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2월 14일 로동신문
숭고한 덕망으로 만민의 칭송을 받으신 희세의 위인
은혜로운 품에 안겨 되찾은 생의 활력
로씨야의 로병작가인 까르뽀브는
쏘도전쟁시기 붉은군대 정찰소대장을 한 까르뽀브는 전장에서 세운 위훈들로 하여 20대에 쏘련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그는 전후에 제대되여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의 희망대로 소설을 쓰는 인간정신의 기사가 되였을 때에도 정찰병시절의 생활체험을 가지고 군사물주제의 장편실화소설들을 창작하였다.
하지만 쏘련이 해체되자 까르뽀브는 인생의 허무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정의와 량심의 옹호자, 대변자가 되여 사회의 진보를 추동하려던 작가로서의 리상이 물거품으로 되였다는 서글픈 생각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것이다.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던 그에게 생의 활력을 되찾아주신분은 바로 우리의
만민이 흠모하는 탁월한 선군령장의 가르치심을 받는 까르뽀브의 가슴속에서는 서서히 꺼져가던 옛 정찰병으로서의 긍지감과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다시금 부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까르뽀브는
그를 반갑게 만나주신
그가 들어있는 숙소를 떠나실 때
까르뽀브는
하기에 그는 우리 나라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로씨야에 가서도
그후 까르뽀브는
고목에도 꽃을 피워준 따뜻한 사랑
70로년에 회춘을 맞이하였다고 온 세상에 소리높이 구가한 한 주체사상신봉자가 있었다.주체사상국제연구소 명예리사장이였던 이노우에 슈하찌였다. 하다면 이노우에 슈하찌가 어떻게 되여 로년기에 자기가 청춘을 맞이하였다고 긍지높이 웨쳤겠는가. 그때는 주체84(1995)년 3월이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부르죠아경제학비판론자로서 자본주의사회의 부조리한 체제를 날카롭게 비판하여 일본정계와 학계에서 이름을 날렸다.하지만 참다운 인간사회를 찾지 못해 번민과 탄식속에서 계속 모대겨왔다.
그러던 그는
그리고
그 과정에 이노우에 슈하찌는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으로 되였으며 첫 국제 김일성상수상자의 영예도 지니였다.
진정
하기에 그는 뜻밖에도
그러한 그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 일으켜세워주신분이 계시였으니 그분은 다름아닌
주체84(1995)년 4월 5일 만수대의사당에서는 이노우에 슈하찌의 생일 70돐을 축하하는 연회가 진행되였다.연회에서는
지금까지 받아안은 사랑도 한량없는데 이번에는
그날 밤 만수대언덕에 오른 이노우에 슈하찌는
이노우에 슈하찌는
주체91(2002)년 2월 이노우에 슈하찌는
그는 도서에서
이것은 결코 그 하나만의 심정이 아니였다. 세계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심정을 대변한 심장의 웨침이였다.
참으로
본사기자 리경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