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3일 로동신문
조국이 가장 어려웠던 그때 화선군의들은 자신들의 실천적투쟁으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의 화선군의들은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고 생사기로에 놓여있던 영웅전사를 회복시킨것을 비롯하여 세계를 놀래우는 우수한 림상경험을 수많이 창조하였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새 사회건설에 갓 들어선 청소한 우리 공화국과 수적, 기술적으로 비할바없이 우세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치렬한 대결전이였다.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도 할수 있는 가렬처절한 전쟁은 새로운 발전의 길에 들어선 우리 보건부문앞에도 참으로 엄혹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전쟁이 일어날 당시 전국적으로 의사는 천명도 안되였고 외과의사는 백수십명밖에 없었다.더우기 우리 보건이 군진의학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만 놓고서도 전화의 보건일군들이 얼마나 어렵고 준엄한 시련을 헤쳐나가야 했는가를 잘 알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불타는 고지들과 엄혹했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서, 야전병원들에서 귀중한 전우들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 지어는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쳐 투쟁한 화선군의들의 영웅적위훈은
이 불굴의 힘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었던가.
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6월 25일 밤 자정이 거의 가까와오던무렵
그날
오늘도 사람들은
1953년 1월 10일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치던 이른새벽이였다.
그날
그 순간
세계전쟁사는 아직 화구를 막고 살아난 사람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전사가 입원해있는 전선사령부직속 38호병원을 급히 전화로 찾으신
그후
이런 믿음을 받아안은 전주식동지를 비롯한 군의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11발의 탄알과 무수한 파편으로 보기조차 참혹한 부상을 당한 전사, 수많은 군의들과 간호원들이 그를 위해 자기의 피를 주저없이 바쳤다. 1차, 2차수술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으나 아직까지 그를 살릴수 있다는 담보는 없었다. 마지막 세번째 수술을 앞두고 군의들은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예상치 않게 환자가 가끔 혼수상태에 빠졌던것이다.적기의 심한 폭격으로 의료진도 도착하지 못한 때였다.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환자를 놓고 모두가 어찌할바를 몰라할 때
평양에서 의료진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수술이 성과적으로 끝나고 전사가 의식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세계야전의학계를 경탄시킨 전화의 기적은 이렇게 창조되였다. 환자의 몸에서 열한발의 총탄과 많은 파편을 꺼내고 기적적으로 소생시킨 화선군의들의 투쟁이야말로 불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은 전투공로 못지 않은 위훈중의 위훈이라고 우리는 당당히 말하고싶다.
결전의 길에서 우리의 화선군의들은 그 어떤 정황속에서도 전우들의 위훈이 어려있는 귀중한 병력서만은 순간도 몸에서 떼여놓지 않았다. 병사에게는 혹간 쉴참이 있을수 있어도 화선군의에게는 휴식이 따로 있을수 없었다.깊은 밤에도 이른새벽에도 환자들을 돌보는 화선군의들의 눈은 언제나 잠들줄 몰랐다.단 한명의 병사가 남아 싸운다고 해도 거기에는 군의가 있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전투때에는 권총을 들고 싸우다가도 전투가 끝나면 환자들을 돌보고 부상병들을 호송하였다. 우리의 화선군의들은 줄폭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폭격속에서도 수술장을 떠나지 않았고 자기의 피와 살을 서슴없이 전우들을 위해 바쳤다. 호흡이 멎어가는 중상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여 숨길을 열어주고 욕창이 생긴 환자를 두손으로 받쳐든채 밤을 새우기도 했다. 전쟁의 포화속에서 열린 제1차 모범군의의무일군대회와 관련한 자료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적의 포위속에서 단신으로 45명의 부상병들을 구원해내고 마지막 2명을 업고 험한 산발을 넘어올 때 또다시 적에게 포위되자 대담하게 육박전을 전개하여 적 10여명을 살상하고 끝까지 자기 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한 김영진동무, 적탄이 우박치며 허리까지 빠지는 강물속에서 수십명의 부상병들을 하루밤사이에 호송한 김제운동무, 4개월간에 2 500여g에 달하는 자기의 피를 환자에게 수혈함으로써 수많은 환자들을 소생시킨 정명숙동무와 같은 량의 피를 바친 김세철동무…》 전시에는 환자치료에 필요한 모든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1951년 1월 23일부 《로동신문》에는 《눈내리는 어느날 저녁》이라는 제목으로 한 군의의 수기가 실렸다.