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1일 로동신문

 

항상 나라와 인민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주체화의 한길을 끝까지 갈수 있다

평양곡산공장 지배인 박형렬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원대한 목표와 리상을 가지고 사업을 설계하고 작전하며 새것을 창조하고 받아들이는데서 개척자가 되고 선구자가 되며 일단 시작한 일은 완강하게 내밀어 끝장을 보는 실천가가 되여야 합니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혁명의 새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장엄한 진군길에 떨쳐나선 지금 우리 일군들은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

시대의 이 물음앞에 대답을 주는 한 일군의 모습이 있다.

평양곡산공장 지배인 박형렬동무이다.

그는 국산화를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원료, 자재수입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주체당생산공정을 완비하고 주체당에 의한 당과류생산체계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박형렬동무의 값높은 삶은 오늘날 인민생활의 안정향상을 책임진 경제부문 일군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은 무엇으로 표현되여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주고있다.

 

국산화는 우리의 생명

 

박형렬동무는 우리 식 주체당생산공정의 확립을 위해 하많은 시련과 난관의 고비를 넘고 헤쳐온 개척자들중의 한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 어느날 평양곡산공장의 어느 한 방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식 효소법에 의한 물엿생산공정을 일떠세워야 하며 힘들더라도 끝까지 이 길로 가야 합니다.》

불이 황황 이는듯 한 눈빛으로 절절히 말하는 사람은 지배인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박형렬동무였다.

순간 협의회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얼마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과류직장현대화를 다그치면서 동시에 강냉이가공공정과 물엿생산공정을 비롯한 앞공정현대화사업을 준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이 문제를 놓고 식료공업부문의 일군들과 연구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앉게 되였다.

협의회에서 가장 큰 론의거리로 된것은 생산공정을 어떻게 꾸리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대다수 사람들이 본래의 생산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려고 하였다.그런데 박형렬동무만이 대담하게 우리 식 효소법에 의한 물엿생산공정을 확립할것을 주장하였다.

물론 박형렬동무가 내놓은 안이 가장 우월한 방안이라는것을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그러나 당시 공장형편은 경험도 기술도 부족한 상태였다.파악도 없는 생산공정을 꾸려놓았다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 하는 물음이 박형렬동무를 바라보는 눈빛들에 비껴있었다.

박형렬동무도 꽤 해낼수 있을가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을 울려준것은 어버이장군님께서 우리가 꾸린 생산공정에서 하루빨리 당과류가 쏟아져나오기를 기다리고계신다는 한가지 생각이였다.

박형렬동무가 지배인으로 임명되기 불과 며칠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곡산공장을 찾아주시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장에서 본태를 잊고 당과류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는것을 아시고 못내 걱정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더 많은 사탕과 과자를 안겨주기 위해 수천리 먼길을 달리시였다는 소식에 접하고 공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전사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을 안고 가슴을 쥐여뜯으며 모대기였다.…

협의회가 진행된 날 박형렬동무는 창너머 별빛총총한 밤하늘가를 오래도록 더듬었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이밤도 불밝은 당중앙창가에서, 불철주야로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우리 장군님 평양곡산공장의 현대화공사가 끝났다는 보고를 기다리고계실지 어이 알랴.

박형렬동무의 온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지혜, 탐구의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다.새로운 각오를 안고 일떠선 그는 때로는 며칠씩 과학기술서적들을 탐독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장에서 오랜 기술자, 기능공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방도를 탐구하기도 하면서 끝끝내 그 누구도 해본적 없는 앞공정현대화계획을 완성하였다.

얼마후 공장을 찾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박형렬동무와 공장의 기술집단이 힘을 합쳐 완성한 앞공정현대화계획을 보아주시고 적극 지지해주시였다.

잊지 못할 그날 그는 심장으로 맹세다졌다.

(위대한 장군님 , 우리 식의 생산방법으로 기어이 당문제를 풀겠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현지지도가 위대한 장군님의 마지막현지지도로 될줄 어찌 알았으랴.

피눈물을 삼키며 일떠선 박형렬동무는 공장의 기술집단과 지혜를 합쳐 기술과제서도 작성하고 설비조립과 시운전도 진행함으로써 짧은 기간에 주체적인 당생산공정을 기어이 확립하고야말았다.

하지만 그날의 때늦은 후회와 뼈아픈 죄책감은 오래도록 박형렬동무를 비롯한 공장종업원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져있었다.하기에 그들은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 드리는 로력적선물로 공장을 현대화의 본보기로 꾸릴것을 결심하고 산악같이 떨쳐나섰다.

