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월 31일 로동신문
어머니당의 목소리를 한생토록 전해가리 30여년세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충성의 한길을 꿋꿋이 이어가는
《보석이 땅속에 묻혀있어도 빛을 잃지 않는것처럼 애국의 마음은 그것이 비록 크지 않아도 귀중한것이며 언제나 아름다운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김순녀녀성은 올해에 일흔살이다.그 나이이면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며 여생을 편안히 보내는것이 상례이건만 그는 오늘도 첫닭이 울기 전부터 땅거미가 지는 깊은 밤까지 우편통신길을 걷는다. 하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편통신길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그의 가슴속에는 과연 어떤 고결한 지향이 자리잡고있는것인가.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한번 택한 길을 한생토록 끝까지 가도록 떠밀어주고있는것인가.
꺼질줄 모르는 밑불
우리가 김순녀동무에 대하여 알고싶은것은 크게 두가지였다. 그중의 하나는 어떻게 되여 우편통신원이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였는가 하는것이였다. 그 질문에 그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천천히 말머리를 떼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고싶은 충동이 저를 이 길로 떠밀었습니다.그러나 그런 즉흥적인 감정만으로는 우편통신의 길을 끝까지 갈수 없다는것을 차츰 깨닫게 되였습니다.》 김순녀동무의 추억은 우편통신원이라는 직업과 인연을 맺던 33년전의 그날에로 거슬러올랐다. 당시 김순녀동무는 경성군의 어느 한 로동자구에서 인민반장사업을 하고있었다. 그러던 1월 어느날 집뜨락을 청소하던 그는 한 우편통신원처녀가 오래도록 옆집문을 두드리는것을 얼결에 띄여보게 되였다.김순녀동무가 그 집사람들은 다 출근하고 없다고 알려주자 그는 우편통신가방에서 한통의 편지를 꺼내며 집주인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추위에 얼어든 처녀의 두손을 보니 이른아침부터 우편물을 곳곳에 날라다주느라 언제 한번 쉴새없는 그의 수고가 헤아려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날 저녁 김순녀동무는 집에 돌아온 옆집아주머니에게 우편통신원처녀가 맡기고간 편지를 전해주었다.편지를 펼쳐들던 그 녀성의 눈가에 가랑가랑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였다.그가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묻자 녀인은 군사복무를 하고있는 아들이 조선로동당원이 되였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는것이였다. 그날 밤 김순녀동무는 옆집에서 울려나오는 그칠줄 모르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이 깊어졌다. 그때까지 인민반장사업을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보았지만 그날처럼 인상깊은 인사는 처음인것같았다.그런데 그 인사를 받아야 할 진짜주인은 다름아닌 우편통신원처녀가 아닌가.그럴수록 그 처녀가 더없이 돋보였고 우편통신원일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좋은 직업, 한번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높뛰였다. 하여 그는 군자동차사업소에서 운전사로 일하는 남편에게 자기의 속생각을 비쳐보았다.이야기를 다 듣고난 남편은 자기도 찬성이라고 하면서 그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이렇게 되여 그는 다음날 군체신소당조직을 찾아가게 되였고 얼마후부터는 우편통신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처음 한동안은 정말 신바람이 났다.우편물을 받아안으며 기뻐하는 사람들, 자기의 수고를 헤아려주며 별식도 안겨주군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세상에 나처럼 인사를 많이 받는 사람도 흔치 않을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고무풍선처럼 둥 떴다. 그러나 명절날, 휴식일이 따로 없이, 눈비와도 바람세차도 멈춤없이 가야 하는 우편통신길은 결코 헐한 길이 아니였다.