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월 31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통감통치시기 일제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악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을 강점한 후 식민지통치기구를 만들어놓고 우리 인민을 가혹하게 억압하고 탄압하였습니다.》

지난 세기 일제는 40여년간이나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가혹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민에게 피눈물나는 노예의 운명을 강요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반동들은 그 무슨 《적법성》을 운운하며 저들의 과거죄악을 합리화하려들고있다.

일제의 조선통감부설치 116년을 계기로 우리는 일본의 과거죄악을 다시한번 낱낱이 폭로하기 위하여 사회과학원 연구사 한춘식동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조선통감부는 일제가 강압날조한 《을사5조약》에 기초하여 설치된 식민지통치기구가 아닌가.

연구사:그렇다.일제는 1905년 11월 우리 나라의 국권강탈을 노린 《을사5조약》을 강압날조하면서 그 무슨 《보호》를 위해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한다는것을 성문화하였다.국가최고권력자의 서명도 없는 불법무효한 문서에 근거하였다는 자체가 통감부설치의 날강도적성격을 뚜렷이 폭로해주고있다.

기자:통감의 권한은 무엇이였는가.

연구사:일제가 《을사5조약》에 명기한 통감부의 권능에는 조선봉건정부의 외교권만을 대행하는것으로 되여있었다.그러나 1905년 12월 《통감부 및 리사청관제》를 공포한 일제는 1906년 2월 1일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한데 이어 각 지방들에 통감부리사청, 리사청지청을 꾸려놓음으로써 전 조선지역에 대한 식민지통치체제를 구축하였다.그리고 통감에게 외교관계문제와 관련한 법령이나 조약들을 정지, 취소시킬수 있는 권한뿐 아니라 우리 인민들을 구류할수 있는 권한, 무력사용을 명령할 권한까지 부여하였다.

이렇게 놓고볼 때 통감통치라는것은 일제가 떠드는 외교권대행이 아니라 조선에 대한 전면적인 식민지통치였다는것을 의미한다.

일제가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보호》라는 간판으로 미화하려든것은 일본특유의 간교성과 철면피성의 집중적발로였다.

기자:통감통치기간 일제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고 조선인민을 식민지노예로 전락시키기 위하여 책동한것이라고 본다.

연구사:그것이 일제가 통감통치를 통하여 노린 근본목적이였다.

통감통치를 실시한 1910년까지의 기간에 일제는 고종황제를 통제권안에 넣기 위해 《궁금령》을 발포하고 《폭도토벌》의 구실밑에 조선의 애국자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으며 《보통학교령》, 《사립학교령》 등을 조작하여 우리 인민의 애국심과 민족성을 말살하려 하였다.뿐만아니라 《광물채굴법》, 《한일어업협정》 등을 조작하여 우리 나라의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수탈하였다.

가장 엄중한것은 통감통치기간 고종황제의 강제퇴위와 《정미7조약》의 날조, 조선군대강제해산을 강행함으로써 형식상 남아있던 우리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말살하고 조선을 철저한 식민지로 예속시킨것이다.

기자:고종황제의 강제퇴위와 《정미7조약》의 날조는 통감통치의 범죄성을 가장 뚜렷이 실증해주는 사건들이라고 할수 있지 않는가.

연구사:옳다.일제는 조선의 내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고종황제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1907년에 들어서면서 그 실행에 달라붙었다.바로 이러한 때에 헤그밀사사건이 터지자 일본내각에서는 즉시 고종황제로 하여금 황위를 황태자에게 넘기도록 하며 통감이 조선에서 부왕 혹은 섭정의 권한을 가지도록 한다는것, 이에 고종황제가 동의하지 않을 때에는 조선을 병합한다는것을 결정하였다.그리고 고종황제를 강박하여 《군국대사를 황태자에게 대리시킨다.》는 내용의 《조칙문》에 어새를 찍게 하고는 그것을 양위《조칙문》이라고 우겨대면서 비법적으로 강제퇴위시켰다.조선봉건정부의 최고통치자인 황제의 페위문제를 일본내각에서 결정하고 강행한것은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유골마저 재가루로 만든 을미사변 못지 않은 국권유린범죄였다.

간악한 일제는 고종황제강제퇴위를 추진시키는 한편 통감이 조선봉건정부의 일체 권한을 행사하도록 할것을 규제한 《정미7조약》을 날조하였다.

7개 항목으로 된 《조약》은 사실상 당시까지 통감부가 강제집행하고있던것을 법문화한데 불과한것으로서 그것은 통감부의 모든 강권행위에 《합법》의 감투를 씌우려는 교활한 기도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하지만 일제가 날조한 이 조약 아닌 《조약》은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규정한 조약은 반드시 해당 나라 국가수반으로부터 전권위임장을 받은 상태에서 론의되고 조인되여야 한다는 국제법적요구로 보나 그리고 그 날조경위로 보나 철두철미 불법비법이다.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퇴위와 《정미7조약》의 날조는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 합리화될수 없는 사기와 전횡의 극치이며 간악한 범죄행위이다.

기자:앞에서 조선군대의 강제해산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였는데 그것도 조선을 영구강점하기 위해 일제가 저지른 가장 파렴치한 죄악이라고 본다.

연구사:일제는 조선을 강점하는데서 조선군대의 반항을 제일 두려워하였다.

《을사5조약》, 《정미7조약》이 날조된 후 조선인민과 조선군대안에서는 반일기운이 급격히 높아가고있었다.

그리하여 일제는 얼마 안되는 조선군대를 완전히 해산해버림으로써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의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다.

로일전쟁이후 《군제개혁》의 미명하에 조선군대를 체계적으로 약화시켜온 일제는 조선황제의 《칙령》까지 날조하고 방대한 폭압무력을 동원한 상태에서 1907년 8월 조선군대를 강제해산하였다.

통감통치를 통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지배체계를 확립한 일제는 1910년에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데 이어 통감부의 간판을 총독부로 바꾸고 수십년간에 걸쳐 포악무도한 식민지총독통치를 실시하였다.

우리는 일본의 과거죄악을 한시도 잊지 말고 반드시 그 대가를 천백배로 결산해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은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