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31일 《통일신보》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력사적로정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여

 

1970년대에 공화국은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통하여 내외분렬주의세력의 《두개 조선》조작음모를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공화국은 우선 사회주의나라들과의 긴밀한 협조와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리였다.

조선을 방문한 사회주의나라 당 및 정부대표단들은 그 어떤 외세의 간섭이 없이 조선인민자신의 손으로 조국을 통일하려는 공화국정부와 조선인민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언제나 조선인민의 편에 서서 조국통일위업을 지지성원할 굳은 결의와 전투적련대성을 표시하였다.

공화국은 자주성에 기초한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접촉과 련계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도 활발히 전개해나갔다.

특히 1973년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특사와 조선로동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최고인민회의 대표단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및 유럽의 90여개 나라들을 방문한것을 비롯하여 해마다 공화국의 대표단들이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과정들에 있은 회담을 비롯한 일련의 행사들과 그 뒤에 발표된 공동보도들에서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조선인민의 정당한 위업에 확고부동한 지지와 련대성을 표시하였다.

또한 공화국정부의 초청에 의하여 신흥세력나라의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세계의 수많은 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들이 늘어나 세계 이르는 곳마다에서 공화국기발이 휘날리고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련대성운동은 나날이 확대발전되였다.

공화국은 유엔무대에서의 통일외교활동도 활발히 벌려나갔다.

국제적환경이 공화국에 유리하게 조성되는 가운데 1973년 9월부터 유엔총회 제28차회의가 열리게 되였다.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하여 9월 20일 유엔총회 운영위원회에서는 조선문제를 유엔총회 제28차회의 의정으로 포함시켜 토의할것을 총회전원회의에 제기하고 총회 제1위원회에서 토의하기로 결정하였다. 10월 1일 유엔총회 제1위원회는 조선문제를 토의할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를 무조건 초청할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엔대표부가 설치되고 유엔에서 공화국대표의 참가밑에 조선문제를 토의하는 새 전기가 마련되게 되였다.

유엔총회 제28차회의 의정에 조선문제가 상정된것과 관련하여 1973년 9월 26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발표한 정부비망록 《조선의 자주적통일을 위하여》가 유엔 제28차 총회공식문건으로 회의참가자들에게 배포되였으며 많은 나라 대표들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73년 11월 14일 유엔총회 제28차회의에 참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단 단장은 제1위원회에서 연설하면서 조선분렬의 근원이 미군의 남조선강점에 있으며 조국통일의 기본장애물이 미국이라는것을 까밝히고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해체를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조선의 통일은 반드시 조국통일3대원칙과 5대방침에 기초하여 실현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유엔총회 제28차회의에서 내외분렬주의세력은 《두개 조선》조작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켜보려고 갖은 술책을 다하였다.

그러나 공화국대표단의 적극적인 활동과 정당한 주장, 수많은 나라 대표들의 지지와 련대성에 의해 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음모는 내외여론의 강력한 규탄과 배격을 받고 여지없이 분쇄되였다.

이리하여 유엔총회 제28차회의 제1위원회 1973년 11월 21일회의에서는 7.4북남공동성명의 기본내용을 이루고있는 조국통일3대원칙이 환영과 지지를 받고 이 3대원칙에 따라 조선문제가 해결되여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미국의 조선침략을 위한 어용기구이며 내정간섭의 도구인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을 해체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11월 28일 유엔총회 전원회의에서 표결없이 전원일치로 채택되였다.

력사상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의 참가밑에 진행된 유엔총회 제28차회의에서 공화국의 결의안이 채택된것은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마련을 위해 공화국정부가 벌린 적극적인 대외활동의 결과였다. 이것은 조선인민이 유엔무대에서 이룩한 첫 승리였으며 조국통일도상에 가로놓여있던 오랜 걸림돌들을 제거하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한 큰 사변이였다.

공화국정부는 유엔무대에서 이룩한 첫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그것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더욱 강화해나갔다.

1975년 9월부터 열린 유엔총회 제30차회의에서도 조선문제해결에 관한 공화국의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주장이 많은 성원국 대표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하여 분렬주의세력의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정부의 정당한 립장을 반영한 43개국 공동결의안이 10월 29일 제1위원회에서 51대38이라는 압도적다수표의 찬성으로 가결되였으며 전원회의표결에서는 3표가 더 늘어난 다수표로 채택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조국통일방침을 반영하고있는 4 3 개국 공동결의안이 절대다수 유엔성원국들의 찬성으로 채택된것은 공화국의 시종일관한 자주적평화통일방침의 정당성과 그 위대한 생활력의 뚜렷한 시위였다. 또한 이는 지난 기간 해마다 거수기를 발동하여 제멋대로 조선문제에 대한 부당한《결의》를 조작해내던 외세의 지배주의적전횡에 종지부를 찍은 력사적사변이였다.

이렇게 공화국의 국제적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기운은 전례없이 고조되였다.

공화국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위업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는데서 쁠럭불가담운동의 역할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고 이 운동이 본래의 사명에 맞게 반제자주의 길로 나가도록 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쁠럭불가담국가수뇌자회의들에서도 분렬주의세력의 《두개 조선》조작음모를 배격하고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이 울려나왔다.

조선인민의 통일위업에 대한 지지성원운동이 강화되는 속에서 조선의 통일지지련대성조직들도 수많이 태여났다.

1970년대 중반기에 이르러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조선인민과의 련대성위원회》,《조선통일지지위원회》등의 련대성조직들이 결성되였는바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나 1980년에는 250여개에 달하는 조선통일지지위원회들이 무어져 활동하였다.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련대성조직들은 점차 지역별, 대륙별,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이것은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음모를 짓부시고 조국통일을 위한 온 겨레의 투쟁에 대한 힘있는 고무로 되였다.

본사기자 최 광 혁

출처 : 통일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