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0월 4일 《통일신보》

 

통일운동사에 새겨진 숭고한 화폭들

통일에 살고 애국에 살자면

 

흘러온 통일운동사의 갈피갈피에는 겨레가 오늘도 잊지 못하는 숭고한 화폭들이 적지 않다.

민족자주와 대단결의 경륜을 지니시고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를 묶어세우시며 북과 남, 해외의 각이한 계층의 사람들을 한사람한사람 만나주시고 통일애국의 한길로 이끌어주시는 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영상을 수록한 뜻깊은 사진들.

본사편집국은 이번호부터 통일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감동깊은 화폭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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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겨레는 깊은 감회에 젖어 그날의 뜻깊은 사진을 추억해본다.

민족분렬의 첫 기슭에서 열린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의 나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백범 김구와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가시는 사진이다.

이전 《상해림시정부》 주석이였고 당시 《한국독립당》 당수였던 백범 김구.

그는 한생 반공으로 살아온 사람이였다. 해방전이나 해방직후에도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덮어놓고 배척하고 테로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그를 민족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력사적인 민족적대회합에 참가하도록 친히 초청장을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김구는 자기의 과거에 대해 북에서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옥죄였으며 선뜻 평양에 올수가 없었다.

김구를 비롯한 우익정객들의 심정을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지난날 나라와 민족앞에 어떤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현재 그것을 뉘우치고 애국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 이것은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부터 견지한 시종일관한 립장이며 이 립장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김구선생이 담화와 성명을 통해 표명한 립장을 잘 알고있다고, 우리는 김구선생과 과거를 론하려 하는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앞에 가로놓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서로 마주앉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려 한다고 하시였다.

애국애족으로 일관되여있는 어버이수령님의 뜻과 한없이 넓은 도량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백범 김구는 결연히 평양길에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김구는 어버이수령님의 민족대단합과 통일애국의 경륜에 더욱 매혹되였다.

정견과 신앙, 주의주장을 초월하여 민족의 대의를 앞에 놓고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한다는 그이의 민족대단결리념, 무한한 정과 열로 온 겨레를 품어안으시는 절세위인의 뜨거운 민족애가 바로 편협과 오해, 불신으로 얼어붙었던 마음의 문을 열어 단합이라는 거대한 대하에로 떠밀어준 힘이였고 원천이였다.

70여년의 한생을 보내며 뒤늦게 태양의 품에 안겨 애국의 새 삶을 받아안은 백범은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의 심정을 담은 시구절을 남기였다.

 

눈덮인 광야를 지날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욱은 따르는 이들의 길 되리라

 

어버이수령님께서 대해같은 믿음과 포옹력, 뜨거운 민족애로 열어준 재생의 길, 통일애국의 길로 백범 김구선생이 걸어가고 그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북행길, 통일애국의 길에 나섰다.

백범 김구가 터친 고백은 그 하나만이 아닌 온 겨레가 터치는 심장의 웨침이였고 열렬한 격정이였다.

그의 시구절이 남긴 여운은 온 겨레의 가슴에 크나큰 의미를 심어주고있다. 그것은 위대한 민족의 태양을 따르는 길만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며 민족의 살길이라는 생의 진리이다.

통일에 살고 애국에 살자면 절세위인을 따라야 한다는것을 수십년전 한장의 사진이 오늘도 말해주고있다.

본사기자 리경월

출처 : 통일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