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27일 로동신문

 

《운양》호사건에 비낀 일제의 침략성

 

피비린 죄악의 력사를 외곡하는데 환장한 일본지배층은 《운양》호사건의 침략성을 보여주는 설명을 모두 없애버린 력사교과서들을 가지고 새세대들을 교육하고있다.

일본이 그러한 행위를 한다고 하여 그들의 침략성과 악랄성이 가리워지는것은 아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자본주의의 호전성은 〈명치유신〉직후시기에 조선을 무력으로 정복할데 대한 강도적인 〈정한론〉이 대두하고 일본침략자들이 〈운양〉호침입사건을 비롯한 침략적인 무장도발을 감행한 사실에서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일본이 지난날 조선민족에게 피눈물나는 망국노의 운명을 강요한 수난의 력사의 서막을 연것이 바로 《운양》호사건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명치유신》으로 군사봉건적자본주의발전의 길을 터놓은 일본은 악명높은 조선침략사상인 《정한론》을 내들고 조선에 대한 군사적침공의 길에 나섰다.그 첫 단계가 바로 침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군사적도발사건의 조작이였다.

《운양》호가 우리 나라의 해역에 들어온것자체가 불법침입이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상전인 미국의 《포함외교》를 본따 1875년 봄 처음으로 아무런 통고도 없이 침략선 《운양》호를 우리 나라의 바다에 들이밀고 《발포연습》의 간판밑에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였다.

그후 일본침략자들은 군사적도발책동을 보다 본격화하기 위한 만단의 준비를 갖춘 끝에 1875년 8월 20일(양력 9월 19일) 《운양》호를 또다시 우리 나라에 불법침입시켰다.

일본이 《운양》호를 침입시킨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

당시 일본정부가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에게 준 명령에는 《운양》호침입의 목적이 조선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구실을 마련하는데 있다는데 대해 밝혀져있다.이런 강도적사명을 띤 침략선 《운양》호는 어떤 배도 조선봉건정부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통과할수 없게 되여있는 강화해협에까지 침입하였다.8월 21일(양력 9월 20일)에는 즉시 물러갈데 대한 조선봉건정부의 요구에 《물이 떨어졌다.》는 구실을 내대면서 강화도 초지진포대 700m앞까지 접근하였다.조선군대가 자위적조치를 취하자 《운양》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에 맹렬한 포사격을 가했으며 방어시설이 없거나 약한 항산도 등을 습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분노한 조선군대는 침략자들에게 된타격을 가하였다.

이것이 《운양》호사건의 전말이다.

력사적사실은 《운양》호사건이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있다.

일본침략자들은 《운양》호사건을 구실로 조선봉건정부에 예속적인 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방안을 세우고 그 실행에 적극 달라붙었다.일본침략자들은 《운양》호가 청나라로 항행하던 도중 포격을 받은 실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하겠다고 하면서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고 무작정 위협하였다.1876년에는 조선봉건정부를 공갈하여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를 예속화하기 시작하였다.《운양》호사건으로부터 발단된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반식민지화의 소용돌이속에 급속히 빠져들어가게 되였으며 끝끝내는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였고 우리 인민은 40여년간에 걸쳐 피눈물나는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는 일본의 과거침략행위와 특대형반인륜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천백배로 결산할것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