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3월 23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푸른 숲의 억센 뿌리로 사는 참된 애국자

강계시산림경영소 의진산림감독분소 공훈산림공 조명일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2월 10일부 《로동신문》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80돐을 맞으며 당정책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운 일군, 근로자, 군인들에게 당 및 국가표창이 수여된 소식이 실렸다.공로자들속에는 공훈산림공칭호를 수여받은 강계시산림경영소 의진산림감독분소 산림감독원 조명일동무도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산림경영소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물론 강계시 신학동지구의 주민들 누구나 자기 일처럼 기쁨을 금치 못하며 한결같이 말하였다.

푸른빛보다 누런 흙빛이 더 짙던 수백정보의 산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든 조명일동무는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다.이런 사람이 진짜애국자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모아 찬양하는 애국자, 거기에는 한그루의 나무, 한뙈기의 땅도 조국의 재부로 귀중히 여길줄 알고 혼심을 다 바쳐 담당한 산림에 무성한 숲을 조성한 조명일동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있다.

조국과 인민이 자랑하는 애국자란 과연 어떤 사람이며 진정 어떻게 살며 투쟁하는것이 조국의 부강번영에 참답게 이바지하는것인가를 우리는 조명일동무의 삶을 통하여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된다.

 

애국의 마음이 거목을 키운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된 후 어느한 목장에서 청년일군으로 사업하던 조명일동무가 산림감독원으로 일하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날 종업원들과 함께 주변농장에 집짐승사료를 받으러 갔던 그는 그곳에서 낯익은 한 산림감독원을 만나게 되였다.년세가 있는데 아직 산발을 타는가고 묻는 그에게 산림감독원은 혼자말처럼 나직이 뇌이였다.

《할 일은 많은데 한해두해 나이를 먹는게 정말 안타깝구만.전선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던 우리 장군님께서 나라의 산들이 벌거숭이가 되는것을 두고 그토록 가슴아파하시였다는데…》

그 말이 조명일동무의 가슴을 쿵- 울렸다.그날 그는 밤깊도록 잠을 이룰수 없었다.산림감독원이 하던 말이 계속 귀전을 감돌았고 나라가 겪는 고난의 흔적이 그대로 비낀 산들이 눈앞에 밟혀왔다.

그럴수록 생각이 깊어졌다.누구나 자기 피부에 난 상처에는 약을 바르지만 조국의 산들에 흙이 드러난것을 보고 그 상처를 가시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과연 그 얼마이던가.

나도 지금껏 산림조성사업을 자기와 인연이 없는 일로 여기면서 례사롭게 대하지 않았던가.

그는 무거운 자책속에 잠겨 며칠을 보내였다.그즈음 그는 산림감독원이라는 직업에 자주 자기를 세워보았다.그러나 두 길중 어느 길을 택할것인가에 대하여 선뜻 용단을 내릴수 없었다.이미 걷고있는것은 안착된 길이였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산림감독원의 길은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어렵고 생소한 길이였던것이다.

당시 앞날이 촉망되는 31살의 청년일군인 그가 첫번째 길을 그냥 간다고 하여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그의 심장속에서는 이런 량심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나 하나만을 위한 안일인가 아니면 조국을 위한 헌신인가.조국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할것이 아니라 한몸을 내대고 나라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실천가가 되자.

이렇게 되여 조명일동무는 조국의 산들을 푸른 숲 우거진 황금산, 보물산으로 가꾸어가는 길에 한생을 바칠것을 결심하였다.

며칠후 그가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을 때 안해인 백호선동무의 심정은 착잡했다.정든 시내를 떠나 그것도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낯설은 산골에 가서 살아야 하니 누군들 쉽게 결심내릴수 있으랴.

왜 굳이 고생을 사서 하려는가고 묻는 안해에게 조명일동무는 긴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를 위한 일을 고생으로 여기는 자식이 없는것처럼 참된 삶과 행복을 안겨주는 조국을 위해 있는 힘과 열정을 다 바치려는것이 자기의 진정이라고.

