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2월 12일 로동신문

 

수령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이는것은
우리 인민의 제일가는 본분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한 첫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원들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더해만 가는 경사스러운 2월에 우리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을 세상에 전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수령의 혁명력사를 깊이 연구하는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를 몸소 결성하시고 그 활동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는것을 숭고한 사명으로, 제일가는 본분으로 여기고 그를 위해 온넋을 다 바친 만경대혁명학원출신 연고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영광스러운 력사와 관련한 자료들을 발굴정리하는 사업을 줄기차게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전화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과 만경대혁명학원의 한학급에서 공부한 원아들, 그들은 력사가도, 혁명사적부문 일군도 아니였다.하지만 그들은 10대의 학생시절에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위대한 장군님의 천출위인상을 심장깊이 새기고 그이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발굴고증하고 견결히 옹호고수하는것을 혁명전사의 신념과 량심, 가장 큰 영예와 의무로 간주하였다.

그들이 발휘한 열화같은 충성과 고결한 도덕의리심은 우리모두에게 수령의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고 빛내여나가는 성스러운 사업을 어떤 자세와 립장에서 대하여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귀중한 모범으로 된다.

 

시대가 맡겨준 력사의 중임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혁명과 건설의 여러 분야에서 세상을 놀래우는 거창한 변혁이 이룩된 1970년대는 나라의 방방곡곡 어디서나 《영명하신 지도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는 존칭이 스스럼없이 울려나온 열렬한 매혹과 흠모의 시대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그이는 어떤분이신가?》라는 인민의 절절한 물음에 대답을 주기 위해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투사들도 격식없이 강연강사가 되여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던 시대의 열파를 위대한 장군님과 한학급에서 공부한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들은 시시각각 온몸으로 체감하고있었다.

바로 그러한 시각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몸소 조직하신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의 소조원들중 한사람인 민주조선사 기자 김룡순동지는 한상의 뜻깊은 기념사진을 우러르고있었다.다른 원아들과 꼭같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자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10대의 모습을 우러를수록 남다른 시대적사명감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만경대혁명학원시절 그이의 위대한 활동의 목격자, 체험자의 한사람으로서 력사적사실을 후세에 반드시 전해야 할 숭고한 의무가 있다.쓰자, 우리 인민이 아직 모르고있는 그이의 특출한 위인상에 대하여!)

가슴이 후두둑 높뛰였다.수십년전의 추억들이 인상깊은 영화화면처럼 연줄연줄 떠올랐다.

첫 추억은 1952년 12월 어느날 지리시간에 있은 일이였다.그때 만경대혁명학원에 갓 편입하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학급학생들의 시선을 모으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백두산과 천지에 대하여 귀가 번쩍 트이게 가르쳐주시였다.

백두산과 천지는 우리 나라의 자랑이라고, 그것은 백두산에서 김일성장군님께서 일제놈들과 싸워 승리하셨기때문이라고, 백두산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김일성장군님의 거룩한 혁명력사가 깃들어있다고 하시며 그렇기때문에 옛날부터 조종의 산이라고 불리워오던 백두산을 인민들은 더욱 자랑하고있다고, 백두산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산이며 조선혁명의 상징이라고 말씀하시던 그이의 힘차고도 랑랑한 음성…

그때 김룡순동지를 비롯한 3분단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야!-》 하고 탄성을 터치였다.

백두산을 지리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와 결부시켜 깊이있게 설명하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학생들만이 아니라 학급담임교원도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하지만 그 뜻깊은 말씀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학습에로 원아들을 이끌어주시는 그이의 첫걸음이였다는것을 그때까지는 다 알지 못하였다.

그날의 녀학생이였던 김룡순동지는 쓰던 펜을 멈추고 다시금 명상에 잠겼다. 잇달아 눈앞에 떠오르는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간직하고계시던김일성장군의 략전》이였다.얼마나 자자구구 열정적으로 탐독하시였는지 글줄마다 밑줄이 그어져있는 략전의 속표지에는 이런 글발이 씌여져있었다.

《최고사령부에서

1952년 7월 2일

김정일

그 못잊을 글발을 되새겨보느라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사령부에서 가지고 오신 귀중한 그 책을 분단동무들이 저마다 돌려가며 열독하던 일이 눈에 삼삼 밟혀왔다.