담당단위들과 가정들을 찾아 수십리길을 걸으며 당보를 비롯한 우편물을 배포하고나면 옷은 땀주머니가 되였고 온몸은 땅으로 잦아드는듯싶었다.더우기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것은 한가정의 어머니로서, 안해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자책감이였다. 이른아침 묵직한 우편통신가방을 메고 통신길에 나서느라 언제 한번 제손으로 식구들에게 따끈한 식사도 대접할수 없었고 날이 어두워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덞어진 자식들의 옷을 빨고나면 아이들의 숙제검열을 할 기력마저도 나지 않았다.차츰 시일이 흐르면서 그의 가슴속에는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끝까지 갈수 있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보슬비를 맞으며 한 마을에 우편물을 전해주고 돌아오던 김순녀동무는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넘어지면서 발목을 상하게 되였다.다음날 남편이 그를 대신하여 나머지우편물을 배포하느라 밤이 퍽 깊어서야 집에 들어섰을 때 김순녀동무는 가까스로 누르고있던 자기의 속생각을 종시 터놓고야말았다.당신까지 이렇게 고생시킬바에는 차라리 가정에 충실한 안해가 되는편이 낫지 않겠는가고. 그런데 그 말이 남편을 노엽힐줄이야. 《당신이 우편통신원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난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그 길에서 당신도 당원이 되길 원했는데 그처럼 나약한 소리를 하다니.이제 보니 당신은 당의 목소리를 전해갈 자격이 없소.》 남편과 가정을 생각하여 한 말이였는데 그렇게 모질게 채찍질하니 서러움이 가슴속에 밀물처럼 북받쳐올랐다.그러나 한켠으로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며칠후였다.여느때와 다름없이 우편통신의 길에 나선 그는 경성애자공장가까이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일군들이 정문앞에까지 나와있었던것이다.무슨 귀한 손님이 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사방을 둘러보는데 그들이 달려와 우편통신가방을 반갑게 받아드는것이 아닌가.
순간 그는 어리둥절해졌다.그러는 김순녀동무에게 한 일군이
신문을 펼쳐든 사람들속에서 격정의 파도가 일기 시작하였다.모두의 얼굴마다에 조국의 북변에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새기시며 도가 나아갈 앞길을 휘황히 밝혀주신
그 모습들에서 얼마나 큰 충동을 받아안았던지 김순녀동무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움직일줄 몰랐다. 내가 가져온 신문이 사람들에게 그렇듯 큰 힘을 안겨준단 말인가. 그럴수록 우편통신원일은 사람들에게 사상정신적량식을 안겨주는 중요한 혁명사업이라고 하던 남편의 말이 다시금 뇌리를 쳤다. 정말 그랬다.우편통신원, 그것은 다만 사람들에게 기쁨넘친 희소식을 안겨주는 전달자만을 뜻하는것이 아니였다.군안의 인민들을 당의 로선과 정책으로 무장시키는 사상전선의 전초병이였으며 그들의 가슴속에 충성과 애국의 불길을 지펴주는 불씨와도 같았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수십리 우편통신길을 걸으며 겪는 고생이 일터와 초소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을 낳게 하는 보람있는 고생으로 여겨져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와 희열로 가슴은 터질듯 부풀어올랐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위하여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자각했을 때 비상한 힘과 열정을 발휘하게 되는 법이다. 다음날 이른아침 체신소에 들어선 작업반원들은 자기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배포해야 할 우편물들이 책상우에 질서정연하게 구분되여있는것이였다. 누구의 소행일가? 서로 얼굴만 마주볼뿐 대답을 찾지 못하고있는데 뒤늦게 들어서던 김순녀동무가 우편물이 제대로 구분되였는지 모르겠다며 제일 무거운 우편통신가방을 메는것이였다.그제서야 작업반원들은 그 소행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른새벽이면 체신소에 달려나와 수많은 우편물들을 구분하는것은 그의 변함없는 일과로 되였다.