이런 남편에게 백호선동무는 더 다른 말을 할수가 없었다.

당과 조국의 부름앞에 주저를 몰랐던 병사시절처럼 조명일동무가 결연히 산림경영부문으로 달려나간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12월이였다.

산림감독원이 될 결심을 하기도 쉽지 않은것이였지만 산림감독원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는것은 더욱 힘겨운 일이였다.그는 이악하게 노력하였다.

매일같이 수십리 산길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담당구역의 지형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심어야 할 나무종류와 면적을 가늠한데 기초하여 밤이면 산림조성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그렇게 높고 험한 산길을 매일 걷느라 신발은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해지군 하였으나 그의 걸음새는 변함이 없었다.

하루빨리 흙이 드러난 산들을 모두 수림화하자.

조명일동무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하루를 열흘맞잡이로 살았다.이깔나무종자를 구하기 위해 랑림군에 갔을 때였다.동행한 사람들과 같이 객지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끼니를 번지면서까지 여러날동안 길을 걸어 마침내 현지에 도착하였으나 그는 쉴념을 하지 않고 즉시 종자채취에 달라붙었다.

자주 내리는 비때문에 건조날자가 하루하루 드틸 때마다 애써 마련한 종자가 못쓰게 될것같아 그의 가슴은 타드는것만 같았다.

이렇게 열흘만에 20㎏의 종자를 마련한 조명일동무는 그것을 그 무슨 진귀한 보물처럼 정히 포장하여 배낭에 지고 귀로에 올랐다.그들이 강계시로 돌아올 때에는 모두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력력하였다.잠시 다리쉼을 하기 위해 둘러앉자 한사람이 숲을 가꾸는 일이 한두해에 이루어지는것도 아닌데 누가 보는이도 없는 외진 산중에서 좀 쉬염쉬염 일하면 안되는가고 조명일동무에게 속에 품고있던것을 터놓았다.그때 그들의 충혈진 눈과 부르튼 입술을 바라보며 조명일동무가 한 말을 그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이제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 산판을 뒤덮게 될 그날에 가서 오늘을 즐겁게 추억하며 푹 휴식합시다.》

이렇듯 불같은 지향을 안고 그는 산세와 기후, 토양의 특성에 맞게 여러개의 숲사이양묘장을 만들고 그 비배관리를 깐지게 하면서 해마다 많은 나무종자를 마련하였다.

여름이면 갓 심은 나무들이 높은 온습도에 의해 상할세라 마음쓰며 담당구역을 발이 닳도록 돌고 또 돌았고 봄철이나 가을철이면 나무들이 산불피해를 입을가 걱정하며 깊은 밤, 이른새벽에도 수십리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산에서 살다싶이 하는 그를 보며 감동을 금치 못해하는 사람들에게 조명일동무는 말하군 하였다.

《쓸만한 나무가 별반 없는 산을 지켜서야 무슨 산림감독원이겠습니까.나무가 있고서야 산림감독원도 필요한거지요.》

조명일동무가 산림조성에 얼마나 혼심을 바치였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담당한 지구에는 마을에서도 수십리 떨어져있는 석회암지대인데다가 해발고는 1 000여m나 되는 바람세찬 등판이 있다.이런 불리한 조건으로 사람들은 거기에만은 나무를 심어 자래울수 없다고 하였다.조명일동무는 그것을 허용할수 없었다.

산가까이에 나무모밭을 조성할것을 결심한 그는 돌들을 추어내고 잡관목뿌리들을 뽑아 양묘장을 꾸리였다.질좋은 거름과 부식토를 지고 산길을 오르내리기를 그 몇번,

그런 조명일동무를 보고 누구나 돌우에도 꽃을 피울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드디여 그날이 왔다.애지중지 정성다해 키운 어린 나무모가 푸른 잎새를 펼치고 산판에 억세게 뿌리내리였을 때 조명일동무의 눈가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한그루의 나무도 가슴에 품어안고 후더운 심장으로 가꾸어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 우거지게 하려는 참다운 인생관을 지닌 사람만이 터칠수 있는 격정의 분출이였다.

