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1월 18일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사 상보 3대혁명로선관철에서 빛나는 본보기를 창조한 격동의 년대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힘있게 견인한
조선로동당의 전략적로선인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은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로정에서 거세찬 생명력을 내뿜으며
제5차 3대혁명선구자대회를 맞으며 온 나라 전체 인민은 독창적인 3대혁명로선을 제시하여 사회생활의 모든 령역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가장 과학적인 길을 밝히고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온 우리 당의 불멸의 업적과 세폭의 붉은기높이 기적과 변혁을 안아온 추억깊은 혁명의 년대를 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우리 인민이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공업화의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완수하고 들어선 1970년대는 조선로동당의 3대혁명사상과 로선,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시대의 가장 높은 형태의 대중운동이 발단되고 그 정당성과 무궁무진한 생활력이 남김없이 발휘된 긍지높은 격동의 년대였다.
우리 당의 새로운 혁명지도방법과 전인민적인 대중운동사상을 심장에 새긴 3대혁명소조원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군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발동하고 수많은 3대혁명기수들이 일터마다에서 혁신의 불길을 지펴올려 혁명과 건설의 모든 령역에서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당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로선을 결사관철하여 조국청사에 일찌기 없었던 창조와 건설의 앙양기를 열어놓은 1970년대 3대혁명선구자들의 투쟁정신과 기풍은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오늘의 총진군길에서도 귀감으로 삼아야 할 사상정신적재보로 된다.
대중이 반기고 따른 항일유격대식 사상전의 능수들
사람들의 사상정신적면모와 일본새, 생활기풍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1970년대 온 나라의 일터마다에는 집단의 단합과 전투력에 활력을 부어주며 대중을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추동한 3대혁명소조원들이 있었다.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고락을 같이하면서 그들의 심장속에 우리 당의 사상과 로선을 깊이 심어준 소조원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당의 목소리와 혁명가요가 끊임없이 울리고 당정책관철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이 참신하게 전개되였다.
특히
당정책의 진수를 깨우쳐주는 사업을 쉬임없이 실속있게 할수 있는 묘술을 문답식학습에서 찾은 황주군 룡천리와 천주리의 소조원들은 문답식학습조직의 참신한 경험을 창조하였다. 문답식학습제목을 매 작업반, 분조, 농장원이 김매기철을 맞으며 결정한 충성의 결의목표의 조항별로 뽑고 학습조를 합리적으로 조직운영하였다.
《풀을 매지 말고 흙을 매라고 하신
평원군 삼봉협동농장에서 당, 근로단체조직별, 작업반간, 분조간 문답식학습경연을 통하여 농장원들모두가
3대혁명소조들의 적극적인 역할에 의하여 전국에 활발히 보급된 우수한 학습경험들은 당정책학습을 실천과 밀접히 결부되고 습성화, 생활화, 대중화된 혁명사업으로 확고히 전환시켰다. 항일유격대식선동사업방법을 전면적으로 구현한 3대혁명소조들의 활동은 선전선동사업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3대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국의 앞장에서 질풍같이 내달린 검덕광산과 혜산청년광산의 3대혁명소조원들은 당의 목소리가 조국땅 한끝에 자리잡은 지하막장에도 지체없이 전달되고 당정책이 철저히 집행되게 하자는 충성의 글발이 새겨진 수첩을 가슴에 품고 갱과 소대들에 내려가 착암기를 억세게 틀어쥐고 굴진도 하고 쇠돌도 캐면서 전투적이며 전격적인 선동을 벌려 광물증산의 돌파구를 열어제꼈다.
