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8일 로동신문
추억깊은 사진들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사랑의 이야기
안주시소재지에서부터 동북쪽으로 얼마정도 가느라면 연풍리라고 불리우는 고장이 있다.
바로 이곳에
얼마전
한날한시에 새옷을 떨쳐입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시는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정말 내 마음이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라고 하시며 오랜 시간 사진기를 드시고 학생들의 모습을 찍어주신
우리
《참으로
연풍고급중학교를 찾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올랐다.산허리에 둘러선 과일나무들과 길가의 가로수들, 전야에서 무르익는 곡식들도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는듯싶었다.
학교를 점점 가까이할수록
간고한 항일혈전의 길에서 유물 하나,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간 투사들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시며 아마도 그때문에 자신께서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사진을 찍는것을 소홀히 여기지 않게 된것 같다고, 공장이나 농촌에 나가면 근로자들이나 아녀자들과도 찍고 초소에 나가면 인민군군인들과도 찍는다고, 어느해인가는 연풍고등중학교에 들렸다가 반나절이나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감회깊이 쓰신
회고록의 뜻깊은 글줄을 새겨볼수록 온 나라를 한품에 안으시고 끝없이 베풀어주신 한없는 사랑의 세계가 어려와 마음은 숭엄해졌다.
학교에 도착한 우리의 눈앞에 제일먼저 안겨든것은 교사앞에 모셔진
그이의 존귀하신 영상을 우러를수록 진달래도 붉게 피고 살구꽃도 만발했던 주체66(1977)년 4월 12일 연풍땅에 찾아오시여 반나절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바치시며 학생들과 교원들의 모습을 사진찍어주시던 그날의 광경이 어려와 저도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이하여 우리
항일의 나날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하고 간 투사들, 그들이 그처럼 념원하던 행복의 그날이 현실로 펼쳐진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전우들의 혈육들을 찍는 심정으로 우리
마안산의 아동단원들에게 어머님께서 주신 사연깊은 돈 20원으로 새옷을 해입히시던 그날의 사연이 어려와, 전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한꺼번에 새 교복을 받아안은것이 너무도 흐뭇하시여 신사멋쟁이처럼 쭉 빼입고나선 이 나라 아이들의 모습을 영원히 력사의 화폭으로 새겨두시려 그처럼 오랜 시간을 바치신것은 아니였던가. 연풍고급중학교의 교정에 선 우리에게는 언뜻 스치는 바람결도, 향기를 풍기는 화단의 꽃들도 못 잊을 그날의 사연을 속삭이는것만 같았다.
학교의 중앙현관앞에서 우리와 만난 홍춘희교장은
《이제는 4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해마다 4월이면 모교를 찾는 졸업생들이 적지 않습니다.학교에 들어서서
그러면서 교장은 그이께서 전체가 다 함께 찍으면 얼굴이 작아질수 있으므로 녀학생 따로, 남학생 따로, 교원들 따로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고, 집체사진에서 작아질 평범한 산골학교학생들의 모습까지 념려해주신 우리
우리는 중앙현관홀에 모신 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옷차림을 보아주시는
학교교원들과 학부형들도 미처 관심하지 못한 새 교복에 묻은 실밥도 몸소 뜯어주시고 세타가 몸에 꼭 맞는가고 헤아려보신분, 모표가 떨어진 모자를 쓰고있는 학생을 보시고는 학생들이 모표를 잃어버릴수 있는데 잃어버리면 사서 달수 있게 많이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시며 친어버이정을 부어주신분, 진곤색데트론양복을 그쯘하게 차려입고 의혁구두를 신은 남학생들의 옷차림을 둘러보시며 자신보다 더 신사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신 우리
정말이지 그날의 사연을 전하는 세부 하나하나가 다 눈물없인 들을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였다. 그날의 체험자들이 마침 지금 학교에 찾아와 새 세대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있다고 하면서 교장은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하였다.
