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월 12일 로동신문
자랑찬 승리의 해에 온 나라에 소문을 낸 다수확작업반 연안군 도남협동농장 제12작업반 농장원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 작업반에 경사가 났어요.》 영광의 자리에 선 작업반장 박순란동무를 보며 크나큰 환희와 격정에 울고 웃은 작업반원들,
그들이 바로 지난해의 불리한 기후조건과 어려움을 완강히 이겨내고 국가알곡생산계획을 9월 30일까지 완수하고
《농사의 주인은 농민들이며 농업생산장성의 열쇠는 농업근로자들의 생산적열의를 높이는데 있습니다.》 연안군 도남협동농장 제12작업반원들!
한명한명이 다 사회주의협동벌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농장원들이다.하지만 그들은 지난해 당과 국가의 고심과 고민을 함께 걸머지고 1년내내 바람세찬 전야에서 성실한 땀을 바쳐 우리당 농업정책의 정당성을 결사의 실천으로 증명하였으며
애국열로 무르익힌 소중한 열매
지난해 정초 온 나라 인민들과 마찬가지로 연안군 도남협동농장 제12작업반 농장원들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크나큰 격정속에 맞이하였다.
벌방지대이든 중, 산간지대이든 논벼와 강냉이의 정보당수확고를 높일데 대한
지난 10년간 작업반은 해마다 국가의무수매계획을 수행하여왔지만 정보당수확고 5t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벌방인 연안군에서 도남리는 야산지대에 자리잡고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제12작업반은 경작조건이 제일 불리하였다.그러나
(죽으나사나 방도를 찾아야 한다.) 박순란동무는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도슬러먹으며 늘 품고다니던 포전략도수첩을 꺼내들었다. 그가 농업과학기술선전실에서 작업반포전들의 필지별특성과 지금껏 수확고를 올리지 못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고있는데 작업반당세포비서 리용인, 기술원 채창원동무와 분조장들인 림상철, 신현학, 김명순동무들이 들어섰다.
올해엔 기어이 다수확을 내자고, 우리 농업근로자들이
그는 작업반원들과 마주앉아 어려운 조건을 툭 털어놓고 앞으로의 농사일을 토의하였다. 종자가 첫째이니 지난 10년동안 심어온 품종들가운데서 우리 고장의 기후조건에 알맞는 종자를 주동적으로 골라서 심자.작업반의 매 농장원이 오가는 거리가 먼 자기의 담당포전들에서 저마끔 모를 기르지 말고 마을가까이에 있는 남새밭에 공동으로 모판자리를 정하고 밤낮없이 돌보아 모를 충실히 길러내는것이 어떻겠는가. 가지가지의 좋은 의견이 나오는 속에 또 하나의 초점으로 된것은 자급비료를 포전에 내는 문제였다.비료를 비롯한 영농물자가 부족한 조건에서 자급비료를 많이 내면서도 그 효과성을 최대한 높여야 하였는데 지난 시기에는 포전들에 거름더미 하나를 5t정도 되게 쌓아놓다나니 산포할 때 그 반경이 너무 넓어 골고루 뿌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던것이다.결국 거름더미가 놓였던 자리와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의 농사작황이 현저히 차이나군 하였다. 《포전에 내는 거름더미 하나를 300~400㎏정도로 작게 만들어 거름더미개수를 더 많이 늘이면 어떨가요? 그러면 포전에 자급비료를 골고루 펼수 있을것같아요.》 작업반장이 내놓는 창발적의견을 모두가 지지해나섰다. 당대회결정을 관철할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주저하고 서슴으랴. 작업반원들은 이런 각오로 불리한 농사조건을 과감히 이겨나갔다. 잘 썩인 벼짚과 풀거름을 말끔히 실어내고 열두바닥파기에도 떨쳐나 거름원천을 모조리 찾아냈다.모래기가 많은 논에는 진흙을 깔아주고 수렁논의 흙은 밭에 펴주었다.비탈밭을 한평이라도 더 늘이기 위해 밤늦게까지 돌을 춰냈으며 재해성기후를 기정사실화하고 과학농사작전도 짜고들었다.그런가하면 밭모기르기방법을 받아들여 줄대같이 실한 모들을 키워냈다. 다른 작업반들에서는 농장원들이 비료가 적다고 맥을 놓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제12작업반원들은 그 적은 량의 비료에 닭배설물과 진거름 등을 골고루 섞어 정성껏 묻어주었다.그러고나서 땅에 대고 간절히 속삭였다.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데 올해엔 기어이 다수확을 내려는 우리 마음을 알아주려마.》 모내기철이 점점 다가왔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다.작업반포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천수답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기상자료를 알아보며 작업반원들이 애를 태우고있을 때 2분조장 박산옥동무와 1분조 선동원 유혜옥동무를 비롯한 녀성농장원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마른 땅을 뚜지고 물을 날라다 부어서라도 적기에 모를 내자요.전화의 애국농민들은 총포성이 울리고 폭탄이 터지는 속에서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았나요.》 