소조원들은 광산에 주신
혁신자들의 로력적위훈을 담은 전투속보를 그들이 살고있는 인민반과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까지 보내주어 온 마을이 혁신자들을 축하해주게 하였으며 광부들이 일하는 모든 곳에서 화선식경제선동을 전개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심구역에 대형구호들과 날자별실적을 알리는 달력식구호 등 여러가지 형식의 구호들과 종합게시판, 경쟁속보판, 벽신문판, 영예게시판을 세우고 활용하여 혁신의 새 소식이 끝없이 이어지게 하였다. 평양철도국의 3대혁명소조원들은 모두가 선전원, 선동원이 되여 작업복차림으로 기관차대와 객화차대, 철길대들에서 그리고 달리는 렬차우에서와 짐을 싣고 부리는 작업장에서 강연, 해설담화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의 참신한 정치사업으로 수송전사들을 분발시켜 하루평균 1만 수천t의 화물을 증송하게 하였다. 한마디의 경제선동, 한 종목의 예술공연, 한장의 속보도 대중을 당결정집행에로 부르는 진실한 호소가 되게 하는 사상전의 능수가 되여 3대혁명소조원들이 울리는 선전선동의 북소리가 천리마락원기계공장, 승리자동차종합공장, 룡등탄광, 2중천리마 만경대협동농장을 비롯한 공장과 농촌 그 어디서나 울려퍼졌다.
채취공업부문에 달려나간 소조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조건과 능력을 탓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고 사람과의 사업을 짜고들어 군중을 발동시킨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신
연백벌과 열두삼천리벌의 농장들에 나간 소조원들은 농업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지도하는 사람이나 지도를 받는 사람이나 다 높은 과학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당의 뜻을 심장에 새기고 열백밤을 패가며 농업정책과 선진영농기술을 깊이 연구학습하여 당정책관철을 활기있게 견인하였으며 당의 목소리를 제때에 알려주기 위해 당출판물을 넣은 배낭을 메고 수십리 눈보라길도 웃으며 걸었다. 연탁에서가 아니라 들끓는 현장들에서, 격식화된 제강이 아니라 기름내, 흙내가 나게 구수하고 현실감있게 벌리는 소조원들의 선전활동은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혁명적열의를 고도로 발양시켰으며 당정책을 제 집안일처럼 환히 알고 철저히 관철해나가는 수천수만의 3대혁명기수들을 키워냈다. 천리마대안전기공장을 비롯한 도처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당일군경제선동조가 무어지고 하모니카중주, 시랑송을 비롯한 다채로운 선동활동으로 생산자대중의 전투적사기를 북돋아주는 등 정치사업을 대하는 일군들의 사상관점과 태도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사상혁명의 거세찬 불길속에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사상정신적면모에서는 혁명적전환이 일어나 6개년계획수행기간에만도 전국도처에서 《피바다》근위대, 《꽃파는 처녀》 근위대를 비롯한 수많은 충성의 대오들이 조직되여 활약하였으며 당대회결정의 철저한 집행을 담보하는 대중운동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하였다. 언제나 당의 뜻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대중의 무궁무진한 정신력을 백배천배로 분출시킨 사상전의 능수들은 우리 당의 크나큰 힘이였다.
