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0월 16일 로동신문
나라의 인재육성을 위해 지혜와 열정, 리과대학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이였던
어릴 때부터 사람들속에서 신동으로 불리웠고 당의 품속에서 수재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후 자진하여 교단에 섰던 한 젊은 교육자가 있다. 리과대학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이였던 김철경동무이다.생을 마칠 당시 그의 나이는 38살이였다.
《교육은 조국과 혁명의 미래를 가꾸는 영예로운 사업이며 가장 책임적이고 보람있는 사업입니다.》 비상한 두뇌와 뛰여난 실력, 열정적인 기질을 지니고있던 김철경동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과학연구사업에 계속 종사하였다면 시대를 놀래우는 요란한 발명의 주인공이 되고 인민이 존경하고 떠받드는 과학자영웅이 되였을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청춘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나라의 과학자양성의 원종장인 모교의 교단에 고스란히 묻었다. 그 나날은 비록 10년밖에 안되지만 그는 고마운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다지고다진 지식의 전부를 다 바쳐, 피끓는 심장의 마지막박동까지 다하여 세계적인 두뇌경쟁무대에서 조국의 영예를 빛내일 특출한 정보기술인재들을 키워냄으로써 우리 당의 인재강국건설구상을 꽃피우는 진한 밑거름이 되고 억센 뿌리가 되였다.
인재라면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자
아마 독자들은 최근년간 우리 나라의 여러 대학 학생들이 국제적인 인터네트프로그람경연들에 참가하여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있을것이다.지난해에도
지금으로부터 8년전 리과대학의 청년대학생들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이 《코드쉐프》도전경연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참가하여 80여개 나라의 3, 160여개 팀을 모두 누르고 단연 1등의 영예를 지님으로써 인터네트상에 우리의 공화국기를 높이 띄웠다.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대학의 명예를 빛내인 이들의 지도교원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김철경동무였다. 김철경동무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가을 어느날 리과대학 책임일군의 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연구사업을 그만두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일군은 자기앞에 서있는 청년과학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체소하나 다부진 체격, 어딘가 수줍은 미소가 비낀 영채로운 눈… 그가 바로 당시 대학 정보기술연구소 연구사였던 김철경동무였다.말이 없고 겉모습이 수수하여 별로 표나지 않는 그였지만 두뇌와 실력은 온 대학에 소문이 자자했다.대학시절 전국적인 프로그람경연들에 나가 매번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며 2006년에는 리과대학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 참가하여 금상을 쟁취하고 세계결승경연참가자격을 획득하는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보기 드문 수재였던것이다. 여러 부문에서 제기되는 많은 정보기술적문제들을 막힘없이 풀어제끼고있는 프로그람기술인재, 틀림없는 20대 박사감… 대학적으로 손꼽히는 전도유망한 청년과학자가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으로 자진해나선것이 일군은 기쁘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에 부딪쳐보니 혼자서는 다 해결하기 힘든 정보기술적문제들이 정말 많고 곳곳에서 프로그람개발자들을 요구하고있습니다.저를 깡그리 바쳐 세계와 당당히 맞설수 있는 프로그람기술인재들을 키우고싶습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 담담한 목소리에서 록록치 않은 강단이 느껴졌다. 일군은 말하였다. 《정말 좋은 결심을 했구만.
