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2월 11일 로동신문
뜨거운 인간애로 세인을 매혹시키신
해마다 2월의 명절을 맞으며
그의 이름은 진달래 싸파리니, 우리 인민들속에 잘 알려진 팔레스티나녀성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진달래 싸파리니는 몇해전에 《나의 아버지》라는 도서를 세상에 내놓았다.도서에는 그자신과 가정에 베풀어주신
우리는 진달래 싸파리니에게 베풀어진 그
한번 인연을 맺으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어버이의 심정으로 보살펴주는 뜨거운 정을 지니신분이 우리
진달래 싸파리니도 바로 그
그가 태여나기 전 그의 부모들은 자식이 없어 몹시 고민하였다.다른 나라의 이름있다는 병원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좋다는 약도 써보고 치료도 해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였었다. 무스타파 알 싸파리니(진달래 싸파리니의 아버지)가 우리 나라 주재 팔레스티나외교대표로 평양에 상주하고있던 1985년에야 그의 안해는 그토록 소원하던 귀여운 딸을 가지게 되였다.평양산원에서 우리 의료일군들의 극진한 사랑과 관심속에서 치료를 받은 결과였다.
조선의 사회주의보건제도에 대한 고마움을 누를길 없었던 그들부부는
편지를 반가이 받아보신
그후에도
그뿐이 아니였다.
그때 진달래는
진달래의 갸륵한 마음을 헤아리신
처음에는 머리칼 한오리 없어 민망스럽던 그의 모습이 소담한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였고 그늘이 비꼈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피여났다.루바는 의사, 간호원들에게서 배운 조선노래 《우리 아버지》를 즐겨부르고
1994년 2월 루바의 부모는 아름답고 웃음많은 소녀로 다시 태여난 딸애와 기쁨속에 상봉하고
정녕 국경과 대양을 넘는
1988년 6월 꾸바의 어학전문가 라울 가르씨아 알바레스는 안해와 함께 우리 나라에 왔다.체류기일이 끝나갈무렵 알바레스의 안해가 임신을 하게 되였다.그들부부는 기쁨과 함께 큰 근심에 싸이게 되였다. 가정을 이룬지 여러해가 되여오도록 안해의 습관성류산으로 하여 자식을 보지 못하고있던 그들에게 이것은 분명 큰 경사였지만 석달이 지나면 우리 나라를 떠나야 하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류산을 피할수 없게 되기때문이였다.
그들부부의 말 못하는 고민과 근심을 헤아려주신분이 바로 우리의
해당 일군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되신
그들은
편지에서 그들은 조선꾸바친선의 상징이 될수 있도록 자기 아들에게 조선식이름을 지어주실것을 절절히 청원하였다.
가장 숭고한 덕망과 뜨거운 인간애를 천품으로 지니신
본사기자 박진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