가렬한 전쟁의 불길이 온 조국강산을 뒤덮었던 그 시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따라배우는 학과목도 교과서도 없었다.하지만 그때에 벌써 불과 10대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혁명이 전진하며 력사의 새 기적이 이룩된다는것을 깊이 체득하고계시였다.세계로동계급의 수령이라고 하는 위인들도 대학을 졸업한 20대 청년기에 이르러서야 리론가로, 사상가로 두각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김룡순동지의 가슴속에 위대한 그이의 비범하신 천품을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더욱 불타오르게 하였다.

(10대초에 벌써 수령의 혁명사상과 업적, 고매한 덕성을 따라배우기 위한 연구소조를 결성하고 지도한 그런 천재적인 위인이 동서고금 그 어디에 있었던가.바로 이것을 전해야 한다.학원시절에 벌써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을 지니시고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깊이 심어주신 그이의 불멸의 업적을.)

김룡순동지는 또다시 펜을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학원학생들은김일성장군의 략전》을 학습하기 전까지 다른 나라의 책들에 매달려있었다.그러다나니 앞으로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고 누가 물으면 조선의 미츄린, 조선의 다윈, 조선의 베토벤, 조선의 레삔이 되겠다고 대답하기가 일쑤였다.그런 학생소년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 항일빨찌산의 정신을 심어주고 그들을 주체혁명의 길로 이끌어주신 그이는 10대의 그 나이에 벌써 출중한 위인이시였다.

동녘하늘이 훤해지자 집필을 더이상 이어갈수 없는것이 아쉬웠다.낮에는 기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여야 했던것이다.

김룡순동지는 취재와 집필이 바쁜 속에서도 스스로 맡아안은 사적자료발굴고증사업에 필요한 사색을 계속 이어갔으며 쉬임없이 떠오르는 못잊을 사실들을 늘 가지고다니는 수첩에 부지런히 속기하였다.

그가운데는 이런 대목도 있다.

《잊혀지지 않는것은 〈김일성장군의 략전〉에 올라있는 여러 어휘와 단어, 문장의 뜻을 세심히 가르쳐주신 사실이다.략전의 내용을 그냥 독보하신것이 아니라 몇대목 읽으시고는 그에 담겨진 사상의 진수를 분단동무들에게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저녁시간이면 김룡순동지는 다시 책상을 마주하고 추억의 갈피를 더듬어나갔다.그러느라니 학급학생들이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구성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하던 못잊을 일도 생생히 떠올랐다.

어떤 학생들은 공부도 잘하고 조직생활에서 모범인 몇몇 동무들로만 소조를 따로 조직하자고 하였었다.

그 의견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우리가 조직하려고 하는 략전연구소조는 그 누구의 위신을 높이기 위한 소조가 아니라고, 략전연구소조는 김일성장군님의 혁명투쟁력사를 깊이 학습하여 장군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장군님께 끝없이 충직한 소년단원들로 준비하며 나아가서 조선의 참된 혁명가로 자라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연구소조라고 하시며 모든 학생들이 다 소조에 들고싶어하는데 다같이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원이 되여 학습하자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지 않았던가.

그이의 뜻깊은 말씀을 들으며 학생들은 자기들앞에 10대의 위대한 스승이 서계심을 가슴뜨겁게 절감하였다.

날이 갈수록 김룡순동지의 잠시간은 줄어들었다.더 많은 사적자료를 발굴고증하기 위해 그는 사방에 줄을 놓아 만경대혁명학원시절의 동창생들의 행적을 찾았다.

그가 여러 동창생들을 만나 자기 생각을 터놓았을 때였다.그들은 자기들도 요즘 그이의 특출한 위인상을 세상에 꼭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는데서 혁명사적사업처럼 중요한 일이 어데 있겠소.더우기 우리가 체험한 사실들은 몇몇 사람만 알고있기에는 너무도 아쉽고 귀중한것이요.나도 몇가지 써놓은것이 있는데 그것까지 합쳐 온 나라 인민이 다 알고 후세에 길이 전해가게 합시다.》

어제날의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은 한마음한뜻으로 혁명사적발굴고증사업에 떨쳐나섰다.그들은 당시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자료들을 하나하나 회억하고 기록하였으며 략도도 그리고 년표도 구체적으로 작성해나갔다.서로서로 되살린 기억들을 합쳐가는 과정에 새로운 많은 사실이 확증되였다.

