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15일 로동신문

 

삼천리강산에 광명이 왔다, 부강한 새 조선을 건설하리라

해방된 조국의 방방곡곡에 높이 울린 격정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심으로 하여 식민지노예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나라의 주인, 공장과 땅의 주인이 되여 난생처음으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였습니다.》

삼천리조국강산에 해방만세의 우렁찬 환호성이 터져오른지도 어언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건국의 첫 기슭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느라면 우리의 가슴은 격정과 환희로 뿌듯해진다.

해방후 5년동안 우리 인민은 바라고바라던 모든것을 한꺼번에 성취하였다.

나라의 쌀독에는 해마다 옥백미가 넘쳐나고 포구들에는 물고기가 가득 쌓였으며 용광로와 용선로들에서는 쇠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런 눈부신 전변은 몸과 맘 다 바쳐 어버이수령님의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어온 우리 인민의 비상한 창조력과 애국적헌신성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였다.

 

산업부흥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직후 우리 인민의 건국열의를 북돋아준것은 주체34(1945)년 10월 14일에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개선연설이였다.그날 어버이수령님의 연설을 40만명의 평양시민들이 들었다.그들은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나가자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호소를 가는 곳마다에서 선전하였다.

조선의 새봄을 안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터친 인민들의 환호성은 건국의 열의로 뜨겁게 이어졌다.

당시의 《로동신문》들을 보면 해방후 애국정신으로 달아오른 우리 로동계급의 심장의 열도를 충분히 가늠할수 있다.

《일본정치때에는 참말로 월급이나 받으려고 시간가기나 기다렸지 성심성의껏 일할 생각은 없었던것이다.해방이 되자부터는 이것은 우리의 일이고 우리의 철도라는 생각이 들어 누가 하라말라 하기 전에 자진해서 일하게 된다.그러니까 시간이니 배급이니 하는것은 생각도 안 든다.그저 옷을 못 입어도 일부터 해야 되겠다는 생각, 밥을 안 먹어도, 밤잠을 못 자고서도 일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조국의 경제건설을 위한 산업부흥은 우리들의 힘으로!

…생산증강을 목표로 만난을 무릅쓰고 돌격하여야 된다는것은 지금에 있어서 누구를 물론하고 다같이 인정하는 사실인 동시에 움직일수 없는 진리다.여기에 있어서 로동자동무들은 이 생산돌격운동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조선사람으로서의 큰 수치요 아울러 신성한 로동을 모독하는것이 된다고 하여 저마다 이 운동에 가담하여 맹렬한 경쟁을 일으켜 오늘날 이 땅에는 씩씩하고도 아름다운 현상을 나타내고있는바 이번에는 평양에 있는 조선화학공장동무들의 싸움의 기록을 소개하겠다.

…지난 2월 21일부터 시작된 돌격운동은 650여명이나 되는 전종업원의 애국열에 의하여 재래의 1일 3교대를 2교대로 하고 로동시간을 두시간이상 연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출근성적을 올리고있다.》

예속의 멍에를 영영 벗어던지고 해방된 내 나라를 위해 마음껏 일하게 되였으니 로동자들은 너도나도 떨쳐나 애국적인 로동영웅운동, 증산돌격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갔다.근로인민대중의 과감한 애국투쟁으로 하여 나라의 곳곳에서는 수많은 공장, 기업소, 광산, 탄광들이 련이어 조업을 하였다.

그런 속에 해방후 처음으로 개고-고인, 양덕-천성간 철도전기화공사가 시작된다는 희한한 소식도 전해졌다.

이 소식은 전체 인민을 끝없이 격동시켰다.하여 며칠사이에 1 600여명의 청장년들이 공사장으로 달려갔으며 그 수는 날을 따라 늘어나 공사 전기간에 연 1 870여명의 기술자, 기능공들과 8만 3 050여명의 로동자, 사무원들이 스스로 찾아와 로력적지원을 주었다.그들은 방대한 공사를 불과 70여일만에 완공하였다.이와 함께 철원기관구 로동자들을 비롯한 철도로동계급은 혹심하게 파괴되였던 15대의 전동차와 전기기관차를 전부 복구해내는 성과를 이룩하였다.불같은 애국의 마음에 떠받들려 1949년 1월 마침내 개고역에서 첫 전기철도개통식이 성대히 거행되였다.

 

더 많은 쌀로 건국에 이바지하자

 

우리 로동계급이 파괴된 기계설비와 생산현장들을 복구하며 공장의 주인, 나라의 주인이 된 장한 모습으로 나설 때 농민들도 드높은 혁명적기세와 열정으로 온갖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면서 조국의 대지에 행복의 씨앗을 뿌려나갔다.

토지개혁법령의 발포로 땅의 주인이 된 농민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구호《해방된 조선의 첫봄을 증산으로 맞이하며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자!》를 높이 들고 알곡증산투쟁을 벌리였다.

그해 해방된 조국땅에 첫 풍년이 들었다.난생처음 그처럼 가지고싶던 제땅에서 허리가 시큰하도록 농사를 지은 보람을 느끼며 마당가득히 쌓아올린 벼낟가리앞에서 농민들이 가다듬은 생각은 무엇이였던가.

나라가 굳건해야 집살림도 흥하고 창창한 미래도 담보된다는것이였다.