그런데 프로그람개발은 젊어서 한때라는 말도 있듯이 전망이 확고한 연구사업을 그만두는것이 동무로선 아쉬울텐데 앞으로 후회하진 않을가?》 김철경동무는 또박또박 힘주어 대답하였다. 《학생들을 잘 키워 그들이 제가 하고싶었던 일을 열배, 스무배로 대신하게 하겠습니다.》 이 남다른 결단으로 하여 사랑하는 안해와 얼굴을 붉히게 될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처녀연구사시절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을 준비하는 김철경동무를 사심없이 방조한 애틋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송금애동무는 남편이 선택한 길이 얼마나 큰 대가와 희생을 요구하는 길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명예와 보수는 물론 신혼살림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마다하고 기어코 그 길을 걸으려는 남편이 리해되지 않았다. 앵돌아진 안해에게 김철경동무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였다.그러는 그의 눈앞에 농촌마을의 크지 않은 학교가 삼삼히 어려왔다. 그는 금야군의 농장원가정에서 태여났다.두벌자식을 끔찍이 귀해하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 그는 가갸표와 구구표를 다 익혔다.아직은 발음도 정확치 않은 세살잡이가 머루알같은 두눈을 깜빡이며 《가, 갸, 거, 겨…》를 외우고 《이삼은 륙, 삼삼은 구…》하고 련거퍼 이어나갈 때면 마을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신동이 났다며 그의 볼을 다독여주었다.고마운 선생님들의 손에 이끌려 세살이나 우인 누나와 함께 들어서던 교실, 네살 난 《학생》을 무릎에 앉히고 국어와 수학 등을 하나하나 배워주고 소학교과정안을 한해동안에 다 마치였다고 등을 두드려주던 선생님, 전국적인 속셈경연에서 1초가 뒤져 2등을 하였을 때의 아쉬움… 함흥제1중학교에서의 나날도 주마등처럼 눈앞에 흘러갔다.누구나 허리띠를 졸라매던 고난의 시기 자기 집에서 얼마 안되는 식량을 덜어 밥까지 해먹이며 수학올림픽의 아득한 세계에로 한걸음한걸음 이끌어주던 소조선생님, 전국적인 수학학과경연에서 기발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답을 내여 심사자들을 놀래웠다고 그리도 기뻐하던 열정의 그 모습… 당의 은정속에 꿈과도 같이 들어서던 평양제1중학교의 드넓은 교정, 그다음은 리과대학 학생, 박사원생으로, 오늘은 어엿한 과학자로 자라나지 않았던가. 지나온 생의 나날을 더듬어보느라니 저도모르게 목이 꽉 메여올랐다. 이윽하여 그는 말머리를 뗐다. 《물론 당신 말처럼 나의 지식과 능력이면 과학자로서의 명예도 인차 얻을수 있고 우리 한가정은 남부럽지 않게 살수도 있소.나를 키워준 선생님들앞에 떳떳하게 나설수도 있고…
하지만 농장원의 아들인 내게 아무리 재능이 있다한들 고마운 사회주의교육제도가 아니고
당과 국가의 특별한 배려속에 수재교육을 받은 내가 배운 지식을 자기 발전이나 나 하나만의 영달을 위한데 써먹는다면 아마 선생님들이 제일먼저 나를 용서치 않을것이요. 여보, 내가 정말 인재라면 응당 나라의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밑거름이 될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겠소.》 조용하고 어진 성격의 남편이 그처럼 격해하는 모습을 안해는 처음 보았다. 나의 두뇌가 정말로 뛰여났다면 남보다 몇배의 일을 할수도 있다.그것 역시 충성이고 애국이다.하지만 내가 교육자가 되여 나와 같은 사람을 열명 아니 나보다 더 뛰여난 인재들을 많이 키워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충성이고 애국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김철경동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밑거름이 되자고, 뿌리가 되자고 말이나 하고 노래만 불러서야 되겠소.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야지. 그래서 선택한것이니 그전처럼 나를 믿고 도와주오.》 얼마후 김철경동무는 당조직의 믿음에 의하여 대학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이 되였고 그때부터 그의 안해는 둘도 없는 방조자, 조수가 되여주었다. 지혜와 열정을 고스란히 학생들을 위해 바쳐가는 김철경동무의 피타는 노력이 있어 리과대학은 2010년에 진행된 전국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서 우승하였다. 그는 보다 높은 목표에로 학생들을 이끌어나갔다.경쟁대상은 세계, 목표는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서의 아시아패권, 나아가서 세계결승경연 우승컵! 정녕 그 길은 헐치 않았다.
그 나날에는 세계와 당당히 맞설수 있는 프로그람기술인재들을 훌륭히 키워
시시각각으로 전진하는 세계와의 경쟁마당에 하루빨리 학생들을 내세우기 위해 그는 단란한 가정의 행복도 모두 뒤로 미루었다.한살, 세살잡이 어린 두 자식을 키우면서 직장일, 남편뒤바라지, 소조학생들에 대한 후방사업만으로도 드바쁜 안해에게 최대한 시간을 쟁취하여 자기 사업을 방조해줄것을 부탁하며 김철경동무는 미안한 어조로 말하였다. 《송향이와 봉성이를 당분간 은률과 금야의 부모님들에게 맡기는게 어떨가?》 그때를 돌이켜보며 그의 안해는 말하였다. 《남편이 야속했습니다.떨어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딸을 어머니에게 맡길 때에도 그랬지만 금방 걸음마를 떼고 〈엄마, 엄마〉하고 찾으며 재롱을 부리는 아들을 시어머니의 등에 업혀놓고 떠나올 때는 정말 참기 힘들더군요. 남의 집 처마밑에 어린 자식을 놓아두고 혁명의 길에 나선 녀투사들이 생각났습니다.그래도 나는 자식들을 친정집과 시집에 맡기지 않았는가고 자신을 위안하며 눈물을 거두었습니다.》 마침내 알찬 열매는 하나둘 맺히기 시작하였다. 김철경동무의 지도밑에 리과대학 학생들은 2012년과 2013년에 진행된 전국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서 우승의 영예를 지니였다.이들이 《코드쉐프》도전경연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출전하여 단연 첫자리를 차지한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신심드높이 제38차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 참가한 학생들은 아시아항주지역경연에서 금상과 은상 그리고 2개의 속도상을 쟁취하고 세계결승경연참가자격을 획득하였다. 이 하나하나의 성과들은 그대로 이름없던 농촌소년의 애어린 재능의 싹을 소중히 찾아 키워주고 세계를 디디고오를 크나큰 꿈과 리상과 포부를 안겨준 고마운 어머니당과 사회주의조국에 김철경동무가 한송이한송이 삼가 엮어드린 다함없는 감사의 꽃다발이였다.