당시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국가수반들도 많지만 우리
안주시 청천강유치원 원장으로 사업하는 조영희동무도
《전 그때 나어린 유치원생이였습니다.운동장에 빙 둘러선 학교의 오빠, 언니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만세를 목청껏 부르는 속에 있으니 한껏 긴장되여있었습니다.전 긴장되면 어깨가 저도모르게 올라가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속의 유치원생의 모습을 웃음속에 바라보는 우리의 귀가에 그날
《꽃씨선생님》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운다는 그에게 어떻게 되여 그런 부름이 붙게 되였는가고 물었더니 대답하는 첫마디가 무척 인상적이였다.
《우리 학교에 모셔진
이런 마음으로 가꾼 화단에서 백일홍, 봉선화, 나팔꽃, 맨드라미, 채송화 등 수십종의 꽃들이 활짝 피여날 때마다 그는 꽃씨들을 정성껏 채집하여 안주시안의 령도업적단위들에 보내주었다.그렇게 시작되여 만경대혁명사적관, 백두산밀영고향집을 비롯하여 전국의 수십개 단위에 30여년간이나 보내주었다고 한다. 철따라 피여나는 아름다운 꽃들이 영광의 교정만이 아닌 전국각지의 뜻깊은 곳마다에 만발하도록 하려는 그 마음이 정녕 얼마나 소중한가.
어찌 그뿐이랴. 이곳 교원들은 4월의 그 봄날을 못 잊어 시 《영광의 교단이여》를 즐겨읊고있고 졸업생들은 모교에 조금이라도 지성을 바치고싶어 들렸다가는 학생들에게 기념사진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들의 심정을 담은 노래도 부르군 한다. … 내 자라 교문을 나서도 세월이 끝없이 흘러도 사진은 남아서 영원히 그날을 전해요
사진속에
언제 봐도 내곁에 계셔요 함께 계셔요 아 함께 계셔요
이 노래는 물론 학교음악실에서 선물악기반주에 맞추어 때없이 울리는
공부를 잘해 7.15최우등상수상자대렬을 늘이고 여러 경연에서 우승한 자랑, 토끼기르기자랑, 키크기운동을 잘해 도와 중앙의 여러 체육경기에서 성과를 거둔 이야기, 졸업생들이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로 집단탄원하여 애국의 성실한 땀을 바치고있는 미담…
기름나무를 많이 심을데 대한
《내 60평생에 기쁜 날이 며칠 되지 않는데 오늘처럼 기쁘기는 처음이요! 정말 내 마음이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요!》
44년전 그날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처럼 기뻐하시던 우리
그날의 학생들이 지금 안주시는 물론 평안남도의 여러 시, 군의 당일군, 교육일군으로 사업하고있다.나라의 국방력강화를 위해 헌신하는 일군들가운데도 기념사진을 찍은 졸업생이 있고 수도의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교원들가운데도 그날의 영광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
《결코 나의 자질이 뛰여나거나 특별히 잘나서 한개 교육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 일하고있는것이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하며 최전연초소에 삶의 좌표를 정한 새 세대들도 교정을 떠나기에 앞서 보답의 일념이 넘치는 가슴뜨거운 말들을 남기군 한다고 한다.
《우리는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은 세대는 아닙니다.그러나 그 사진들을 통하여
이런 자각, 이런 각오로 충만된 사람들이 바로
졸업생들과 학교교원, 학생들이 즐겨부르는 지정곡, 학교에서 배출된 영웅들과 자기 부문에서 한몫하는 일군들과 군관들, 로력혁신자들의 이야기, 오늘도 영광의 그날을 못 잊어하는 후손들의 기특한 소행들…
사연깊은 사진들과 더불어 꽃펴난 이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합쳐놓으면 우리
이런 이야기가 어찌 여기 연풍땅에만 깃들어있다고 하랴.
《소나무》책가방, 《민들레》학습장, 《해바라기》학용품, 세계명작동화집, 철따라 안겨주신 새 교복, 원아들과 함께 찍으신 기념사진…
후대들의 밝은 웃음을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그 이야기는 정녕 우리 후대들을 더없이 사랑하시며 세상에 부럼없이 활짝 피여나라고 온갖 은정을 다 안겨주신 절세위인들에 대한 다함없는 칭송과 경모의 노래이며 대를 이어 베풀어지는 하늘같은 그 사랑에 기어이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이 나라 천만자식들의 맹세의 메아리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백성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