사실 석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근 50종에 100여대에 달하는 현대적인 설비들을 자체의 힘과 기술로 만든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하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가르쳐주신대로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배짱과 신념이 굳게 자리잡고있었다.

언제인가 설계도면대로 제작한 설비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은적이 있었다.한번, 두번 실패가 거듭되자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아무래도 이 설비만은 다른 단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시운전에서 또다시 실패한 날 박형렬동무는 기술자, 기능공들과 마주앉았다.공무직장의 오랜 기능공에게 먼저 담배 한대를 권하고난 그는 이런 말을 꺼냈다.

《지난해 공장창립일때 체육경기를 하는것을 보니 공무직장동무들이 전투력이 있습니다.》

지배인의 입에서 느닷없이 창립일소리가 나오자 그때까지 풀이 죽어 앉아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금시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한창 열이 올라 창립일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기술자, 기능공들을 둘러보며 박형렬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난 지금도 해방이 되였어도 아이들에게 사탕 한알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생일상까지 마다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심정을 안고 공장을 찾아오시였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여기 모인 동무들이 일을 잘하면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얼마든지 먹일수 있다고, 그러면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고 하신 어머님의 그날의 그 말씀을 우리 어찌 세월이 간들 잊을수가 있겠습니까.》

그제서야 지배인이 창립일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알게 된 공장종업원들은 서로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결의들을 다지였다.그들의 단합된 힘에 의해 공장현대화는 빠른 속도로 진척되여갔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우리 나라 식료공업의 본보기공장으로 훌륭히 개건된 평양곡산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강냉이로 만든 당은 주체당이라고, 주체철, 주체비료, 주체비날론이 나온데 이어 오늘은 주체당이 나왔다고 환하게 웃으실 때 박형렬동무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심장의 웨침이 터져나왔다.

(주체화의 길로만 나아가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가르치심을 공장의 둘도 없는 생명선으로 간직하겠습니다.)

 

0.1%도 허용할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박형렬동무는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은 그날 박형렬동무는 밤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해전 억수로 쏟아지는 찬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현대화의 본보기로 꾸려진 공장의 여러 생산공정을 기쁨속에 돌아보시며 이 공장은 주체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는 본보기공장, 자력자강의 창조대전에서 표준으로 내세울만 한 공장, 현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적인 공장이라고 온 나라에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에 천만분의 하나도 보답하지 못했는데 또다시 값높은 영예를 받아안고보니 기쁨보다 죄스러움이 앞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내가 과연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살며 일해왔던가?)

박형렬동무는 품속에서 수첩 하나를 조용히 펼쳐들었다.

가장자리에 보풀이 일고 색까지 바랜 수첩, 그속에는 지금까지 수입에 의존하고있는 보조자재들과 시약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공장의 총적인 국산화비중에 비해볼 때 그 량이 비록 많다고는 볼수 없었지만 왜서인지 그날따라 하나하나의 수입자재항목들이 비수마냥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며칠후 박형렬동무는 보조자재들을 국내원료로 대용하기 위한 방도를 찾기 위해 또다시 먼길을 떠났다.

참으로 어딘들 가보지 않았으랴.서해기슭의 광산들과 동해의 공장들 그리고 북방의 산골마을…

그 과정에 강냉이가공에 필요한것을 비롯한 여러가지 보조자재들을 국내원료로 대신할수 있는 확고한 방안을 찾아쥐게 되였다.

그러나 물엿가공과 옥당생산에 절실히 필요한 규조토만은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일부 지역들에서 규조토를 찾기는 했지만 그 질적지표가 공장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사업때문에 삼지연시에 갔던 박형렬동무는 서둘러 길차비를 하고 차에 올랐다.바로 그곳에서 수백리 떨어진 곳에 규조토가 있을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오직 하나 우리가 바라는 규조토가 바로 이 땅에 있을것이라는 믿음과 기어이 우리것으로 국산화를 완성하리라는 피끓는 맹세는 그의 걸음을 생소한 고장에로 무작정 이끌어갔다.

동행한 한 기술자가 벌방지대에서도 찾지 못한 규조토가 산골군에 있겠는가고, 먼길을 갔다가 실패하고 되돌아서게 되지는 않겠는지 걱정스럽다고 이야기했을 때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과연 시와 노래에서만 쓰이는 표현일가.왜서인지 난 그곳에 우리가 찾는 규조토가 꼭 있으리라는 느낌이 드는구만.》

그것은 박형렬동무가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조국의 풀 한포기, 막돌 하나도 가슴에 정히 품어안고 나라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재부로 만들기 위해 피타게 사색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시대의 참된 애국자이고 영웅이 아니겠는가.