자력갱생대고조로 당을 옹위한
당의 사상과 의도를 깊이 새겨안고 기술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일으키며 자력갱생대고조로 당정책을 옹위한 3대혁명선구자들이 1970년대에 수없이 배출되였다. 당 제5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소대전원이 영웅으로 자라난 룡양광산 금산광구의 7호굴착기 3대혁명기수들은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밑에 6개년계획을 2년 7개월동안에 완수하는 전례없는 혁신을 이룩하였다. 구름도 쉬여간다는 해발 1, 200여m의 백금산마루에서 10년동안에만도 자기들이 애써 마련한 좋은 채굴장을 8번이나 다른 작업반에 넘겨주고 소대의 핵심들을 다른 단위에 보내주면서 뒤떨어진 8개의 소대를 도와 다같이 천리마선구자대렬에 이끌어올리면서도 한사람당 생산액을 16배로 높인 영웅전사들의 위훈은 3대혁명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질풍같이 달려나아가는 영웅적로동계급의 기상을 전하며 온 나라를 격동시켰다. 신의주방적기계공장의 3대혁명기수들은 기술혁명을 다그쳐 공업부문들에서 반자동화, 자동화를 실현할데 대한 당대회결정을 높이 받들고 방적설비의 고속화, 현대화를 실현하며 우리 방적공업을 확고한 자립적토대우에 올려세우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기계설비를 자체의 힘으로 제작하였다.주체의 원칙, 주체적립장, 주체의 방법론에 의거하면 그 어떤 미지의 과학적요새도 점령할수 있다는 당의 뜻대로 교조주의, 기술신비주의를 짓부시고 180여차의 실패를 극복하며 끝끝내 우리 식의 우월한 방적설비를 만들어냄으로써 6개년계획의 직물고지점령에 크게 기여하고 년간 2억m의 천을 더 짤수 있는 예비를 조성하였다. 기계공업부문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은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우리 당의 혁명적구호를 충성의 전투기록장에 새겨넣고 헌신적인 과학탐구로 기계공업에서 일대 혁명으로 되는 주물소재생산의 현대화를 끝끝내 성공시킴으로써 오랜 세월 굳어졌던 낡은 기성방법을 단호히 깨버리고 공작기계 3만대고지를 점령하는데 기여하였다. 채굴설비를 대형화, 현대화, 고속도화할데 대한 당의 호소에 피끓는 심장으로 화답하며 기계공업부문의 3대혁명기수들은 불과 6개월 남짓한 기간에 우리의 기술, 우리의 설계, 우리의 자재로 《땅우의 배》로 불리우는 100t급대형자동차를 만들어 내놓았다.
선박공업부문의 3대혁명기수들이 나라의 해상운수발전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1만t, 2만t급대형선박들을 련이어 바다우에 띄운것을 비롯하여 희천공작기계공장, 천리마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평양건설기계공장, 천리마락원기계공장, 천리마대안전기공장에서
3대혁명선구자들은 우리 당의 계속혁명사상을 높이 받들고 새 기준, 새 기록창조로 시대를 진감시켰다. 승리에 자만함이 없이 부단히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돌진한 3대혁명기수들의 투쟁속에 당 제5차대회이후 2년동안에만도 전국각지에서 확대된 천리마작업반수는 7만여개, 천리마공장, 천리마협동농장 등은 410여개를 헤아렸다. 지하에서도 땅우에서도 대고조의 동음과 함께 시대를 격동시키는 놀라운 위훈들이 끊임없이 창조되였다. 석탄부문의 선봉에 서서 사회주의애국탄증산투쟁을 발기한 개천지구탄광련합기업소의 《피바다》근위대원들은 굴진을 확고히 앞세울데 대한 당정책의 요구대로 고속도굴진을 힘있게 벌려 6개년계획수행의 마지막해에는 한사람당 월굴진량을 최고 14m까지 끌어올렸으며 45만t의 석탄을 증산하였다. 룡성기계공장 제1주강직장 3대혁명기수들은 당창건 30돐을 맞으며 다진 결의를 지켜 20t전기로에서 공칭능력의 3.5배나 되는 70t의 쇠물을 단번에 뽑는 새 기록을 창조하고 중요대상설비생산을 위한 돌파구를 열어제낀 충성의 보고를 당중앙에 드리였으며 황철의 3대혁명기수들은 제철소조업이래 최고기록의 선철을 생산하고 그 기록을 해마다 갱신하였다. 