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2월 12일 로동신문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 혁명의 영광스러운 력사와 관련한 자료들을 발굴정리하는 사업을 줄기차게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전화의 나날
그들이 발휘한 열화같은 충성과 고결한 도덕의리심은 우리모두에게
시대가 맡겨준 력사의 중임
바로 그러한 시각
(만경대혁명학원시절 그이의
가슴이 후두둑 높뛰였다.수십년전의 추억들이 인상깊은 영화화면처럼 연줄연줄 떠올랐다.
첫 추억은 1952년 12월 어느날 지리시간에 있은 일이였다.그때 만경대혁명학원에 갓 편입하시였던
백두산과 천지는 우리 나라의 자랑이라고, 그것은 백두산에서
그때 김룡순동지를 비롯한 3분단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야!-》 하고 탄성을 터치였다.
백두산을 지리지식으로만이 아니라
그날의 녀학생이였던 김룡순동지는 쓰던 펜을 멈추고 다시금 명상에 잠겼다. 잇달아 눈앞에 떠오르는것은
《최고사령부에서 1952년 7월 2일
그 못잊을 글발을 되새겨보느라니
가렬한 전쟁의 불길이 온 조국강산을 뒤덮었던 그 시기에는
(10대초에 벌써
김룡순동지는 또다시 펜을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학원학생들은 동녘하늘이 훤해지자 집필을 더이상 이어갈수 없는것이 아쉬웠다.낮에는 기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여야 했던것이다. 김룡순동지는 취재와 집필이 바쁜 속에서도 스스로 맡아안은 사적자료발굴고증사업에 필요한 사색을 계속 이어갔으며 쉬임없이 떠오르는 못잊을 사실들을 늘 가지고다니는 수첩에 부지런히 속기하였다. 그가운데는 이런 대목도 있다. 《잊혀지지 않는것은 〈김일성장군의 략전〉에 올라있는 여러 어휘와 단어, 문장의 뜻을 세심히 가르쳐주신 사실이다.략전의 내용을 그냥 독보하신것이 아니라 몇대목 읽으시고는 그에 담겨진 사상의 진수를 분단동무들에게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저녁시간이면 김룡순동지는 다시 책상을 마주하고 추억의 갈피를 더듬어나갔다.그러느라니 학급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은 공부도 잘하고 조직생활에서 모범인 몇몇 동무들로만 소조를 따로 조직하자고 하였었다.
그 의견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우리가 조직하려고 하는 략전연구소조는 그 누구의 위신을 높이기 위한 소조가 아니라고, 략전연구소조는
그이의 뜻깊은 말씀을 들으며 학생들은 자기들앞에 10대의
날이 갈수록 김룡순동지의 잠시간은 줄어들었다.더 많은 사적자료를 발굴고증하기 위해 그는 사방에 줄을 놓아 만경대혁명학원시절의 동창생들의 행적을 찾았다. 그가 여러 동창생들을 만나 자기 생각을 터놓았을 때였다.그들은 자기들도 요즘 그이의 특출한 위인상을 세상에 꼭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는데서 혁명사적사업처럼 중요한 일이 어데 있겠소.더우기 우리가 체험한 사실들은 몇몇 사람만 알고있기에는 너무도 아쉽고 귀중한것이요.나도 몇가지 써놓은것이 있는데 그것까지 합쳐 온 나라 인민이 다 알고 후세에 길이 전해가게 합시다.》
어제날의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은 한마음한뜻으로 혁명사적발굴고증사업에 떨쳐나섰다.그들은 당시
(기억이 삭막해지기 전에 사적자료들을 빨리 수집하고 정확성을 열백번 검토해야 한다.이 고증사업은 다름아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적자료발굴고증에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단 몇줄밖에 안되는 자료고증을 위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문서들을 깐깐히 훑어보느라 뜬눈으로 새날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방군호, 권영국, 리세철동지를 비롯한 동창생들이 김룡순동지를 찾아왔다.《룡순동무, 우리가 무엇을 찾아냈나 좀 보오.》 하면서 그들이 내놓은것은
《이 작품들은 금은보화에도 비길수 없는 제일 귀중한것이예요.》 추억깊은 시의 구절들을 조용히 읊어보는 김룡순동지의 눈가에 기쁨의 미소와 함께 뜨거운 눈물이 맺히였다.그 작품들을 발굴고증하기 위해 고심했을 동창생들의 수고가 가슴뜨겁게 헤아려졌다.
