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0월 14일 로동신문
《이것은 우리 당 군중로선의 리현리당총회, 력사의 그날로부터 60년
바람이 건듯 부는 기름진 들판에서 탐스럽게 익은 벼이삭들이 설레이는 소리, 맑고 푸른 하늘아래 아득히 펼쳐진 새파란 남새바다, 리현혁명사적관을 중심으로 틀지게 들어앉은 공공건물들, 산기슭마다 즐비하게 늘어선 아담한 문화주택들…
《찾아오는 사람마다 여기가 조농사마저 안되여 수수나 겨우 심어 망에 갈아 타개죽을 쑤어먹는 사람 못살 고장으로 소문났던 해방전 그 〈망자골〉이 맞는가 하면서 놀라와합니다.이 땅의 천지개벽도, 풍요한 가을도 결코 절로 찾아온것이 아닙니다.》 마을어구에서 우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관리위원장 리영주동무는 이런 말로 허두를 떼며 60년전 10월 10일에로 추억의 노를 저어가는것이였다.
주체50(1961)년 10월 10일 《로동신문》에는 《오늘의 리현리》라는 소개기사가 크게 실리였다.그날 아침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온 리현땅은 더없는 감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당사업에서 주되는것은 모든 사람을 교양하고 개조하며 단결시키는것이라고 하신
쉴새없이 돌아가는 탈곡기, 탐스럽게 여문 벼를 선별하는 농장원들속에 계시면서 관리위원장으로부터 력사적인 리현리당총회이후 리의 경제사업과 사람들과의 사업에서 거둔 자랑찬 성과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사람도 산천도 몰라보게 일신된 리현리의 모습을 대하시는
이런 감동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일행이 안내된 곳은 리현혁명사적관이였다.
눈내리는 겨울에도, 풍년든 가을에도 리현땅의 포전마다, 이랑마다에 사랑의 자욱을 새기시며 사회주의농촌건설을 위한 헌신의 길을 이으신
리현리당총회를 지도하시는
리현리당총회가 있은 그 다음해 농장을 찾으시여
그날은 주체50(1961)년 1월 23일이였다. 우리 나라 농촌의 앞날을 대화폭으로 펼친 휘황한 설계도따라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비롯한 기계수단들이 농촌으로, 사회주의협동전야로 끝없이 흘러들던 때였다.달구지소리만 처량하게 들리던 드넓은 대지에 기계화의 의미심장한 동음이 울려퍼지고 나무쟁기에 두손을 얹은 농민들이 대지를 누비는 뜨락또르의 모습에 취한듯 아예 벌판을 떠날념을 하지 않던 벅찬 나날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오래동안 봉건유습과 개인농생활에 물젖어온 농민들을 협동화된 새로운 현실에 맞는 사회주의근로자로 교양개조할 숭고한 의지를 안으시고 리현리를 찾으신
소박한 말로, 혈육같은 마음으로, 살뜰한 손길로 인간개조의 어려운 일을 자랑스럽게 맡아해내는 과정에 리현땅에 공산주의꽃으로 피여난 선동원, 온 농장이 하나의 화목한 가정으로 되고 리당은 굳게 단결된 힘있고 생기발랄한 전투적조직으로 강화,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관철하는 과정에 인간개조가 대중자신에 의하여 성과적으로 진행되여가고있는 리현리의 현실은
《이것은 우리 당 군중로선의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한 리신자동무와 같은 모범적인 공산주의투사를 길러냈다는것은 리현리당단체의 커다란 자랑이 아닐수 없다고 거듭 높이 일러주신
농사를 잘 지으려면 무슨 일에서나 뒤꼬리에 처지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잘 일깨워주어 모두가 있는 힘과 열성을 농사에 바치도록 농민들과의 사업을 착실히 할 결심부터 단단히 한 그였다.
