지시켜 《단선》반대투쟁을 지원하였고 5월 7일에는 해안경비선 《통천》호소속 대원들이 《단선》을 반대하여 의거입북하였다. 결국 남조선에서의 5. 10망국《단독선거》는 전체 조선인민의 거족적인 항거와 1 000여만명의 당원과 맹원을 망라한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한결같은 반대거부로 하여 완전히 파탄되였다. 이것은 또한 이는 4월련석회의에서 제시한 당면한 투쟁방향을 온 겨레가 뜨겁게 접수하고 투쟁에 떨쳐나선 결과였다. 실로 망국적인 《단선단정》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은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향한 북남조선 전체 인민의 단결력과 애국정신의 뚜렷한 시위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