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12월 31일 로동신문

 

조국이여 마음껏 설계하시라, 우리 청춘 다 바쳐 현실로 꽃피우리

평양시 5만세대 살림집건설이 완공될 때까지
돌격대복무를 계속할것을 결의한

속도전청년돌격대 초급지휘성원들과 돌격대원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 당의 웅대한 구상이 현실로 펼쳐지고있는 방방곡곡의 대건설전역들에서 속도전청년돌격대는 힘있는 건설부대로서의 위력을 높이 떨치고있다.그 미더운 대오속에는 만기제대를 뒤로 미루고 돌격대복무를 계속하고있는 초급지휘성원들과 돌격대원들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부름에 화답하는 청년들의 기세가 높아야 온 나라가 들끓고 우리 혁명이 힘차게 전진할수 있습니다.》

이 땅우에 무수히 일떠선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건축물들과 더불어 청춘의 자서전에 떳떳이 새겨갈 혁혁한 위훈을 세우고도 그 어떤 대가나 보수, 명예나 안락도 바람이 없이 땀배인 돌격대제복차림그대로 조국과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는 우리의 주인공들,

그들의 장한 미거는 력사의 온갖 풍파속에서도 약동하는 젊음으로 힘차게 전진하며 비약하는 우리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확신하게 한다.

 

당의 구상은 우리의 리상

 

지난 3월 23일 속도전청년돌격대원들은 누구나 쉬이 잠들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진행된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닌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누며 마음속격정을 터놓고있을 때 제2려단 3대대 1중대장 김정혁동무는 급히 걸음을 다그치고있었다.

《평양시 5만세대 살림집건설이 완공될 때까지 돌격대복무를 계속하게 해주십시오.전 이 건설에 꼭 참가하고싶습니다.》

그의 돌발적인 제기에 일순 굳어졌던 대대지휘관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동무의 심정이 리해되오.하지만 동무의 어머니가 서운해하시지 않을가.》

사실 김정혁동무도 집에 홀로 계실 어머니가 걱정되였다.돌격대제복을 입고 고향을 떠나온지도 벌써 10여년, 그 오랜 세월 아들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싶었다.하지만 그 시각 귀전에 메아리쳐오는것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착공식장에서 평양에 5만세대의 현대적인 살림집을 건설하는것은 수도시민들에게 보다 안정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제공해주기 위하여 우리 당이 크게 벼르고 준비해온 숙원사업이라고 하시면서 건설의 주역을 맡게 될 건설부대의 하나로 속도전청년돌격대도 불러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자애로운 어버이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어린 그 말씀에서 김정혁동무는 보람찬 이 시대의 청춘이며 위력한 청년건설부대, 속도전청년돌격대의 초급지휘성원인 자기를 찾는 조국의 부름을 듣는것만 같았다.

거창한 대건설전투를 앞두고 어찌 복무년한이 다되였다고 대오를 떠날수 있으랴.

바로 그래서 그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안겨주신 그 믿음에 청춘시절을 깡그리 바쳐 보답하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다지고 이렇게 찾아왔던것이다.…

그는 결연한 어조로 말하였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전쟁로병이였습니다.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총동원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받들고 열다섯살 나던 해에 총을 잡고 전선으로 나갔다고 합니다.제가 어릴 때 어머니는 늘 외할아버지처럼 참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군 했습니다.》

오로지 당과 조국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조국의 위대한 력사를 창조한 전세대의 넋은 이렇게 세대와 세대를 이어 맥맥히 흐르고있었으니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연설을 받아안으며 김정혁동무와 같은 결심을 내린 제2려단 2대대 3중대 정치지도원 박철동무도 조국보위의 길에 한몸을 아낌없이 내대였던 영예군인의 아들이였다.

수십명의 초급지휘성원들이 돌격대복무를 계속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돌격대원들속에 퍼져가고있을 때 제1려단 4대대의 김용일동무는 려명거리준공식때의 일을 되새겨보았다고 한다.

나라의 대경사로 세상이 들썩하게 새 거리의 탄생을 선포하던 그날 환한 미소속에 준공테프를 끊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곁에는 바로 푸른색의 돌격대제복을 입은 려단지휘관이 서있었다.