그는 쉴참이나 혹은 작업반원들과 함께 들일을 나가고 들어오는 짬짬에 청산리에서 하신
천리마기수들의 모범을 따라 그는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모든 사업에 앞세웠다.땔나무가 없어 나무하러 가겠다는 사람의 집에는 관리위원회에 말하여 땔나무를 마련해주고 집을 잘 거두지 않는 집에는 청년들과 같이 가서 청소도 해주고 집도 꾸려주면서 당정책과 농장의 전망도 귀에 쏙쏙 들어가게 설명해주었다.이 과정에 모든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농장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성실히 일하게 되였다.
《이것은 제가 일을 잘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청산리에서 하신
그는 이렇게 자기의 토론을 맺었다.
그의 토론을 주의깊게 듣고계시던
《우리가 얻은 이 성과는 황금보다도 몇백만톤의 쌀보다도 더 귀중한것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것입니다.》
어찌하여
청산리를 다녀오신 후 언제 우리 농촌에서 열성분자들이 많이 나와 뒤떨어진 사람들을 다 개조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열렬한 사회주의건설자로 되게 하겠는가 하는것을 늘 생각해오시며 걱정도 크시였던 우리
그런데 모든 사업에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울데 대한 우리 당의 사상이 인민들의 심장속에 옮겨져 근로자들을 교양개조하는 어려운 그 사업이 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된것 아니던가.
땅도 그 땅이요, 집도 그 집이요, 사람도 그 사람이지만 리안의 모든 일군들과 전체 당원들, 청년들, 녀맹원들이 하나로 뭉쳐 당의 결정과 지시를 철저히 집행한 바로 이것이 우리
당의 결정과 지시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당원들과 군중이 그것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한갖 빈종이쪼박에 지나지 않는것이라고, 동무들이 온갖 열성을 다해서 우리 당의 정책을 관철하였기때문에 모든 일이 잘되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당중앙위원회를 대표해서 동무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사람들을 교양하고 단결시키는 사업이 전당적인 사업으로, 군중자신의 대중적운동으로 전환되게 하는데서 일대 획기적인 계기로 된 리현리당총회, 온 나라 농촌들뿐 아니라 인류가 리상하는 사회의 앞길을 휘황찬란히 밝혀준 력사적인 총회였다.
그날로부터 리현리가 걸어온 자랑찬 로정은
그림까지 그려가시며 논을 더 풀 방도를 가르쳐주시고 메말랐던 땅에 생명수를 보내주시였으며 풍작이룬 농장을 찾으시여서는 농장원들에게 차례질 분배몫까지 가늠해보시며 이제는 리현리사람들이 잘살게 되였다고 그처럼 기쁨에 겨워하신
리현리를 계속 잘 도와주어 사회주의농촌의 전형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하시며 기계농사, 화학농사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풍년든 가을이면 농장원들과 구수한 낟알향기를 함께 맡으시고 새집들이한 농장원세대를 찾으시여서는 살림살이를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 우리
영광의 땅 리현리와 더불어 영원할 사랑의 력사를 감명깊이 더듬으며 우리는 60년전 10월 10일 탈곡장에서 농민들과 담화하시는
경건히 우러를수록 친혈육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것만같은 자애로운 어버이의 모습이였다.
《그날
문화주택건설정형, 아이들의 학습문제, 부식물공급정형, 상점에서의 상품판매, 땔감문제…
리현땅농민들을 위하시는
관리위원장동무는 리현리일군들과 농장원들의 가슴을 그리움으로 불타게 하는 잊지 못할 나날들에 대하여 감명깊이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57년전 10월 6일도 그런 많은 날중의 하루였다. 한해 농사를 잘 지은것은 물론 가을보리가 층하없이 잘 나온 때였다.
농장을 돌아보시며 리현리일군들과 농민들의 수고를 뜨겁게 헤아려주신
리현리와 더불어 길이 전해갈 그날의 사연을 돌이켜보며 우리는 탈곡장에 이르렀다. 탈곡장에서 들려주는 일군의 이야기는 59년전의 마가을로 우리의 마음을 숭엄히 이끌었다.