6개년계획의 마지막해를 빛나게 장식하며 평양화력발전소의 3대혁명선구자들이 년초부터 계획보다 하루평균 100만kWh의 전력을 더 생산하는데 화답하여 북창화력발전소에서는 상반년기간에 5억kWh이상의 전력을 증산하여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믿음직하게 보장하였다. 놀라운 새 기준은 혁혁한 증산의 수자에만 있지 않았다. 《절약하고 절약하고 또 절약하자!》는 당의 전투적구호를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결의목표에 새겨넣고 전력원단위소비기준을 낮추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 년간 1억kWh이상의 절약예비를 탐구하고 강철 t당 전력소비기준을 17%나 낮춤으로써 당에 기쁨을 드린 강선제강련합기업소의 선구자들을 비롯하여 전국도처에서 당과 국가의 리익, 인민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며 꾸준한 절약투쟁으로 나라살림살이에 큰 보탬을 준 기수들도 수없이 많았다. 조국의 두줄기 궤도우에 수송혁명 200일전투의 불길을 지펴올린 철도부문의 3대혁명기수들은 전투기간에 전해 같은 기간보다 한달분이상의 짐을 더 수송하고 화차생산은 2.4배로 끌어올리는 장성을 기록함으로써 인민경제의 비상히 빠른 발전속도를 믿음직하게 뒤받침하였다. 공업도인 함경남도에서 200여개의 공장, 기업소, 300여개의 직장, 2, 000여개의 작업반들이 앞을 다투어 당대회결정관철의 테프를 끊은것을 비롯하여 각도들에서 수십만명의 3대혁명기수들이 6개년계획의 고지들을 련이어 점령하였다. 전야와 바다에도 시대를 격동시키는 위훈의 새 기록이 무수히 새겨졌다. 강서군 천리마청산협동농장이 전국의 앞장에서 해마다 보기 드문 대풍을 이룩할 때 고산군과 순천군의 3대혁명기수들은 토지정리와 개량을 잘하고 농사를 기계화, 화학화하여 강냉이소출을 정보당 최고 20t으로 끌어올리였으며 과학농사의 열쇠를 틀어쥔 문덕군 룡림리와 농촌테제발표 열돐 충성의 혁신농장창조투쟁에 떨쳐나선 중화군 삼성리의 《꽃파는 처녀》 근위대원들은 벌방지대 논벼농사에서 정보당 최고 13t을 내고 봉산군 토성리의 과수작업반은 사과를 정보당 80t 생산하여 온 나라를 놀래웠다. 동서해의 어로공들이 사철 바다를 비우지 말데 대한 당정책의 요구대로 300일출어만선투쟁에 떨쳐나 조국의 어장들에 풍어기를 높이 날리고 신포, 홍원, 양화, 서호, 단천 등지의 대규모수산기지들의 3대혁명기수들이 만능화된 배들로 2중3중의 어업활동을 벌려 한기망에 최고 100t, 하루 최고 1만 6, 000t의 물고기를 퍼내는 속에 계관근위청진수산사업소의 청년어로공들은 중형뜨랄선으로 1만여t의 물고기를 잡는 위훈을 떨치였다. 1970년대의 날과 달들은 이런 3대혁명선구자들의 충성의 열정과 전투적기백, 눈부신 위훈속에 흘렀다.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실한 3대혁명선구자들이 일터마다에서 하나가 열, 열이 백, 백이 천을 불러일으키며 용진한 대고조열풍속에 당 제5차대회가 제시한 6개년인민경제계획은 1년 4개월이나 앞당겨 완수되였으며 1970년부터 1979년사이에 우리 나라 공업생산은 해마다 15.9%의 높은 속도로 장성하고 공업총생산액은 3.8배로 늘어났다.
당대회결정관철의 전구마다에서 주체의 신념과 완강한 개척정신, 자력갱생, 견인불발로
사회주의문화발전을 힘있게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구호가 우리 인민모두의 사업과 생활의 지침으로 되던 1970년대에 사회주의문화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앞장에는 3대혁명선구자들이 서있었다. 주체예술이 혁명적예술, 인민적예술의 본보기로 온 세계를 진감시키고 전반적11년제의무교육의 전면적실시와 100만명이상의 기술자, 전문가의 대부대육성을 비롯하여 당 제5차대회가 제시한 문화혁명방침들이 빛나게 실현되던 나날에 우리 인민은 드높은 혁명적정열과 기백, 무한한 헌신성으로 로동당시대 문화의 자랑찬 전성기를 펼치였다.