이제는 그가 담당한 울창한 산림에 곰, 메돼지, 노루를 비롯한 많은 산짐승들이 보금자리를 폈다.그 나날 여러번 상급단위 일군으로 조동되는 문제가 상정되였으나 그때마다 조명일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손으로 씨를 뿌리고 어린 나무모를 키워 거목으로 키우는 재미를 무엇에 비길수 있겠습니까.이 숲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편히 살것같지 못합니다.》

조명일동무에게 있어서 정든 집과도 같은 푸른 산림, 정녕 그것은 그의 뜨거운 애국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였다.

가벼운 봄바람에도 솨-솨- 설레이는 수백정보의 숲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것같았다.이 땅의 한그루한그루 거목들은 당과 조국을 받들어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려는 열렬한 애국의 마음에 먼저 뿌리를 내리였다고.

 

울창한 수림은 한그루한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진다

 

조명일동무와 함께 일하는 산리용반원들과 신학동지구의 주민들 누구나 하는 말이 있다.

산림은 온갖 재부가 가득찬 나라의 창고와 같다.그러니 이 땅의 주인인 우리모두가 제 집재산을 늘구는 심정으로 산을 푸르게 하기 위해 헌신분투해야 한다.

이것은 조명일동무가 입버릇처럼 늘 외우는 말이라고 한다.

조명일동무가 푸른 숲을 가꾸어온 나날은 뜨거운 인정미와 꾸준한 해설, 실천적모범으로 군중을 산림조성과 보호사업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교양하고 각성시켜온 나날이기도 했다.

몇해전 산리용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명일동무는 커다란 종이말이를 펼쳐보였다.과학기술보급기지와 나무모온실 등이 갖추어진 양묘장전망계획도였다.

모두의 입에서 《야-》 하는 탄성이 울려나온것은 한순간이였다.양묘장의 위치와 부지면적 등 건설과 관련한 조명일동무의 설명을 듣느라니 저도모르게 위구심이 생겼던것이다.

양묘장이 들어앉게 될 자리가 순수 돌밭이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수 있으랴.

산리용반원들의 푸념이 조명일동무의 귀전을 울리였다.

이젠 해마다 채벌구역에만 나무를 심으면 되겠는데 나무모밭이 1정보라면 너무 크지 않은가.또 그 많은 돌들을 우리 힘으로 어떻게 처리하겠는가.건축공사도 전문건설자들의 도움이 없이 우리끼리 어떻게 하겠는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명일동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산을 쓸모있는 황금산으로 만들자면 아직 할 일이 많다.이제 여기서 산과일나무와 약나무모들을 많이 키워 산에 심으면 산림이 더 풍성해지고 그만큼 나라의 재부가 늘어나게 된다.그러니 힘은 들어도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이렇게 말하는 조명일동무를 바라보는 산리용반원들의 눈앞에 어느해 나무심기기간 자기들이 키운 나무모들을 다른 군에 보내주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날 제살붙이처럼 애지중지 키운 나무모들을 어루쓸며 산리용반원들은 섭섭함을 금치 못해하였다.자그마한 돌이라도 섞일세라 한삽한삽 흙을 채로 치고 제 집터밭보다 더 많은 거름을 내여 걸군 밭에 씨를 뿌리고 손끝에서 피가 나게 김을 매면서 온갖 정성을 다해 가꾼 나무모들이였다.가물과 병해충으로부터의 피해를 막기 위해 흘린 땀은 얼마이고 지새운 밤은 또 얼마인지 모른다.그렇게 가꾼 나무모를 다른 고장에 보내주자니 그들의 심정인들 오죽했으랴.