새세대 청년들이 한 일이라면 더 귀중히 여기고 크게 내세워주는 우리 당에서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젊은 교육자의 성과를 조선청년의 최고영예인
조국의 영예를 나 하나의 생과 바꿀수 없다
열혈청춘의 심장에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을 간직하고 김철경동무는 더욱 분발해나섰다. 2016년과 2017년에 진행된 전국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서 우승, 2016년 제41차 국제대학생프로그람 아시아평양지역경연에서 2개의 금상 쟁취…
그러던 김철경동무가 최대의 안정이 요구되는 난치의 병진단을 받은것은 몇해전 제42차 국제대학생프로그람 동아시아지역결승경연을 한달 앞둔 때였다.세계적인 프로그람기술인재들을 키워
의사들은 절대적인 안정을 권고하였고 안해는 울면서 애원하였다.아직 젊었는데 병부터 고치고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겠는가고. 모든것을 뒤로 미루고 병치료를 하느냐 아니면 학생들을 이끌고 계속 국제경연에 참가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그는 생각이 많았다. 그도 인간이였다.생명이 귀하고 건강이 소중한 청춘이였다.하지만 세계결승경연 우승컵을 향하여 달음쳐가야 할 그 길에서 눈앞에 당장 박두한 국제경연참가를 그만둔다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삶 그 자체를 포기하는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였다. (이 땅에 태여나 아무런 생의 자욱도 남기지 못한다면 백년, 천년의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권고도 애원도, 그 무엇도 그의 결심을 돌려세우지 못하였다. 《농사군이 적기를 놓치면 한해를 굶게 되지만 세계와 맞서야 할 나라의 인재들을 키우는 일은 한번 기회를 놓치면 몇년 지어 몇십년을 후퇴하게 되오.오늘 나 하나를 위해 주춤거리면 래일은 조국이 뒤떨어지게 된단 말이요!》 그는 안해의 부축을 받으며 학생들이 기다리는 소조실로 향하였다. 그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얼마후 중국에서 진행된 동아시아지역결승경연에서 리과대학 학생들은 금상을 쟁취하였다. 김철경동무의 병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였다.하지만 그의 온넋은 다음번 도전을 위한 후비들을 선정하고 키우는데 가있었다. 대학당조직에서는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였다.대학진료소의 유능한 의료일군이 김철경동무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부학장인 교수 박사 김룡승동무가 사업이 바쁜 속에서도 직접 그를 데리고 중앙과 지방의 여러 병원을 오가며 적극적인 치료대책을 세워나갔다.그리고 국가과학원 위성과학자병원 의사인 당책임일군의 안해가 그의 병상태를 정상적으로 검진하고 보고할데 대한 특별임무를 받았다. 당조직과 집단, 동지들의 뜨거운 보살핌속에 그는 생명을 위협하는 병마와 싸우며 학생들에 대한 지도를 잠시도 중단하지 않았다.그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그야말로 생을 내건 판가리결전의 련속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쌓이고쌓인 정신육체적과로는 끝내 그를 쓰러뜨리고야말았다. 심한 출혈로 의식을 잃었던 그가 눈을 뜬것은 병원침상에서였다. 걱정어린 수많은 눈길들이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선생님을 목메여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과 대학일군들, 안해의 모습이 어렴풋이 안겨왔다. 《내가 왜 여기에 있소? 국제경연까지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당장 벌떡 일어나고싶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안깐힘을 쓰는 그를 안해가 막아나섰다. 《안돼요.무조건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러나 며칠후 김철경동무는 또다시 소조실에 들어섰다. 자기때문에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맥을 놓을세라, 자기의 병때문에 잠시라도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세라 그는 엄하게 질책하군 하였다. 동무들은 조국의 명예를 걸고 세계경쟁무대에 나서야 할 대학생들이다.세계결승경연 우승컵을 쟁취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각 다른 나라의 대학생들도 이를 사려물고 공부하고있을것이다.