기성가극의 낡은 틀을 마스고 주체가극예술의 본보기작품을 완성하던 보람찬 창조의 나날 창작가, 예술인들은 당에서 새로운 곡을 창작할데 대한 과제를 주면 온넋을 불태우며 그 밤중으로 수십편의 곡을 창작하여 당중앙에 보고드리였다. 대중의 심장마다에 혁명의 피가 펄펄 끓게 하는 명작을 창조해야 한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한 대목의 형상수정을 위하여 밤새워 수백번이나 노래를 부르면서도 힘든줄 몰라했고 마이크앞에서, 무대우에서의 쪽잠을 단잠으로 여겼다. 생손앓이를 하면서도 바이올린을 잡았고 끝이 째져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도 건반을 짚었으며 활대를 든채로 잠들 정도로 피곤이 몰린 속에서도 잠간 차례진 휴식시간마저 열기띤 창작토론에 바쳤다. 한 고지를 점령하는것과 동시에 련이어 새로운 봉우리를 향해 달려오르는 계속전진의 기풍속에 혁명가극《꽃파는 처녀》를 120여일동안에,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가 2년 남짓한 기간에 창조되여 5대혁명가극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였다. 함경남도, 량강도, 함경북도, 강원도예술단의 창작가, 예술인들도 혁명가극 《한 자위단원의 운명》, 《해빛을 안고》, 《두만강반의 아침노을》, 《남강마을녀성들》과 같은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려 우리 식의 가극예술발전에 기여하였다.
항일유격대원이 된 심정으로 배낭을 메고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발목이 시도록 편답하면서 백년, 천년이 흘러도 손색이 없는
명작창작으로 당을 옹위한 창작가, 예술인들의 전투적인 창조기풍속에 혁명적인 시와 노래, 훌륭한 영화와 연극들이 날에날마다 태여나 온 나라에 무한한 생기와 활력을 부어주었다. 사회주의대건설장들은 혁명하기 좋아하고 투쟁하기 좋아하는 우리 인민의 전투적기상이 나래친 항일유격대식문화의 화원으로 전변되였다. 피바다가극단과 평양예술극단의 예술인들이 강선땅에서 전개한 경제선동활동은 당시 대고조전투장들에 펼쳐지던 혁명적문화의 축도였다. 당중앙의 부름따라 강철증산과 대형분괴압연기건설로 들끓는 강선의 로동계급속에 들어간 예술인들은 력사의 백양나무밑에서 진행되는 작업반원들의 충성의 결의모임에 함께 참가하고 돌격대명단에 자기들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혁명가극의 주인공역을 맡은 공훈배우를 비롯한 예술인들은 용해공들과 함께 불길을 맞받아 원료투입도 하고 쇠장대를 틀어잡고 쇠물을 부어내며 혁명가요들을 불렀다.예술인들과 로동자들이 합창하는 혁명의 노래가 현장들에서 우렁차게 울리고 강선땅은 새힘과 열정으로 약동하였다. 날마다 500%의 기록을 세우던 공작직장의 한 선반공은 경제선동을 본 이후 첫날에는 800%, 다음날은 1, 050%라는 기적을 창조하였고 2중천리마 제1강철직장에서는 교대당 강편생산에서 최고기록을 냈으며 기업소는 강철생산에서 조업이래 최고수준을 돌파하였다. 항일유격대식선전선동의 불바람속에 전국의 대건설전투장들에서 경제선동의 북소리가 드높이 울리였다. 한달 남짓한 기간에 6, 000여리의 순회길을 걸으며 20여개의 시, 군에서 전투적인 선동활동을 벌린 중앙예술선전대의 예술인들, 파도사나운 중심어장에서의 현장선동으로 기망당 최고 12t의 물고기를 퍼올리게 한 강원도예술선전대원들, 수백개 안전모의 불빛속에 격식없는 막장《무대》를 펼친 평안남도예술선전대원들, 생눈길을 헤치며 해발 1, 700m의 림산작업소에 가설무대를 만들고 악기에 고드름까지 서리는 강추위속에서도 산판이 들썩하게 공연활동을 벌린 함경남도예술선전대원들의 화선경제선동은 대중의 심장에 혁신의 불길을 지펴주었다. 