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월 28일 로동신문

 

로과학자가 수십년세월 걸은 강선길

김책공업종합대학 금속공학부
연구사 교수 박사 박경룡선생에 대한 이야기

 

뜻깊은 올해의 첫아침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크나큰 영광을 지닌 공로자, 로력혁신자들가운데는 80고령을 가까이한 로과학자도 있었다.

그가 바로 최근년간 보산제철소의 회전로에 로체송풍기술을 도입하여 주체철생산을 늘이는데서 핵심적역할을 한 김책공업종합대학 금속공학부 흑색금속연구소 주체철연구실 연구사 박경룡선생이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의 념원이 어려있는 주체철공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사연많은 강선길을 수십년세월 묵묵히 걷고걸은 로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당이 부르는 사회주의건설의 주요전구들마다에서 높은 과학기술연구성과로 통장훈을 부르고있습니다.》

박경룡선생이 보산제철소의 로동계급과 첫 인연을 맺은것은 1960년대말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구상에 따라 주체적인 제철공업기지인 4월13일제철소(당시)가 건설될 때 박경룡선생은 회전로운영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연구집단에 망라되여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그때 대학을 졸업한지 몇해 되지 않았던 그의 심정은 이루 말할수 없이 기뻤다.천리마의 고향 강선에서 현장기술자로 일하면서 쇠물을 꽝꽝 뽑아내는것은 대학시절 그가 품어온 꿈이였던것이다.졸업후 대학연구사로 배치받은것으로 하여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그는 우리의 야금기술을 하루빨리 발전시키고 나라의 강철공업을 떠메고나갈 인재들을 키우는 일 역시 쇠물을 끓이는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잡으며 교정에서의 연구사업에 전념하고있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던 그 소원을 이루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연구사업을 한다는것은, 한마디로 불을 다루고 불을 길들인다는것은 결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불길의 형태와 불꽃의 크기, 용성물의 상태 등을 그때에는 육안으로 감시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실로 조련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피곤이 몰려 로앞에서 깜빡 졸았는데 한 용해공이 달려와 그를 흔들어깨우더니 로앞에서 졸면 사고가 난다고 하는것이였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점직해하는 그를 보며 용해공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교대작업에 진입하기 전에 우리 용해공들은 절대 사고를 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요.다 우리 수령님의 은덕이지.

하루빨리 저 회전로에서 립철을 꽝꽝 생산해서 전기로에 보내주어야 그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할수 있을텐데.…

연구사선생, 부탁컨대 우릴 잘 도와주시우다.》

오랜 로동자의 이야기가 박경룡선생에게 준 충격은 컸다.

하여 그는 연구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회전로운영방법을 보다 완성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그렇게 여러해가 흘렀다.립철련속제강법을 확립하기 위하여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던 어느날 박경룡선생은 연구사업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평양에 올라왔다.오래간만에 만나 회포를 나눌새도 없이 또 집을 나서는 그를 안해인 김숙영녀성이 따라서며 언제 돌아오는가고 물었다.

출장길이 처음도 아닌데 그런걸 왜 묻는가 하여 의아해하던 박경룡선생은 눈물이 글썽해진 안해의 얼굴을 보고서야 그가 해산을 앞두고있는 사실을 상기했다.그는 안해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말했다.

《줄창 나가 사는 나때문에 당신이 참 고생이 많소.하지만 당신도 잊지 않았겠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강선에 오셔서 강재를 1만t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다고 하시였다는걸 말이요.물론 그때보다는 강철생산량이 훨씬 늘어났지만 아직 나라엔 철이 더 많이 필요하오.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어떻게 한시인들 강선길을 지체할수 있겠소.》

그의 절절한 말에 안해는 눈물을 거두었다.그러고나서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겠는데 태여날 아기의 이름이라도 지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박경룡선생은 벙긋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철〉자가 들어가게 짓소.그러면 난 어떤 이름이든 다 좋소.》

금방 미소가 피여나던 안해의 눈가에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샘솟았다.

철밖에 모르는 그 고결한 진정을 담아 철남이라 이름지은 아들이 자라고자라 대학생이 되고 어느덧 손자애가 태여났을 때에도 박경룡선생은 수십년전에 시작한 강선길을 멈추지 않았다.

강선길, 박경룡선생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떤 길이였던가.해방후 우리 수령님께서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고 먼저 가시였고 전후 그처럼 어려운 때 강철전사들을 믿고 찬눈을 맞으시며 가신 력사의 길이였다.

그래서 그는 좋은 날에도 그랬지만 조국이 시련을 겪는 때에는 더더욱 그 길을 멈출수 없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심한 원료부족으로 삼화철을 꽝꽝 쏟아내던 보산제철소의 회전로들도 숨을 멈추었다.박경룡선생에게 있어서 숨죽은 회전로들을 바라본다는 그자체가 자기 명줄을 끊기우는것만큼 모진 고통이였다.

번민과 괴로움속에 날과 달이 흐르던 어느날 이미전부터 알고지내던 금속공업부문의 한 일군이 대학으로 그를 찾아왔다.새로운 원료를 리용하여 삼화철생산을 정상화할수 있는 방도를 토론하기 위해서였다.그가 가져온 실험자료들과 기술문헌을 들여다보던 박경룡선생의 심장이 쿵쿵 높뛰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웨쳤다.