그들은 또다시 모여앉아 학원시절에 느낀
《소조활동때
《옳소.벽보전람회, 우리 분단벽보의 제호를 〈백두산〉이라고 달아주신분도 그이가 아니시였소.오늘날의 직관선전활동도 그 근원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보면 학원시절의 벽보전람회였거던.》… 서로가 터놓는 불같은 격정을 일일이 다 적어놓은 김룡순동지는 섬광과도 같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계속 써나갔다.
김룡순동지는 북받치는 흥분을 누를길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모셔진 뜻깊은 기념사진앞에 다가섰다.
차림새를 보면 그이는 자기들과 다름없는 만경대혁명학원의 평범한 학생이시였다.그러나 품은 뜻과 원대한 구상,
김룡순동지는 가슴속에서 끓어넘치는 경모의 감정을 그대로 원고지에 담았다.
인민이여, 똑똑히 새겨두시라.그이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벌써
정녕
…
그가 써나간것은 단순히 사적자료고증만을 위한 글줄이 아니였다.그처럼 어리신 나이에 전화의 불길속에서 이룩하신
목숨을 버릴지언정 한치도 물러설수 없다
윤철웅, 방군호, 리세철, 권영국, 김사진, 김철호 등 모두 그 시절의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이였다.동창생들을 또다시 만나고보니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우리가 끝내 해냈다는것이 정말 꿈만 같아요.》
《난 그이와 한학급이 되였다고 기뻐하던 그날의 학생이 된 심정이요.》 이윽하여 매 사람이 사적자료를 취급하는 성원의 방에 들어가 차례로 원고들을 놓고 나왔다. 김룡순동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걱정이 떠날줄 몰랐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자.우리가 한가지라도 빼놓은것은 없는지.) 수많은 기사들을 써서 신문지면에 실은 그였지만 이번에는 자기가 고증한 자료들에 미흡한 점이 있을가보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며칠후 김룡순동지는 취급자의 부름을 받았다. 김룡순동지가 마음을 조이고있는데 취급자는 그가 또박또박 박아쓴 혁명사적고증자료를 한동안 뒤적거리다가 원고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으며 꽤 많이 썼다고 하면서 다시 정리할수 없겠는가고 묻는것이였다. 김룡순동지는 송구한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검토해보면서 보충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취급자는 손을 들어 허공을 홱 내리그으며 콩밭에 서슬치려는가, 자기 말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동심세계에 맞게 사적자료를 다시 쓰는것이 좋겠다고 은근한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원고를 되돌려받아가지고 나오는 김룡순동지의 생각은 착잡했다.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노력해보자.) 또다시 기억을 더듬어가며 며칠밤을 새운 그는 더 두툼해진 원고를 안고 일군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것은 싸늘한 눈빛이였다.그에 못지 않게 랭기서린 말이 그의 고막을 때렸다. 《동문 말귀가 꽤 어둡구만.동심세계에 맞게 사적자료를 쓰라는건 내용을 축소하라는 소리지 더 불구어놓으란게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서 취급자는 10대의 일을 너무 어른스럽게 서술하면 누가 그걸 믿겠는가, 10대에 그 무슨 연구소조를 무었다는 사실이 잘 납득되지 않으니
순간 김룡순동지는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았다.
그것은
그는 총알같이 내쏘았다. 《안됩니다.〈김일성장군의 략전〉연구소조조직은 엄연한 력사적사실입니다.내 심장을 통채로 들어내면 들어냈지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김룡순동지는 어떻게 그자의 사무실을 뛰쳐나왔는지 알수 없었다.하염없이 내리는 보슬비를 그대로 맞으며 한참이나 걸었지만 참을수 없는 분노로 하여 달아오른 가슴은 좀처럼 식을줄 몰랐다.
(어쩌면 이럴수 있는가.
