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1월 20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전력증산을 위해 온넋을 바쳐가는 참된 실력가 평양화력발전소 화학직장 직장장 박순실동무에 대한 이야기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평양화력발전소가 창립된 때로부터 6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수도의 동력기지의 중요한 초소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발전소는 물론 나라의 화력발전부문에 없어서는 안될 기술인재로, 보배로 떠받들리우고있는 녀성직장장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과 조국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참된 애국자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다시금 뜨겁게 안아본다.
대를 이어 지켜가는 불빛
어머니날 아침이였다.온 나라 가정들이 명절분위기로 흥성이기 시작한 그 시각 박순실동무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길에 올랐다.같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그를 띄여보고 반색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같은 날에도 발전소에 나갑니까.이젠 나이도 있는데 자식들 공대나 받으면서 좀 쉴것이지.…》 《글쎄 잠간이라도 발전소에 나가봐야 마음이 편한걸 어쩌겠어요.》 이렇게 대답하고나서 박순실동무는 걸음을 옮겼다.실지로 그는 발전소를 떠나서는 못살것같았다.단발머리시절 발전소에 들어서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40여년세월이 흘렀다. 박순실동무의 아버지는 발전소의 첫 세대 기술자들중 한사람이였고 화학직장 직장장이였다.일밖에 모르던 아버지는 늘 직장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그런데 박순실동무가 18살 나던 해에 아버지는 너무도 뜻밖에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후 박순실동무는 발전소의 한 일군을 찾아가 자기를 발전소에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일군은 《발전소일이 쉽지 않아.더우기 순실이같은 어린 처녀는 어림도 없어.》라고 하면서 머리를 저었다.그러나 박순실동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저도 압니다.하지만 전 꼭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일하고싶습니다.》 이렇게 그는 평양화력발전소 화학직장에서 로동의 첫걸음을 내짚었다.집채같은 려과기들이 꽉 차있고 배관들이 그물처럼 뻗어갔으며 전동기들이 기운차게 돌아가는 화학정수장의 한끝에 있는 크지 않은 분석대가 그의 일터였다. 남들의 눈길이 덜 미치고 찾아오는 사람도 얼마 없는 그 일터에 박순실동무는 정을 들여갔다. 물을 떠나서 화력발전소에서의 전력생산에 대하여 순간도 생각할수 없다.그 물이 물리화학적으로 순수하지 못하면 보이라나 관로에 때가 껴서 전력생산에 지장을 주게 된다.박순실동무는 바로 침전, 청정, 려과 등 공정별로 물시료를 채취하여 물이 순수한가 아닌가를 분석하며 해당한 대책을 세우는 실험공이였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그 일을 박순실동무는 참으로 크게 여겼고 언제나 성실하게 해냈다.그 나날에 마음좋고 의젓한 연구사총각과 가정을 이루었고 인차 어머니가 되였다. 고난의 시기가 닥쳐왔다.발전소의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의 가정도 다를바 없었다.하루는 소학교에 다니는 딸애가 운동회를 앞두고 학급동무들이 입은것과 같은 체육복을 사달라고 졸라댔다.딸애의 소박한 소원마저 풀어줄수 없었던 박순실동무의 귀전에 직장을 그만두겠다며 떠나던 일부 실험공들의 말이 맴돌았다. 《순실동무, 동무의 그 기술과 재간이면 어디 가서든 성공하지 못하겠어요.딸애를 위해서라도 빨리 다른 길을 찾으라요.》 혹시 그들의 말이 옳을런지도 몰랐다.제 자식 하나 제대로 내세우지 못할바에야 차라리… 퇴근하여서도 착잡한 생각속에 모대기던 그는 어둠이 깃든 창가에 다가섰다.낯익은 발전소굴뚝이 어렴풋이 바라보였다. 불현듯 아버지생각이 났다.어쩌다 집에 들어온 날이면 아버지는 좋아라 모여든 다섯 자식을 데리고 발전소굴뚝이 바라보이는 창가에 서서 이렇게 말하군 했다.