눅눅한 논판흙을 호미로 파고 줄을 맞추어 벼모를 하나하나 심어나간 농장원들, 포전곁을 지나던 길손들이 그들을 보고 비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내기를 하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였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말하였다. 《하늘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어디 한번 보자는거예요.》 그로부터 얼마후 비가 내려 그들이 논을 파고 심은 벼모들이 푸르싱싱하게 살아났다. 하지만 불리한 일기조건은 계속되였다.모내기철이 지나자 폭염이 기다렸다는듯 들이닥쳤다.하늘과 땅을 통채로 불태울듯 이글거리는 폭염속에서 작업반원들은 한차례 또 한차례 무려 5회까지 김을 맸다. 김매기하러 갈 때면 작업반원들은 큼직한 물통을 하나씩 들고나서군 하였다. 그것이 갈증을 가시기 위한것이였던가.뜨겁게 내려쪼이는 뙤약볕속에 김을 매나가느라면 금시 불붙는듯이 달아오르는 농립모며 머리수건을 적시기 위한것이였다.그 물통의 물이 불과 한시간도 못가서 바닥이 나군 하였다니 작업반원들이 흘리고흘린 진한 땀은 과연 얼마일것인가. 강냉이포전에서 폭염피해를 줄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던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군인민병원으로 후송되였던 농장원도 있다.2분조원 유향옥동무이다. 급성충수염이라는 진단을 내리고나서 수술에 진입한 군인민병원 의료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처럼 위험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의 모진 아픔을 그가 어떻게 참으며 일하였는지 도저히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후날 분조원들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어쩌면 그렇게까지 목숨을 내대고 일할수 있었는가고 하였을 때 유향옥동무는 작업반속보판에 큼직하게 써붙인 글발을 가리켰다. 《쌀로써 우리 혁명을 보위하자!》라는 구호였다. 《당에서 우리 농장원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는데 죽을지언정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주인구실을 해야 하지 않겠나요.》 하늘만 올려다보며 땅을 다루는 농민이 아니라 사회주의수호전의 최전방을 지켜선 전초병이라는 자각과 결사의 정신에 떠받들려 이삭들은 알알이 영글어갔다.마을앞 논벌들에는 탐스러운 벼이삭들이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산기슭의 비탈밭들에도 팔뚝같은 강냉이들이 선들바람에 구수한 낟알향기를 풍기였다. 작업반에서는 논벼와 강냉이를 지난 시기보다 정보당 3t이상씩 더 내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함으로써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알곡증산목표를 점령하였다. 연안군 도남협동농장 제12작업반원들이 지난해의 어려운 환경에서, 남들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서 거둔 다수확! 그것은 만난이 겹쳐들수록 당의 농업전사의 본분을 다하여 조국의 전진을 기세차게 떠밀려는 결사의 각오와 의지, 불같은 애국충정으로 무르익힌 소중한 열매였다.
정이 흘러야 농사가 잘된다
연안군 도남협동농장 제12작업반원들이 이룩한 다수확의 성과도 훌륭하다.그러나 그보다 더 귀중한것은 쌀로써 혁명을 보위하고 사회주의를 지키는 성스러운 길에서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친 화목한 사회주의농촌의 본보기작업반이 또 하나 태여난것이다. 사실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이곳 작업반은 농장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작업반이였다.그런것으로 하여 다른 작업반에서 분조장으로 일하다가 작업반장사업을 맡게 된 박순란동무는 걱정이 산같았다. 작업반장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는 자기가 농장적으로 뒤꼬리를 차지한 작업반의 농사를 어떻게 추켜세우겠는가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도남리당비서 최복덕동무가 한 말이 있다. 《농사는 물이 없어서는 안되지요.하지만 작업반농사를 잘하는데서 물보다 더 중요한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요?》 그가 느닷없이 묻는 바람에 박순란동무는 눈이 둥그래서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그러자 녀성리당비서는 이렇게 말을 잇는것이였다. 《바로 정이예요.반장동무랑 작업반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되고 작업반에 정이 철철 넘쳐흐르면 농사는 반드시 잘될거예요.그러자면 작업반장인 동무가 자신을 깡그리 바쳐야 해요.》 수십년째 당사업을 해오는 리당비서의 의미깊은 이야기를 박순란동무는 가슴깊이 쪼아박았다. 작업반에 정이 철철 넘쳐흐르면 농사가 잘된다! 