김순녀동무는 늘 경성애자공장에 들리는것으로부터 우편통신길의 첫걸음을 떼군 한다.거기에 자기를 반겨맞는 사람들이 있어서만이 아니였다.당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영광의 일터를 찾느라면
그 나날 그는 우편작업반장으로, 조선로동당원으로 성장하였다. 오늘도 그는 당의 목소리를 전해가는 길에서 꺼질줄 모르는 밑불이 되려는 각오와 의지를 안고 우편통신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
시대의 숨결을 호흡하며
경성군사람들은 지금도 활기에 넘쳐 일하는 김순녀동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으기 놀라군 한다. 그들중에는 과연 그가 일흔살 난 할머니가 맞는가고 슬며시 물어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람들의 그 호기심 역시 우리가 알고싶은 또 하나의 문제였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 시기 체신소초급당비서로 오래동안 사업한 진영빈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알게 되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김순녀동무는 초급당위원회에서 찾는다는 련락을 받게 되였다.어느 한 사무실에 들어서니 책상우에는 낯익은 문건이 놓여있었다.벌써 세번째로 보게 되는 년로보장수속과 관련한 문건이였다.순간 김순녀동무는 온몸의 힘이 쑥 빠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제가 젊은 사람들보다 더 나을수는 없지요.그러나 이 길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저의 심정을 리해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고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편통신길에 나섰다. 그로부터 며칠후 진영빈동무는 생일을 맞는 김순녀동무를 축하해주기 위해 그의 집에 찾아갔다.밤이 깊어서야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으며 진영빈동무는 이런 날에야 좀 일찍 들어올수 있지 않는가고 나무람하였다. 그러자 김순녀동무는 밝게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오늘 어느 한 농장에 가니 농장원들의 새집들이가 한창이였습니다.그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새집의 주인이 된것같은 기분이였습니다.그런데 오후에 경성도자기공장에 들리니 거기서는 년간인민경제계획을 초과완수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있지 않겠습니까. 아마 우편통신원만큼 들끓는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을것입니다.날로 변모되는 군의 모습, 아무리 어려워도 신심과 락관에 넘쳐있는 얼굴들, 그 모든것을 대할수록 나도 시대의 벅찬 숨결에 호흡을 맞추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간절해집니다.사람이 공기를 마셔야 살수 있듯이 그렇듯 벅찬 시대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면 순간도 살수 없을것같습니다.》 그제서야 진영빈동무는 왜서 그가 년로보장나이가 훨씬 지나도록 변함없이 그 길을 걷는가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김순녀동무는 자기 한가정의 행복만을 생각하면 단 하루도 걸을수 없는 그 길을 순결한 량심과 불같은 헌신으로 억세게 걸어왔다. 어느해 겨울에 김순녀동무의 아들과 며느리가 그를 위해 두툼한 솜신을 마련한적이 있었다. 보기에도 따뜻해보이는 그 신발은 눈속에서도 발이 시릴것같지 않았다.발에 꼭 맞는가 직접 신겨보며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대하는 그의 눈굽은 저도모르게 축축히 젖어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식사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나서던 며느리는 자기의 두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자기들이 마련한 솜신이 신발장에 그대로 놓여있는것이였다.대신 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던 색날은 편리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하루일을 끝마치고 집에 들어선 김순녀동무는 섭섭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의 성의는 고맙다만 난 항상 많이 걸어야 하니 편리화가 더 좋구나.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내려간 그가 한참동안 방에 들어오지 않아 웬일인가 하여 부엌문을 열어본 자식들은 또다시 깜짝 놀랐다. 김순녀동무가 추위에 얼어든 발을 부엌아궁앞에서 녹이고있는것이 아닌가.자식들이 어푸러지듯 달려나와 그의 발을 어루쓸며 왜 자신을 그렇게 혹사하는가고 물었을 때 그는 어떻게 말하였던가. 《추운 겨울철엔 솜신이 좋은줄 내가 왜 모르겠니.헌데 신발이 무거우면 걸음이 더디여지고 그러면 그만큼 당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늦게 가닿는다고 생각하니… 우편통신원인 이 어머니에겐 가벼운 편리화가 제격이구나.》 그의 우편통신길은 이런 불같은 자각으로 이어져왔다. 