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어느날 저녁이였다. 간호원동무가 나에게로 달려왔다.황종순전사가 매우 괴로와하며 열이 점점 오르고있다는것이다.전사의 체온을 측정한 체온계를 보니 39℃를 가리키고있다.나는 곧 주사를 놓을 준비를 하였다.그런데 증류수가 없어 주사를 실시할수 없었다. … 나는 생각다 못해 곧 불을 피우고 물을 끓여 증류수를 받아쓰기로 결심했다.몇분 되지 않아 소독기덮개에는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 그후 그는 얼마 안되여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다시 전선으로 나아갔다.나는 전쟁 6개월간에 벌써 백여명의 부상병을 이렇게 치료하여 전선에 내보냈다.내가 책임지고 치료하던 부상병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전선에로 재출전하는것을 볼 때마다 무한한 영예감과 기쁨을 금할수 없다.》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켜선 전체 보건전사들이여, 우리 잠시 전화의 화선군의가 피와 땀으로 새긴 이 력사의 기록앞에 자신들을 세워보자. 그들이 목숨처럼 지켜낸 피묻은 병력서앞에서 심장에 물어보자. 사회주의보건일군의 영예와 량심은 과연 어떻게 무엇으로 빛내야 하는가를. 전화의 화선군의들은 모두가 해당 분야의 무시할수 없는 실력가들이였다. 이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실력이 낮으면 귀중한 병사들의 생명을 잃을수 있었기에 이들은 화약내짙은 야전병원에 정적이 깃들 때면 분초를 아껴가며 학습을 하였다. 어려운 전시조건에서도 수술이 끝나면 한두시간씩 군의들과 간호원들을 위한 기술강의는 꼭꼭 진행되였다. 이렇게 사상정신적으로나 기술실무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이들이였기에 전우들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쳐 싸웠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조국해방전쟁시기 한 보건일군이 지은 시 《나의 피를 수혈하여》가 전시되여있다.
이 피가 들어가 화기를 주어라 창백한 그 얼굴에 붉음과 미소를 그리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보게 하리
이 피가 들어가 힘이 되여라 원쑤의 가슴팍에 총검을 박는 총잡은 투사의 슬기로운 힘이 되여라
전화의 화선군의들이 지닌 영웅적투쟁정신을 이 두련의 시가 그대로 말해주고있다. 당시 어느 한 야전병원을 찾았던 한 녀성일군은 자기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녀성들은 군복을 입고 무장을 하고 이렇게 최전선에서 포탄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연속을 불사조같이 뛰여다니며 부상병처치와 운반에 맹렬한 활동을 하고있다.나어린 이 간호원들은 어데서 솟은 힘인지 부상병들을 업고 수십리의 험한 산고지를 뛰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이것은 오로지 3년동안 포화속에서 단련된 투쟁의 결과인것이다.얼마전만 하더라도 1211고지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당하여 후송해온 리기만동무에게 군의 리경자동무는 11회나 걸쳐 고귀한 자기 피를 2 400g이나 뽑아 수혈하였다.또 간호원은 영웅적인 수송전에서 화상을 당한 운전수에게 자기 피 200g을 수혈하고 련일 밤새워가면서 간호하였다.》
이렇게
전승의 자랑찬 력사에는 이렇듯 전화의 화선군의들의 투쟁위훈이 금별처럼 빛을 뿌리고있다. 인민보건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것이 사회주의영상을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문제로 나서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모든 보건일군들이 전화의 화선군의들이 창조한 영웅적투쟁정신과 기풍으로 살며 일해나갈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다. 보건사업에서의 실질적인 변화, 근본적인 전환을 시대와 인민은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으며 이것은 보건일군들의 사상정신적풍모와 자질에서의 끊임없는 혁신으로 일관될 때 성과적으로 실현될수 있다.
전체 보건일군들이여, 전쟁의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전우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전화의 화선군의들처럼, 무한한 헌신과 정성으로 천리마조선의 기상을 더욱 격조높이 구가했던 천리마시대 보건전사들처럼
모든 보건일군들이 전화의 화선군의들이 지녔던
본사기자 김성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