우리 당의 참된 혁명적예술인들이 화선식경제선동의 북소리를 높이 울리는 곳에서는 례외없이 혁명적열정과 랑만이 차넘치고 속도전의 열풍속에 낡은 기준량과 공칭능력이 타파되였으며 위훈의 자랑과 함께 항일유격대식예술이 우리 인민의 문화정서생활에 친근하게 자리잡았다. 로동계급의 새 문화가 나날이 꽃펴나 온 나라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의 첫 봉화를 추켜든 검덕의 광부들이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는데서도 전국의 앞장에 섰다. 이들은 막장전투지휘부와 휴계실, 학습실, 영양제식당, 치료실 등을 현대적으로 꾸려놓았고 모든 갱들을 배수, 통풍, 조명장치들이 완비된 문화적인 일터로 전변시켰다.나라의 주인된 높은 자각을 안고 사소한 부분도 세심히 살피고 정성껏 관리하여 모든 기대들을 《청춘기대》로 만들었고 어렵고 힘든 과제가 나설수록 갱, 직장별 예술소조경연을 다채롭게 조직하며 활기있게 일해나갔다. 검덕의 모범을 따라 천리마대안전기공장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주변야산들에 과수원도 조성하고 일터를 알뜰히 거두어 공장에 과일향기가 넘치게 하였으며 평양종합방직공장과 룡양광산, 룡성기계공장과 천리마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비롯한 수많은 단위에서는 구내를 공원화하고 갖가지 과일나무와 꽃관목을 심고 가꾸어 사회주의문화가 활짝 꽃피는 일터를 꾸려놓았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구성공작기계공장, 김책수산사업소 등 각지의 로동자들이 전국로동자예술소조축전에 적극 참가하여 군중문화예술의 새로운 경지와 로동계급의 높은 문화적소양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사회주의교육제도를 빛내이는 보람찬 길에 순결한 량심을 다 바친 3대혁명선구자들도 수없이 많았다. 교육과 과학탐구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절대적인 기준은 기성리론이 아니라 당과 혁명이 요구하는 우리식 리론, 우리식 탐구와 발견이라는 투철한 신념을 지닌 강계땅의 로력영웅강좌장과 같은 교육자들에 의해 청년대학생들속에서 세계과학계를 놀래우는 과학적발명들이 련이어 태여나 주체교육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리론교육과 실천교육, 교육과 생산로동을 결합할데 대한 당정책을 관철하여 교수를 생산현장에 접근시킨 김책공업대학과 덕천탄광고등석탄공업대학, 량강도 5호지구고등농업학교 등 수십개의 교정들에서 유능한 기술인재들을 수많이 배출하였다. 기초기술교육을 강화하여 모든 학생들이 한가지이상의 기술을 소유하게 하는데서 3대혁명선구자들이 모범을 보이였다. 화대군 하평고등중학교의 교육자들은 뜨락또르연구실과 야외실습장을 현대적으로 꾸려 당 제5차대회가 진행된 뜻깊은 해부터 전체 졸업생들을 뜨락또르운전기술을 가진 어엿한 농촌기계화초병으로 키워 사회주의협동벌로 떠나보내였다. 기술의무교육의 질향상에 힘을 넣은 온천군 천리마온천중학교에서는 80여종의 공작기계들과 기구들을 갖춘 실험실을 꾸리고 자체로 1, 000여종에 6, 300여점에 달하는 실험기구를 제작리용하여 수백명의 졸업생들이 높은 수준의 기술능력을 지니게 하였다. 15명의 학생을 위하여 세워진 조국땅 한끝 라진시 무창리의 학교로부터 하늘아래 첫동네 오수덕 두메산골의 학교들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서나 교육자들의 애국의 열정이 깃든 각종 실험실들과 자동차 및 뜨락또르연구실, 생물실, 자연실, 교재림들이 꾸려져 후대들을 나라의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6개년계획수행의 첫해에 수십명의 공훈교원이 배출되고 룡강군과 경성군, 문덕군과 평강군 등 모범교육군들이 해마다 늘어나 배움의 나라, 교육의 나라로 전변된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시위하였다. 