그 말을 생활신조로 간직한 박순란동무는 항상 자기보다 작업반원들을 먼저 생각하였다.제 집은 별로 돌보지 않아도 농장원들의 집일에는 두팔걷고나섰다.집단의 힘을 발동하여 작업반원들의 집지붕에 기와도 씌우고 창고며 집짐승우리를 비롯한 보조건물들도 번듯하게 지어주었다. 몇해전에 그는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그때문에 평양에 올라와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는 어떻게 하면 돌아갈 때에 작업반원들에게 필요한 작업복과 장화, 생활용품을 하나라도 더 마련해가지고 가겠는가 하는 생각에 골똘하였다. 병으로 잘 걷지 못하는 그가 매일같이 작업반포전들을 돌아보느라 힘겨워할 때면 사람들은 자동자전거라도 한대 사서 리용하라고 권고하군 하였다.하지만 박순란동무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그럴 자금이면 우리 농장원들의 집에 세간 하나라도 더 놓아주겠어요.》라고 하며 지팽이를 짚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군 하였다. 뜻밖에 그의 병세가 호전되였을 때 작업반원들은 제일처럼 기뻐하며 말하였다.우리 반장 마음이 하도 곱고 성미가 불같으니 병마도 머리를 수그린게라고. 반원들과 작업반농사를 위해 바쳐가는 박순란동무의 뜨거운 진정은 반원들의 가슴속에 작업반에 대한 열렬한 애착과 함께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나라일을 제일처럼 여기는 참된 마음을 심어주었으며 그로 하여 작업반은 10년째 농사는 물론 모든 면에서 농장의 첫자리를 양보하지 않고있다. 작업반이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쌀로써 우리 당을 충직하게 받드는 애국집단으로 자라나게 된데는 당세포비서 리용인동무의 숨은 노력도 깃들어있다. 제대군인당세포비서인 리용인동무는 언제 한번 요란한 언사를 쓴적 없는 실농군형의 당초급일군이다.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작업반원들을 이끌어왔다.남들이 잘 맡으려 하지 않는 제일 먼곳의 포전을 솔선 맡아가지고 영농작업에서 늘 앞장서는 그의 말없는 헌신과 실천자체가 더없이 위력한 선동이였다. 그의 집에는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자라고있다.열매가 한창 무르익는 계절이면 그는 잘 익은 복숭아며 살구를 골라따가지고 와서 영농작업으로 한밤을 꼬박 새운 작업반장과 농장원들의 손에 슬며시 쥐여주군 하였다.《아직 아침식사도 못했지요.》라고 하며. 그가 수더분한 미소와 함께 내놓는 복숭아며 살구의 맛이 얼마나 꿀맛이였는가를 박순란동무와 작업반원들은 오늘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지난해말부터 다른 작업반의 반장사업을 맡게 된 작업반기술원이였던 채창원동무는 제12작업반적으로 걸음을 제일 많이 걷는 사람이였다.지난해에도 작업반원들이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짓도록 하기 위해 그는 하루에 거의 100리나 되게 걸으며 기술지도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작업반초급일군들이 이렇듯 사심없이 성실하게 자기 위치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니 농장원들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하고 서로 돕고 이끄는것이 하나의 기풍으로 된 작업반에서 뜨락또르운전수 리용철동무와 같이 젊어서는 한때 말썽꾸러기로 조직과 집단의 짐이 되였으나 오늘은 로동당원으로, 작업반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기둥으로 자라난 사람들도 있다. 지난 시기 농장적으로 무슨 일에서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구나 헌신분투하는 작업반에서 견뎌내기 힘들다고 다른 작업반으로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김향숙, 유선경, 로성실, 김철혁동무를 비롯한 작업반원들은 이렇게 서로서로 다짐하군 하였다. 《우리 농사를 더 잘 지어서 군이 아니라 온 나라에 소문을 내자요.그래서 우리 작업반일이 힘들다고 떠나간 사람들이 예술영화 〈도라지꽃〉에 나오는 박원봉이처럼 꼭 후회하게 만들자요.》 그날의 리상과 포부가 실현되여 지금은 일을 해도 본때있게 하는 제12작업반에서 일하고싶다고 하면서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아오고있다.
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인 지난해 이곳 작업반원들은 하나로 굳게 뭉친 집단주의의 위력을 더 높이 발휘함으로써 당대회결정관철을 위한 다수확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고
그들은
우리 혁명이 시련을 과감히 맞받아 새로운 승리에로 돌진해나가고있는 중대한 시기에 사회주의전야마다에서 다수확농민, 다수확작업반대오가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는것은 우리 조국과 인민에게 있어서 참으로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