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2월 7일 《우리 민족끼리》

 

투고

녀인의 분노

 

인간은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다.

소꿉시절에는 물론이요 머리에 흰서리를 떠인 인생의 황혼기에도 어머니의 모습을 소중히 새겨안고 기뻐도 슬퍼도, 즐거워도 힘겨워도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군 한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나에게도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있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표상이란 단지 이름 세글자뿐이며 그것이 딸에게 남아있는 어머니의 전부이다.

내가 어머니라 불리우고 손자, 손녀가 주렁주렁한 할머니가 된 지금에 와서도 애써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보지만 그때마다 괴여오르는것은 쓰라린 아픔과 함께 참을수 없는 울분과 분노이다.

나는 태여나 넉달도 못되여 어머니를 잃었다. 아니, 잃은것이 아니라 빼앗겼다.

백날을 갓 넘긴 나를 업고 친정집을 다녀오던 어머니는 마을어구에서 왜놈들에게 랍치되여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갔다고 한다. 마을처녀 3명과 함께 짐짝처럼 차에 실려 끌려가면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나를 피터지게 불렀을 어머니의 웨침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다.

이렇게 나는 어머니를, 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이 엄마를 빼앗겼다. 일제야수들은 그가 10대의 소녀이든, 처녀이든, 유부녀이든, 젖먹이어린이가 달린 아이어머니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끌어갔다. 그렇게 끌려간 수가 무려 20만명…

얼마나 많은 부모들과 남편, 아이들에게서 귀한 딸자식과 소중한 안해, 이 세상 전부와도 같은 어머니를 빼앗아갔는가.

나의 어머니는 왜놈들에게 당하는 치욕과 함께 피덩이같은 딸과 갈라진 울분, 살붙이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으로 더욱 고통속에 모대겼을것이다. 아마 어린 자식에게 다 주지 못한 모성애를 고이 안고 원한에 사무쳐 눈도 감지 못했을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여든나이가 된 지금도 이가 갈리고 자다가도 소스라쳐 일어난다.

더욱 분을 참을수 없는것은 바다건너 왜놈들이 저주로운 과거죄악을 꼬물만큼도 반성하지 않고 사죄와 배상이 아니라 력사를 외곡하며 재침의 칼을 갈고있는것이다.

7년전 친일역적 박근혜일당과 성노예문제와 관련한 그 무슨 《합의》라는것을 만들어내고 이제는 다 《해결된 일》로 치자고 한다. 일본군성노예를 공공연히 《매춘부》로 모독하고 세계 여러 지역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시키라며 파렴치하고 오만방자하게 놀아대고있다고 한다.

하기야 조선사람들의 피가 고여있는 원한의 고역장인 하시마섬(군함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면서 국제사회앞에 한 약속마저 리행하지 않고있는 일본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저들이 저지른 강제련행, 강제로동의 죄악을 인정하고 세상에 알리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던 그 약속을 7년이 되여오도록 지키지 않으면서 또다시 조선인강제징용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저속하고 저렬하며 미련한 속물들이니 과거범죄에 대한 반성과 배상은커녕 오히려 미화분식, 외곡날조하며 죄악우에 죄악을 덧쌓는짓도 서슴지 않고있는것이다.

범죄라면 과거 일제가 감행한 성노예범죄와 같은 특급범죄, 특대형반인륜적죄악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있어도 어머니의 얼굴을 모르는 이런 비극을 초래한 범죄, 수십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뼈를 에이는 상처와 고통, 불행을 들씌운 죄악이 세월이 흘렀다고 하여 퇴색되고 꾸며낸다고 하여 달라질수 있는가.

이를 안다면 한줌의 흙이 되였을 나의 어머니, 아니 수많은 피해자녀인들이 땅을 박차고 일어나 일본반동들의 멱줄을 움켜쥐고 태를 쳤을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철천의 한을 풀고 천년숙적 일본과 총결산하기 위해 일떠선 민족의 모습에서.

피의 복수를 웨치는 어머니의 절규를 합쳐 이 땅의 녀인이 분노를 터친다.

잊지 말라! 용서치 말라! 반드시 징벌하리라!

평안남도 북창군 옥천로동자구 박옥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