그 기술자가 이런 생각으로 가슴이 뜨거워올라 오래도록 차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는데 산골길을 따라 힘겹게 달리던 차가 불쑥 멎어서는것이였다.

그곳에서 차길이 끝났던것이다.아직 목적지까지 가려면 수십리길을 더 가야 하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바로 이때 속상해하는 그의 마음을 눙쳐주려는듯 박형렬동무가 차에서 성큼 내려서며 말했다.

《차라리 잘됐소.걸어가느라면 규조토가 있을만 한 곳을 더 잘 찾아볼수 있지 않겠소.》

이렇게 말하고난 그는 골짜기사이로 길게 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색다른 흙을 보면 성급히 달려가 손에 움켜쥐고 살펴보기를 그 몇번,

마침내 어느 한 곳에서 그토록 애타게 찾고찾던 규조토를 보았을 때 박형렬동무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그 흙을 진귀한 보물처럼 소중히 품에 안은 박형렬동무의 눈귀로 뜨거운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두볼을 눈물로 적시는 그의 입가에서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이라는 노래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사람들이여, 이름없는 산기슭에서 우리의것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애착을 안고 더없는 희열속에 노래를 부르던 박형렬동무의 그 뜨거운 심장의 박동을 다시금 안아보시라.

나는 조국을 나의 살점처럼, 나의 생명처럼 진정으로 사랑했던가.이 땅의 풀 한포기, 돌 한개, 흙 한줌도 후손만대 물려줄 번영의 재부로 빛내이기 위해 얼마나 피를 끓였던가.

보조자재를 국산화한 박형렬동무는 또다시 효소생산을 국산화하기 위한 높은 목표를 내세웠다.

우리 나라의 시약을 가지고 효소를 생산하기 위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효소직장에서 불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이였다.

생산현장을 돌아보던 기사장이 실험실에서 시약분석에 열중하는 지배인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나 일에 열중했는지 눈에는 피발이 서고 입술은 온통 부르터있었다.

《힘들지 않습니까?》

박형렬동무는 수척해진 얼굴에 조용히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정말 힘드오.하지만 그 누구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아니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참으로 그것은 무조건, 끝까지의 비상한 결심을 다진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애민헌신의 력사가 깃들어있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주체의 신념이 비낀 주체당에 0.1%라도 남의것이 섞여서는 안된다는 철석의 신념을 뼈에 새긴 참된 인간의 진정이였다.이런 열혈의 인간이였기에 그는 원료, 자재의 국산화를 위한 당결정집행란에 《집행》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넣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나갈수 있었던것이다.

우리와 만난 초급당비서 김만손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2월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던 지배인동무는 주체당생산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어느 한 균이 모두 죽은것 같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그날은 수술을 하루 앞둔 날이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지배인동무가 당장 퇴원하겠다는것이 아니겠습니까.제가 그 몸상태를 가지고는 절대로 견디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이렇게 절절히 이야기하더군요.설사 이 한몸 쓰러진다 해도 국산화를 100% 실현할수만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과연 무엇이 박형렬동무로 하여금 이와 같은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국산화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수 있게 하였는가.

박형렬동무의 심장속에는 한생토록 잊지 못할 영광이 간직되여있었다.

그것은 우리 당력사에 길이 빛날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심정이 담겨진 축하문을 랑독하는 최상의 영예를 지니게 된것이다.

잊을수 없는 그날 박형렬동무는 크나큰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설레였다.

사실 그 영광의 대회장에 얼마나 많은 애국충신들이 당에 드리는 크나큰 로력적선물을 안고 모여왔던가.

그런데 크게 한 일도 없는 자기가 그처럼 높은 영광의 단상에 서게 되였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어데 있으랴.

박형렬동무가 그날에 읽은것은 축하문만이 아니였다.

당을 따라 영원히 충성의 한길을 가고갈 심장의 맹세문을 마음속으로 함께 읽었다.


* *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주체화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값높은 헌신의 자욱을 수놓아가고있는 박형렬동무를 또다시 온 나라가 따라배우도록 내세워주시였다.

우리 당을 받드는 길에서 영광의 절정에 오른 박형렬동무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런 삶의 메아리를 듣는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믿음과 기대를 심장에 쪼아박고 언제 어디서나 나라와 인민에 대한 생각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사람만이 주체화의 한길을 변함없이 끝까지 갈수 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