영광의 그 자리에 마치 자기들도 함께 서있는듯하여 이 순간이 영원히 지나가지 말았으면 하는것이 그때 김용일동무의 심정이였다.그후 그는 새 거리, 새 마을을 일떠세울 때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또다시 모시고싶은 간절한 소원을 품고 청춘시절의 보람찬 자욱을 새겨왔다.

잊지 못할 추억을 더듬어보는 그의 마음속에서 이런 웨침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건설하는 희한한 거리들이 이 땅우에 솟아날 때 그날의 영광스러운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면… 내 그날까지 영예로운 청년건설자로 살리라.)

비단 김용일동무만이 아니다.제3려단 3대대 대원 리진호동무를 비롯한 수많은 돌격대원들이 당의 구상이 펼쳐지는 살림집건설장에서 청춘의 리상을 꽃피울 일념으로 돌격대복무를 계속할것을 열렬히 제기하였다.

나서자란 고향과 가슴속에 품은 사연은 서로 달라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절절히 그리며 그이를 따라 곧바로 힘차게 나아가려는 마음만은 꼭같은 돌격대원들, 그들가운데는 처녀돌격대원들도 있다.

이름은 김윤심, 나이는 스물다섯살, 제11려단 1대대 대원인 그는 중량급화물자동차운전사이다.

당의 부름을 받들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과 피해복구전투장들을 누비며 그가 나른 골재와 세멘트를 다 쌓아놓으면 아마도 산이 될것이다.때로 운행길에서 자기 키만한 차바퀴가 고장날 때면 그 육중한것을 다루며 수리를 하느라 힘겹기도 하였지만 그는 늘 웃으며 달렸다.하기에 그는 청년동맹 제10차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대회장에서 돌아온 후 그는 지원물자들을 마련해가지고 건설장에 찾아온 어머니를 만났다.그날 처음으로 딸이 모는 자동차에 오른 어머니에게 김윤심동무는 돌격대복무를 계속할 의향을 내비쳤다.어머니는 깊은 생각끝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처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동차운전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난 반대했었지.…솔직히 지금도 널 품에 끼고 다른 처녀들처럼 보란듯이 내세우고싶은 생각은 없지 않다만 젊은 시절에 일을 많이 해서 당의 은덕에 보답하고싶다니 네 결심대로 하거라.그게 아마 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조향륜을 놓지 않은 아버지의 뜻을 잇는 길일게다.》

김윤심동무와 함께 제3려단 3대대의 라금향동무를 비롯한 여러명의 처녀돌격대원들도 청춘시절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고있다.

앞서 이야기한 제2려단 3대대 1중대장 김정혁동무에게는 사랑을 약속한 처녀가 있다.그가 제대를 미룰 결심을 터놓았을 때 처녀는 방긋 웃으며 김정혁동무가 수도건설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우고 돌아올 날을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그도 역시 어제날 건설장에서 이악한 처녀소대장으로 이름떨치던 속도전청년돌격대원이였다.

어렵고 힘든 건설장에서 오랜 세월 돌격대생활을 하고도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지 않고 복무의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것은 결코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리고 애젊은 나이에 그 어떤 고생도 시련도 달게 여기며 조국이 부르는 곳마다에서 위훈을 떨쳐온 그들에게는 남은 청춘시절에 가지가지의 남다른 꿈과 희망을 꽃피울 당당한 자격이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리상과 포부를 당의 구상에 일치시키고 삶의 보람도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치는데서 찾고있다.

그러니 우리 어찌 이들의 소행을 전화의 나날 조국을 지켜 빛나는 공훈을 세우고도 또다시 페허가 된 나라를 복구해야 할 막중한 일감을 걸머지고 산으로, 바다로, 개발지로 주저없이 달려간 전승세대의 위훈과 나란히 놓지 않을수 있으랴.

 

값높은 위훈의 터전

 

비옥한 토양을 떠나 아름드리거목을 생각할수 없다.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인공들이 오늘과 같이 성장할수 있은것은 속도전청년돌격대라는 훌륭한 토양이 있기때문이다.