말로만 세계와 경쟁하겠다고 할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한 강심을 먹고 이악하게 노력하여 기어이 조국의 영예를 떨쳐야 한다. 그는 쓰러질지언정 소조실을 떠나지 않았다.누워서도 콤퓨터화면을 볼수 있게 안해가 특별히 마련해준 의자에서 매 학생의 수준과 심리적특성에 맞는 방안을 세우고 한명한명에 대한 지도를 심화시켰다.그러다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다시 깨여나면 학생들의 훈련결과와 경연성적부터 묻군 한 그였다. 그때의 일을 한 녀학생은 이렇게 추억하였다. 《선생님이 없이는 경연준비가 잘될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리해하기 힘들었습니다.선생님은 아직 젊었는데 그렇게 심한 병을 앓으면서도 왜 다문 2~3년동안이라도 치료를 하고 다시 일할 생각을 하지 않으실가, 선생님의 마음속에 세계결승경연 우승컵이란 과연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자신을 모질게 대하실가 하는 의문이 끝없이 갈마들군 하였습니다.선생님의 심정을 알게 된것은 우리 동무들이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서 또다시 금상을 쟁취하고 돌아온 날이였습니다.》 온 대학이 환희에 휩싸였던 그날 김철경동무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국제체육경기에서 우승하면 국기가 오르고 국가가 울린다.그러면 모두가 국적에 관계없이 일어서서 경의를 표시한다. 우리가 참가하는 프로그람경연도 전기간 팀의 이름옆에 국기를 띄우고 진행한다.수십개의 국기가 쭉 늘어서있는 속에 우리의 국기가 맨우에 휘날릴 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라.코마루가 찡해지고 가슴이 울렁거린다.내가 모든것이 어려운 속에서도 동무들을 이끌고 국제경연에 꼭꼭 참가하려는것은 그런 숭엄한 감정을 동무들자신이 직접 체험하게 하고 그렇게도 많은 국기들가운데서 바로 우리의 국기를 제일 웃자리에 높이 띄우겠다는 정신을 키워주기 위해서이다.
학생들, 명심하라!
제44차 국제대학생프로그람 아시아심양지역경연을 열흘 앞두고 그는 또다시 심한 출혈로 쓰러졌다.귀중한 재사를 기어이 일으켜세우자고 당조직과 집단, 의료일군들과 안해가 일하는 국가과학원 도서관의 일군들과 연구사들이 떨쳐나섰다.귀한 약물들과 혈액이 그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한 그는 불사신과도 같이 일떠섰다. 《전 죽지 않습니다.경연에 꼭 참가하겠습니다.》 며칠후 그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함께 조국을 떠났다. 온몸을 초불처럼 태워가는 김철경동무의 지도밑에 학생들은 지식을 터득하기에 앞서 어떤 마음가짐과 의지로 과학을 탐구하고 기술을 대해야 하는가를 배웠고 세계와의 경쟁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세계를 디디고오를 민족적자존심과 배짱을 키웠다.그리고 미래의 과학자로서 자기들의 인생의 목표를 가다듬었다. 이 나날에 이들은 2019년 한해동안에만도 전국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 2개 조로 나뉘여 참가하여 모두 우승을 하였으며 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2019 프로그람작성경연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쟁취하였다.그리고 중국에서 진행된 제44차 국제대학생프로그람 아시아심양지역경연에서 가장 우수한 3개의 조에 수여하는 컵과 2개의 금상, 2개의 속도상을 쟁취하고 세계결승경연참가자격을 획득하였다. 승리하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온 대학이 기뻐하며 축하해줄 때 김철경동무의 안해는 울었다.마음속고충과 가슴아픈 사연도 깊숙이 묻어두고 세계에로 향한 남편의 꿈과 리상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방조해주고 학생들의 어머니, 누이가 되여 배고플세라, 병이 날세라 보살펴주며 누구보다 고대하던 경연성과였지만 바로 그날만은 남편이 별고없이 조국으로 돌아온것이 더 기뻐서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모진 아픔속에서도 김철경동무는 안해에게 컵과 금상들을 보여주며 여느때없이 밝은 웃음을 지었다.그리고는 힘을 모아 나직이 말하였다. 《이건 우리 학생들이 조국에 드리는 선물이요.그래서 내겐 가장 소중한것이요.》 여러차례의 심한 출혈과 쇼크로 자기의 생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예감한 그는 당조직에 자기의 후임문제를 청원하였다.