(기억이 삭막해지기 전에 사적자료들을 빨리 수집하고 정확성을 열백번 검토해야 한다.이 고증사업은 다름아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적자료발굴고증에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단 몇줄밖에 안되는 자료고증을 위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문서들을 깐깐히 훑어보느라 뜬눈으로 새날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방군호, 권영국, 리세철동지를 비롯한 동창생들이 김룡순동지를 찾아왔다.《룡순동무, 우리가 무엇을 찾아냈나 좀 보오.》 하면서 그들이 내놓은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시절에 친히 지으신 동시《초상화》와 시《우리의 수령》의 원문이였다.

《이 작품들은 금은보화에도 비길수 없는 제일 귀중한것이예요.》

추억깊은 시의 구절들을 조용히 읊어보는 김룡순동지의 눈가에 기쁨의 미소와 함께 뜨거운 눈물이 맺히였다.그 작품들을 발굴고증하기 위해 고심했을 동창생들의 수고가 가슴뜨겁게 헤아려졌다.

그들은 또다시 모여앉아 학원시절에 느낀 위대한 장군님의 투철한 혁명적수령관, 조국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조활동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수복을 입고 찍으신 사진을 비롯한 여러상의 영상사진문헌들과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그림자료를 놓고 사진설명과 배합한 략전해설사업도 그이께서 먼저 시작하셨지.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도록해설의 시원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겠소.》

《옳소.벽보전람회, 우리 분단벽보의 제호를 〈백두산〉이라고 달아주신분도 그이가 아니시였소.오늘날의 직관선전활동도 그 근원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보면 학원시절의 벽보전람회였거던.》…

서로가 터놓는 불같은 격정을 일일이 다 적어놓은 김룡순동지는 섬광과도 같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계속 써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41돐을 맞으며 진행한 예술소품공연을 수령의 령도업적을 칭송하는 공연종목들로 일관되게 하신분도 영명하신 그분이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가장 큰 명절로, 대정치축전으로 경축하는 본보기도 그때에 벌써 그이께서 마련해주시였다.》

김룡순동지는 북받치는 흥분을 누를길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모셔진 뜻깊은 기념사진앞에 다가섰다.

차림새를 보면 그이는 자기들과 다름없는 만경대혁명학원의 평범한 학생이시였다.그러나 품은 뜻과 원대한 구상, 수령의 위대성교양사업을 앞장에서 개척하고 조직전개해나가시는 령도력을 직접 곁에서 체감하는 원아들에게는 그이가 10대의 특출한 위인으로 안겨왔다.그이께서는 10대에 벌써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원아들의 심장마다에 수령의 혁명력사와 령도업적을 억척의 신념으로 다져주시였다.

김룡순동지는 가슴속에서 끓어넘치는 경모의 감정을 그대로 원고지에 담았다.

인민이여, 똑똑히 새겨두시라.그이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벌써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활동으로 우리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을 깊이 심어주시였다.그이께서 제시하신 구호《조선을 위하여 배우자!》의 기본핵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적극 따라배우자는것이였다.

정녕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가장 준엄한 시기에 혁명의 계승자들에게 백두의 넋을 심어주시고 수령의 혁명력사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사업의 시원을 열어놓으신 영명한 스승이시였다.력사상 처음으로 수령의 혁명사상과 업적, 풍모를 학습하고 따라배우는 연구소조를 결성하시고 그 활동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10대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였다.

그가 써나간것은 단순히 사적자료고증만을 위한 글줄이 아니였다.그처럼 어리신 나이에 전화의 불길속에서 이룩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력사에 전무후무한 우리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슬기, 한없이 고매한 풍모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있는 목격자, 체험자의 한사람으로서, 그이께 온넋으로 매혹된 참된 전사의 한사람으로서 시대가 맡겨준 중임을 다하기 위한 절절한 흠모의 기록이였고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심장의 진실한 고백이였다.

 

목숨을 버릴지언정 한치도 물러설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의 사적자료고증사업을 시작한지 몇달후 김룡순동지는 자기의 심혈이 깃든 원고를 안고 해당 기관을 찾았다.그곳 대기실에서는 낯익은 모습들이 기다리고있었다.

윤철웅, 방군호, 리세철, 권영국, 김사진, 김철호 등 모두 그 시절의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이였다.동창생들을 또다시 만나고보니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우리가 끝내 해냈다는것이 정말 꿈만 같아요.》

《친애하는 그이의 업적이 다소나마 알려지게 되였구만.》

《난 그이와 한학급이 되였다고 기뻐하던 그날의 학생이 된 심정이요.》

이윽하여 매 사람이 사적자료를 취급하는 성원의 방에 들어가 차례로 원고들을 놓고 나왔다.