그런 아버지여서 림종의 시각에도 발전소굴뚝이 잘 보이게 창가림을 제껴놓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일하던 초소에 선것만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지금 이 시각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순간이나마 조국이 겪는 시련보다 먼저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였다는것이 죄스러워 그는 저도모르게 눈굽이 젖어들었다. 그후 박순실동무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더 이악하게 일했다.힘든 과제가 나설 때마다 기꺼이 맡아나섰고 직장일을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화학실험실 실장으로 임명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어느날 현장을 돌아보던 그는 수리공들이 대형변압기를 해체하는것을 보았다.고장이 났는가고 묻자 한 수리공이 고장은 아니고 그저 보수날자가 돼서 그런다고 하는것이였다. 박순실동무는 생각이 많아졌다.그러니 변압기에 이상이 있든없든 날자만 되면 그것을 세우고 보수하는것이였다.물론 정기적으로 설비정비를 하는것은 좋다.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설비들이 만가동해야 할 때에 멀쩡한 변압기를 세우면 전력생산에 지장을 주는것은 어쩌며 모든것이 부족한 이때 대형설비를 통채로 뜯었다 맞추었다 하면서 들이는 로력과 자재는 어찌하는가. 그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구에 달라붙었다.피타는 노력끝에 변압기유속의 가스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가동중에 있는 변압기의 상태를 진단하여 보수주기를 합리적으로 정할수 있다는것을 밝혀냈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어려움을 겪는 조국의 짐을 덜어드리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였다는것으로 하여 느끼는, 언제나 나라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안을줄 아는 량심의 인간만이 느낄수 있는 행복이였다. 련이어 공업용수흐림도측정법을 창안도입하여 탈염수생산을 보다 과학적으로 진행하는데 이바지한 그는 일생에 가장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였다.그리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던것이다.성스러운 당기앞에서 붉은 당원증을 받아안는 박순실동무의 마음속에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시구절이 울리였다. … 무엇을 아끼랴 그 무엇을 서슴으랴 그대 숭엄하고 존엄높은 모습에 한줄기 빛이라도 더해드릴수 있다면 … 그날의 맹세를 지켜 박순실동무는 화학직장 직장장으로 사업하면서 종업원들이 마음을 붙일수 있도록 일터를 번듯하게 꾸리고 다심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들의 생활을 안착시켜나갔다.그 나날 일터에 대한 종업원들의 관점과 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진것은 말할것도 없고 화학직장은 2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고 3중모범기술혁신단위, 2중26호모범기대영예상직장으로 이름떨치는 발전소적인 본보기단위로 되였다. 남들이 선듯 들어서기 저어하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스스로 섰을뿐 아니라 40여년세월 순결한 량심을 다 바쳐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헌신해온 박순실동무의 모습앞에서 누구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깨끗한 량심으로 조국의 전진을 떠밀고있는가. 조국의 짐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있는가.
긍지높은 호칭-《물박사》
박순실동무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있다.언제 어디에 가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것이다.그는 직장일에 필요한 화학참고도서만이 아니라 물리학, 기계기술, 콤퓨터배우기 지어 건설과 관련된 도서들도 읽는다.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는 독서열에 대하여 박순실동무는 소박하게 말하였다. 《제가 책을 많이 보게 된것은 실험공으로 일하면서 모르고서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입니다.》 중학시절부터 머리가 좋고 화학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던 그는 여러가지 분석방법을 자신있게 배워나갔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이였다.가스분석실험이 잘되지 않아 안타까운 나머지 눈물이 그렁해있는데 당세포비서가 그의 곁에 다가왔다.박순실동무는 그에게 속상한 심정을 터놓았다.
그러자 당세포비서는 그를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우리 발전소에서 전력도 생산하고 평양시민들의 난방문제도 해결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박순실동무는 그에게 되물었다. 《제가 정말 이제라도 공부할수 있을가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가 있지 않나.로동자도 대학공부할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거던.》 그는 대학공부를 시작했다.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습과제를 수행하며 짬이 날 때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기술서적속에 파묻혀 시간가는줄 모르던 그 나날에 책은 그에게 있어서 순간도 떨어질수 없는 가장 귀중한것으로 되였다.대학과정안을 최우등의 성적으로 마치고 공업분석기사의 자격을 받은 후에도 하루도 번지지 않던 책읽기는 직장장이 되여서부터 더욱 절실한것으로 되였다. 직장의 설비들은 물론 타빈이나 보이라같이 발전소에서 물이 가닿는 모든 설비들에 대하여 손금보듯 알아야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나갈수 있었던것이다.그래서 그는 기계기술과 관련한 도서들을 보기 시작했다.책을 보아서 잘 리해되지 않는것은 수리공들과 오랜 기능공들에게서 도움받으며 이악하게 배웠다. 이렇듯 맡은 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성은 학문의 분야를 가리지 않고 탐독하게 했으며 꾸준하고 학구적인 태도는 박순실동무가 리론과 실천을 다같이 겸비한 실력가형의 기술일군으로 자라나게 하였다. 