시랑송모임에서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격조높이 읊으시던 열정적인 모습,
(그이께서는 그때 벌써 조국은 곧
잠자리에 누워도 영원히 잊을수 없는 학원시절의 하많은 추억들이 더욱 생생히 떠올라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고 밥상에 마주앉아도 밥술을 뜰수 없었다. 며칠후 또다시 그자가 김룡순동지를 찾았다.이번에는 사무실이 아니라 자기 집으로 청하였다.진수성찬이 차려진 속에 간교한 회유의 입김이 김룡순동지의 귀를 간지럽혔다. 김룡순동지는 그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숱한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들이 사적자료고증에 나섰는데 굳이 나에게 고증내용을 철회하라고 하는 리유는 뭡니까?》 그의 맵짠 물음에 그자는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동무야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기자이고 또 이번 고증사업에서 핵심적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동무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김룡순동지는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들이 그렇게 갈대처럼 이 바람, 저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들인줄 아느냐.) 그자의 역겨운 수작은 계속되였다. 그러나 김룡순동지의 귀전에는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오직 혁명업적옹호고수와 거세말살이라는 말마디들만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큰 원을 그리며 돌고있었다. 지금처럼 사명감을 뼈저리게 체험해보기는 난생처음이였다.그자가 자기를 불순한 목적에 써먹으려고 이런 자리까지 마련했다는것을 깨닫게 된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너무도 긴장하고 격분한 나머지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것은 강박보다 더 무서운 회유이고 공갈이다.력사란 먹으로 지울수도 없고 불로 태울수도 없으며 검으로 찢을수도 없는것이다.그이의 혁명업적자료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한사코 부정하려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불현듯 혁명의 사령부의 안녕을 지켜 혀를 끊은 투사, 두눈을 잃고서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하였던 항일혁명투사들이 룡순동무, 뭘 주저하는가, 동무야 그이의 슬하에서 빨찌산물을 먹으며 자란 만경대혁명학원출신이 아닌가,
(이 사업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념이 가리켜서 하는 일이다.그 누가 그만두라고 내리먹인다고 하여 비겁하게 물러설 내가 아니다.그 소중한 자료들을 옹호고수하여 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겨놓는것은 이 땅에 태를 묻은 우리 인민의 성스러운 본분이다.목숨을 버릴지언정
김룡순동지는 다음날 동창생들인 김사진, 권영국동지를 만났다.그자가 사적자료철회의 강박을 그들에게도 했다는것을 알게 된 김룡순동지는 더더욱 치솟는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자는 분명 우리의 혈맥인 충실성의 전통을 끊어버리려고 쏠라닥거리는 나쁜 놈이예요.》 《옳소.우리는 혈통도 본적도 모르는 그런 얼간망둥이로 살수 없소.우리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사는 후대들도 자기들의 몸에 과연 어떤 피가 흐르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하오.》 김룡순동지의 심장속에서는 우리 당의 고귀한 혁명업적을 거세말살하려는 놈은 국경밖의 적들보다 더 무서운 혁명의 원쑤라는 불같은 적개심, 그런 놈들이 감히 내 조국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이 땅을 밟고다니게 절대로 그냥 놔둘수 없다는 철석의 각오가 더욱 굳세여졌다.
이렇게 되여
김룡순동지는 현재 평천구역 륙교2동 49인민반에서 살고있다.
키도 작고 몸도 체소한 녀성인 그가 어떻게 그렇듯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부모를 잃고 의지가지할데 없어 떠돌아다니던 그는 인민군대의 등에 업혀
그 나날 그는
하기에 그는 오늘도 후대들에게 절절히 당부하고있다.
올해는
세월은 아득히 흘렀어도
오늘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는 모든 힘과 열정, 지혜와 정력을 깡그리 다 바쳐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깃든 우리 당의 고귀한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기 위해 고심분투하는 참된 혁명전사가 되려는 일념이 날을 따라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있다.
그렇다.우리 혁명이 좌절을 모르고 줄기차게 전진하려면, 우리 인민이 진군의 기치로 추켜든 붉은기가 영원히 높이 휘날리게 하려면
오직 그 하나의 지향과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울 때만이 조선혁명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꿈과 리상을 성취할수 있으며 우리의 존엄과 행복을 대대손손 굳건히 지켜갈수 있다. 본사기자 백성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