농촌기술혁명수행에서 리현협동농장이 앞장서게 하여 농민들을 고된 로동에서 해방시킬 숭고한 의지를 안으시고 리현땅에 불멸할 자욱을 남기신
자리를 옮겨가시며 탈곡기의 구조와 작업상태를 살펴보시던
족답탈곡기나 동력탈곡기보다 비할바없이 우월한 종합탈곡기였지만 부족점도 없지 않았다.그중 하나가 벼단채로 탈곡할수 없는것이였다.
이날
사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농민들은 벼단을 풀어 섬겨주기만 하면 저절로 낟알이 털리는 그 종합탈곡기를 더없이 만족하게 여겨왔었다.벼탈곡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끝나는 수십일간 종일 탈곡기의 발디디개를 힘겹게 눌러야 했던 그전의 탈곡작업에 비하면 신선놀음과 같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 농민들의 힘든 로동을 덜어줄것인가를 두고 늘 마음쓰신
그후 리현리농장원들은
리현리농장원들의 힘과 지혜로 만든 그 탈곡기를 몸소 보아주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관리위원장동무는 그때부터 리현리농장원들의 농사일은 더욱 흥겹고 보람찬것으로 되였다고, 특히 낟알털기작업에서 손로동은 거의 없어지고 작업의 속도도 비할바없이 빨라지게 되였다고 덧붙이는것이였다.
뜨거운 사연을 되새기는 우리의 가슴에서는 그날의 탈곡기소리가 끝없이 메아리쳤다.보다는 리현리에 대한
농장원들이 보급실에 붙인 그림을 보고서는 리해하기 힘들어할수 있으므로 실물을 가지고 해설해주는것이 좋겠다고 하신 농업과학기술보급실, 탁아소가 좀 작은데 앞으로 농장살림이 펴이면 탁아소와 유치원을 새로 잘 건설하여야 하겠다고 하신 농장탁아소, 난방시설과 방풍장치를 잘하여 사람들이 춥지 않게 하여야 하겠다고 하신 리현상점, 집집의 뜨락마다 무성한 과일나무…
그 어디에나
돌아볼수록 만물을 빛과 열로 자래우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정과 열로 이 땅을 사랑하시며 불면불휴의 헌신으로 내 나라, 내 조국의 한치한치를 가꾸어오신
늘어나는 살림집들, 문화후생시설들, 현대적으로 꾸린 병원과 탁아소, 유치원들,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염소우리, 먼발치에서부터 풍겨오는 젖제품냄새에 발길을 쉬이 뗄수 없게 하는 젖가공실, 꼬리를 흔들며 영각을 뽑는 살진 소들이 욱실거리는 소우리… 자기 사는 고장을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락원으로 꾸려나가는 리현리일군들과 농장원들의 알심있는 일본새를 엿볼수 있게 하는 농장살림이였다.
흥하는 집에 손님이 잦다고 나날이 번영하는 이 고장에 찾아오는 손님들로 오늘 리현리는 날마다 흥성인다.인간개조의 본보기단위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 당의 일심단결의 력사를 감동깊이 돌이켜보며
장장 수십성상 인민에 대한 뜨거운 정과 열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한평생 인민과 정을 나누시고 고락을 함께 하신
절세의 위인들의 체취와 숨결, 거룩한 자욱이 뜨겁게 어려있는 영광의 땅에서 사는 긍지와 자부심은 정녕 그 어디에도 비길데없는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도 소중하고 우리의 앞날은 더욱 밝습니다.혁명가들에게는 침체와 답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혁명가들에게는 오직 부단한 혁신과 전진이 있을뿐이라고 하시면서 성과에 도취하지 말고 그것을 더욱 튼튼히 하며 당의 정책을 받들고 계속 용감히 나아간다면 더욱 큰 승리를 거두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고 력사적인 리현리당총회에서 하신
력사의 땅을 떠나는 우리의 가슴에
본사기자 량 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