100만명이상의 지식인대군을 육성할데 대한 당 제5차대회 결정이 빛나게 관철되여 우리 나라는 기술자, 전문가의 대부대를 가지게 되였다. 지식있고 문명한 기술인재들을 부르는 당의 요구를 심장으로 접수한 근로자들의 비상한 열의속에 전민학습의 열풍이 온 나라에 일어번졌으며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일떠선 공장대학, 농장대학, 어장대학, 광산대학들에서 수많은 기사, 준기사, 기수들이 자라났다. 룡성의 로동자대학생들은 생산현장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대학에서 배운 선진과학기술을 결합하여 재학기간에 일인당 평균 4~5건의 기술혁신안을 실현함으로써 나라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순천공업대학의 로동자대학생들은 520여건의 창의고안 및 합리화안을 창안도입하여 시안의 공장, 기업소들의 생산과 기술혁명과업수행에 이바지하였다. 과학농사의 주인이 되려는 분발심속에 정주군 일해협동농장에서는 50여명밖에 없던 기사, 기수들이 짧은 기간에 450여명으로 늘어났고 선천군 장공협동농장에서는 230여명의 청년들모두가 준기사로 되였으며 룡연군종합농장에서는 기계화가정운동의 봉화를 들었고 대관군 덕하협동농장 제2작업반에서는 작업반전원이 뜨락또르운전수자격증을 받은것을 비롯하여 많은 농장들에서 유능한 농업기술자들과 뜨락또르운전수대렬이 급속히 확대되였다. 전인민적인 학습열풍속에 1971년부터 1975년사이에 새로 52만 3, 000여명의 기술자, 전문가들이 양성되여 그 대오가 2배이상으로 확대됨으로써 인민경제 종업원총수에서 기술자, 전문가수는 1976년에 19.2%에 이르렀다. 1970년대의 3대혁명선구자들은 사상, 기술, 문화혁명수행의 자랑찬 성과로 당 제5차대회 결정을 빛나게 관철하고 공화국정부가 제시한 제2차 7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에 진입하여 영웅적위훈을 떨치며 당 제6차대회를 떳떳이 맞이하였다.
1970년대는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선진과학기술로 튼튼히 무장하고 높은 문화적소양을 지닌 3대혁명선구자들이 사회주의건설의 전구마다에서 혁명의 북소리를 높이 울리며 천만을 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킬 때 온 나라가 얼마나 거창한 창조와 변혁으로 들끓고 우리 당정책이 얼마나
사회주의의 귀중한 보배, 사회주의 이 강산에 비낀 충성의 거울로 인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자랑스러운 년대의 3대혁명선구자들이 발휘한 투쟁정신과 기풍은 혁명적삶의 훌륭한 교과서가 되여 오늘도 수천수만의 선구자들을 키워내고있다.
세폭의 붉은기를 휘날리며 격동의 년대들을 승리와 영광으로 빛내여온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과 3대혁명소조운동은 혁명의 새 승리를 향한 전인민적총진군의 무한대한 추진력으로 되여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을 반드시 안아올것이다.
주체110(2021)년 11월 17일 평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