얼마후 정보과학소조에 대한 지도를 새로 맡은 경현철동무에게 그는 자기가 축적한 경험과 자료를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김철경, 경현철동무들의 지도밑에 리과대학의 학생들은 지난해에 《코드쉐프》도전경연에서 두차례에 걸쳐 1등을 하고 인터네트상에 자랑스런 우리의 국기를 높이 띄웠다. 지난 1월 중순 인터네트를 통해 세계적인 보건위기와 관련하여 제44차 국제대학생프로그람 세계결승경연조직을 연기한다는 통지를 받고 힘들게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안해와 자식들을 불러앉히였다. 《이젠 내 몸이 더이상 말을 들어줄것 같지 않구만.아무래도 세계결승경연 우승컵은 우리 학생들에게 내 한생의 당부로 남겨야 할것 같소.》 그리고는 당의 배려로 미래상점에 갔을 때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른 은반지를 안해의 손에 끼워주며 부탁하였다. 《봉성이를 잘 키워 꼭 조국의 영예를 떨치는 훌륭한 인재가 되게 해주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기의 지식과 열정, 사랑과 정,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성스러운 교단에 바친 우리의 주인공에게도 한생의 아쉬움이 있었음을 우리는 말하지 않을수 없다. 대학시절 정보과학소조에서 은근한 경쟁속에 공부도 함께 하고 졸업후에는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동갑나이의 과학자가 훌륭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당의 크나큰 믿음속에 33살에 공화국영웅이 되고 당원이 되였다는 꿈같은 소식이 전해진 날 밤 김철경동무는 안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키운 학생들속에서도 영웅이 꼭 나올거요.그러면 내 가슴에 금별메달을 단것보다 더 기쁘겠소.하지만… 하지만… 그 친구가 먼저 당원이 된것만은 정말이지 부럽구만.》 그리고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다시 소조실로 나갔다고 한다. 그의 유품속에는 흰 봉투에 정히 간수되여있는 입당청원서가 있었다.그것은 김철경동무가 7년전에 쓴것이였다.그처럼 열렬히 당원이 되기를 희망한 그였지만 한해두해 성과가 쌓일 때에도 세계결승경연에서 우승하고 떳떳이 당조직을 찾아가겠다며 가슴에 품고 산 입당청원서였다. 김철경동무의 유가족들에게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 수여된 날 리과대학의 많은 일군들과 교직원, 학생들, 학부형들은 말하였다.명예도 재부도 안락도 바람이 없이 자기 지식의 마지막 한쪼각,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도 아낌없이 교단에 바치고 간 김철경동무야말로 재사이기 전에 누구보다 우리의 공화국기를 사랑한 참된 인간이였다고. 학생들을 키워 내세운것밖에는 조국앞에 크게 해놓은 일이 없는 김철경동무, 하지만 스승의 령전에서 눈물을 씻으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안고 떠나간 학생들, 제자들이 후날 조국앞에 위훈을 세우고 그를 뜨겁게 추억하며 선생님이 우리를 키웠다고, 자기가 훌륭한것도 좋지만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키워내는것이 우리 선생님이 안고 산 꿈이고 리상이였다고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알게 되리라. 우리 당의 품속에서 자란 참된 지식인, 직업적인 혁명가인 교육자란 어떤 사람이며 그의 공적과 위훈은 과연 어떤것인가를.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는 인재육성 특히 특출한 인재양성사업에 힘을 넣을데 대한 문제를 다시금 중요하게 강조하였다. 인재는 인재만이 키울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그 어떤 자원이나 재부보다도 당에 끝없이 충실한 재사, 인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인재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직접적요인으로 되고 교육이 사회경제발전에서 초미의 문제로 나서고있는 오늘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교육자들이 사회주의교육강국, 인재강국건설에 순결한 량심과 높은 실력, 필요하다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야 할 때이다. 사람들은 김철경동무가 우리곁을 떠났다고 생각지 않는다. 조국과 혁명의 백년지계를 위하여 우리 당이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전초선으로 내세운 인재교육전선을 지켜선 교원혁명가들의 대오속에 그는 오늘도 영원한 청춘의 모습으로 함께 서있다. 본사기자 려명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