두해전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가 있은 후 발전소에서 전력생산목표를 높이 세웠을 때였다.늘어나는 탈염수소요량을 보장하기 위해 화학직장에서는 쓰지 않던 려과기 한대를 개조하기로 하였다.설비는 미끈하게 개조하였으나 문제는 려과재료였다.그때까지 려과재료는 수입에 의존하고있었던것이다. 우에서 려과재료를 보장해줄 때까지 기다리는수밖에 없다는 말들이 나돌 때 직장 부문당일군의 방에서는 박순실동무의 담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2월안으로 려과기를 개조하고 시운전을 보장하는것이야 우리가 당결정에 쪼아박은것이 아닙니까.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기술서적들도 연구하고 해당 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련계를 가지며 피타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는 화학적인 세척방법으로 려과재료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하였다. 실력이 있어야 당의 뜻을 충직하게 받들고 조국의 전진을 힘있게 떠밀수 있다는것을 신념으로 간직한 박순실동무는 자신뿐 아니라 직장의 종업원들도 기술인재, 기능인재로 키우기 위한 사업에 언제나 큰 품을 들이였다. 종업원들속에서 과학기술보급실운영을 보다 실리있게 조직할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던 어느날 직장 부문당일군이 그를 찾아왔다.그가 기술학습에 필요한 자료들을 뽑고있는것을 보고 부문당일군이 말했다. 《작업량이 적지 않겠는데 직장장동문 그걸 다 혼자 하려고 합니까?…직장의 재간둥이들에게 한번 맡겨보십시오.리춘익동무만 해도 김책공업종합대학 원격교육학부에서 공부하면서 프로그람작성수준이 얼마나 늘었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철없는 자기를 배움의 길로 떠밀어주었고 오늘은 종업원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지혜를 발동하도록 이끌어주는 당조직에 대한 고마움이 박순실동무의 가슴속에 뜨겁게 흘러들었다. 박순실동무는 운전공 리춘익동무에게 종업원들의 기술학습에 필요한 다매체편집물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맡기였다. 모르는것은 배워주고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은 일깨워주기도 하며 이끌어준 결과 리춘익동무는 훌륭한 다매체편집물을 만들어 발전소적인 보여주기사업에 나설수 있었다. 《직장장동지를 비롯한 일군들의 관심과 방조를 받으며 평범한 운전공이였던 제가 담당기사로 자라났습니다.그 나날 저는 집단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리춘익동무 한사람만의 심정이 아니다. 박순실동무가 종업원 한명한명을 기술인재로, 기능공으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품을 많이 들였는가 하는것은 당의 배려로 양덕온천문화휴양지에 가게 되였을 때 그의 가방 하나가 기술도서들로 꽉 차있었다는 사실만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전력생산의 오늘뿐 아니라 래일까지 기꺼이 맡아안고 자신을 바쳐가는 박순실동무의 헌신의 자욱은 평양화력발전소에만 새겨지지 않았다. 몇해전 능력이 큰 발전설비들을 새로 증설한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에서 시운전을 앞두고 화학정수장운영에서 애로를 느끼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순실동무는 그곳 로동계급을 돕기 위해 현지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바람으로 그는 생산공정을 깐깐히 살펴보고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여 원인을 찾아냈다.그의 아낌없는 방조속에 시운전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련합기업소일군들과 기술자들이 너무 고마워 인사를 하려고 그를 찾았을 때에는 이미 그가 평양으로 가는 차에 오른 뒤였다.직장의 탈염수생산공정의 기술개건을 위한 협의회시간이 박두하였던것이다. 후날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의 한 일군이 그를 만나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훌쩍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였을 때 박순실동무는 말하였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럽니까.같은 전력생산자들끼리 서로 돕는거야 응당하지요.우리 발전소들에서 전기만 꽝꽝 생산할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언제인가 TV로 박순실동무에 대한 소개편집물이 방영되였다.불같은 헌신과 높은 실력으로 전력증산을 위한 투쟁에서 뚜렷한 자욱을 새겨가는 그를 만나려고 많은 사람들이 발전소에 찾아왔고 또 전화를 걸어왔다. 그들가운데는 박순실동무의 중학시절 담임교원도 있었다.머리에 백발을 인 로교육자는 훌륭한 제자를 둔 기쁨으로 눈굽을 적시였다. 《난 순실이가 앞으로 이름난 과학자나 기술자가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물박사〉가 되였구만.》 우리는 박순실동무가 지금껏 전력증산을 위하여 지혜와 정열을 바쳐온 나날에 받은 발명증서, 과학기술성과도입증, 창의고안증서들도 펼쳐보았다. 수십건의 과학기술증서들이 있는 그에게 학위증서만은 없다.그러나 전력공업부문의 일군들과 기술자들, 로동계급은 그를 《물박사》라고 부른다. 학위증서가 없는 《물박사》, 긍지높은 이 호칭에 바로 박순실동무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쌓은 공적이 깃들어있고 그가 한생토록 품고 산 리상과 포부가 담겨져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그의 소원은 단 하나, 높은 실력과 뚜렷한 실적으로 자기 직장을 그 어떤 어려운 과업도 척척 해제끼는 직장, 사상, 기술,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앞선 직장으로 만드는것이였다. 지금 우리 조국과 혁명에는 이런 일군, 이런 공민이 필요하다. 자기 단위, 자기 일터를 그 부문에서 제일 앞서나가는 단위, 당에서 마음을 놓는 초소로 만들 때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는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이다. 어머니당에서는 얼마전 박순실동무에게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영광의 그날 박순실동무는 온갖 기쁨과 행복, 괴로움과 아픔을 겪으며 40여년세월 참고참았던 눈물을 다 터쳐놓았다.그리고 맹세다졌다. 한생을 깡그리 바쳐 어머니당과 조국의 존엄높은 모습에 밝은 빛을 더해드리겠다고. 어제날 화학직장 직장장이였고 혁명선배였던 아버지의 마음까지 다 합쳐…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