조국의 벅찬 숨결을 호흡하며 자신도 그렇게 살며 일하려는 뜨거운 마음, 그것이야말로 정녕 그가 그처럼 어려운 길을 꿋꿋이 걸어갈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였다. 김순녀동무에게 있어서 남편인 전동순동무는 한가정의 세대주이기 전에 스승이였고 없어서는 안될 기둥과도 같았다.넘어질세라 부축해주고 힘들어할세라 떠밀어주던 남편, 따끈한 밥 한끼 대접하지 못하는 자기를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해주며 변함없이 한길을 가도록 이끌어주던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김순녀동무는 너무도 억이 막혀 더는 일어날것같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장례를 치른 후 여느날과 같이 우편통신가방을 둘러메고 길떠날 차비를 하였다.가족들과 이웃들이 왜 그러는가고, 남편을 잃은 몸으로 며칠동안 집에 있는다고 하여 누가 탓하겠는가고 하며 저저마다 말리였지만 그는 굳이 길을 떠났다. 《우편통신길을 걸어야 마음이 안정될것같아요.아마 남편도 그걸 바랄거예요.》 김순녀동무는 여느때처럼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찾아갔다.그의 가슴속에 어떤 피눈물이 고여있는지 전혀 알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를 반가이 맞이하며 말하였다.멀리서 반장동무가 오는것만 보아도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고. 며칠후에야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고 하면서 그를 붙잡고 흐느낄 때에도 그는 입술을 깨물며 종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도리여 그들을 달래야 했던 김순녀동무의 심정이 오죽했으랴.그러나 그것으로 하여 혁신으로 들끓는 일터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지게 하고싶지 않은것이 그의 진정이였다. 몇해전 그는 뜻밖의 사고로 운신할수 없는 지경에 놓인적이 있었다.남편과 헤여지던 그날에도 보이지 않던 눈물이 그의 옷자락을 하염없이 적시였다.뼈를 깎듯 치밀어오르는 아픔때문만이 아니였다.지금까지 한번도 드티여본적이 없는 우편통신길에 나서지 못하는 안타까움, 당의 목소리를 전할수 없게 되였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오는 고통이였다. 우편통신길에 나서지 못하는것을 두고 그처럼 괴로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들과 며느리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어머니, 너무 걱정마세요.우리가 우편물을 나르겠어요.》 김순녀동무는 지체없이 종이장들에 략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그가 단숨에 그려낸 략도들을 들여다보는 자식들의 눈에서는 놀라움의 빛이 비껴흘렀다.수많은 담당단위들과 주민세대들의 위치는 물론 거기로 가는 길들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있었던것이다. 그가 자기 사업에 얼마나 혼심을 쏟아부었는가를 한눈에 엿볼수 있게 하는 그 략도들이야말로 당이 맡겨준 초소를 변함없이 지켜가려는 한 인간의 성실한 땀과 노력의 산물이였고 백옥같은 량심의 거울이였다. 이렇게 되여 그가 담당한 지구에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당출판물을 비롯한 우편물들이 전해졌다. 김순녀동무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우편통신원대렬이 나날이 늘어나는것이였다.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길에서 인생의 참된 보람을 찾으려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기에 그는 새로 입직한 우편통신원들이 한번 먹은 마음 변치 않도록 힘과 용기를 안겨주며 새벽길, 밤길도 같이 걸었고 종업원들이 신선한 과일을 맛보며 땀을 식히도록 자기 집에서 키우던 포도나무들을 통채로 체신소에 옮겨심기도 하였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우리 우편통신원》, 《우리 작업반장》, 《우리 할머니》라고 불렀다. 김순녀동무가 지난 30여년간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안겨준 당출판물들과 그것을 위해 걸은 길이 얼마인지 수자로는 다 헤아릴수 없다.우편통신가방속의 당출판물, 우편물들은 날마다 달라졌어도 1년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것을 안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찾아가는 그의 심장만은 오직 한본새, 당의 사상과 숨결로만 고동쳤다. 우리 당사상전선의 전초선에 서있다는 자각, 대중을 우리 당의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선전자라는 관점이 그의 가슴속에 신념의 기둥으로 억척같이 자리잡고있기에 그에게서는 로쇠의 흔적을 엿볼수 없다. 오늘도 우편통신가방을 메고 충성과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걷는 김순녀동무,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불같은 웨침이 울리고있다. (어머니당의 목소리를 전해가는 이 행복, 이 영예 그 무엇에 비기랴.이 길에서 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리라.) 글 및 사진 김학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