김룡순동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걱정이 떠날줄 몰랐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자.우리가 한가지라도 빼놓은것은 없는지.)

수많은 기사들을 써서 신문지면에 실은 그였지만 이번에는 자기가 고증한 자료들에 미흡한 점이 있을가보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며칠후 김룡순동지는 취급자의 부름을 받았다.

김룡순동지가 마음을 조이고있는데 취급자는 그가 또박또박 박아쓴 혁명사적고증자료를 한동안 뒤적거리다가 원고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으며 꽤 많이 썼다고 하면서 다시 정리할수 없겠는가고 묻는것이였다.

김룡순동지는 송구한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검토해보면서 보충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취급자는 손을 들어 허공을 홱 내리그으며 콩밭에 서슬치려는가, 자기 말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동심세계에 맞게 사적자료를 다시 쓰는것이 좋겠다고 은근한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원고를 되돌려받아가지고 나오는 김룡순동지의 생각은 착잡했다.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노력해보자.)

또다시 기억을 더듬어가며 며칠밤을 새운 그는 더 두툼해진 원고를 안고 일군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것은 싸늘한 눈빛이였다.그에 못지 않게 랭기서린 말이 그의 고막을 때렸다.

《동문 말귀가 꽤 어둡구만.동심세계에 맞게 사적자료를 쓰라는건 내용을 축소하라는 소리지 더 불구어놓으란게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서 취급자는 10대의 일을 너무 어른스럽게 서술하면 누가 그걸 믿겠는가, 10대에 그 무슨 연구소조를 무었다는 사실이 잘 납득되지 않으니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에 대한것을 비롯하여 여러 사적자료는 빼는것이 좋겠다고 하는것이였다.

순간 김룡순동지는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았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의 사적자료중에서 기본핵을 없애라는것이나 마찬가지였던것이다.

그는 총알같이 내쏘았다.

《안됩니다.〈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조직은 엄연한 력사적사실입니다.내 심장을 통채로 들어내면 들어냈지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김룡순동지는 어떻게 그자의 사무실을 뛰쳐나왔는지 알수 없었다.하염없이 내리는 보슬비를 그대로 맞으며 한참이나 걸었지만 참을수 없는 분노로 하여 달아오른 가슴은 좀처럼 식을줄 몰랐다.

(어쩌면 이럴수 있는가. 친애하는 그이께서 혁명학원시절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배워주며 백두산혈통을 꿋꿋이 이어나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시지 않았단 말인가.)

시랑송모임에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격조높이 읊으시던 열정적인 모습, 어버이수령님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공연의 마감을 아동단원들이 추던 《단심줄》로 의의있게 장식하도록 지도해주시던 그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이께서는 그때 벌써 조국은 곧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며 수령님께서 계시여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확신하고계시였다.그이께서 랑송하시던 동시《초상화》와 시《우리의 수령》의 구절구절을 우리가 어찌 잊을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축복하여 쓴 편지와 노래《조국의 품》이 우리 심장속에 간직되여있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감히 지울수 있단 말인가.학원시절 그이와 맺은 혈연의 정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잠자리에 누워도 영원히 잊을수 없는 학원시절의 하많은 추억들이 더욱 생생히 떠올라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고 밥상에 마주앉아도 밥술을 뜰수 없었다.

며칠후 또다시 그자가 김룡순동지를 찾았다.이번에는 사무실이 아니라 자기 집으로 청하였다.진수성찬이 차려진 속에 간교한 회유의 입김이 김룡순동지의 귀를 간지럽혔다.

김룡순동지는 그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숱한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들이 사적자료고증에 나섰는데 굳이 나에게 고증내용을 철회하라고 하는 리유는 뭡니까?》

그의 맵짠 물음에 그자는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동무야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기자이고 또 이번 고증사업에서 핵심적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동무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김룡순동지는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들이 그렇게 갈대처럼 이 바람, 저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들인줄 아느냐.)

그자의 역겨운 수작은 계속되였다. 그러나 김룡순동지의 귀전에는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오직 혁명업적옹호고수와 거세말살이라는 말마디들만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큰 원을 그리며 돌고있었다.