제4려단 3대대 1중대장 신철민동무의 마음속에는 잊을수 없는 추억이 간직되여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무서운 돌풍과 무더기비로 두만강연안의 여러 시, 군이 자연재해를 입었을 때 속도전청년돌격대도 려명거리건설장에서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급파되였었다.

이루 말할수 없이 어려운 조건에서 《적기가》를 부르며 길을 열고 살림집을 건설하던 어느날 신철민동무의 중대가 일하는 작업장에 그곳 주민들이 지원물자를 한아름 안고 찾아왔다.이러면 안된다고 돌격대원들이 사양했으나 주민들은 막무가내였다.

《이보라구.우리가 이러는건 제 살 집을 지어주는것이 고마와서만이 아니네.젊은 나이에 당의 뜻을 받들자고 땀을 흘리는 임자들이 너무 대견해서 그러는것이니 제발 사양말아주게.》

이러며 손으로 눈굽을 꾹꾹 찍는 로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철민동무는 자기의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그전에 그는 무엇이든 제멋대로 하려는 거친 성격때문에 지휘관들의 속을 많이도 태웠다.

(돌격대 아니면 일할데가 없을라구.) 하며 배낭을 메고 떠나려던 신철민동무를 기어코 돌려세운 사람은 그가 돌격대에 입대하였을 때 처음으로 맞아준 대대지휘관이였다.

《청춘시절에 뿌리를 들고 되는대로 살면 아무런 열매도 없이 인생을 망치고말아.가더라도 진짜배기청년돌격대원이 된 다음에 가라구.》

웅심깊은 그 진정에 신철민동무는 다른 말을 더 할수 없었다.

우리 당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으로 수놓아진 돌격대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당의 건설구상을 받드는 길에서 청춘을 빛나게 산 돌격대영웅들에 대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주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때로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부모를 대신하여 아픈 매도 들고 때로는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처럼 젊은 시절에 한가지라도 많이 배워야 한다면서 밤깊도록 학습지도도 해주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신철민동무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은 나에게 맡겨달라, 그에게서는 이런 불같은 웨침이 자주 울려나왔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건설의 나날 중대앞에는 방대한 면적의 미장을 한시바삐 끝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되였다.그때 고열로 신음하는 속에서도 미장칼을 휘두르던 그의 모습을 지금도 중대대원들은 잊지 못하고있다.

신철민동무의 앞가슴에 첫 공로메달이 번쩍일 때 대대장은 말했다.

《이젠 진짜 청년돌격대원답소.》

이렇게 신철민동무는 당의 숭고한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돌격투사, 조국과 인민을 위함이라면 그 어떤 고생도 락으로 여기며 자기를 깡그리 바칠줄 아는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이런 마음을 안고 신철민동무는 려명거리건설을 비롯한 중요대상건설에 청춘의 땀과 열정을 다 바쳐나갔으며 그후 중대장이 되여서는 자기 중대를 모든 면에서 쇠소리나는 기준단위, 본보기단위로 꾸려나갔다.

지난 8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어렵고 힘든 부문에 탄원진출하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한 청년들을 만나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신철민동무는 가슴이 설레이는것을 금할수 없었다.그는 한날한시에 돌격대에 입대하여 함께 성장한 같은 대대의 3중대 정치지도원 조효성동무에게 돌격대복무를 계속하는것으로 가장 훌륭한 인생의 졸업증을 받으려는 결심을 터놓았다.그의 이야기를 듣는 조효성동무의 마음속에서도 세찬 충동이 일어번졌다.

몇해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에서 그는 뜻밖의 일로 심하게 다쳐 병원에 실려갔었다.

그의 상태를 놓고 의료일군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해할 때 대대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이 달려와 그들의 주위에 어깨성을 쌓았다.

《우리 효성동무를 꼭 살려주십시오.피면 피, 살이면 살 필요한것을 우리가 다 바치겠습니다.》

몽롱해지는 의식속에서도 그 목소리를 들으며 조효성동무는 뜨거운것을 삼켰다.한가마밥을 먹고 한이불을 덮고자며 청춘의 아름다운 꿈을 가꾸어온 동지들의 사랑과 정이 불사약이 되여 그는 병을 털고 일어섰다.