《여기에 분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전로분야의 권위자들인 고경달, 정영준선생을 비롯한 과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원료를 리용한 삼화철생산방법의 도입가능성을 확증한 박경룡선생은 그달음으로 보산제철소로 떠났다.

그때 그는 이미 년로보장나이가 지난 상태였다.하지만 회전로를 살릴수 있다는 기쁨으로 하여 청춘의 열정이 되살아난 그는 강선길을 처음 밟던 젊은 시절처럼 제철소일군들과 기술자들, 로동자들과 지혜와 힘을 합쳐가며 기백있게 사업을 전개하였다.그러나 성공은 멀리에 있었다.

새로운 원료에 의한 삼화철생산시험이 다섯번째만에도 실패로 끝났을 때 일부 사람들속에서 될걸 가지고 그러는가 하는 맥빠진 소리가 울려나왔다.그때 박경룡선생은 피를 토하듯 말하였다.

실패했다고 맥을 놓으면 나중에는 그것이 습관으로 되고만다.우리 과학자들에게 그런 습관이 붙으면 조국은 영영 시련속에서 헤여나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주체철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그리고 지금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철이 쏟아져나오기를 기다리고계신다.이쯤한 난관앞에 주저앉는다면 우리가 무슨 주체조선의 과학자들인가.

한고비 또 한고비 겹쌓인 시련과 난관을 뚫고 끝끝내 성공의 언덕에 올랐을 때의 감격은 얼마나 컸던가.회전로에서 쏟아지는 주체철을 바라보며 기쁨에 넘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어린애마냥 어쩔줄 몰라하는 로과학자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외웠다고 한다.

무뚝뚝한줄로만 알았던 그가 저리도 다정다감한 사람인줄은 몰랐다고.

사실 박경룡선생은 쇠물처럼 심장이 뜨거웠고 누구보다 생활과 정서를 사랑한 사람이였다.그것은 당에서 안겨준 미래과학자거리의 황홀한 교육자살림집을 받아안고 지은 자작시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안개흐르는 대동강반

뭇별들과 키돋움하며

치솟아 일떠선 삶의 요람

여기에 우리가 산다

그대 정녕 여기에 와보시라

 

그러면 보게 되리

오늘의 행복 웃음에 싣고

래일의 희망 노래에 담아

대동강 흐름타고 저 멀리

세계로 나가는 쌍둥이돛배를

이렇듯 사랑과 정을 담아 노래한 새 살림집에서 일년치고 그가 생활한 날은 석달도 채 되지 않을것이다.지어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생일도 제철소에서 쇨 때가 많았다.

몇해전 박경룡선생은 과로로 하여 건강이 몹시 나빠졌었다.그를 념려하여 학부 분초급당일군이 그 상태로는 현장에 못간다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부탁하다싶이 말했다.웅심깊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로과학자의 건강과 생활을 늘 사려깊이 돌보아주는 진정은 참으로 고마왔지만 박경룡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난 주체철회전로앞에 서있어야 건강이 나아지고 힘이 부쩍부쩍 솟습니다.》

이렇게 떠나간 박경룡선생이 끝내 쓰러졌다는 소식을 받고 학부일군들이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어떤것이였던가.

그가 침상에 누운채로 무엇인가 부지런히 쓰고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회전로용해공들의 기술학습에 필요한 교재였다.

당 제8차대회가 진행된 지난해초 박경룡선생은 회전로에 로체송풍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연구사업으로 그 어느때보다 더 긴장한 분분초초를 이어갔다.그에 대하여 보산제철소 회전로직장 작업반장 홍철원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솔직히 숨막히는 열풍을 내뿜는 로앞에 10분정도만 서있으면 젊은 사람들도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고령의 늙은이가 오죽이나 힘들었겠습니까.하지만 박사선생님은 로앞을 뜨지 않았습니다.제철소 당결정에 쪼아박은 삼화철생산계획은 우리 강선로동계급만이 아니라 과학자인 자기도 함께 책임졌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그를 어찌 강선의 로동계급이 《우리 선생님》, 《우리 박사아바이》라고 부르며 따르고 존경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하기에 박경룡선생이 올해의 첫아침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들은 바로 보산제철소 일군들과 로동계급이였다.모두가 자기자신이나 피를 나눈 혈육이 지닌 영광인듯 진심으로 기뻐하며 저저마다 축하의 인사를 보내왔다.

얼마전 박경룡선생은 또다시 강선길에 올랐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회전로의 거대한 동체를 받치고있는 믿음직한 주추와도 같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강철기둥을 굳건히 떠받드는 초석이 되고저 스스로, 묵묵히 걸어가는 충성과 애국의 길이였고 남모르게 바치고바친 모든 지혜와 땀과 열정을 깊이 헤아려 뜨겁게 품어안아주고 높이 내세워주는 어머니당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이어가는 량심의 길, 의리의 길이였다.

80고령의 로과학자가 오른 영광의 단상, 바로 그뒤에는 그가 수십년세월 걸어온 강선길이 있음을 사람들이여, 잊지 마시라.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