그때에도 조명일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른 고장도 다 내 조국땅이다.우리의 땀과 노력이 깃든 나무모가 나라의 곳곳에 뿌리내려 조국의 산천이 더욱 푸르러지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그들이 지난 기간 해마다 강계시는 물론 도안의 여러 군들에 보내준 나무모는 수십만그루나 된다.

몇달후 돌밖에 보이지 않던 산비탈에 산골의 풍치와 어울리게 멋진 건물이 일떠섰고 양묘장에서는 여러가지 수종의 많은 나무모가 서로 키돋움하며 자랐다.

산림조성은 한두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으며 전군중적운동으로 내밀어야만 성과를 거둘수 있는 사업이다.

조명일동무는 이것을 항상 명심하고 주민들과 학생들속에 우리 당의 산림정책을 해설해주고 그들을 동원하여 산림조성사업을 꾸준히 내밀었다.

어느해 나무심기철이였다.나무를 심기 위하여 산기슭에 모여선 학생들앞에 나선 조명일동무는 먼저 그들에게 학생들이 쓰는 학습장과 교과서는 무엇으로 만들며 우리가 숨쉬는 산소는 어디서 나오는가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학생들은 성수가 나서 나무를 심었다.조명일동무는 학생들이 구뎅이를 정확히 파도록 그 크기도 알려주고 나무모도 날라주면서 나무심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주었다.시간이 어지간히 지나 학생들이 심은 나무를 돌아보던 그는 비탈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심은 나무가 곧추 서있지 않았던것이다.눈길이 덜 미치는 곳이니 몇몇 학생들이 규정대로 나무를 심지 않은것이 분명하였다.그는 다시 나무를 심으며 학생들에게 말하였다.

《어릴 때 곧추 심지 못한 나무는 커서도 밑둥이 휘여 쓸모없이 되고맙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나무 한그루에도 깨끗한 마음을 바치는 사람만이 참된 애국자로 자랄수 있습니다.》

언제인가 주변마을에 사는 한 주민이 허가없이 산에 들어가 나무에 손을 댄 일이 있었다.이 사실을 알게 된 조명일동무는 그를 되게 꾸짖었다.

《산림은 열쇠를 채우지 않은 나라창고나 같소.그렇다고 하여 동무처럼 자기만을 먼저 생각하며 저마끔 망탕 나무를 찍으면 산들이 어떻게 되겠소.개개의 나무들이 모여 수림을 이루듯이 누구나 애국의 마음 안고 지키고 가꾸어야 나라의 산림이 더욱 푸르러질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는 진이 흐르는 나무의 상처에 흙을 발라주는 조명일동무를 보며 그 주민은 뜨거운것을 삼켰다.

애국심은 그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심는 한그루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무를 심기 전에 애국의 마음을 먼저 심는 애국자가 되자고 열렬히 호소하는 그를 주변마을사람들은 누구나 우리 산림감독원이라고 정담아 부르며 존경하고 따랐다.

푸른 산은 귀중한 조국의 한 부분이다.때문에 그 어느 구석진 곳, 비탈진 곳에도 《보물》이 차넘치게 해야 한다는것이 조명일동무가 언제나 깊이 간직하고 사는 소중한 애국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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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제2차 초급당비서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식수를 하신 혁명활동보도소식에 접한 조명일동무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하나의 잔가지, 잔뿌리라도 상할세라 뜨거운 지성을 기울여 애지중지 나무를 심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영상을 숭엄히 우러르며 위대하신 그이처럼 따뜻한 열과 정, 순결한 량심을 바쳐 조국산천을 사랑하며 가꾸려는 불같은 맹세가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그는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내세웠다.그것은 수종이 좋은 나무모들을 심어 담당구역들을 보다 쓸모있는 황금산으로 더욱 훌륭히 가꾸기 위한 통이 큰 계획이였다.

참된 애국으로 높뛰는 심장은 언제나 뜨겁게 불타는것이다.

글 본사기자 김진욱
사진 특파기자 전명일