병원문을 나설 때 사실 그의 몸은 돌격대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는 새로운 전투장으로 떠나가는 돌격대를 한사코 따라나섰다.

《난 돌격대를 떠나 순간도 살지 못합니다.돌격대는 나의 정든 집입니다.》

우리는 취재과정에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이번에 돌격대복무를 계속하기로 결심한 초급지휘성원들과 돌격대원들속에 벌써 여러해째 제대를 미루고있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것이였다.

제7려단 측량공 최효성동무만 보아도 그렇다.돌격대복무년한이 15년이 되는 그는 려단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떠받들리우는 고급기능공이다.

그는 몇해전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녔을 때 만기복무를 가까이하고있었다.고향으로 가고싶은 마음은 불같았지만 당시 려단의 실정이 발목을 붙잡았다.새로운 건설과제를 맡아안고 그 어느때보다 기능공이 필요한 때였으나 신입대원들이 많이 들어온것으로 하여 애로를 겪고있었던것이다.

최효성동무는 돌격대의 구대원으로서 더우기 당원으로서 외면할수 없었다.그래서 스스로 제대를 미루었다.그후 몇해동안 자기가 오랜 세월 터득한 측량기술과 경험을 신입대원들에게 넘겨주었으며 지금도 많은 기능공들을 키워내고있다.

사회주의건설의 보람찬 실천투쟁속에서 자기자신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하고 혁명을 생각할줄 아는 참된 청년들로 자라나는 돌격대원들의 성장을 언제나 사려깊은 어머니의 눈빛으로 지켜본 당과 조국은 그들의 장래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주었다.

제7려단에서 복무하고있는 고국성동무는 몇달전 대학추천을 받았다.어려서부터 문학공부를 꿈꾸어온 그의 희망과 돌격대에서 복무하면서 좋은 시작품들을 창작하여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서도 여러 차례 당선된 재능을 헤아려 나라에서는 그를 배움의 길로 떠밀어주었던것이다.

나라의 은덕에 목이 메여 잠 못이루던 날 밤 그는 보람찼던 돌격대생활을 돌이켜보며 가장 사랑하는 리수복영웅의 시《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의 구절구절을 입속으로 외웠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그렇다.인생에 한번밖에 없는 청춘시절을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과 조국을 위해 바치는것보다 더 긍지높고 보람찬 삶이 어데 있으랴.

이런 삶의 진리를 가르쳐준 청춘대학의 최우등졸업생이 될 마음으로 그는 보람찬 사회주의건설장에서 뚜렷한 공훈을 세우기 전에는 제대되지 않으리라 마음다졌다.

아들의 쉽지 않은 결심을 놓고 교육자인 고국성동무의 아버지는 말했다.

《집안의 막내, 응석받이였던 아들이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니 돌격대를 왜 청춘의 용광로라고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어떤 광석이든 용광로에 들어가면 한가지 빛갈 즉 붉은색의 쇠물로 된다.

청춘의 용광로, 영원한 위훈의 터전인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는 어디서 나서자랐든, 어떤 생활경위를 거쳤든 누구나 당과 조국에 무한히 충실한 쇠소리나는 청년전위들만이 태여나기마련이다.


* *


우리는 지금껏 돌격대복무를 계속할것을 결의해나선 210여명의 초급지휘성원들과 돌격대원들에 대하여서만 이야기한것이 아니다.그 모든것은 사실 속도전청년돌격대원들 누구나 가슴에 품고있는 뜨거운 사연이고 한결같은 심정이다.

이런 미더운 청년건설자들이 사회주의대건설장들을 지켜섰기에 우리 당이 펼친 인민사랑의 건설전역들에서는 날에날마다 기적과 혁신이 창조되고있는것이다.

조국이여, 마음껏 설계하시라.

이 땅에는 당과 혁명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렇듯 충성스럽고 용감한 애국적인 청년들의 대부대가 있다.

글 본사기자 김송이
사진 리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