재령나무리벌의 김제원농민은 부강한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설데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나라에 애국미를 바칠 결심을 하였다.그리하여 그는 쌀 30가마니를 애국미로 나라에 바치였다.

이 소식은 온 나라에 알려져 사람들을 크게 격동시키였다.

애국미헌납운동에 떨쳐나선 우리 농민들의 열기가 어떠했는가 하는것은 주체36(1947)년 1월 5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즉석에서 5백가마니 헌납, 나무리벌이 있으면 토성벌이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재령군 나무리벌판에서 농민 김제원동지가 …추켜든 애국지성은 제땅가는 농민들의 마음과 마음에 홰불같이 타올라 애국미헌납운동은 전북조선적으로 치렬히 전개되고있는바 나무리벌판에서 강 하나 사이 둔 봉산군 서종면 농민들은 〈나무리벌이 있으면 토성벌이 있다.우리도 김제원선생을 따르자〉는 열광적인 구호속에 지난 27일 밤 일곱시부터 면내 열성농민 3백여명이 참집하여 면인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성농민대회를 열었다.…》

김제원농민이 첫 봉화를 추켜든 애국미헌납운동은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하려는 전체 농민들의 높은 애국심에 의하여 짧은 기간에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어졌으며 1947년 1월초까지 전국적으로 1만 8 700여명의 농민들이 이 운동에 참가하였다.

애국미는 단순히 쌀이 아니였다.이 나라 농민들의 가슴속에서 불타는 애국의 마음이였고 건국의 제일 큰 밑천이였다.

주체36(1947)년 4월 5일 종합대학의 한 일군을 부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이번에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로 종합대학교사와 혁명가유자녀학원교사를 짓기로 하였다고, 애국미를 나라의 만년대계를 위한 후대교육사업에 쓰는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종합대학이 일떠선다는 소식에 접한 인민들이 앞을 다투어 건설장으로 달려갔다.

황해도 재령군과 안악군의 농민들이 수많은 애국미와 건설자금을 보내오고 함경남도 함주군에 사는 20명의 황무지개간자들은 회의를 열고 대학건설기금으로 벼 80가마니를 바칠것을 결정하였다.함경남도 오수대개간농민들이 감자 100가마니를 보낼 때 강원도 련천군 관인면에 사는 한 농민은 벼 60가마니를, 함경남도 정평군 신상면내 농민들은 쌀 40말을 기증하였다.

당시 애국미헌납자들은 근 2만명에 달하였는데 소년단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았다.함경남도 고원군 고원제1인민학교 소년단원들은 분단별로 벼이삭줏기를 하여 얻은 애국미 네가마니를 나라에 바쳤고 희천군 남면에서 사는 소년단원들은 한알, 두알 모은 벼와 콩, 강냉이 두말을 김일성종합대학 신축공사장에 보내여왔다.

농민들뿐아니라 로동자와 지식인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이 새 교사건설을 위한 사업에 발벗고나섰다.북조선섬유공업조합에서 신축공사기금으로 써달라고 보낸 10만원이라는 거액의 자금이 대학에 전달되였다.지어는 종이꽃을 팔아 늙은 홀어머니를 부양하는 장애자까지 종합대학건설자금으로 써달라고 푼전으로 모은 돈을 나라에 바쳤다.

 

우리 군대가 창건된다

 

지난날 자기의 강력한 민족군대를 가지지 못하여 일제에게 나라를 통채로 빼앗기고 망국노의 운명을 강요당했던 우리 인민이였다.

하기에 자체의 민족군대를 건설하는 사업에 남녀로소 누구나 할것없이 떨쳐나섰다.

해방의 첫해가 저물어가던 12월 어느날 두 로인이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왔다.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온 돈과 물품을 꺼내놓았다.현금 3 000원과 조선명주 두필이였다.그만한 돈과 물건이라면 앞으로의 여생에 적지 않게 보탬이 되련만 그것을 나라정사에 써달라고 서슴없이 꺼내놓는것이였다.변변한 군대가 없어 왜놈들에게 나라마저 빼앗기고 망국노의 설음속에 살아온 지난날이 돌이켜져서인지 두 로인은 눈물이 글썽하여 말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군대를 창건하게 된다니 그 군자금충당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저희들은 더 바랄것이 없소이다.》

전체 인민들은 조국보위를 적극 협조하는 전인민적대중단체인 조국보위후원회의 사업에 적극 참가하였다.

각계각층 인민들은 인민군대의 무장력강화를 위하여 비행기, 땅크, 함선헌납금운동을 벌려나갔다.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은 인민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는 한편 일요일을 리용하여 애국로동을 전개함으로써 무장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물질적후원을 다하였다.

주체38(1949)년 12월 당시 조국보위후원회 중앙본부보도에 의하면 11월 20일현재 인민들이 바친 비행기, 땅크, 함선헌납금은 2억원이였으며 곡물의 총 수량은 1만석, 기타 물품이 3천여점에 달하였다.

이것은 조국의 귀중함을 실체험을 통하여 뼈저리게 절감한 우리 인민들의 한없이 순결하고 지극한 애국심의 발현이였다.

잊을수 없는 그 나날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왔다.

하지만 지금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전세대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공화국의 품속에서 자라난 공민이라면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을 길이 받들어가라.

건국의 첫 기슭에서 울려오는 이 당부를 심장에 새기고 우리 인민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애국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갈것이다.

본사기자 신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