지금처럼 사명감을 뼈저리게 체험해보기는 난생처음이였다.그자가 자기를 불순한 목적에 써먹으려고 이런 자리까지 마련했다는것을 깨닫게 된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너무도 긴장하고 격분한 나머지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것은 강박보다 더 무서운 회유이고 공갈이다.력사란 먹으로 지울수도 없고 불로 태울수도 없으며 검으로 찢을수도 없는것이다.그이의 혁명업적자료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한사코 부정하려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불현듯 혁명의 사령부의 안녕을 지켜 혀를 끊은 투사, 두눈을 잃고서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하였던 항일혁명투사들이 룡순동무, 뭘 주저하는가, 동무야 그이의 슬하에서 빨찌산물을 먹으며 자란 만경대혁명학원출신이 아닌가,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원의 본분을 다하라고 피타게 웨치는것만 같았다.

(이 사업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념이 가리켜서 하는 일이다.그 누가 그만두라고 내리먹인다고 하여 비겁하게 물러설 내가 아니다.그 소중한 자료들을 옹호고수하여 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겨놓는것은 이 땅에 태를 묻은 우리 인민의 성스러운 본분이다.목숨을 버릴지언정 수령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는 길에서는 단 한치도 절대로 물러설수 없다.)

김룡순동지는 다음날 동창생들인 김사진, 권영국동지를 만났다.그자가 사적자료철회의 강박을 그들에게도 했다는것을 알게 된 김룡순동지는 더더욱 치솟는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자는 분명 우리의 혈맥인 충실성의 전통을 끊어버리려고 쏠라닥거리는 나쁜 놈이예요.》

《옳소.우리는 혈통도 본적도 모르는 그런 얼간망둥이로 살수 없소.우리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사는 후대들도 자기들의 몸에 과연 어떤 피가 흐르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하오.》

김룡순동지의 심장속에서는 우리 당의 고귀한 혁명업적을 거세말살하려는 놈은 국경밖의 적들보다 더 무서운 혁명의 원쑤라는 불같은 적개심, 그런 놈들이 감히 내 조국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이 땅을 밟고다니게 절대로 그냥 놔둘수 없다는 철석의 각오가 더욱 굳세여졌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태양의 빛과 열을 가리워보려고 음으로 양으로 책동하던 그자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서의 정체는 낱낱이 드러나게 되였으며 끝끝내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를 결성하시고 이끌어주신 내용을 담은 위대성도서는 이렇게 세상에 태여났다.

김룡순동지는 현재 평천구역 륙교2동 49인민반에서 살고있다.

키도 작고 몸도 체소한 녀성인 그가 어떻게 그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업적을 옹호고수하기 위해 견결히 투쟁할수 있었는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부모를 잃고 의지가지할데 없어 떠돌아다니던 그는 인민군대의 등에 업혀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겼으며 그후 만경대혁명학원을 거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나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을 떠나 자기의 생명도 생활도 있을수 없으며 수령의 혁명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는데 우리 인민의 운명과 미래가 달려있다는것을 뼈저리게 절감하였다.

하기에 그는 오늘도 후대들에게 절절히 당부하고있다.

수령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이기 위해 몸과 마음 다 바쳐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첫째가는 본분이라고.


* *


올해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10돐과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80돐이 되는 경사스러운 해인 동시에 김일성장군의 략전》이 출판되여나온지 70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세월은 아득히 흘렀어도 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의 첫 소조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엄숙한 력사의 메아리가 되여 우리 후손들의 심장을 쾅쾅 울려주고있다.

수령의 혁명업적을 옹호고수하는 사업은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전사들인 우리 인민모두의 첫째가는 본분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력사는 곧 사회주의조선의 력사이며 바로 여기에 우리가 나아갈 진로가 있다는것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뜻이며 우리 인민의 확고부동한 신조이다.

오늘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는 모든 힘과 열정, 지혜와 정력을 깡그리 다 바쳐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깃든 우리 당의 고귀한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기 위해 고심분투하는 참된 혁명전사가 되려는 일념이 날을 따라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있다.

그렇다.우리 혁명이 좌절을 모르고 줄기차게 전진하려면, 우리 인민이 진군의 기치로 추켜든 붉은기가 영원히 높이 휘날리게 하려면 수령의 혁명업적고수를 죽어도 베고 죽어야 할 원칙, 근본중의 근본으로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한다.

오직 그 하나의 지향과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울 때만이 조선혁명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꿈과 리상을 성취할수 있으며 우리의 존엄과 행복을 대대손손 굳건히 지켜갈수 있다.

본사기자 백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